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① - 예수 그리스도
Notes
Transcript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인데,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가 자기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해 낼 것이다."
22 이렇게 하여, 주께서 예언자를 통해서 예언하신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23 "보라! 처녀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를 것이다." 임마누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6 그러나 유대 지방에 있는 너 베들레헴아,너는 유대의 통치자들 가운데서 결코 작지 않다. 네게서 한 통치자가 나올 것이다. 그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을 돌볼 것이다.
들어가며
들어가며
할렐루야! 오늘도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전히 무더운 날씨지만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과 마음을 시원하게 하시는 시간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듣고 결단하며 다시금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이 시간이 되기를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말씀을 들어가기 앞서서 여러분은 어떠한 소망을 가지고 계신가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죠.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것,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가겠다는 것, 아름다운 만남을 가지는 것, 여러 가지 부분에 있어서 소망을 품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소망을 품은 사람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기대가 있겠죠. 그 소망을 품으면서 이루어질 것을 바라며 기대하는 마음, 부푼 마음이 있을 겁니다. 한 가지 예로 로또복권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그 당첨날을 기다리면서 부푼 마음이 있겠죠. ‘당첨 되면 뭘 할까?’ 한껏 기대가 부푼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릴 거란 말이죠. 즐거운 마음이 있을 거에요. 그렇게 추첨날을 기다릴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떠한 것이든 소망을 품은 자들에게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날을 기다리며 부푼 마음, 갈급한 마음도 있겠고, 그러한 마음으로 하여금 그때까지 견뎌내며 살아갈 것이죠.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어떨까요? 그리스도인이라고 함은 다른 말로 ‘소망을 품는 자’, ‘소망을 품은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도 여러 소망이 있습니다. 나의 삶을 계획하시고 이끄실 주님에 대한 소망, 나를 치유하시고 회복 시키실 것에 대한 소망, 다시 오실 주님, 그리고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 이와 같은 소망을 품는 자들, 품은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죠.
이번 9월 한 달은 우리가 “소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그리스도인으로서 품는 소망을 하나, 하나 나누면서 우리 마음 가운데 소망을 품으며 살아갈 수 있는 한 달을 보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이번 한 달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소망을 품는 자들이 되기를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말로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늘 형식적이고 습관적으로 종교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소망을 품는 자로서, 소망을 품은 자로서 활기찬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본론
본론
본문의 내용
오늘 우리가 함께 보았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것에 대한 내용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마리아에게서 아들이 태어날 것인데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 합니다. 그 예수라고 하는 아기가 자기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해 낼 것이라 말합니다.
이 말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실 분이십니다. 즉 메시야라는 것이죠. 죄에서 구원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하시고, 그렇기에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것입니다.
이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은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구약시대 예언자들에 의해 선포되었습니다. 우리가 구약 말씀을 함께 나눌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암울한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나라가 둘로 나뉘고, 망하고, 포로로 끌려가고, 이러한 것을 보았죠. 그래서 다시 오실 메시야에 대한 선포 속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을 구원해 줄 메시야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시간이 흘러 예언자들의 선포 대로 그들을 구원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을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이어서 또 말씀을 보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를 것이라 말합니다. 이 뜻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앞서는 우리가 예수님이 구원자 되심을 보았고, 이제 이 말씀에서는 그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주님과 함께 하는 자들입니다. 내 눈 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내 상황이 문제가 가득하다고 해서 결코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 예수님이 분명히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럼 계속해서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은 어떤 분이시냐? 오늘 보았던 6절의 말씀을 보면 한 통치자가 나올 것이고, 그 통치자가 이스라엘을 돌볼 것이라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통치자의 원어적 의미를 보면 “목자가 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시어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이끄실 것이라는 것이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돌볼 것임을 오늘 보았던 말씀을 통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삶의 적용
그럼 다시 우리의 모습들 돌아볼까요? 우리가 방금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예수님에 대한 것이 여러분의 삶에서 소망이 되시나요? 나를 죄에서 구원하셨고,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올바른 길로 이끄실 주님이 내 삶에서 소망이 되시나요?
말씀을 시작하면서 복권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복권을 산 사람들은 추첨날을 기다리며 부분 기대로 살아가죠. 그들에게는 당첨에 대한 소망을 가지며 설레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저도 종종 생각을 해봐요. ‘내가 만약 복권이 당첨돼서 몇 십 억이 나에게 생기면 무엇을 할까?’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즐거워지더라고요. 이러한 소망으로 하여금 즐거움이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소망을 품는 자들, 소망을 품은 자들은 그 모습이 분명하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으로 하여금, 나를 구원해 주시는 주님으로 하여금, 내 길을 이끄시는 주님으로 하여금 든든하고, 기쁘고, 담대함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반대로 소망이 없는 자들의 모습은 어떠하겠습니까? 한 마디로 무기력하죠.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종교적 행위는 있지만, 그 삶에서 무기력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으면 그렇습니다. 나를 구원하시는 주님, ‘아 그렇구나’,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 ‘아 그렇구나’, 내 삶을 이끄실 주님, ‘아 그렇구나’, 머리로만 이해할 뿐, 그 주님이 나에게 소망이 되지 않으니 그 모습에서는 아무런 기쁨도, 즐거움도, 담대함도 없습니다. 외적인 형태만 있을 뿐, 신앙적으로는 죽은 모습과 같다는 것이죠.
여러분의 모습을 한 번 돌아보며 생각해 보세요. ‘내가 주님을 믿는다고는 하는데, 그래서 교회에 나와 예배 드리기는 하는데 내 삶에 기쁨이 있는가? 담대함이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이 나에게 있는지.
내가 해야 할 것&결단
그럼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을 품는 자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을 품음으로써 기쁨이 있고, 담대함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먼저는 앞서 우리가 보았던 것처럼 그 예수님을 바라보아야겠죠.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이끄실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 그 예수님을 바라보며 소망을 품으려면, 소망을 품는 자로 살아가려면 또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과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와서 예배 드리는 것, 이 하나로 그쳐서는 우리가 소망을 품으며 사는 자로 살아가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에서 그 주님과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뻔한 답이지만 그것이 정답이라는 것이죠. 예배 드리는 것, 기도하는 것, 찬양을 듣는 것, 말씀을 묵상하는 것, 이러한 하나님과의 시간을 갖는 그 일들이 우리에게 있어서 너무나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시간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요? 여러분, 혹시 성경 속 스데반 집사의 순교 사건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이후에 예수님을 따르는 자였던 한 사람, 스데반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참 신실하고 주님의 말씀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 속 고난과 박해로 하여금 돌에 맞아 죽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건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심하게 이야기하면 “개죽음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축복의 삶이 아닌 개죽음을 당할 수 있냐고 생각할 수 있는 충분한 사건이죠. 하나님과 친밀한 시간을 갖지 않으면 저런 시각과 마음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내 삶에서 문제를 마주했을 때, ‘나 교회 열심히 다녔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원망의 소리만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하나님과 친밀한 시간을 가진 사람의 마음은 다를 것입니다. ‘죽음 가운데서도 믿음을 져버리지 않는 모습, 아! 스데반에게는 주님에 대한 분명한 소망이 있었구나. 믿음을 지킬 힘을 주님께서 주셨구나.’ 같은 상황이지만 다르게 받아들이죠. 그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앞에 어떤 문제를 마주했을 때, 주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고, 그 안에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이번 주중에 광고를 한 것처럼 9월 큐티모임을 시작하는데 어제 첫 모임을 가졌고, 이제 한 달 동안 말씀을 묵상하며 보낼 겁니다. 이 분들이 하루, 하루, 주님을 깊이 묵상하며, 귀 기울이며 나아간다면 오늘 나누고 있는 것과 같이 소망을 품으며 살아갈 것입니다. ‘아! 하나님은 이러한 분이시구나’, ‘아! 하나님은 분명한 계획과 뜻이 있으시구나!’, ‘아! 하나님이 이렇게 하기를 원하시는구나!’ 그러한 깨달음과 결단을 통해 소망이 품어지게 되고, 은혜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은혜가 쌓이고 쌓여서 믿음의 실력이 자라나게 되고, 그 삶에는 기쁨과 담대함, 놀라운 은혜들이 가득할 것입니다.
결론
결론
이제 말씀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소망을 품는 자입니다. 소망을 품은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 그와 관련해서 나를 향한 계획, 치유와 회복, 재림과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을 품은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그리스도인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무기력하게 그냥 교회만 나오는 모습이 아니라 소망을 품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권하기로는 하나님과 친밀한 시간을 꼭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더 하나님을 알아가기에 힘쓰고, 더 하나님의 마음에 귀 기울이며, 그 말씀과 마음에 따라 결단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우리가 이번 한 달, 그러한 소망을 가지고 나아갈 때 우리의 삶이 놀랍게 변화될 줄로 믿습니다. 기쁨이 넘쳐나고, 담대함이 있고, 그렇게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능히 이겨내는 승리의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