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무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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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은 400년이나 넘게 애굽의 노예로 살아왔습니다. 또 40년이 넘게 광야에서 방황하며 살아왔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나의 소유라고 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는 거죠.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 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 약속의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누어 주시죠.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 약속의 땅이 이스라엘 백성의 새로운 신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그저 정처 없이 방황하는 노예의 신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끈질긴 인도함을 받아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오니깐, 그들이 무엇을 확인하게 됩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백성, 하나님으로부터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김을 받은 백성,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축복을 받은 백성임을 아주 선명하게 확인이 됩니다.
즉 약속의 땅으로 들어온 후에는 더 이상 그들이 노예의 신분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존귀함과 축복을 받은 백성이라는 그 새로운 신분을 확인하게 되는 거죠.
바로 이것에 대한 증거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나누어 주신 후에 어떤 제한을 하십니까?
그 약속의 땅을 사고파는 일이 없도록 제한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그 땅의 주인이심을 가르쳐 주시는 거죠.
그래서 그 약속의 땅을 사고파는 것은 제한되었지만, 그 땅을 열심히 사용하는 것은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어떻게 됩니까?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가난과 굶주림에 빠진 사람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땅을 담보로 해서 돈을 빌리는 일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너무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은
자신의 빚을 갚지 못해서 노예로 팔리기도 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나누어 주셨던 그 약속의 땅은 부를 축적하는 재산으로서만 그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존귀하게 여겨지는 백성, 또는 축복을 받은 백성으로서 확인되는 그 증거가 이 약속의 땅입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의 이유로 그 땅을 잃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또 어떻게 하십니까?가장 가까운 친척들 중에서 누군가가 값을 대신 지불하고, 그래서 잃어버렸던 그 땅을 다시 되돌려 주는 동시에, 빚진 자의 이름을 그대로 보존하게 하십니다.
즉 가난으로 잃어버린 땅과 재산을 원래 소유주에게 다시 되돌려줘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문의 명예와 명성과 복이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기업을 무를 자”라고 부릅니다.
또 다른 역할은 어떤 사람이 가난함으로 인해 노예로 팔리게 되면, 기업을 무를 자가 노예로 팔린 사람을 다시 되찾아서 자유를 주는 거죠.
또한 가장 가까운 친척이 부당하게 살해를 당하게 되면 끝까지 쫓아가서 대신 처벌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피성으로 도망가지 않은 범인을 잡아서 죽이거나 또는 도피성에 도망갔다 다시 나온 범인을 잡아서 죽일 수 있는데,
기업을 무를 자가 이러한 역할을 한다고 해서 살인죄가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해를 받은 대로 되갚아줄 수 있는 그 권리를 이행한 것으로 적용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남편이나 아들이 일찍 죽어서 후사가 없는 과부를 그 남편의 형제가 취해서 죽은 남편의 이름으로 후사를 잇게 하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기업을 무를 자의 역할입니다.
잠시 정리하자면 가까운 친척 중에서
1) 잃어버린 땅과 재산을 회복시켜 줄 수 있는 사람. 2) 노예로 팔린 사람을 다시 되찾아서 자유를 줄 수 있는 사람, 3) 부당함과 억울함을 되갚아 줄 수 있는 사람.
4) 후사가 없는 과부를 취해서 죽은 남편의 이름으로 후사를 이어가게 할 수 있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을 가리켜서 “기업을 무를 자”라고 부르죠.
그리고 “기업을 무를 자”를 히브리어로 하면 “고엘”이라고 합니다. 이 고엘을 우리말 그대로 번역하면 “친족 구속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풀어서 말하면, “가까운 친척들 중에서 값을 대신 치르고 구해주는 사람” 이렇게 부를 수 있는 거죠.
사랑하는 여러분, 고엘 또는 기업을 무를 자의 핵심은 값을 치러서 원래대로 회복시켜준다는 겁니다. 이 핵심이 제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고엘 제도라고 부릅니다.
만약에 친척이 없어서 노예로 팔리거나 자기 땅들을 팔아넘기게 되면, 그 사람은 어떻게 해야 다시 회복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정하신 희년이 되면, 잃어버렸던 신분과 땅을 다시 회복이 되는 거죠. 그렇게 해서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이 약속의 땅으로 인해서 생기는 존귀와 명예와 축복을 영원히 상실하지 않도록, 영원히 노예의 신분이 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제도적으로 막고 계시죠.
다시 말하자면 애굽 땅에서 아주 긴 세월 동안 노예로 살아왔던 백성.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해방시켜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고, 동시에 그 백성의 존귀와 명예를 회복시켜놓으셨습니다.
그래서 회복된 신분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다시 노예의 신분으로 남게 되는 일이 없도록, 빈부격차가 커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이 고엘 제도를 통해서 보호하며 지켜주셨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고엘 또는 이 고엘 제도가 그저 사회적인 보장과 기능만 갖고 있는 게 아닙니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그 모든 제도가 궁극적으로 가르치고 싶어 하는 게 무엇입니까? 오직 예수,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엘 제도는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구주께서 구속하시는 그 은혜를 통해서 구약시대의 고엘 제도가 그대로 똑같이 상징적으로 적용이 되죠. 그래서 신약시대에 있었던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가장 자주 표현하는 단어 중에 하나가 “구속”입니다.
즉 죄의 노예로 있던 우리를 위해 주님께서 대신 값을 치르시고, 동시에 참 자유를 얻게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고엘 제도는 사회의 약자였던 룻과 나오미를 사회적으로 보장하고 회복시키는 너무나 귀하고 훌륭한 제도였지만, 그것으로 끝내면 안 된다는 겁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마치 룻과 나오미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한줄기의 희망도 없고, 그저 비참한 자리에서 주저앉아 있던 우리의 인생에
주님께서 친히 개입하여 주시고, 그래서 우리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그 죄값을 치르셨고, 동시에 구원해 주셨음까지 기억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필요까지도 주님께서 책임지고 대신 공급해 주신다는 것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이 룻기서를 통해서 보아스가 룻의 기업을 무를 자가 되는 것을 볼 때, 그저 좋은 남편감을 만나서 팔자 고친 내용으로 보시면 참 곤란합니다.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보아스가 룻의 기업을 무를 자가 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주님의 그 십자가 사건까지 내다볼 수 있는 그 영적인 안목이 있어야 하는 거죠.
이방여인에 불과한 룻처럼, 정말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그 무리에도 들어갈 수 없었던 우리.
이러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한없는 은혜를 입어서 우리의 모든 죄와 형벌로부터 용서함을 받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 안으로 들어가게 된 겁니다.
뿐만 아니라 룻이 보아스가 가지고 있던 그 모든 부와 존귀를 상속받은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잃었던 하늘의 기업이 무익한 우리에게도 상속되고 회복이 되는, 그 영광을 누리게 되는 거죠.
그런데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기업 무를 자에서 나타나는 이 복음을 아무리 가르치고 전해도 제대로 누리지를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기업을 무를 자가 되어 주신 그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나의 모든 죄 값이 해결이 되고, 동시에 하늘의 그 영광스러운 기업을 상속받게 되었다는 그 놀라운 사실.
이것을 믿음으로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나 상당히 많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꾸만 나의 자격과 조건을 보면서 반응하려고 하기 때문이죠. 즉 내가 뭔가를 이루어서 내세울만한 것이 있어야만, 하늘의 기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것처럼 여기는 거죠.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마치 룻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보아스가 베푸는 은혜가 전부인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전부가 되어서 하늘의 기업을 상속받을 뿐만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수에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보아스가 룻의 기업을 무를 자가 되어 줄 때, 룻이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즉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기를 원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룻이 하나님의 백성 안으로 들어와서 모든 것이 새롭게 바뀌고 회복된 사람답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원했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제가 이 말을 왜 언급 하냐면,
죄인인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와 구원을 베푸셨다고 하면, 꼭 한사람씩은 “그럼 이제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됩니까?”라고 질문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질문은 자신의 무지함과 고도의 교만이 숨겨져 있는 거죠. 사실은 이런 것이 전혀 아니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와 구원을 베풀어 주신 것은 내 마음대로 내 멋대로 살아가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이 땅에서 제대로 하번 살아봐라” 이러한 의미가 있는 거죠. 즉 한 번밖에 없는 우리의 귀한 인생을
무엇을 위해서 아낌없이 바쳐갈 것인지 그 목적을 정확하게 깨닫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 되시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과거의 우리는 마치 나오미와 룻처럼, 이방 땅에 가서 남편 죽고 자식 죽고, 재산을 잃게 되는 다 빼앗기고 잃어버린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주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무를 자가 되어주셨다는 겁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정말로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확신한다면 우리 안에서 어떤 반응이 나타나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기업을 무를 자가 되어 주신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회복시켜서 새로운 출발을 갖게 하시는 그 과정에서 생각난 감격과 기쁨.
그 감격과 기쁨을 어떠한 순간에도 결단코 잃어버리거나 빼앗기지 않겠다는 그러한 자세와 반응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을 믿는 감격과 기쁨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습이죠.
아멘이십니까? 한번 따라서 해보실까요?
“나는 결단코 잃어버리지 않으리!,
나는 결단코 빼앗기지 않으리!!”
무엇을 빼앗기지 않아야 합니까? 주님께서 무익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룻기서를 통해서 보아스가 룻의 기업을 무를 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기업을 어떤 방법으로 무르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일까요? 돈으로 갚아주는 것도 좋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보아스와 룻이 결혼을 하는 거죠.
그래서 3:3-4절까지를 잠시 보시면 하나님의 손길을 깨달은 나오미가 룻에게 어떤 조언을 하게 됩니까?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보아스 그가 누울 때에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고 합니다. 이것을 오늘날 우리의 기준과 관점으로 보면 어떻게 됩니까?
마치 과부 시어머니가 과부 며느리에게 부자 영감을 유혹하라고 너무나 치밀하고 노골적인 지시를 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가 있겠죠.
하지만 이 당시의 문화와 관습이라는 그 기준과 관점으로 보면, 대단히 정중하고도 겸손한 또는 사회적으로도 인정이 되는 청혼을 하고 있는 거죠.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면에서 보면, 신약성경에서 등장한 세례 요한의 역할은 나오미의 역할과 거의 유사합니다. 어떤 면에서 그렇습니까?
나오미가 룻을 보아스의 곁으로 안내하는 것처럼, 세례 요한도 주의 길을 곧게 할 뿐만 아니라, 죄인들에게 회개를 외쳐서 주님의 곁으로 안내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역할이 매우 유사하죠.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룻이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좋은 방법은 보아스와 결혼을 하는 겁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영원한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그 유일한 방법은
마치 룻처럼 우리가 주님의 신부로서 단장해서, 우리의 기업을 무를 자로서 가장 유력하신 주님께 믿음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우리의 신랑이 되시고, 우리는 주님의 신부가 될 때, 그래서 우리가 주님 안에서 머물게 될 때, 영원하고도 참된 그 안식의 복이 확실하게 보장이 되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약에 룻이 나오미의 조언에 순종해서 보아스에게 청혼을 했는데, 이 보아스가 룻의 의도를 오해해서 음란한 이방 여인으로 고발을 하면, 이 룻은 상당히 위험하고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미가 보아스에게 가서 청혼을 하라고 조언했던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압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상황을 돌아보니 하나님의 그 세밀한 손길이 있다는 것을 분별해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까? 진리의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우리를 분명하게 분별시키시고, 깨닫게 하시는 것은,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머뭇거릴 것이 아니라,
과감하고 적극적인 결단으로 순종함을 요구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신 그 말씀대로 순종을 해보면 대부분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됩니까? 순탄하지 않고 다양한 어려움과 여러 위험들이 생겨납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과 위험들로 인해서 결단코 망하는 일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때로는 사방으로 에워싸임을 당하거나, 넘어져서 전혀 못 일어날 것 같지만, 깨닫게 하시는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나아가면,
절대로 패배하거나 망하지 않고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그 섬세한 인도가 열리는 그 영광을 보게 됩니다.
물론 말씀을 깨달아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깨달아서 하나님의 뜻이 분별되면, 어떠한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순종하겠다는 그 도전과 결단을 가지는 것.
그래서 우리 바로 곁에 기업을 무를 자이신 주님이 함께 계시는 것처럼 살아내는 것. 바로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에 모인 우리가 주님 안에서 사는 삶이 무엇인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서 나타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을 통해 또 다른 사람들도 주님 안으로 들어오고, 동시에 기쁨과 감사를 풍성하게 나누는 그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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