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골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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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6장 맨 마지막 2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고 합니다.
즉 6장에서 여리고 성을 함락시킴으로 여호수아에 대한 소문이 가나안 온 땅에 퍼져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으로 불리는 너무나 영예롭고 복된 그 증거를 얻게 된 겁니다.
이어서 7:1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원어 성경에는 “그러나”가 있지만 우리 한글 성경에는 “그러나”가 빠져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여리고의 함락으로 승리의 큰 기쁨을 누리던 그 맑은 날에, “그러나” 하면서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옵니다. 동시에 천둥과 번개도 함께 치는, 본문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거죠.
다시 1절을 보십시오. 6장에서 7장으로 넘어오면서 본문의 분위기가 바뀌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유다 지파에 속한 아간이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물건을 훔쳤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다시 1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라고 합니다.
즉 아간 한 사람의 죄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 전체가 범죄한 것으로 보고 계시죠.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 어느 한 개인만 즉 독립적인 존재로 맺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공동체적인 언약을 맺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동체 안에 있는 한 개인은 전체 공동체 안에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한 개인이 죄를 지으면 그 죄는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한 몸을 이루는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래서 공동체 전체는 한 개인을 보호해야 하고, 한 개인은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위해서 협력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교회에 그대로 적용해야 하는 성경적이 원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에 모인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몸을 이루는 교회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를 위해 개인이 맡아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고,
동시에 교회 공동체가 한 개인을 위해서 맡아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그 결과로 교회 공동체는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면서 어느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함께 자라가야 합니다.
때로는 한 개인이 어떤 잘못과 죄를 지었을 때, 교회 공동체는 그 한 개인을 정죄하고 판단하기보다, 교회 공동체 전체가 마치 내 잘못과 내 죄인 것처럼 여기는 그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한 개인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그 기회를 주는 거죠. 이것이 바로 사회 공동체와 교회 공동체의 차이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사람들을 보내서 아이를 정탐하게 합니다. 그들이 돌아와서 어떻게 보고합니까?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마소서”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여리고 성에 비해 아이 성은 작고 주민들도 소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방심을 하면서 적들을 얕보게 된 거죠.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 결과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큰 여리고 성을 함락시켰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작은 아이 성 앞에서 아주 큰 패배를 당하게 됩니다. 즉 한 개인의 죄와 공동체의 방심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패배하게 된 겁니다.
만약에 아간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공동체가 방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면, 결코 아이 성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았을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까?
1) 나 한 사람 때문에 교회 공동체 전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고, 또는 더 좋아질 수도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과거에 제가 사역했던 한 교회는 성도 한 명이 말을 잘못하는 바람에 교회 전체가 아주 처참하게 분열되고 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담임 목사님은 성도들 몰래 새벽에 짐을 빼서 나가고, 성도들은 서로 손가락질 하면서 싸우고, 교회 아이들은 그것을 다 보고 있고, 교회가 문을 닫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삭막하고 힘들었습니다. 저도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몇몇 성도들이 교회가 문을 닫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해서, 새로운 목사님이 오실 때까지 제가 대신 다 맡아서 그냥 버티고 있었습니다.
몇 달 후에 새로운 목사님 오시고 1년 정도 지나 교회가 안정될 때, 그때 제가 사임을 했죠. 제가 강조하는 것은 한 사람의 죄가 교회 공동체에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겁니다.
그래서 회개라는 것은 그저 나 한 사람의 죄를 용서 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 내가 속한 가정과 주님의 몸된 교회에 내 죄의 영향을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회개를 하는 거죠.
2)(두 번째 교훈) 교회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방심은 금물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 있는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로서 아주 치열한 영적인 전쟁 중에 있습니다.
전쟁이 무엇입니까? 우리 편이 죽느냐? 적군들이 죽느냐? 이 중에서 하나만 남게 되는 것이 전쟁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 안팎에 일어나는 일이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해도 방심은 금물입니다.
오히려 더 민감하게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치 내 일인 것처럼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살펴봐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6절을 보십시오. 아이 성 전쟁에서 패배한 후에 여호수아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옷을 찢고 장로들과 함께 언약궤 앞에서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자신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즉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아주 극적인 비탄과 애통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7절부터 9절까지는 여호수아가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다 쏟아내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참 은혜로운 것은 여호수아가 마음에 있는 모든 원망과 불만과 애통을 다 쏟아낼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듣고 기다려 주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어떻습니까?
백성들이 잘못해 놓고 하나님께 덮어씌우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다 듣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자신의 마음을 다 쏟아낸 후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여호수아를 찾아오십니다.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 가운데 있는 죄를 알려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때 여호수아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황당하고 무안하겠습니까?
방금 전까지 막 소리를 지르면서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만과 애통한 마음을 막 쏟아냈는데,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를 속인 것처럼 여겨왔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정말 황당하고 무안하고 부끄럽겠죠. 이때 여호수아는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자기 백성들을 속이시거나 또는 망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뼛속 깊이 깨닫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은 속여도 하나님은 결코 속일 수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까?
내가 어떠한 문제와 어려움으로 큰 실패와 좌절과 곤경에 빠져있을 때, 마치 여호수아에게 찾아오신 것처럼, 나에게도 그렇게 찾아오실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비록 나의 실수와 잘못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친히 찾아오셔서 넘어진 나를 다시 일으켜서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시죠.
또 한 가지는 우리의 무지함과 성급함이 하나님을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즉 무지함과 성급함이 하나님을 향한 오해를 낳고, 그 오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트립니다.
그래서 어떠한 어려움과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가 한 번 더 생각한 후에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나와 공동체에 유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19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청하노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고 네가 행한 일을 내게 알게 하라 그 일을 내게 숨기지 말라 하니...”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볼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라”는 부분입니다. 아간은 자신의 죄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습니다.
이제 그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일은, 자신의 죄를 자복해서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을 드러내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됩니까?
아골 골짜기에서 즉 괴로움의 골짜기에서 아간 자신과 그에게 속한 자녀들과 물건들과 짐승들이 불태움을 당하게 됩니다. 너무나 끔찍하지 않습니까?
바로 이것이 죄의 결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러한 아간의 범죄와 연약함은 오늘날 우리의 범죄와 연약함을 보여줍니다.
때로는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 때가 있습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죄를 숨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정하시나요?
참 신기하게도 우리는 죄를 짓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잘합니다. 날마다 새롭게, 새로운 방법으로 죄를 짓죠(ㅋ).
왜냐하면 우리 안에는 여전히 죄의 본성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인정할 수밖에 없고, 부인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마치 바리새인들처럼 내 신앙이 남들보다 더 거룩하고, 더 뛰어나고, 더 훌륭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내 안에 있는 흠과 허물이 있어도, 내 눈에 들보가 있어도, 전혀 인정할 줄을 모릅니다. 그저 남들의 흠과 허물만 지적하죠.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는 바리새인과 같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세리와 같이 자신의 죄로 인해 심히 괴로워하고 애통하는 사람,
괴로움의 골짜기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불의 심판을 받아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 마치 탕자처럼 하나님께 돌아오고 싶어도 내 죄가 너무 커서 돌아올 수가 없는 사람. 이러한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은혜는 내가 죄인임을 뼛속 깊이 인정하며 고백할 때, 바로 그때부터 누리게 되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이 성경을 읽어보면, 죄에 대하여 아주 심각하게 다루죠.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마치 아간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그 죄를 지었고, 그 결과로 괴로움의 골짜기에서 심판을 받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죄가 없으신 주님께서는 이러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괴로움의 골짜기로 친히 달려와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바치셨습니다.
그래서 괴로움의 골짜기에 있는 어떠한 죄인이든지 간에, 그를 믿는 자마다 죄에서 구원함을 얻는, 그 영광스러운 소망의 십자가가 세워지게 된 거죠.
다시 말하자면 죄인인 아간이 자신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고, 동시에 하나님께 마지막으로 영광을 돌렸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우리의 죄 때문에 그렇게 죽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마땅했습니다.
불사름을 받는 것이 너무나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신 주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동시에 우리의 더러운 죄로 가려졌던 하나님의 영광을 다 드러나게 해서 하나님께 돌려드렸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시간 이 자리에 있는 거죠.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무런 죄가 없는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으심으로 해결해야 할 만큼, 죄의 파괴력은 너무나 강력합니다.
내가 지은 죄가 크든지 작든지 간에 그 파괴력에 있어서는 모두 동일합니다. 25-26절을 보십시오. 아간이 훔친 금과 은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먼저 25절을 보시면 돌로 치고 불을 지릅니다. 이어서 26절을 보시면 그 자리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아놓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수6:19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하니라”
은금을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여호와의 곳간에 넣으라고 합니다. 원래 정상적으로는 은금은 여호와의 곳간에 넣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간이 훔친 은금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죄로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죄로 오염된 것은 아무리 화려하고 좋은 것이라 해도 하나님의 곳간에는 넣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작은 죄라도 나와 내가 속한 가정과 교회 공동체. 이 모든 것을 파괴하고 괴롭게 할 수 있는 그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죄에 오염된 것은 아무리 화려하고 좋은 것이라도, 아무리 많은 돈이라도,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받지 않으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함께 신7:25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너는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을 불사르고 그것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며 취하지 말라 네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올무에 걸릴까 하노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임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아간의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모세가 이미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향해서 경고를 했습니다. 그 경고가 방금 읽은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간이 범죄했던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강하고 담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부분에서 강하고 담대하지 못했습니까?
가나안에 들어가서 타락된 문화와 우상과 은금을 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망각하지 않는 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그 정체성을 망각하지 않는 일.
그래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일. 아간은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 강하고 담대하지 못했던 겁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하나님과 나의 정체성을 망각하는 그러한 나약함이 있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에 등장한 이 아간은 죄밖에 모르는 우리, 벌레보다 못한 우리, 마땅히 형벌을 받아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우리를 가리키고 있는 겁니다.
동시에 무엇을 보게 합니까?
괴로움의 골짜기에서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주님과 그 주님께서 열어 놓으신 영생의 길을 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신앙은 아주 역설적이게도 화려한 궁궐이 아니라, 아골 골짜기에서 시작하는 겁니다.
우리 모두가 마땅히 죽어야 했던 옛 사람과 지난 과거에 있었던 수치와 죄를 이 아골 골짜기에 묻고, 주님과 함께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그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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