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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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창37장을 보시면, 야곱이 노년에 낳은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의 이름이 요셉입니다. 야곱은 여러 아들들 중에 요셉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됩니다.
그 결과로 요셉은 어떻게 됩니까?
형들로부터 미움과 시기를 받게 되죠.
뿐만 아니라 어린 요셉이 두 번의 꿈을 꾸게 되는데, 그 꿈들을 형들에게 말한 후부터 더 큰 미움과 시기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형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요셉을 애굽의 노예로 팔아버립니다. 이때부터 야곱의 가정은 엄청난 비극과 갈등이 일어나게 됩니다. 참으로 은혜로운 것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면서 형통하게 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애굽의 노예에서 애굽의 총리로 세워지게 됩니다. 그가 애굽의 총리로 세워진지 약 9년 정도 지났을 때, 온 땅에 큰 흉년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요셉의 형들은 양식을 구하기 위해 애굽으로 찾아오게 되죠. 이때 형들은 애굽의 총리로 있던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요셉은 형들을 알아봤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지난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지 확인을 한 후에 용서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에게 속한 모든 식구를 애굽으로 데려와서 흉년의 때를 잘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됩니다.
이후에 야곱이 나이가 들어서 죽기 전에 요셉의 두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축복을 해줍니다. 이 의미는 훗날 가나안을 정복해서 땅을 분배할 때, 요셉의 자손들에게 두 몫을 주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창48:22절을 보시면,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다”고 기록을 한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이 당시의 문화로 볼 때, 형제들 중에 한 사람이 두 몫을 더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에게는 장자권이 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볼 때,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축복한 것은, 그 장자권이 요셉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래서 대상5:1절을 보시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족보에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되지 못하였느니라”
잠시 핵심만 정리하자면,
1) 야곱과 요셉의 형들이 극심한 흉년을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야곱이 늙어서 죽기 전에 요셉의 두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축복을 해주는데, 이것은 요셉에게 장자권이 있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오늘은 이러한 배경을 알아야만 본문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생각하시면서 14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이 말을 풀어서 포현하자면,
지금 이스라엘이 누구 때문에 호강하게 되었냐는 겁니다.
과거 우리 지파의 조상인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너희 조상들을 거두어줬기 때문에, 흉년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요셉 지파에게 복을 주심으로 큰 민족이 되게 하셨고, 그래서 가나안 정복을 할 때, 요셉 지파인 우리가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겁니다.
즉 요셉의 자손인 우리 덕분에 이스라엘은 번창할 수 있었고, 또한 지금 여기까지 왔다는 겁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이렇게 대접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겁니다.
우리는 다른 지파들보다 더 우월하고 더 특별해서 이것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그 자격과 공로가 충분히 있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로 그렇습니까?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죠.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은, 하나님의 순전한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통해 요셉 자손에게 복을 주신 것도, 그들에게 어떠한 자격과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순전한 은혜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한 것도 하나님의 순전한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요셉 자손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지금 여기까지 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셉 지파의 주장과 요구는 합당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저 잘못된 특권의식과 우월의식과 교만함에 빠져있는 겁니다.
즉 오늘 이 본문은 요셉의 자손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특권의식과 교만함을 고발하고 있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어떤 경우는 겸손하게 잘 하지만, 또 어떤 경우는 교만할 때가 있죠.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 겁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그 은혜를 기억하고 있느냐?, 아니면 망각하고 잊어버렸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겸손할 수도 있고, 교만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거나 잊어버리게 됩니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자기 의로움, 자기 공로, 자기 우월감, 자기 특권의식.
이러한 것에 빠지게 될 때,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원망과 불평이 그 사람 마음에 가득히 채워지게 됩니다.
마치 이 요셉의 자손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러한 관점으로 볼 때, 겸손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주목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는 겁니다.
이 반면에 교만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주목해서 자신의 이름과 영광을 드러내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든지, 또 자신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하든지 간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그저 주께 받은 사명을 위해, 앞만 보면서 달려갑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전4:3절을 보시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이어서 4절을 보시면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고 합니다. 즉 사람의 판단과 생각보다 하나님의 판단과 생각이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이 가진 겸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가 어떤 분이신지, 또한 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이것을 분명하게 깨닫고 기억하게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됩니까?
다른 사람들의 판단과 무시와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그렇게 힘들어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했던 것까지도 모두 다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면서 회개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의 판단과 부당한 대우로 힘들어하고 괴로워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판단보다 사람의 판단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애굽 땅에 10가지의 재앙을 내리실 때, 마지막 10번째 재앙은 장자의 죽음입니다. 즉 하나님이 애굽 땅에 마지막 재앙을 내리실 때,
이스라엘이나 애굽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장자와 처음 난 짐승들은 다 죽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장자와 처음 난 짐승들은 어린 양의 피로 살아남게 되죠.
이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서 사람이나 짐승이나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내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와 관련해서 민3:4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여호와라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에 레위인을 내게 돌리고 또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 중 모든 처음 태어난 것 대신에 레위인의 가축을 내게 돌리라”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 즉 장자 대신에 누구를 내게 돌리라고 하십니까? “레위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레위인들은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대속물로 바쳐지게 된 겁니다.
제가 여기서 전하고자 하는 것은, 장자의 역할입니다. 장자의 핵심적인 역할은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바쳐지는 겁니다.
그래서 애굽에 있었던 마지막 재앙을 어린 양의 피로 넘어가게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과 거룩함을 백성들 앞에서 드러내는 겁니다.
하지만 요셉의 장자권을 가진 요셉의 자손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이름과 은혜와 거룩함을 드러내기보다 자신의 공로와 명분과 자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보다 자신의 우월감과 특권의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져서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오직 은혜로만 살게 되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장자로서 가져야 할 장자의 정신까지도 잃어버린 겁니다. 요셉의 자손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고 큰 민족을 이루고, 그 결과로 이스라엘을 대표하게 된 것은,
그들의 선행이나 공로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ㄹ에게 그만한 자격과 조건이 있어서도 아니고, 그들이 그만큼 잘나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자손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그 겸손의 고백을 감사와 기쁨으로 했어야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기억하고, 동시에 그분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 충성을 바치면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살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본문은 그 요셉의 자손을 고발하고 있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셉의 자손은 레위인들을 볼 때마다 무엇을 기억해야 합니까?
내 생명이 하나님께 바쳐져서 죽어야 마땅했지만, 저 레위인들에 의해서 대속되었다는 그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관점으로 볼 때, 겸손이라는 것은 내 스스로,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있기 때문에, 그 은혜를 잘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겸손할 수 있는 거죠.
사랑하는 여러분, 요셉의 자손이 무리한 요구와 주장을 할 때, 여호수아는 어떻게 답변합니까? 15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
무슨 뜻입니까? 너희는 큰 민족을 이루었고 또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깐 이제 너희 스스로 도전을 해보라는 겁니다. 그러니깐 이 요셉의 자손이 어떻게 대답합니까?
16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요셉 자손이 이르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가나안 족속에게는 벧 스안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 하니”
한마디로 말하자면 가나안 백성에게는 철 병거가 있기 때문에 개척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는 어떻게 대답합니까?
18절을 보시면 “네가 개척하라. 그들이 철 병거를 가졌더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고 하죠. 사랑하는 여러분, 요셉의 자손은 이미 철 병거 때문에 두려움에 빠져서 떨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나안 백성과 싸워 이길 수 있겠습니까? 또 한 가지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어떤 좋은 무기와 전술이 있어서 가능했습니까? 그런 것이 아니죠.
이와 관련해서 수23:9절에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셨으므로 오늘까지 너희에게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느니라”
누가 강대한 나라들을 쫓아내셨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을 대적하던 그 모든 원수는 여호와 하나님이 물리치신 겁니다. 그 결과로서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정복하게 된 거죠.
즉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게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요셉의 자손에게 스스로 개척하라는 것은, 눈앞에 철 병거가 있는 그 환경만 보지 말고,
지금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동시에 장래에 부어주실 그 새로운 은혜를 기대하면서 끊임없이 전진하며 정복하라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오직 은혜로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나가서 나타내라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또한 자기 백성을 위하여 어떻게 일하시는지 그 위대함과 영광도 드러내라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들이 하나님께 바쳐서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대신해서 레위인들을 바치도록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위해 하나님은 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물로 주셨습닏.
그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뜻에 맞게 장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자로서 가져야 할 그 정신도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까지 온전하게 지켜 내셨습니다.
그 결과로 대속의 은혜를 입은 우리도 거룩하게 구별된 하나님의 소유 또는 영원한 하늘의 유업을 상속받게 되는 그 장자의 명분을 받게 된 겁니다.
얼마나 놀랍고 큰 축복입니까. 이것은 우리에게 어떠한 자격과 조건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멘이십니까?
★우리 잠시 말씀을 생각하면서 함께 찬양할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원하고 바라던 그 약속의 땅에 들어왔지만, 그들 스스로의 힘과 지혜와 노력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약속의 땅 안에서도 무엇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요셉의 자손은 지금 이것을 놓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냈던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환경이 좀 부족하고 열악해도, 때로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꼭 기억하시길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는 현재라는 시간에서 단 한 번도 부족했던 적이 없다는 겁니다.
다만 우리의 어리석음과 망각으로
그 은혜를 잊고 지내왔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그 은혜에 대한 기억을 다시 회복하고, 동시에 앞으로 받을 새로운 은혜를 기대하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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