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영광스런 칭호, 기독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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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3:13-16

Notes
Transcript

서론

Introduction:
학창시절의 별명을 기억 하십니까?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가 별명이 됩니다. Cf. 거지, 목사, 하마 등등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그리스도인 이라고 불렸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어떻게 그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기독교인 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하게 들어낼 있었을까요?

1.낯선 곳으로 들어가라 2. 공감과 독려 3. 기쁨과 성령충만

1. 낯선 곳으로 들어가라

사도행전 13:13–14 NKRV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선교팀은 구브로를 떠나 버가로 떠납니다.
떠나거나 새로운 일을 착수 하는 시기를 결정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선교팀이 도착하기 이전에 이미 구브로에는 선발대로 전도하고 있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11:19)
사도행전 11:19 NKRV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교회의 공신력 있는 전도자가 필요했었습니다. 이미 하고 있던 일들에 대해 결실을 맺기 위한 일을 선교팀이 한 것입니다. 시련도 있었지만 구브로의 선교는 성공적인 결말을 맺습니다. (총독의 전도13:12)
사도행전 13:12 NKRV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더 남아서 할 일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떠납니다. 그곳에 이미 와 있던 사람들의 몫으로 남기고 떠납니다. 왜냐하면 거기 남아서 할 일은 사실 공치사와 인간적인 영광을 누리는 일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 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기 위해 적절한 시기에 남은 사람에게 맡기고 새로운 사역으로 떠나는 것도 지혜 입니다.
바보에 계속 머물러서 누리려는 순간 바보 됩니다.
버가를 통해 비시디아의 또다른 안디옥으로 떠남
낯선 곳-안디옥,
익숙한 공간-회당, 낯선 일-전도
안디옥 교회의 선교팀은 낯선 곳인 구브로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여행을 떠난다.
꼭 공간을 이동하는 것만이 여행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묵혀 놓았던 과제인 가라지 정리를 마치고 바닥도 메트를 깔고 작업책상도 치우니 뭘 만들고 뚝딱 거릴 의욕이 생겼습니다.
우리 일상에도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생각이 자리하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면 그곳은 일상의 공간에서 낯선 새로운 기대의 공간으로 변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오래된 관계는 서로에게 지지가 되고 힘이 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합니다. 대부분은 상대를 대하는 방식이나 말에서 어긋납니다. 평소 안하던 말을 하는 것입니다. 평소에 안하던 친절을 베풀어 보는 것입니다. 따뜻한 티나 커피를 타서 아침에 준비하고 있는 아내에게 대령 해보십시오. 새벽에 나가는 남편을 위해 감사의 편지를 적어 탁자에 올려놔 보세요. 이런 새로운 도전은 긍정적인 바이브를 창조 합니다.
안디옥교회 선교팀은 낯선 곳에서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 아주 새로운 소식을 전합니다.
사도행전 13:15 NKRV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이 순간 바울의 심장은 얼마나 두군 거렸을까요?
하지만 우리 삶에는 이런 두근 거림이 필요 합니다.
평소 배우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면 시도 해보십시오.
평소에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면 가보십시오.
더 중요한 것은 가장 가까운 곳에 가보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평소 안하던 말과 깊은 배려를 해보는 것입니다. 그들의 반응이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 조차도 새로움과 설렘, 기대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새 봄을 경험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 이라는 별명을 얻기 위해서는 낯선 곳에 가야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가장 가까운 곳을 낯선 곳으로 만들고 그곳에서 만나는 상황과 사람들에게 내가 아는 기쁜 소식을 전할 기회를 엿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이 될 것입니다.

2. 공감과 독려

전도를 생각하면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십니까? 전도는 어렵습니까? 어떤 이들은전도에 대한 간절함이 부족해서 이다라고 단정 짓습니다. 어떤 이들은 기독교의 이미지가 너무 좋지 않아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일리가 있지만 시원한 대답은 아닙니다.
회당에 들어간 바울은 용기 있게 모두를 주목 시켜 복음을 전했지만 모두가 예수를 영접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13:45 NKRV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사도행전 13:50 NKRV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오히려 시기하고 핍박 합니다. (45, 50)
전도가 어려운 이유는?
누군가의 극적인 회심의 이야기 처럼, 단번에 회심하고 교회를 열정적으로 나오고 모범적인 신자가 되기를 바래서가 아닐까요?
모든 일이 그렇듯이, 우리가 일터에서 열심히 일을 하는 것도 사업을 하는 것도 그리고 교회에서 헌신하고 기도하는 일도 우리가 있는 최선을 다할 결과는 누구도 장담 없다는 것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그저 전할뿐 입니다.
능력은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 자체 있기때문 입니다. 전하여 구절의 말씀이 어느 순간 떠올라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13:47 NKRV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받은 사명에 따라 명하신 대로 순종 할뿐이지 결과는 내가 판단 하는 것이 아닙니다.(47)
바울의 복음 전파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과 탁월함은 단백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현실 밀착형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신앙을 달리기 경주로 전장에 나가는 병사로 비유 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장소가 유대인의 회당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유대인들이라면 더군다나 회당에 사람이라면 모를 없는 이스라엘의 역사이자 하나님의 역사인 율법과 선지자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서 시작 합니다. 17
사도행전 13:17 NKRV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하나님이 유대인을 선택함, 애굽에서 탈출 시키심,
18 광야의 사십년
19 가나안 땅에 정착함 (여기까지 450)
20 선지자-사사
21 사울(초대왕) 22 다윗왕- “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뜻을 이루리라
23 구주가 나심
24-25 세례 요한 26~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해설. 성경의 가르침을 모두 응하게 하심 (27)
34~ 부활. 시편 인용.
36-37 예수는 다윗 보다 위대하심- 부활
38 죄사함 39 율법으로 의롭하심을 받지 못함.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40-41 저주와 비참을 경고. 믿지 않음의 결과
그 결과는 아주 좋았습니다.
결과에 대해 연연 하지 않고 사명에 따라 행하니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맞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3:43 NKRV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설령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라도 상관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저 전할 뿐입니다.
특별한 프로그램도 사람을 휘어잡는 언변도 아닌, 단백한 진리를 전파하였습니다. 메세지의 중심에는예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작은 공감 할만한 이야기로 시작을 하였습니다.
전도의 메세지가 나의 상황에서 아주 동떨어진 이야기 이거나 아주 노골적인 표현이라면 오히려 반감을 사거나 관심을 갖게 없습니다.
교회가 시대에 이렇게 힘이 없습니까?
시대의 아픔을 공감 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자기들만의 리그 속에서 누가 잘나가는 교회냐 경쟁하고 누가 건물을 올리고 교세가 커지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의 메세지가 세상에 낯선 곳에서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슨 관심을 끌겠습니까?
Thorstein Veblen (소스타인 베블런)은 이제 자본주의가 만연하면 서로 공생하는 공동체가 무너질 것이라고 예견 했습니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사유화 되면 안되는 병원과 학교 전기 물 도로 등의 공공제를 사유화 해서 공동체가 자신들에게 이익을 몰아주고 사용료를 내게 해서 더 부자가 되는 유한계급이 지배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 유한계급을 영어로 하니, 레저클라스(Leisure Class). 노동을 하지 않고도 풍요롭고 레저를 즐긴다는 것을 과시하는 계급 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사회가 되면 계급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마르크스나 레닌 같은 공상주의자들 입니다. 하지만 베블런은 오히려 혁명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 합니다.
왜냐하면 하위 소득자들은 혁명을 일으키는 대신 유한계급 즉 힘쎈 사람을 지지하고 그 쪽편에 서는 것을 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패지를 주우며 연명하고 쪽방에 살아도 부자들 세금 깍아주는 것 찬성하고 노인 연금 줄어들어도 아무 말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 나는 것입니다.
현대사회의 보이지 않는 계급을 잘 그려서 아카데미 상을 탔던 영화 <기생충>에 보면 부잣집 비밀 지하실에서 숨어 사는 남자가 나옵니다. 그 사람의 존재를 그 집주인은 알지 못하지만 그 남자는 이유 없이 그 부자를 존경하고 선망하는 케릭터가 나옵니다.
•그 사이에는 넘지 못할 깊은 구렁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런 부와 명예를 대부분의 사람이 갈망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호주 땅에서도 엄연히 빈부의 격차는 더욱 심화 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갖는 의미는 아마도 세상은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고
•지난 5년간 호주에서 집없이 떠돌며 때론 차에서 잠을 자야 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 15%나 늘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공감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우리는 인생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그들의 삶 속에서 함께 먹고 마시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합니다. •구세군은 올해 1월 부터 4월 까지만 해도 긴급 구호 비용으로 6.32 밀리언 달러를 썼습니다. •우리 교회도 수백명의 지역 주민을 만났고 도움을 주고 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구세군의 창립자 윌리암 부스는 어느날 환상을 봤습니다.
넘실대는 바다에 수 많은 사람들이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바다 한가운데 거대한 바위섬이 쏫아 올랐고 그 아래에는 평평한 부분이 포구 처럼 생겨났습니다. (율법 시내산)
그들 중에 몇몇은 포구로 기어 올라왔습니다.
처음에 꽤 많은 사람들이 밧줄을 던져 구조하는 일에 동참했지만,
나중에 얼마 남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관심사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 의해 구조 되었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더 이상 어둡고 차카운 물에 있지 않다는 것에 안도하고 있을뿐이었습니다.
자신의 관심사에 몰두한 나머지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사람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그때 위대한 존재가 하늘로서 내려와 물 속으로 뛰어 들었고 비통함에서 나오는 눈물이 피방울로 변했고 그분의 피묻은 손으로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안간 힘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외쳤습니다. “와서 나를 도우라!!” 그러나 이상한 일은 이미 포구로 구조 받은 사람들이 사업, 직업, 돈, 쾌락, 공동체, 모임, 종교적 신학적 논쟁에 집중 하고 있었고 그 일에 너무 바쁘다 보니, 놀라운 존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외침에 귀기울이지 못했습니다.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은 어두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으며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는데,
"와서 도우라” 라는 그 위대하고 놀라운 존재의 말에 응답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에게 와 주시기를 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더 행복하고 더 강해지도록 시간을 내어서 자기들과 함께 해주시기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주님이 주신 편지인 성경 속에 의심되는 부분이나 자신들에게 해로운 부분은 다시 가져가 달라고 소리 치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시는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지금 있는 곳에서 안전하게 지내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모이면서 할 수 있는한 바위섬의 중앙으로 점점 더 가까이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위섬 꼭대기 먹구름 위를 향해 소리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에게 오소서! 우리에게 오소서!!” "우리를 도우소서!!” 경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도 주님은 바다 한가운데서 사람들을 구하며 포구의 사람들에게 애절하게 부르짓었습니다.
“내게올 오라! 이리와서 나를 도우라!!”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교회가 성도가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이 계신 곳은 그 높은 거룩한 산 위가 아니고 죽음의 바다, 인생의 바다 입니다. 그곳에 함께 하며 그들을 구하는 것이 우리 주님의 유일한 관심사 입니다.
마태복음 9:36–37 NKRV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야고보서 2:15–16 (NKRV)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주님의 음성이 들리시길 바랍니다. 애절한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교회가 성도가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이 계신 곳은 그 높은 거룩한 산 위가 아니고 죽음의 바다, 인생의 바다 입니다. 그곳에 함께 하며 그들을 구하는 것이 우리 주님의 유일한 관심사 입니다. 그가 누구이든 그가 주님을 욕하고 반대한다 하여도 그 영혼의 근본적인 비참과 저주의 상태를 보시는 주님은 애절하게 그를 구하고 싶어 외치고 또 외치십니다. 그 일에 우리는 공감하고 나아가 구주를 영접하도록 독려 해야 합니다.

결론

Conclusion:
미리암 굴루야스 호주 구세군 사령관 께서는 호주 구세군의 캐치프레이즈로 “Jesus-Centred, Spirit-led, Hope revealed” 에 동참하기로 모든 군우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께서는 이 낯선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시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해본적이 없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희생과 사랑을 실천 하시고 그 누구도 해본적이 없는 부활을 경험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해본적이 없는 일을 하고 사랑의 말과 친절을 베풀어야 합니다. 비록, 낯설고 처음에는 힘들다 하여도 그것은 가치 있는 일입니다. 길을 지나다가 만나는 가난한 자나 낙망한 자들을 지나치지 맙시다.
그들의 슬픔과 낙망을 깊히 들여다 봅시다. 여저면 아브람 처럼 부지 중에 천사를 대접 할수도 작은 소자에게 하는 것이 내게 하는 것이다 라는 말씀 처럼 예수님을 만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일은 우리가 주님을 중심에 두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소망을 들어낼 때 가능 합니다.
주님을 마음 속 가장 중요한 자리에 모신 사람이 그리스도인 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자격이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쓰임 받는 사람이 됩니다. 소망을 밝히며 형제와 눈물을 나누고 기쁨으로 인도하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 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받게 됩니다.
예수 중심! 성령 인도! 소망 전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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