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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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다양한 성품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다양한 성품들 중에 하나가, 하나님이 만복의 근원이 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 복주시기를 기뻐하시죠.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우리가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되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그런 복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너무나 귀한 복.
그 복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없으면, 우리의 인생은 아무런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릴 때, 인생을 인생같이 살아가는 그 맛을 보게 되는 겁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어디에서 어떻게 임하는가?”입니다. 우리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고 맛보는 그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고 맛보시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이 시간에 그 답을 함께 살펴보길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그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본론
“하나님의 복은 어디에서 어떻게 임하게 됩니까?” 라고 할 때, 오늘 본문에서는 그 첫 번째의 답이 “이삭을 주울 때”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의하면, 이삭을 추수할 때 밭의 일부는 수확하지 않습니다. 땅에 떨어진 이삭도 줍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의 생계를 보장하는 거죠.
이러한 이삭을 줍는 룻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가장 가난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이 생깁니다. 이방 여인으로서 눈치가 보이고 수치스러움이 생깁니다. 뿐만 아니라 이삭을 주우려면 허리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완전히 숙여야 합니다. 여성으로서 너무나 힘들고 고달픈 노동이죠. 다시 말하자면 모든 수치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일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아주 평범하고 작은 일이 이삭줍기입니다.
룻은 이 이삭줍기로 시작해서 하나님이 정말로 주시길 원하는 그 놀라운 복을 받게 됩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삭을 줍는 일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그 통로였던 겁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일상에서 일어나는 평범하고 작은 일들에 그렇게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는 통로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그저 스쳐 지나갑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현실성이 떨어지는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성경은 내세의 신앙과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가르치죠. 이러한 것들은 지극히 영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영적인 것들이 우리의 현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즉 우리가 속한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서, 삶의 모든 자리에서, 마치 이삭줍기와 같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그 작은 일을 시작할 때, 그때서야 받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복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신앙은 초월적이면서도 동시에 상식적이고 현실적입이죠.
다시 말하자면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날마다 기도하지만, 그 복을 현실에서 실제로 받게 하는 그 이삭줍기는 과연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으로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복을 실제로 경험하지도, 누리지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오미와 룻이 모압 지방에 있을 때, 흉년이 들었던 베들레헴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신다는 소문을 듣게 됩니다.
이때 나오미와 룻은 베들레헴으로 오게 되는데, 결과는 어떻습니까? 베들레헴에 도착하니깐,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복이 쏟아져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보신다는 그 소문이 현실에서 느껴지고 경험이 됩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보신다는 그 소문을 듣고 왔지만, 나오미와 룻에게 남은 것은 이삭줍기만 있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이삭줍기가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하는 통로였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대부분의 성도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길 원합니다. 하지만 그곳에 가보면 어떻습니까? 그렇게 특별한 것이 없고 그저 이삭줍기밖에는 할 것이 없죠.
이럴 때 우리는 참으로 큰 실망과 좌절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무엇을 배웠습니까? 바로 그 이삭줍기가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게 한다는 겁니다.
즉 일상에서 지극히 작고 평범한 일. 이 작은 일 하나를 실천할 때, 과연 하나님의 복이 흘러오게 되는가? 그래서 내 인생을 새롭게 바꿀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성경은 가능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관점으로 볼 때, 세상에서 유명하고 뛰어난 사람들처럼, 크고 화려한 일을 해야만 복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작은 일을 겸손하게 시작할 때,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되고, 또한 역전의 인생으로 바뀌게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작은 일에도 충성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복은 어디에서 어떻게 임하게 됩니까?” 라고 할 때, 두 번째의 답은 “다른 사람의 복을 빌어줄 때”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 4절을 보십시오. 보아스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이삭을 배는 자들, 즉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향해서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하고 복을 빌어줍니다. 그러자 그 사람들도 어떻게 합니까?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함께 복을 빌어 줍니다. 바로 이러한 곳에서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되죠.
우리 옆에 있는 사람과 한번 실습을 해볼까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복주시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복을 받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나의 복을 위해서 지성을 쌓는 겁니다. 이것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니깐, 어떻게 됩니까?
남들이 다 잘 때, 새벽 미명에 일어나서 나의 복을 빌면, 정성을 쏟아내면, 마치 하나님을 감동시켜서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그러한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은 세상의 방식이지 성경적인 방식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방식은 무엇입니까? 나의 복이 아닌 다른 사람의 복을 위해서 기도하는 겁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복을 위하여 기도하면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됩니까? 바로 그때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되는데, 나도 그 복에 함께 참여하게 되는 겁니다.
즉 나만의 복을 비는 곳이 아니라, 서로의 유익과 서로의 복을 비는 곳.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어느 한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가를 좋아합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많은 성도들도 이 전문가와 같이 교회 안에 있는 전문 사역자들을 상당히 의존하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문제가 생기게 됩니까?
전문 사역자만 눈에 보이고 내 옆에 있는 성도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즉 내 옆에 있는 성도들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매 주일마다 교회에 모여서 함께 예배드리는데, 인사 한번 해주고, 손 한번 잡아주면 어떻습니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누가 뭐라하는 사람도 없고,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참 보기가 힘들죠.
하지만 누군가를 험담하고, 비난하는 일에는 어떻습니까? 어느 누가 말하지 않아도, 어느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기가 막히게 알아서 잘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죄악된 본성이죠.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이러한 본성을 따르다보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전혀 누릴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인생은 마치 사막처럼 메마르고 아주 삭막하게 되는 거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입을 열어서 다른 사람의 복과 영혼의 잘 됨을 빌어줄 때,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됩니다. 그저 긍정적인 마로, 좋은 말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세상 사람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 중심입니다. 우리의 마음 중심이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중심으로 항상 세워져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복을 누림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보아스가 이삭을 줍는 룻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런데 어떤 말을 하고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하면서 하나님의 복을 빌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참 놀라운 것은, 지금 보아스는 이방 여인을 향해서 하나님의 복을 빌어주고 있다는 겁니다. 이 당시의 다른 주인들은 어떻겠습니까?
이방 여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밭에서 일을 못하게 하거나, 또는 재수가 없다고 무시하고 조롱하겠죠. 보아스는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보아스는 어떠한 차별도 없이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을 빌어주는 것. 이것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다른 사람의 복과 유익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되는 겁니다. 오늘부터 당장 실천해 보십시오.
다른 사람을 위하여 빌어줬던 그 복이 어느 순간에 나에게도 함께 임하게 되는 그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남겨 놓으신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과 같이 복의 통로가 되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참된 복을 모르는 그 사람들에게 복을 빌어서 하나님의 복이 흘러가게 하고, 나도 함께 그 복을 누리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서 벧전3:9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복을 빌라고 하십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고,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땅에 남아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관점으로 볼 때, 우리는 정말로 귀하고 보배로운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세상에 있는 다른 사람의 복을 빌지 않으면,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번 따라서 해봅니다.
“나는 참 복된 사람이구나!”
“나는 참 소중한 사람이구나!”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과 자녀를 위해 얼마나 축복하고 계십니까? 존경하는 내 부모를 위해 얼마나 축복하고 계십니까?
나의 곁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을 위해, 직장에서 함께 하는 동료들을 위해 얼마나 축복하고 계십니까?
참 안타까운 것은, 친하고 가까운 사람일수록, 인색하고 엄하게 대하는 경우가 있죠. 예를 들면 부모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남의 자녀는 사랑스러운 말로 축복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자녀에게는 인색하고 엄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내 자녀는 하나님의 복을 언제 받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간부터 내 자녀를 더 사랑하십시오. 내 자녀를 위해 하나님의 복을 더 많이 빌어주십시오.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만 하지 마시고, 사랑하는 자녀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하나님이 너에게 복주시기를 원하노라”하고 축복해 주십시오.
이것이 바로 신앙을 가진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목사인 제가 그렇게 뛰어난 재능도 없고, 가진 재물도 많이 없지만,
때로는 목사로 살아가는 인생이 너무나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로서 또한 아버지로서 내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손을 얹고 날마다 축복해 줄 수 있다는 것. 이것 하나만으로도 저는 다 만족됩니다.
만약에 제가 다음 생애가 또 다시 태어나도 목사가 될 겁니다. 요즘 신학교에 신학생들이 많이 부족한데, 많이 지원하십시오. 너무 좋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의 문제와 어려움, 또는 나의 연민에만 빠져서, 다른 사람의 복을 빌어주는 그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까?
만약에 내게 있는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다른 사람의 복을 빌어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복의 통로로 살아야 하는 우리의 인생을 허비하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인생의 문제가 다 해결되어서 문제가 없는 때가 한 번도 없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또한 이 세상에는 죄악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 우리의 인생과 우리 주변에는 항상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내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다른 사람의 복을 빌어주겠다면, 평생 동안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오히려 눈앞에 있는 나의 문제를 잊고 사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복과 유익을 위해 기도하는 것. 그래서 나도 함께 그 복과 유익에 참여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경험을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더 성경적인 방법인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복을 빌고 그 복이 나에게도 함께 임하는 그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복은 어디에서 어떻게 임하게 됩니까?” 라고 할 때, 마지막 세 번째의 답은 “나누고 섬길 때”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보아스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위해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이삭을 남겨 놓죠.
그래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그 이삭을 통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나누고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보아스의 입장에서 남겨진 이삭을 나누는 것은, 자신이 가진 것들 중에 작은 것을 나누어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 작은 것을 나누니깐 어떻게 됩니까? 나오미와 룻의 식탁이 풍성해 지는 거죠. 뿐만 아니라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앞으로 이 시대는 더 독하고, 더 척박하고, 더 각박해질 겁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무엇이 필요합니까? 사랑을 나누는 겁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또한 일부를 때어서 사랑으로 나누는 것. 이것이 바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참된 성도의 모습이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갑니까?
자신의 밭에 있는 이삭을 하나도 남기고 싶지 않습니다. 조금도 다른 사람에게 나누고 싶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삭 한 알까지도 다 긁어모아서, 남들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의 복이 임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여유가 있어서 나누고 섬기는 일은 오지 않습니다. 비록 내가 넉넉하지 않아도, 여유가 없어도, 부담되지 않게 할 수 있는 선에서 작은 것을 나누니깐 이전보다 더 넉넉해지고 여유로워지는 겁니다.
우리가 작은 것을 나누고 섬길 때,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되고, 그래서 다함께 풍성한 식탁을 누리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살펴보겠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보아스에게 은혜를 입은 룻이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보아스는 룻에게 복을 빌어주고, 룻은 보아스를 향해 진심으로 감격이 살아있는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거죠.
가난한 과부였던 룻을 율법의 입장에서 보면, 이삭을 줍는 것은 룻의 정당한 권리죠. 하지만 룻은 그것을 정당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10절을 보시면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라고 합니다.
즉 보아스가 베푼 은혜에 아주 극한 감격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는 겁니다. 이러한 룻에게 임한 것이 하나님의 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감격이 있는 감사는 어떤 사람이 할 수 있습니까? 자신의 무익함과 무능함을 아는 사람. 자신의 교만과 자랑이 무너져서 낮아져 있는 사람.
바로 이러한 사람이 감격이 있는 감사를 할 수 있고, 동시에 하나님의 더 큰 복이 밀려오는 겁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날마다 감사할 제목을 주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격 있는 감사와 찬양이 없다면, 그 감사할 제목을 그냥 지나치고 있기 때문이죠.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를 세우고, 나의 자존심을 높이고, 나를 더 영화롭게 하는, 죄악된 나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감격이 있는 감사와 찬양이 메말라가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삭을 보십시오.
그 이삭이 너무나 평범하고 작아 보이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무익하고, 아무런 자격과 조건이 없다는 것을 보게 되면,
그 이삭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감격이 넘치는 감사와 찬양이 나오는 거죠.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복이 부어지고,
그 복이 또 다른 복을 불러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모인 모두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하나님이 주시길 원하는 복을 빠짐없이 누리는, 그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