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고 담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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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10가지 재앙과 홍해의 기적을 나타냈습니다. 그 결과로 애굽의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은 자유와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 도착했을 때는, 하나님께서 영광이 충만한 가운데 임하셔서 모세하고만 대면하여 만나주셨고,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신다는 그 증거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을 모세에게 주심으로 그의 영적인 권위를 더욱 높여주셨습니다. 때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죄를 지어서 멸망당할 위기도 있었지만, 모세가 목숨을 걸어서 기도하면 그 위기를 넘길 수가 있었습니다.
때로는 너무나 막막하고 험난한 그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야할 길을 제시했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끝까지 거역하며 반항하는 그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체성도 없고 자존감도 없고, 그저 노예의 근성만 가졌던 그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백성이 가야하는 그 길을, 약 40년 동안 외치면서 안내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맺을 수 있었고,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또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세가 죽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는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수고가 헛된 것만 같았습니다.
앞으로도 갈 수 없고, 뒤로도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약속의 땅을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약 30일이 넘도록 모세의 죽음을 애곡하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본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은혜로운 것은, 비록 모세는 죽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살아 계신다는 겁니다. 여전히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여호수아에게 말씀을 주시죠.
그 말씀의 핵심은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니, 내 백성을 데리고 내가 주리라 했던 그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라”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모세와 함께 하신 “모세의 하나님”이셨지만, 이제부터는 “여호수아의 하나님”이 되셔서 너와 함께 가나안 정복의 역사를 이루시겠다는 겁니다.
이때부터 여호수아는
모세의 공식적인 후계자로 세워진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까? 우리의 인생도 이 이스라엘 백성처럼, 때로는 사방이 가로막혀서 깊은 절망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연약함과 불투명한 미래로, 숨통이 조여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더 이상 나아갈 힘도 없고, 의욕도 없고, 그저 주저앉아만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생이란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도 없고, 결정할 수도 없고, 해결할 수도 없는, 그러한 일들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제나 오늘이나 여전히 살아계신 하나님, 모세가 죽었을 때, 여호수아를 세워주시는 하나님, 그 역전의 하나님께서 여기에 모인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수아의 입장은 어떨까요? 너무나 두렵고 떨립니다. 지금도 충분히 힘들고 어려운데, 더욱 힘들고 어려워집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모세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살아있을 때는, 어떤 문제가 생겨도 그가 스스로 책임을 지고 해결했습니다. 그의 그늘 밑에 있으면 여호수아는 크게 걱정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은 여호수아가 책임져야합니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모세를 따랐던 이스라엘 백성은 어떤 백성입니까?
하나님이 10가지의 재앙으로 구원하셨고, 불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죄를 지어서 몰살당할 위기도 있었지만, 모세가 목숨을 걸고 기도하여 그 위기도 넘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며 불평했던 백성이 이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모세가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야 할 만큼, 너무나 감당하기 힘든 백성이었습니다.
물론 모세와 함께 했던 광야 1세대는 모두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야 1세대를 보고 자라난 광야 2세대를 이끄는 것도 너무나 부담스러운 일이죠. 셋째로, 약속의 땅은 정복해야 하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는 일곱 원주민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기쁘게 맞이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그러한 이웃들이 아닙니다.
“한 발자국이라도 들어오기만 해봐라! 우리는 무조건 들이 박는다!” 하면서 언제든지 싸우려고 준비하고 있는 적군들이죠. 약속의 땅은 이러한 적군들을 물리쳐야만 정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습니까? 전쟁에 나가서 싸울만한 군사적 훈련을 제대로 받아 본 적도 없고, 또한 적들과 싸울만한 제대로 된 무기도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너무나 무모하고 어리석어 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수아가 이 모든 문제를 책임지고 모세의 후계자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하실 때 많은 의미가 있겠지만, 그중에 하나는 더 이상 지난 과거에 매이지 말라는 겁니다. 약속의 땅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앞만 보고 전진하라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어떤 문제로 매여서 해야 할 일을 못하고, 가야할 길을 가지 못해서 늘 제자리에 있는 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의 땅을 주신 거처럼, 저와 여러분에게 미래적인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 소망을 바라보면서, 과거의 매임으로부터 벗어나고, 신앙의 발걸음을 계속해서 전진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는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우리 안에는 마치 바람에 부는 대로 흔들리는 연약함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 연약함이 하나님이 주신 그 소망보다 과거에 있었던 문제에만 집착하게 만들고, 그래서 우리의 믿음과 용기를 한순간에 다 무너지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과거의 문제로 매여 있을 것인가?” 아니면 “미래적인 소망을 바라보면서 신앙의 발걸음을 전진할 것인가?”하는 그 선택의 기로에서, 어찌할 바를 모를 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5절을 보십시오. “(5)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하시면서 두려움과 불안에 빠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여호수아에게 믿음과 용기를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하시면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첫째로,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다”고 하십니다.
둘째로, “내게 맹세하고 약속한 땅을 반드시 차지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셋째로, “어디로 가든지 네 길이 평탄하고 형통할 것이다”고 하십니다.
즉 여호수아의 모든 필요가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채워지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는 겁니다. 그 요구가 무엇입니까?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주야로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수아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황당하고 당황스러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서 그 약속의 땅으로 가면, 그곳에 있는 수많은 적군들과 싸워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주야로 묵상하라”고 하시는 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너무나 가혹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여호수아의 입장이라면, “하나님 안 그래도 힘든데, 도대체 나보고 어쩌란 말입니까?” 이러한 마음이 생길 것 같습니다.
차라리 몇 주 동안 군사훈련을 열심히 하라든지, 아니면 더 좋은 새로운 무기를 만들라든지, 아니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좋은 전술을 가르쳐 주겠다든지, 이렇게 말씀하시면 조금 더 현실적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약속의 땅은 이스라엘 백성의 노력과 재능과 힘으로 얻는 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군사적으로 좋은 전술을 갖추고, 새로운 무기가 있다고 해서 얻는 땅이 아닙니다.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그 신실하심과 은혜로우심을 통해서 얻는 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주신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주야로 묵상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그 율법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맺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약속의 땅은 이스라엘 백성이 독립적으로 그들끼리만 살아가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짚고 갈 것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그 율법에는 어떤 내용이 기록되어있는가?”입니다.
우리가 율법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대부분 무엇이 떠오르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규칙이나 규범입니다. 이것은 좁은 의미로서의 율법입니다.
성경에서 율법이라고 말할 때는 넓은 의미로서, 또는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모세의 가르침 즉 모세오경 전체를 말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렇다면 모세오경은 어떤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창조와 언약, 애굽에서의 노예생활과 출애굽으로 인한 구원, 그리고 시내산 언약과 광야생활.
이러한 내용을 중심으로 많은 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많은 기록 중에 어느 일부분이 어떤 규칙이나 규범에 대한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모세의 가르침인 모세오경 전체를 말하는 것으로, 율법의 넓은 의미로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오경을 통해서 무엇을 배우게 됩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어떻게 구원하시고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또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만나서 바르게 관계를 맺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는지 이러한 내용들을 듣고 배움으로서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향해 “강하고 담대하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하시면서 반복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지금 너희가 과거에 매여서 걱정과 근심과 두려움에 빠져있지만, 그래서 너희가 어찌 할 바를 모르는 상항에 있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앞으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겠지만,
내가 누구인지,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떤 일을 했는지”
그것을 망각하거나 잊어버리지 말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나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고,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기 때문에,
저 약속의 땅을 반드시 줄 것이 때문에, 그래서 너는 내가 누구인지 기억하고 항상 의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이 반복하죠. 그런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보다 더 중요한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내가...“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3절을 보십시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5절을 보십시오.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마지막으로 9절을 보십시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향해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신 것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하라는 겁니다.
내가 늘 너와 함께 하고 있으니깐, 나를 망각하거나 잊어버리지 않도록 강하고 담대하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정복은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계적으로 대하시지 않고 인격적으로 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과 두려움을 이해해 주시고, 동시에 믿음과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십니다.
여호수아는 어떤 사람입니까?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열둘 정탐꾼들을 보내게 되는데, 그 중에 두 사람이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정탐꾼들이 40일 동안 정탐하고 돌아와서 어떤 보고를 합니까?
열 명의 정탐꾼들은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호수아의 믿음과 용맹스러움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약함과 두려움에 빠진 여호수아를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현실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믿음은 우리의 연약함때문에 항상 최고의 상태로 유지할 수 없습니다. 평소에 평탆살 때는 최고의 상태로 유지하다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경험하거나, 새로운 상황을 만났을 때는,
우리의 믿음이 얼마든지 약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감당하기 벅찬 상황에서 믿음이 약해지고, 용기를 잃게 되고, 그래서 두려움에 빠지게 되는 것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이때 우리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으로 믿음과 용기가 회복되고, 두려움도 이기게 되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때,
좀 편하게 인도하시면 안 됩니까? 적군과 싸울 필요가 없도록, 두려움에 빠질 필요가 없도록, 그렇게 인도해 주시면 좋지 않겠습니까?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길로, 불가능한 현실로 인도하시는 겁니까? 약속의 땅은 이스라엘 백성의 실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길 원하는 그 믿음으로 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저주와 축복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최고의 저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셨다”입니다.
그렇다면 최고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입니다. 참 은혜로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곁을 떠나시는 것보다, 항상 함께 하시는 것을 더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낮고 천한 땅으로 오신 겁니다. 그분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덮어주셨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모든 축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주시기 위해 지금도 우리 안에서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그분의 또 다른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보다 먼저 앞서 가시는 하나님,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모두 다 아시는 하나님,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언제나 우리 안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강하고 담대하시길 바랍니다. 그분의 말씀을 따라 날마다 전진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미래가 캄캄하고 어두울지라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 능히 길을 열어 주시고, 또한 보호하며 지켜주실 것을 굳게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전쟁을 힘차게 이기고 승리하는 그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