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01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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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약속 (나의 하나님)
느헤미야 1:1–11 (NKRV)
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2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10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3번의 침략으로 남유다는 바벨론에 멸망 당했다. 그리고 남유다의 많은 사람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들어갔다.
시간이 지나자 영원할 것 같은 바벨론 제국이 페르시아 제국에게 멸망당하게 된다. 그러면서 바벨론이 장학하고 있던 많은 나라들이 그대로 페르시아에게 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상황은 크게 변하게 되었다. 바벨론과는 다르게 페르시아는 정복된 민족들에게 상당한 자치권을 부여했다.
페르시아는 다양한 종교를 포용하였다. 그래서 고레스왕 때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 할 수 있는 자유도 허락하였다. 그것이 1차 귀환이다. 그때의 리더는 스룹바벨이었다. 그리고 2차 귀환때에는 에스라를 중심으로 영적 부흥 운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당시 사마리아인들에 의해 방해를 받았다. 그리고 이들이 하는 행위들이 성전을 재건하고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이 되면 페르시아에게 반역을 저지를 수 있다고 보고하여 당시 왕의 명령으로 재건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그 후의 이야기가 오늘 본문이다.
느헤미야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위로하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느헤미야는 포로되어 끌려간 곳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그러기에 느헤미야의 아버지인 하가랴가 당시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이방의 포로된 이스라엘 자손들을 여호와께서 긍휼히 여기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 일 것이다.
이런 느헤미야는 유다에서 온 하나니를 통해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신의 동족의 형편을 들었다. 2차 포로귀환을 한지 14-5년이 지났다.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예루살렘 성전 재건은 멈춰진 상태이다. 그러니 그 성전이 온전할 수 있겠는가?
제가 전에 사역했던 상판제일 기도원이 19년에 문을 닫았다. 그래서 20년 휴가 기간에 가평에서 휴가를 보내게 되어 집에 오는 길에 가족들이랑 같이 다녀 왔었다. 그런데 1년도 안되었는데 사람이 살지 않으니깐 정글처럼 변했다.
그런데 10년이 넘게 방치 되었으니 예루살렘 상황은 말 그대로 엉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기 위해 남유다로 행한 사람들은 순시간에 반역자의 누명까지 쓰게 되었으니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상황이 말로 듣던 것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느헤미야가 오늘 본문을 보면 울고 수일동안 슬퍼하며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기도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공동체이다. 느헤미야가 이토록 슬퍼하는 이유는 동족 이스라엘 공동체원이기에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느헤미야는 태어날 때부터 바렐론에서 생활한 유다 포로의 후손이다. 그러면서 지금은 페르시아 아닥사스다왕의 술 관원이다. 술관원이라는 직책은 왕의 신뢰가 있어야 하는 직책이기에 당시 매우 높은 직책이었다. 오늘날로 말하면 왕실의 개인 보좌관 정도 되는 그러니깐 대통령 비서 실장 정도되는 직책이었다.
그러기에 느헤미야 입장에서 보면 지금 상황을 보며 조상 탓을 하며 동족을 원망하거나 아니면 그들을 외면하면서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공동체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불편한게 불편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지 안하는지 알 수 있는 것은 저 사람은 나를 위해 얼마나 희생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그저 말로만 사랑해!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가 기꺼이 희생하고 기다려주고 참아줄 수 있는 것이다.
나중에 느헤미야가 어떻게 까지 하는지 아는가? 자신이 누릴수 있는 모든 것들을 버리고 예루살렘성을 재건하기 위해 유다로 떠난다. 그저 말로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결국 말 한대로 행동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곳에 모여있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이자리에 함께 있는 것이다. 전에도 이야기 하였다. 하나님 아니면 우리가 만날일이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와 너 사이에 항상 하나님이 함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교회 공동체 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교제하는 것도 세상사람과 달라야 한다. 항상 나와 너 사이에 하나님이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깐 친해졌다고 같이 술마시러 가면 안된다. 세상에서 만난 사이도 아니고 하나님때문에 맺어진 관계인데 하나님 빼고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는 곳에가는것은 옳지 않다.
그리고 공동체를 사랑한다면 그리고 내가 진정한 공동체원이면 이처럼 다른 지체의 아픔이 느껴져야 한다. 다른 지체가 아프면 나도 아퍼야 한다. 그것이 불편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아무리 수료식을 해서 새가족이 되었다고 해도, 이 공동체에 5년 10년이 되었다고 해도 내 옆의 지체의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아직은 이 공동체원이 아닌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이 곳에 불러 주셨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이 공동체의 하나됨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공동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올 한해 우리는 좋은 이웃이라는 표어로 살아가고 있다. 좋은 이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말씀이다.
로마서 12:15 (NKRV)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이 말씀은 내 옆의 지체에게 관심을 가지면 살아가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에 공감하라는 말이다. 우리 공동체 안에 있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다.
느헤미야 자신은 지금 바사왕국 다시말해 페르시아 제국에서 부럽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몇백 km 떨어진 그 사람들의 어려움과 아픔에 관심이 없어도 된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러한 느헤미야의 마음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 한가지 더 나누고 싶은 것은 느헤미야의 기도이다.
느헤미야는 슬퍼만 하지 않았다. 울고만 있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였다. 느헤미야는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닌 공동체를 위한 기도를 하였다. 우리에게 공동체를 위한 기도가 있는가? 여러분은 무슨 기도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가? 우리 각자의 기도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느헤미야만 그랬는가? 아니다. 아브라함도 자신의 조카 롯을 위해 기도하였다.
오늘날 비난과 비판은 참 쉽다. 그렇지 않은가? 어떤 일을 해도 부정적인 시각으로 비판, 비난하는 사람은 많다. 무엇을 해도 이러한 사람은 꼭 있다. 교회 안에서도 있다. 그런데 그런 비난과 비판만 하는 태도로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 할 수 없다.
혹시 우리 공동체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비난과 비판해야 할 것들이 보인다면, 먼저 기도하고 비난과 비판을 하길 바란다. 우리가 누군가의 연약함과 부족함이 보인다면 그를 손가락질 할 것이 아니라, 먼저 그를 위해 기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도가 먼저이다. 기도가 먼저이고 그 다음이 비난과 비판이다.
그런데 진정으로 그를 위해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면 절대 비난과 비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느헤미야가 어떻게 기도하느냐이다. 그는 막무가내로 기도하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거나 막 구하지 않는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다. 미쁘신 분이시다. 믿을만한 분이시다. 사람은 약속을 잊어버리고 어겨도 하나님은 잊지 않고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시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있지 않은가?
마태복음 6:33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냥 막무가내로 하나님 저를 도와주세요..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모든 것들을 책임져 주신다고 하셨으니 주님 저의 삶을 인도하여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느헤미야를 통해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를 이끌어 가실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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