사무엘상 39강 구약 사울과 신약 사울의 비교

사무엘상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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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39강 구약 사울과 신약 사울의 비교
삼상 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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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우리는 사울의 육신적 배경과
그의 처음과 끝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았습니다.
그의 시작은 너무도 좋았지만 그의 마지막은
너무도 처참하고 비극적이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히려 사울이 왕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자리를 피했다면
처참한 결과를 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날 신약 성도는 왕의 위치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항상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낮은 자세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오히려 주변 사람중에 왕이 되고자 하는 사람을
왕으로 여겨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왕되는 삶을 살지 않으면
내가 왕이되는 삶을 살지 계속 시험받는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여러분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해하고 있다면,
여러분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은 여러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바로 그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나 없이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I am the vine, ye [are] the branches: He that abideth in me, and I in him, the same bringeth forth much fruit: for without me ye can do nothing.
위 말씀을 주의 깊게 볼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고 우리는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 거하면 많은 열매를 맺지만
내가 없으면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분이 없이는 열매를 적개 맺을 것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이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나에게 손과 발을 주셨고 나에게 생각과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 어느 것도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셨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영안실 시신의 몸
우리가 병원에서 돌아가신 분을 바라보게 되면,
이목구비와 손과 발이 다 그자리에 있지만,
그 사람의 몸에서 생명이 떠난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제 그 몸은 아무것도 아닌것이 된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을 하나님이 만드셨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담의 형상을 만드셨을때는
그는 죄의 흔적이나 오염 없이 가장 놀라운 인간의 표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생명의 숨을 불어넣기 전까지는
그저 토기그릇처럼 누워있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서 저에게 마음을 주셨고, 손을 주셨고, 발을 주셨고,
생명을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고
저 자체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제 반대의 경우를 살펴봅시다.
(빌4:13)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I can do all things through Christ which strengtheneth me.
예수님과 함께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예수님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성공하고 그분이 없으면 실패합니다.
그분이 없이는 모든 것을 잃은 것이고
그분과 함께라면 모든 것을 얻은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고 있다면
내 자신을 내가 통제하려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스스로의 생각으로 결정을 내릴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 어떤 일이든 나를 통해 일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인생을 통제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인 것입니다.
남성분들이나 여성분들도 마찬가지로
결혼할 사람을 선택하는 과정과 결혼을 이어가는 생활에 있어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빨리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지식이 있어서 그 말씀에 순종할 생각이 없다면,
여전히 자신의 의견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빌3:3) 영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기뻐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자니라.
For we are the circumcision, which worship God in the spirit, and rejoice in Christ Jesus, and have no confidence in the flesh.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위험요소는
우리가 육체를 의지하게 되는것입니다.
“목사님, 저에게 있는 이 머리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제가 걸을 수 있게 주신 두 다리도 하나님이 주셨다고 믿습니다. !!”
제가 말하는 것은 여러분이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주신 머리로 판단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판단의 기준을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근거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통제아래 여러분의 머리를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사울과 사울의 비교
구약의 사울과 신약에서 거듭나서 사울이 된 사람의
차이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빌3:4) 나 역시 육체를 신뢰할 수도 있지만 그리하지 아니하노라. 만일 어떤 다른 사람이 육체를 신뢰할 만한 것이 자기에게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니
Though I might also have confidence in the flesh. If any other man thinketh that he hath whereof he might trust in the flesh, I more:
바울은 누군가 육신을 신뢰 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자신은 그 누구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상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빌3:5) 나는 여드레째 되는 날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의 줄기에 속한 자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자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에 관하여는 바리새인이요,
Circumcised the eighth day, of the stock of Israel, of the tribe of Benjamin, an Hebrew of the Hebrews; as touching the law, a Pharisee;
(빌3:6) 열심에 관한 한 교회를 핍박하였고 율법에 있는 의에 대하여는 흠이 없는 자로다.
Concerning zeal, persecuting the church; touching the righteousness which is in the law, blameless.
(빌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이득이던 것들을 곧 그것들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손실로 여겼으며
But what things were gain to me, those I counted loss for Christ.
(빌3:8) 참으로 확실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의 손실을 입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Yea doubtless, and I count all things but loss for the excellency of the knowledge of Christ Jesus my Lord: for whom I have suffered the loss of all things, and do count them but dung, that I may win Christ,
(빌3:9) 율법에서 난 내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난 의를 소유한 채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And be found in him, not having mine own righteousness, which is of the law, but that which is through the faith of Christ, the righteousness which is of God by faith:
(빌3:10) 이것은 내가 그분의 죽으심과 일치하게 되어 그분과 그분의 부활의 권능과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알고자 함이요,
That I may know him, and the power of his resurrection, and the fellowship of his sufferings, being made conformable unto his death;
우리는 주님 앞에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군가 나를 높이거나
내 안에서 나를 높이는 것에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낮은 곳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여러분의 매일의 삶에서 누군가 여러분에게 왕관을 씌우려고 한다면
그 왕관을 주님 앞에 던져버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누군가 그 왕관을 쓰려고 한다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시길 바랍니다.
내 안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거하시고,
내 안에는 그분의 성령이 내 마음의 왕좌에 거하십니다.
나는 나의 주권자인 주님이 내 육체를 다스리도록 할 것입니다.
내 손과 발이 주님의 통제아래 있지 않으면
죄를 향해 움직일 것이 뻔하기 때문에
내 손과 발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주님이 명령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귀에게도 퇴폐스러운 가사가 가득한 노래를 듣지 않도록 해줘야 합니다.
거룩한 가사가 있고 거룩한 멜로디가 있는 음악을 듣도록 하지 않으면,
자극적인 가사와 멜로디로 나의 귀를 더럽힐 것이 뻔합니다.
사울은 모든 것이 잘 되고 있었지만, 그는 영적인 것을 보지 못하고
육체를 신뢰하는 것에서 머물고 있었습니다.
다메섹의 사울에게는 좋은 것들이 모두 주어져 있었지만,
그것들이 신뢰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당신의 인생에 비어 있는 왕좌가 있습니다.
매일 아침 당신은 그 왕좌의 자리에 누구를 앉히고 계십니까?
사탄은 돌아다니면서 당신에게 여러분의 인생의 통치자가 되기를 제안합니다.
여러분에게 여러분 육신의 왕국을 제안합니다.
기드온이 한 것처럼 말하세요, '하나님이 제 통치자입니다,
저는 그 왕좌에 앉을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탄을 당해낼 수 없다면, 예수님이 한 것처럼 그냥 빠져나오세요.
주의를 기울이지 마세요.
하지만 무엇을 하든, 그 왕관을 머리에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목사의 자리는 왕관을 쓰는 자리가 아닙니다.
섬기는 자리입니다.
바울은 사도의 직분을 맡았지만 왕관을 쓴 자세로 섬기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사울
(삼상9:3)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나귀들을 잃어버리매 자기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이제 종 하나를 데리고 일어나 가서 나귀들을 찾으라, 하니
And the asses of Kish Saul's father were lost. And Kish said to Saul his son, Take now one of the servants with thee, and arise, go seek the asses.
나귀는 물건을 운반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삼하16:1) 다윗이 산꼭대기를 조금 지났을 때에, 보라,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안장을 얹은 두 마리 나귀에 빵 이백 개와 건포도 백 송이와 여름 과일 백 개와 포도즙 한 부대를 싣고 그를 맞이하므로
And when David was a little past the top of the hill, behold, Ziba the servant of Mephibosheth met him, with a couple of asses saddled, and upon them two hundred loaves of bread, and an hundred bunches of raisins, and an hundred of summer fruits, and a bottle of wine.
부유하고 신분이 높은 자들이라는 상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삿5:10) 흰 나귀를 탄 자들아, 재판하려고 앉은 자들과 길에서 걷는 자들아, 너희는 말할지어다.
Speak, ye that ride on white asses, ye that sit in judgment, and walk by the way.
왕의 신분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장면을 기어해 보면,
나귀는 왕이 타는 상징적 동물입니다.
(눅19:35) 그것을 예수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옷을 나귀 새끼 위에 벗어 놓고 예수님을 그 위에 태우니
And they brought him to Jesus: and they cast their garments upon the colt, and they set Jesus thereon.
(눅19:36) 그분께서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들의 옷을 길에 펴더라.
And as he went, they spread their clothes in the way.
(눅19:37) 이제 그분께서 올리브 산의 내리막까지 가까이 오시니 제자들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모든 능력 있는 일들로 인해 기뻐하며 큰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하여
And when he was come nigh, even now at the descent of the mount of Olives, the whole multitude of the disciples began to rejoice and praise God with a loud voice for all the mighty works that they had seen;
(눅19: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매
Saying, Blessed be the King that cometh in the name of the Lord: peace in heaven, and glory in the highest.
지금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 장면에서 잃어버린 나귀를 찾는 것은
그가 왕이 되기 위한 과정과 관련이 있는 내용입니다.
유력한 사울의 집안은 왕을 배출하기 위한 상징적 동물을
키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나귀를 소중하게 찾고 있는 것은
사울의 인품과도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사울은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사울의 성품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일상에서의 순종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평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잠22:29) 자기 업무에 부지런한 사람을 네가 보느냐? 그는 왕들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들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Seest thou a man diligent in his business? he shall stand before kings; he shall not stand before mean men.
사울도 지금 부모에 대한 작은 순종이 왕이 되는 길로가는
길목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울과 함께한 종은 6절에서 사울을 사무엘에게 인도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작은 순종이 하나님의 일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찾아 다녔을까요?
(삼상9:4) 그가 에브라임 산과 살리사 땅을 두루 다녔으나 그들이 그것들을 찾지 못하니라. 이에 그들이 살림 땅으로 두루 다녔으나 그것들이 거기에 없더라. 그가 베냐민 족속의 땅으로 두루 다녔으나 그들이 그것들을 찾지 못하니라.
And he passed through mount Ephraim, and passed through the land of Shalisha, but they found them not: then they passed through the land of Shalim, and there they were not: and he passed through the land of the Benjamites, but they found them not.
에브라임 살리사, 살림, 베냐민 족속의 땅, 숩 땅(5절)
이 넓은 범위를 걸어서 찾아 다녔을 것입니다.
사울은 아들로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했고,
종은 종으로 주인의 명령에 순종했던 것입니다.
사울은 아무리 찾아보았지만 자신들이 찾고자 하는 것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울은 이 일로 인해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이 아니라 왕국의 통치지 자리를 얻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대와 다른 결과가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
불평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귀를 얻는 것보다 더 크고 놀라운 것을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삼상9:5) 그들이 숩 땅에 이르렀을 때에 사울이 자기와 함께한 자기 종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돌아가자. 내 아버지가 나귀들 걱정은 그치고 우리를 위하여 염려하실까 두려워하노라, 하니
and when they were come to the land of Zuph, Saul said to his servant that was with him, Come, and let us return; lest my father leave caring for the asses, and take thought for us.
사울은 나귀를 찾지 못하자 아버지 마음을 걱정 합니다.
나귀를 찾는 시간이 길어지자 아들에게 사고가 났을 것을 걱정할
아버지를 생각한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자신으로 인해 근심거리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사울은 효심까지 왕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삼상9:6) 그가 그에게 이르되, 이제 보소서, 이 도시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그는 존귀한 사람이니이다.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지니 이제 우리가 거기로 가사이다. 혹시 그가 우리가 가야 할 우리의 길을 보여 줄까 하나이다, 하므로
And he said unto him, Behold now, there is in this city a man of God, and he is an honourable man; all that he saith cometh surely to pass: now let us go thither; peradventure he can shew us our way that we should go.
잃어버린 나귀를 찾지 못했습니다.
5군데 지역을 다 돌아 다녀봤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울은 아버지 걱정을 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물을 생각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울의 종이 사울에게 하나님의 사람에게 물어 보자고 합니다.
사울도 이제 자신의 힘으로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종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종의 믿음이 사울의 믿음보다 좋은 것을 보게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과 가까이 어울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존귀한 사람이니이다”
사울의 종은 사무엘은 만난적이 없지만,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지니”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특징 중에 하나가 바로
그가 말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무엘의 위대함 이었습니다.
(삼상3:19) ¶ 사무엘이 자라매 주께서 그와 함께하셔서 그의 말들 중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게 하시니라.
¶ And Samuel grew, and the LORD was with him, and did let none of his words fall to the ground.
그의 말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고 있고 그는 하나님이 전하라고 하는 말을
가감 없이 변개없이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대한 성취는 거짓 선지자를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신13:1) 너희 가운데 대언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 표적이나 이적을 네게 보이고
If there arise among you a prophet, or a dreamer of dreams, and giveth thee a sign or a wonder,
(신13:2) 그가 네게 말한 그 표적이나 이적이 이루어질 때에 이르기를, 네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가서 그들을 섬기자, 할지라도
And the sign or the wonder come to pass, whereof he spake unto thee, saying, Let us go after other gods, which thou hast not known, and let us serve them;
(신13:3) 너는 그 대언자나 그 꿈꾸는 자의 말들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가 너희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알기 위해 너희를 시험하시느니라.
Thou shalt not hearken unto the words of that prophet, or that dreamer of dreams: for the LORD your God proveth you, to know whether ye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신13:4)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을 따라 걸으며 그분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며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고 그분을 섬기며 그분을 굳게 붙들고
Ye shall walk after the LORD your God, and fear him, and keep his commandments, and obey his voice, and ye shall serve him, and cleave unto him.
(신13:5) 그 대언자나 그 꿈꾸는 자는 죽일지니 이는 그가 이집트 땅에서 너희를 데리고 나오시고 속박의 집에서 너희를 구속하신 주 너희 하나님으로부터 너희를 떼어 놓으려 하며 또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걸으라고 명령하신 길에서 너를 밀어내려고 말하였기 때문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네 한가운데서 악을 제거할지니라.
And that prophet, or that dreamer of dreams, shall be put to death; because he hath spoken to turn you away from the LORD your God, which brought you out of the land of Egypt, and redeemed you out of the house of bondage, to thrust thee out of the way which the LORD thy God commanded thee to walk in. So shalt thou put the evil away from the midst of thee.
“그가 우리가 가야 할 우리의 길을 보여 줄까 하나이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아주 사소한 일들 까지도 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날에도 여러분의 삶의 지혜가 막혔을때,
교회 목사나 믿음이 신실한 일꾼들에게 물어 보는 것은 바람직 합니다.
삶의 지혜는 어쩌면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보다는,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 바랍직합니다.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의 감독을 선택할 때도 그 사람의 삶이 신뢰할 만한지를
살펴보고 따라야 할 것입니다.
사울은 지극히 육신적인 궁금증으로 사무엘을 만났지만,
사무엘의 지도아래 시작한 일들이 영적으로 진전되지 못한 것이
사울의 문제였습니다.
(삼상9:7) 그때에 사울이 자기 종에게 이르되, 그러나, 보라,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가져가겠느냐? 우리 그릇에 있는 빵을 다 썼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져갈 예물이 없도다. 우리에게 무엇이 있느냐? 하매
Then said Saul to his servant, But, behold, if we go, what shall we bring the man? for the bread is spent in our vessels, and there is not a present to bring to the man of God: what have we?
(삼상9:8) 그 종이 사울에게 다시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내게 여기 은 일 세겔의 사분의 일이 손에 있으니 내가 그것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리고 우리의 길을 우리에게 알려 달라 하겠나이다, 하니라.
And the servant answered Saul again, and said, Behold, I have here at hand the fourth part of a shekel of silver: that will I give to the man of God, to tell us our way.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러 가기위해 돈을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사기 6장 18절 기드온이 주의 천사를 만났을때 한 말입니다.
(삿6:18) 원하건대 내가 내 예물을 가지고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릴 때까지 이곳에서 떠나지 마소서, 하니 그가 이르되, 네가 돌아올 때까지 내가 기다리리라, 하니라.
Depart not hence, I pray thee, until I come unto thee, and bring forth my present, and set it before thee. And he said, I will tarry until thou come again.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돈으로 사고자하는 생각에서
재물을 가지고 가는 것이라면 그것은 악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사울의 겸손한 마음을 보여주고 있는 문맥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예우로 예물을 준비한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해
충분한 예우를 갖춘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도 전임사역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들을
물질로 돕도록 하고 있는 모습과 일치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딤전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두 배나 존경할 자로 여기되 특별히 말씀과 교리로 수고하는 자들에게 그리할지니라.
Let the elders that rule well be counted worthy of double honour, especially they who labour in the word and doctrine.
(딤전5:18) 성경 기록이 이르기를, 너는 곡식을 밟는 소의 입에 마개를 씌우지 말라, 하고 또, 일꾼이 자기 품삯을 받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느니라.
For the scripture saith, Thou shalt not muzzle the ox that treadeth out the corn. And, The labourer is worthy of his reward.
사도 바울은 이런 권리가 있었지만
그는 그런 권리도 포기하고 스스로의 손으로 일하고 돈을 벌었습니다.
바울은 혼자의 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아내와 자녀를 부양하는 목회자에게는 품삯을 지불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품삯은 일한 것에 대한 값입니다.
받은 돈을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다시 사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일한 사람이 돈이 있다고 주어야 할 품삯을 지불하지 않는 것은
맞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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