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께서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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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께서 오심으로 교회가 시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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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날 하나님 나라를 새롭게 시작하신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지난 번 설교에서 성령께서 오순절에 오신 2가지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1) 하나님 나라 구원의 큰 추수를 위해 오셨습니다. 2)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하나님 나라 백성을 세우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 계시지 않는 중 이제 성령께서 <제자공동체>와 <하나님 나라>를 새롭게 이끄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예수님의 교회이고 성도입니다. 성도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성령으로만 차별과 편견과 오만과 교만에서 벗어 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하지 않으면 자기 중심, 자기 의지라는 죄의 굴레를 극복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을 예수님같이 대하고 섬기고 사랑한다!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충만과 성령충만한 삶이 꼭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오순절 성령께서 임하실 때 3가지의 특이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모인 곳에 가득했습니다.
2) 불이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위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3) 제자들이 모두 성령의 충만함으로 다른 언어들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 성도 여러분! 오순절 성령께서 임하실 때 이런 특이한 모습을 제자들에게 나타내신 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어떤 교회, 어떤 성도, 어떤 하나님 나라를 만드시는지 보여주시기 위함인지 아셔야 합니다.
1. 2절입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 집 안에 소리가 가득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드디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께서 이곳에 충만히 임하셨다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의 여러 구절들을 살펴보면 하나님은 <소리>로 임하셨습니다.
* 모세 때 시내산 위에 “우레와 번개, 그리고 큰 나팔소리가 있었습니다(출19장). 하나님께서 임하신 것이지요. 그리고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 엘리야가 이세벨을 피해 호렙산으로 갔습니다(왕상19장). 그 때 세미한 소리로 하나님이 엘리야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를 새로운 사명으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도 하늘로부터 소리 있었습니다(눅3:22). 그리고 복음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욥바 무두장이 집에서 기도할 때 환상과 함께 소리(행10장)를 듣고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 전도가 시작되었습니다.
[ 결론 ] 이처럼 <강한 소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뜻합니다. 결국 무슨 뜻입니까? 제자들이 모인 그곳에 성령께서 강하게, 권능으로 임하셨다는 뜻입니다. 왜 성령께서 제자들이 모인 곳에 강한 소리로 임하셨을까요? (그냥 임하시지!) 그것은 성령과 함께 하는 새로운 창조, 새로운 사람, 새로운 역사, 유대인의 율법세상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관점의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진흙에 불과한 사람 속에 강한 생명을 시작하신 것처럼(창2:7), 또 마른 뼈에 불과한 자들을 새로운 생명으로 이끈 것처럼(겔37:6) <그 일을 위해, 그곳에> 성령께서 충만히 임했습니다. (쉼) 새롭게 시작하는 제자공동체, 즉 교회의 주인이 성령이심을 보여주십니다. 오직 성령만이 성도의 삶의 주인되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 교회, 어떤 성도이어야 합니까? 성령께서 주인된 교회!, 성령께서 주인된 성도!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흙으로, 마른 뼈로, 두려움으로 충만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강조>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들이 이제 성전입니다.
1.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예수님이 계십니다.
2. 성령으로 새롭게 된 사람안에 하나님이 즐거이 거하시고 역사하십니다.
3.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살겠다고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거처로 삼으심
4. 서로 한 마음과 한 뜻을 품고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생명과 공급, 영광을 나타내심
5. 성령님을 삶의 주인으로 섬기는 성도는 하나님 나라 은혜와 능력, 하늘의 응답이 있음
2. 3절을 보십시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제자들은 불이 갈라져 각 사람들 위에 임하는 것을 봤습니다. 불이 모인 곳에 충만히 임했습니다. 이 또한 성령께서 그곳에 충만히 임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불>로 임하실 때가 있으십니다.
*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를 만나실 때 떨기나무에 불로 나타나셨습니다. (출애굽 시대)
*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기 전 산 위에는 불이 임했습니다. (출19: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언약의 시대)
* 엘리야가 바알선지자들과 대결했을 때 하나님은 불로 응답하셔서 이스라엘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습니다(왕상18:38). (회복의 시대)
* 누가복음 3:16절에 보면, 세례요한이 오실 예수님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복음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 결론 ] 성도 여러분! 왜 성령께서 모인 제자들 가운데 불로 임하셨을까요? 제자들은 불꽃 같은 것들이 “갈라져” / 모인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는 것을 똑똑히 봤습니다. 이는 성령으로부터 불이 갈라지는 것과 같이 그곳에 모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골고루 공평하게 임하여 역사하셨다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약2: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고전12:13) “…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그냥 내버려두면 본성적으로 차별하고, 구분하고, 나누고, 서로 담을 높이 쌓고, 자기 주장이 익숙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닮은 생김새이 짙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오셔서 같은 은혜, 같은 능력, 같은 사랑을 나누어주셔서 / 서로 섬기도록, 서로 돌보게 하셨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누가 하나님 백성입니까? 교회다니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한 성령으로 서로 용납하고 받아들임으로 한몸공동체를 이룰 줄 알고, 하나님의 한 가족을 이루어 가는 일에 힘쓰는 사람이 거룩한 성도입니다. 이것을 꼭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 그리고 또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성령이 충만한 성도는 “하나님과 소통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제자들은 불이 모인 각 사람 위에 임한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내 머리 위에 있는 불이 앞, 옆, 뒤에 있는 사람에게도 분명 있습니다. 이는 성령께서 각 사람, 즉 한 사람 한 사람을 받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가 다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서로 경쟁하거나 다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 향기롭고 소중한 주님의 불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성령으로 하나님과 소통하고, 또 성령님을 닮아 다른 성도와 막힌 담을 허물어 소통하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소통을 멈추면 생명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성도와의 소통을 멈추면 믿음의 성숙, 또한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이루지 못합니다.(외면하고도-성숙! 오해/ 성도의 오해: 내가 싫어하는 있다. 그는 남겨두고 혼자 갈 수 있다는 생각! 지극한 오해! 성도의 품격이 아니다.) 성도 여러분! 다시 3절을 보십시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성령께 압도된 사람이 예수님처럼 살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이 우리 안에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즐거이 거할 수 있습니다.
3 이제 4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께서 임하셨을 때 모두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의 결과로 제자들에게 특이한 현상이 있었습니다.
무엇입니까? 전혀 배운바도 없는 다른 나라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제자들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제자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유대 각지와 천하각국에서 모여든 경건한 유대인 순례자들로 가득했습니다. 본문에는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모임 순례자들이 어디 출신인지 아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두 17개국입니다. 그들 대부분 헬라어는 공용어로, 아람어는 구사할 수 있을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자들이 그들의 모국어로 “하나님의 큰 일” 말하는 것을 듣고 크게 놀라 소동했습니다. (행2:11)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어떤 이들은 놀라며 당황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제자들을 새 술에 취했다며 조롱했습니다.
[ 결론 ]
성도 여러분!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을 때, 하나님은 왜 제자들에게 <다른 나라 말>을 하게 하셨을까요? 여러분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공감 혹은 동질>을 의미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거리를 지나가는데 뒤에서 누군가 “할렐루야!”하면 십중팔구 뒤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만일 아니라면 속으로 “아멘”하거나 어떤 모양으로든지 자극을 받을 것입니다. 왜입니까? “할렐루야” 말에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안에 이루어진 놀라운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큰 일을 세상에 전하고 / 함께 공감, 소통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화법과 그들의 문법이 필요합니다. 1) 땅 끝까지 예수님의 증인되게 하시기 위해 제자들에게 다른 언어를 주셨습니다. 2) 예수님 이름으로 역사하는 생명구원을 위해 제자들의 입에 다른 말을 주셨습니다. 3) 오직 복음 전파를 위해 제자들이 전혀 배운 바 없는 다른 언어를 초월적인 방법으로 말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무후무하게 제자들에게 다른 언어를 주신 것은 <오직 복음 전파, 하나님 나라 확장, 예수님 주권 확장>을 위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은 구원계획을 위해 제자들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 오순절 성령오심과 제자들이 다른 언어로 말한 것에 대해 베드로의 해석이 있습니다. (행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등촌가족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주시고 생명주신 것, 또 예수님 안에서 천국의 새 언어를 주신 것은 예수님의 주이심과 그리스도이심을 풍성히 누리게 하시기 위합니다. 뿐만 아니라 주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그들로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 되게 하시기 위함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이것을 밝히 알고 삶에서 누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 성령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위한 다른 언어는 있습니까? 잘 사용하십니까?
**금년 교회표어가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입니다. 표어에 걸맞게 등촌가족분들은 예수님의 구원을 전하는 입술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전하는 말이 넘치시길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깊은 사랑을 사람들에게 말해주시길 축복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나라 은혜를 마음껏 전하는 신령한 복이 넘치시길 축복합니다.
** 많은 분들이 오늘 본문을 창세기 10장 바벨탑 사건과 연관지어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서로 알아듣는 <통일언어>를 주셨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저는 반대로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많은 언어>를 주셨다고 봅니다. 다양한 언어를 통해 복음을 전세계에 전해 그리스도의 주권을 함께 고백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을 이루었다고 봅니다. (간증-예수님처럼, 그 때 저는 다른 언어를 경험!)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다른 언어를 주신 것은 한 언어를 뛰어 넘는, 또 다른 언어 안으로 들어가는 역동적인 제자되게 하신 사건입니다. 나의 언어, 습관, 문화, 관점, 관심, 이해관계, 계산, 한계에만 머물면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어떤 장벽이든 극복하고 / 어떤 경우에도 복음으로 연합할 줄 아는 은혜를 우리는 성령님께 배웁니다. 우리에게 다른 언어, 구원의 경험과 은혜, 천국방언이 없으면 하나님 나라에 깊이 들어가지 못합니다. 또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천국방언, 새방언으로 살리고 세우는 역사가 계속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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