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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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가나안 정복이 시작된 이후로 많은 세월이 지났습니다. 여호수아도 나이가 많아 쇠약해지면서 자신의 임종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2절을 보시면 여호수아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 곧 그들의 장로들과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온 이스라엘의 대표들을 불러서 마지막 유언 또는 고별설교를 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약에 나에게도 자녀들에게 유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어떤 내용의 유언을 하시겠습니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영적인 것을 깨달았고, 믿음으로 살아왔고, 하나님을 확실하게 경험했다면... 우리의 유언은 세상 사람들의 유언과 비교할 때, 확실한 차이점이 있어야 합니다.
여호수아의 유언을 보십시오. 그의 유언에는 한 가지 큰 특징이 있습니다. 3절을 보시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내용을 2번씩이나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5절도 보시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가”라는 똑같은 내용을 2번씩이나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8-16절까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반복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여호수아 유언의 핵심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여호수아의 입장에서 볼 때,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영광이 충만한 가운데서 모세를 대면하여 만나주신 하나님, 모세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신 하나님, 가나안의 원수를 대신 싸우셔서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
그러한 하나님이십니다. 참 은혜로운 것은 그 모세의 하나님이 여호수아의 하나님도 되어주셨다는 겁니다.
그 결과로 여호수아는 은혜와 축복 가운데서 살다가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이어서 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가 되어주시기를 간절하게 원하는 마음으로 유언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인 우리가 “자녀에게 무엇을 물려주기 원하는가?” 또는 “어떤 유언을 남기길 원하는가?”라는 질문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부모인 우리의 가치관과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우리의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자녀들도 그 영향을 받으면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이죠. 한 가지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서,
또는 좋은 교육환경을 물려주기 위해서 이런 이유에 의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면, 그 부모가 가진 최우선 가치관과 우선순위는 돈과 학벌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치관과 우선순위를 가지게 되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돈과 학벌이 결핍되면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세속적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세속적인 생각은 자녀들의 신앙에 그대로 영향을 주게 되고, 결국에는 그 자녀들까지도 세속적인 신앙인으로 만들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그들은 지금 여기까지 어떻게 해서 올 수 있었습니까? 그들이 가진 돈과 학벌과 권력으로 온 것입니까?
그런 것이 아니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돌보셨기 때문에 지금 여기까지 온 겁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여호수아는 너무나 확실하고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자신의 마지막 고별설교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던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이 시대는 다음세대가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저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오늘날의 부모세대가 세상과 타협된 신앙으로 자녀들을 양육하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타협한 신앙으로 자녀들을 양육하니깐, 그 양육의 방향과 목표가 변질이 되는 거죠. 예를 들면 이런 거죠. 부모는 참 부모이신 하나님의 대리인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신앙을 가진 부모는 내 자녀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 하게 됩니다. 이 반면에 세상과 타협한 부모는 어떻게 합니까?
육신의 부모가 원하는 대로 또는 세상의 쾌락과 성공을 추구하는 세속적인 사람으로 양육하게 됩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내 자녀가 아무리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에 들어가도, 세상 사람들이 인정할 만큼 아무리 크게 성공을 해도, 그곳에서 받게 되는 죄의 압박과 유혹은 하나님의 사람답게 넉넉히 이겨내지 못합니다.
결국엔 내 자녀들까지도
세상과 타협된 신앙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죠.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할 것은 신앙을 가진 부모든 자녀든 어느 누구든지 간에 세상과 타협하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가지는 거룩한 빛과 소금의 맛을 잃게 된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의 사람만이 가지게 되는 그 고유한 역할과 특성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아무런 쓸모가 없어서 버림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러한 관점으로 볼 때, 지금 이 여호수아는 어떤 마음으로 유언을 남기고 있겠습니까?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깨닫고 경험한 하나님,
지금도 살아계셔서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
나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이자 최고의 우선순위이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이스라엘 너희가 확실하게 믿고 의지한다면,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이러한 마음으로 유언을 남기고 있는 겁니다.
즉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과 신앙의 유산을 남겨주고 싶은 그 절절한 마음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그 반복적인 말에 담겨져 있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3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셨다고 합니다. 이어서 5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 있는 그들을 쫓아내셨고, 동시에 그가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합니다.
즉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해서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은, 하나님이 대신 싸워서 승리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은 이것을 전제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6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지금 여기까지 도우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이 앞으로도 너희를 도우시고 인도하실 것이니 너희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율법대로 다 지켜 행하라고 합니다.
율법대로 다 지켜 행하라는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나안은 이스라엘 백성이 독립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서 그분의 다스림을 받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게 됩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을 주신 것은, 그저 가나안 백성을 물리쳐서 이스라엘 너희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는 참된 안식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참된 안식은 어떻게 해야 누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야만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한 그 순간부터
또 어떤 전쟁이 남아있습니까?
모세의 하나님, 여호수아의 하나님. 그 위대하신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의 하나님으로 바른 관계를 맺고, 동시에 그분의 통치를 받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그 믿음의 전쟁이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세는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했던 겁니다. 겉으로만 보면 모든 전쟁이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아직도 남은 전쟁이 있는 거죠. 사랑하는 여러분, 처음에 우리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과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그때 그 믿음과 은혜가 정말로 참된 것이라면, 우리는 어떤 경험을 하게 됩니까?
그때 그 모습 즉 옛사람의 모습으로 머물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거룩함을 추구하면서 새사람의 모습으로 변화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주님을 믿기 전에는 내 생각, 내 주장, 내 고집, 내 마음대로 살아왔지만, 주님을 믿고 나서는 어떻게 됩니까?
내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는 땅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동시에 그분의 말씀으로 나 자신을 아주 철저하게 굴복시켜서 그분의 통치 아래로 들어가는 것.
이 거룩한 전쟁을 날마다 치르면서
성숙한 성장과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으로 나의 못난 부분을 굴복시켜 가는 그 거룩한 전쟁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때로는 넘어져도 마지막 그날이 되면
최후의 승리와 영광이 있다는 것도 확신하고 있습니까?
뿐만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 내 후손들의 하나님이 되기를 간절하게 원하고, 또한 내 마음에 간직한 그 말씀을 내 후손들에게도 물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수아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말씀대로 살고자하는 삶의 몸부림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백성들에게 전하는 그의 마지막 유언과 고별설교가 힘을 발휘하게 되는 거죠.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게 됩니까?
우리의 자녀들이 곁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가 마음에 간직한 그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삶의 몸부림.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들어가서 우리 자신을 굴복시켜 가는 모습. 세상과 타협하기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드는 믿음.
이러한 모습을 평소에 보여주지 못했다면, 자녀들을 향해서 아무리 신앙적인 권면과 유언을 해도, 그 권면과 유언은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의 신앙은 부모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하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자녀들이 영적으로 침체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게 하려면, 가장 먼저 여기에 모인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한 산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난 세월 동안 연약한 나를 위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싸워주셨는지, 지금 여기까지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셨고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지, 과거에 경험한 그 은혜를 회상하면서 우리의 자녀들에게 빠짐없이 전해줘야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부모인 우리의 삶과 신앙은,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그 동기부여 제공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녀들에게 동기부여를 한 만큼, 우리 자녀들의 신앙이 자라게 되죠.
사랑하는 여러분, 6절을 보시면, 율법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합니다. 7절에서는 아직 남아 있는 가나안 족속들과 접촉하지 말고 또한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합니다.
10절에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다고 합니다. 이어서 11절을 보십시오.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스스로”라는 부분을 원어적으로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너희의 마음들로...” 이렇게 표현이 됩니다.
이어서 “조심하여”라는 부분도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외적인 행위와 내적인 마음이 일치되는 신앙의 진실함” 이렇게 표현이 됩니다.
잠시 정리하자면, 이스라엘의 흥망성쇠는 “진실한 마음과 신앙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 바로 여기에 달려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6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말하기를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죠.
여호수아가 이렇게 말 할 때는 그저 형식과 습관으로 율법을 지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 율법을 지켜 행하라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이 시대를 보면서 참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1순위로 사랑하지 않는 부모들이 너무나 많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영향이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해져서 그들도 역시 하나님을 1순위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수고와 헌신이 없습니다.
그저 세속적인 성공만 추구하게 되죠.
사랑하는 여러분, “자녀 마음에 하나님을 새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의하면 대한민국 성인의 21%가 기독교인입니다.
하지만 청소년은 약 3.8%만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수치적으로 보면 거의 미전도 종족에 가깝습니다. 즉 다음세대의 신앙이 상당히 무너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부모세대의 신앙이
무너졌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고 해석합니다.
왜냐하면 부모세대의 신앙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우리의 자녀들이 미전도 종족이 되는 상황을 그저 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음세대를 일으키는 것은, 주일학교 자체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부모세대인 우리 모두가 가정에서부터 적극적인 협력을 해야 합니다.
다음세대를 위해서 교회와 가정이 서로 적극적인 협력만 하면, 오늘날 이 시대에도 다음세대의 부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세월을 떠올려 보십시오. 우리가 죄에 빠져서 탕자처럼 방황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끝내 그 죄로부터 돌이키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그 과정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때로는 죄에 빠져서 방황하는 세월이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다시는 죄로 인해 방황하지 않도록,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겠다는 결단! 때로는 나 자신이 남들보다 느리게 걷더라도, 끝까지 그 말씀만 따라가겠다는 그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우리의 자녀들도 우리가 걸어간 그 길을 따라오게 해야 합니다. 그들의 영혼도 하나님을 만나서 생기 있고 힘 있게 살아나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했던 지난 잘못과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있었다면, 오늘날 우리의 자녀들은 저와 여러분이 있습니다. 아멘이십니까?
우리 잠시 말씀을 생각하면서 함께 기도할까요?
(기도제목)
하나님 아버지, 부모세대인 우리가 먼저 마음을 찢어서 눈물로 회개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자녀들에게 신앙의 모범이 되게 하옵소서.
거짓과 위선을 벗어버리고 아버지의 말씀과 일치되는 정직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전심으로 사랑하면서 아버지의 말씀만 따라가겠다는 결단을 가지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도 우리가 걸어간 그 영광스러운 길을 따르게 하옵소서.
우리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자비롭고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주신 이 말씀을 통해 부모세대인 우리가 먼저 지나온 삶의 신앙을 돌아보면서 점검하기를 원합니다. 성령께서 친히 조명하여 주심으로 우리가 깨달아야할 것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분명하게 볼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또한 다음세대인 우리의 자녀들이 영적으로 침체되어 가는 것을 다른 누구의 탓도 아닌 우리의 탓과 책임으로 여기고, 그래서 우리가 먼저 마음을 찢으면서 눈물로 회개할 수 있는 갈급한 마음을 주옵소서.
뿐만 아니라 부모인 우리가 자녀들이 보는 가운데서 신앙의 모범이 되고, 그래서 청지기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또한 마땅히 행할 길도 잘 가르쳐서 그들이 늙어서도 그 가르침에 떠나지 않게 하옵소서.
거짓과 위선을 벗어버리고 아버지의 말씀과 일치되는 정직한 성품을 가지고 정직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부모인 우리가 분명히 가르쳐 알게 하옵소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먼저 아버지를 전심으로 사랑하고, 아버지의 말씀만 따라가겠다는 결단을 가지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과 그 후손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걸어간 그 영광스러운 길을 따르게 되는, 믿음의 대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져 가는 그 은혜를 주옵소서. 항상 아버지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우리의 자녀들이 되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