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례를 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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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 2절을 보시면, “그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때”는 언제입니까? 1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요단강을 건넜다는 소식. 가나안 백성들이 그 소식을 들었을 때를 말합니다. 이때 가나안 백성들은 어떻게 됩니까?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습니다. 즉 가나안 백성들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에 빠져있는 때. 이것이 바로 1절에서 말하는 바로 “그때에”입니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백성들을 공격하기에 가장 좋은 때, 그들과 싸워서 승리하기에 가장 좋은 때라는 겁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군대를 이끄는 장군들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지금 당장 여호수아에게 찾아가서 지금 이 좋은 때를 놓치지 말고, 바로 즉시 공격하자고 재촉했겠죠. 너무나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2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하나님께서는 “지금 바로 공격해라!”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엇을 하라고 하십니까? “할례를 행하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할례를 하면, 몸이 회복하는 기간은 약 일주일 정도 소요가 됩니다. 즉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는 이 좋은 기회를 일주일씩이나 지체하게 되는 거죠. 뿐만 아니라 몸이 회복이 될 때까지는 오히려 가나안 백성이 먼저 쳐들어와서 역전될 수도 있는 겁니다.
실제로 이러한 사건이 있었죠? 그것은 바로 야곱의 외동 딸 디나의 사건입니다. 디나가 세겜에 갔다가 추장의 아들에게 아주 몹쓸 짓을 당합니다. 그래서 디나의 오빠들 즉 야곱의 아들들은 어떻게 복수합니까? 디나를 데려가서 결혼하려면, 할례를 행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세겜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게 됩니다.
그들이 회복의 기간을 보내고 있을 때, 야곱의 열두 아들들이 쳐들어가서 복수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관점으로 볼 때, 지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할례를 행하라고 하신 것은, 이러한 위험이 있는 오히려 지금 이 좋은 기회를 더욱 불리하게 만드는 겁니다.
여기서 여호수아를 포함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지금이 딱 좋은 기회인데, 하나님께서는 더욱 불리한 요구를 하심으로 그 좋은 기회를 더 지체하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나안 정복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싸워야 하는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전쟁은 하나님의 명령과 계획이 영적인 우선권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가나안 정복을 하기 전에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그 영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가나안 정복은 사람의 지혜와 판단 그리고 훌륭한 무기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서 헌신다운 헌신을 할 수 있는 사람. 내 생각과 내 판단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 바로 이것이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할례를 할 때는 2절에 적혀 있는 돌칼을 만들어서 자기 신체의 일부분을 베어내는 겁니다. 즉 가나안에 있는 그 적군의 몸을 베기 전에 나의 몸을 먼저 베는 거죠. 이것은 내 몸에 돌칼로 베어내는 외적인 표시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 앞에서 성결과 헌신을 나타내는 겁니다.
이 당시에는 애굽을 비롯한 다른 이방 나라들에서도 할례를 행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할례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언약의 표징도 아니고 또한 하나님께 성결과 헌신을 나타내는 마음의 할례도 아닌 그저 외적인 의식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할례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광야 1세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출애굽을 할 때 할례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자기 자녀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애굽에서 전무후무한 10가지의 재앙을 보았습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애굽의 군사들이 바다에 빠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나안 땅의 풍성한 열매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광야를 지나는 동안 할례를 등한시 했습니다. 출애굽을 후회하면서 끊임없이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과 반항을 합니다. 가나안 정탐꾼의 보고를 받고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가 또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다는 겁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약속의 땅을 눈으로만 바라볼 뿐 들어가지는 못합니다. 그저 마른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인생을 아주 비참하게 마감하죠.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까?
평소에 우리가 마음의 할례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맺지 못하면, 마치 광야 1세대들처럼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은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면,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늘의 유업과 영적인 축복에 대하여 관심이 식어집니다. 세상에 미련이 남아 정처 없이 방황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며 원망과 불평만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굴복하여 믿음과 인내로 순종하기보다, 내 생각과 내 뜻에 맞는 그러한 기회를 찾아다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생활을 한다는 사람들 중에 내게 찾아온 기회가 긍정적이고 좋은 것이라면, 더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무조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선택하려는 그 경향성이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사람의 깊은 내면에는 하나님의 뜻을 신중하게 찾기보다, 눈앞에 있는 기회와 이익을 찾는 것이 더 우선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꼭 기억할 것은 신앙이란? 좋은 기회가 아니라 평소의 삶입니다. 우리는 좋은 기회를 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평소의 삶을 신앙으로 살아내야 하는 신앙인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더욱 불리한 것을 요구하셔도 그분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믿고 순종할 수 있는 삶.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허락된 아픔과 고난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그 성숙함까지 나아가는 것. 이것이 우리의 삶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은 순간순간 기회만 노리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합니다.
평소에 내가 신앙적으로 살아냈던 사람에게만 가능한 거죠. 사랑하는 여러분, 3절을 보십시오. 광야 2세대인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할례를 행하죠. 이것은 광야 1세대의 불순종과 영적인 무관심을 잘라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광야 2세대가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결단과 헌신을 다짐하고, 또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가는 겁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 갱신해서 다시 새롭게 출발하는 그 순간입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이 달라집니까?
더 이상 가나안 백성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믿음과 확신의 눈으로 약속의 땅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나오는 그 참된 평안을 누리고, 동시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싸우는 그 영광스러운 전쟁에 아주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여기서 참 은혜로운 것은, 광야 1세대가 그렇게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자녀인 광야 2세대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 계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이 영적으로 새롭게 갱신하여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돌보시는 그 은혜 아래에 있도록 하시죠.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모인 광야 1세대가 하나님과 은혜로운 언약을 맺었고, 자녀인 광야 2세대는 그 언약 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언약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는 겁니다.
창17:7절을 보시면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그의 후손의 하나님도 되어주시겠다는 겁니다. 이것이 언약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맺었다는 증표가 “할례”입니다.
이후 아브라함과 그의 모든 후손들은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새로운 의식인 그 세례를 제정해 주실 때까지 할례 의식을 이어왔습니다(마 28:19, 막 16:16). 이러한 언약의 증표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십자가 앞에 나아가 진실한 마음으로 회개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로운 언약을 믿음으로 확신할 때, 우리도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 됩니다. 언약의 자손 또는 언약의 백성이 된다는 겁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자녀들도 이 은혜 언약 안에서 함께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 자녀들의 하나님도 되어주셔서 끝까지 책임져 주신다는 겁니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각 가정마다 자녀를 주신 거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이 시대를 보십시오.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해서 한 영혼을 하나님께로 데려오는 것. 이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습니까?
하지만 참 은혜로운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부모가 자녀를 낳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불신자 한 사람이 태어난 것으로 여기시지 않고,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 안에서 교회의 일원으로 삼아주신다는 겁니다. 전도가 힘들고 어려우신 분들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자녀를 많이 놓으시면 됩니다. 그것도 전도입니다ㅋ.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을 가진 부모와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신 그 목적에 맞게 잘 양육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심지어 내 자녀가 아니라 해도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모든 자녀들을 내 자녀로 생각하고, 그래서 사랑으로 아껴주며 기도해야 하는 그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책임을 반드시 부모세대인 우리에게 물으실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우리의 자녀들이 그만한 자격과 조건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이루어 주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입니다.
계속해서 9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갈에서 할례를 하고 회복 중에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받았던 수치를 떠나가게 하였다고 하십니다. 이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난 과거에서 약 400년 동안 애굽에서 아주 혹독한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습니다. 자손 대대로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신하고, 그 결과로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고통을 받을 때, 그것을 듣고 본 애굽의 백성들이 얼마나 비웃고 조롱을 했겠습니까(출32:12).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떠났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돌아와 바른 관계로 회복하고, 또한 그 회복의 증표로 할례를 행할 때,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는 그 은혜의 역사가 새롭게 나타나더라는 겁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지난 과거에 있었던 애굽의 모든 수치가 그들 곁에서 떠나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할례를 했던 곳의 이름을 “길갈”이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굴러가다”, 또는 “사라지다”입니다. 즉 애굽의 모든 수치가 굴러가고 사라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을 정복할 그 영적인 준비가 된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까? 지난 날에 있었던 과거의 실수와 억울한 누명의 세월. 때로는 원수의 조롱과 멸시를 받던 세월. 때로는 나 자신이 떳떳하지 못했던 눌림과 두려움의 세월.
이 모든 수치의 세월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나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인하고, 동시에 마치 돌칼로 나의 살을 베고 찢는 그러한 마음의 할례를 가질 때, 지난날에 있었던 모든 수치의 세월은 떠나가게 됩니다. 이때부터 우리는 사명을 감당할 영적인 준비가 된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후에 눈앞에 있는 좋은 기회만보고 여리고 성으로 달려갈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가야합니까? 길갈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길갈에서 자기 백성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실 것이기 때문에.
애굽의 모든 수치와 마음에 있는 한을 그 길갈에서 풀어주실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가나안 정복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악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좋은 기회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행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신하는 마음, 광야에서 정처 없이 방황하는 삶, 지난 과거의 수치로 생겨난 죄책감. 이 모든 것을 확실하게 끊어내는 겁니다. 이때부터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시고 약속하신 영원한 땅. 그 땅을 향해 감사와 기쁨으로 또한 믿음의 확신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최후에는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겁니다.
이러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가득히 넘쳐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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