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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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구약의 율법을 정리하면 두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이웃 사랑 입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이웃 사랑에 한 가지를 더하십니다.
그건 바로, 원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이 사실을 분명히 하십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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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씩 성경을 읽다보면, 넘어가고 싶은 본문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런 본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에겐 하나님 사랑+이웃 사랑도 너무 어려운데,
거기에다가 원수까지 사랑하라니...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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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지키기 힘든 말씀을 접하면, 어,,이런 오류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에이, 이 말씀을 어떻게 지켜… 원수를 어떻게 사랑해… 그냥 예수님이 권유하시는 걸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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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려운 걸 지키지 못해도 예수님은 변함없이 날 사랑하시니까, 이 말씀만큼은 그냥 스킵하자..’
하지만 여러분.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권유하듯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예수님이,
‘원수를 한번 사랑해보지 않겠니? 그럼 니 마음이 한결 더 편할거야. 한번 해봐.’
이러셨습니까?
아니죠?
명령하셨습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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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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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여러분. 우리 먼저, 이 본문이 쓰여진 시대의 관점으로 본문을 해석해볼까요?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께 선택된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이방인들을 원수 취급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그 당시에 굉장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에 더해서,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니느웨를 구원하기 위해 요나를 보내신 적이 있으십니다.
니느웨는 이스라엘을 박해했던 앗수르의 수도였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요나더러, 그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절대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원수들은 지옥 가도 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시스로 도망 쳤죠.
여러분. 그럼 하나님이,, 요나를 좀,, 이해해주셔야 되는거 아닙니까?
‘그래,,, 요나 니가 내 명령을 그렇게 힘들어 할 줄은 몰랐다. 내 백성 이스라엘을 박해한 니느웨니까,, 당연히 미울 수밖에 없는데, 그치? 내가 실수했다.’
이러셔야 되는거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하셨어요?
요나에게 풍랑을 보내시고,
깊은 바다에 빠지게 하시고 ,
커다란 물고기를 보내셔서 냅다 잡아먹게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왜 이렇게 가혹하신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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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사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그 명령은,, 꼭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어 가는데에 있어서 꼭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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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최근에 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인데요?
이 영화는, “라일리”라는 여자 아이의 마음 속에 사는,
5개의 감정들이,
라일리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 5개의 감정들은 각각 하나의 인격체처럼 말하고 행동하는데요?
그 감정들의 이름은 이렇습니다.
‘기쁨이’
‘슬픔이’
‘소심이’
‘까칠이’
‘버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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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다섯가지 감정들이 살고 있는,
라일리의 마음을,
본부라고 불렀어요.
어, 영화를 보니까, ‘기쁨이’가 다른 감정들의 리더 역할을 하더라구요?
그런데 이 기쁨이는 라일리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는, ‘슬픔이’가 없어져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라일리가 하루를 보내면, 수많은 기억들이 구슬 모양으로 변해서 이 친구들이 살고 있는 본부에 들어오거든요?
그런데 슬픔이가 그 기억을 만질 때마다, 라일리가 계속 슬펐던 기억을 떠올리며,,, 힘들어 하는 거예요.
그래서 기쁨이는 슬픔이가 원수처럼 느껴졌어요.
자기가 하는 일을 그르치는 것보다 더한 원수가 어딨겠습니까 그쵸?
기쁨이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합니다.
슬픔이에게 가만히 누워있으라 하고,
분필을 들고 와가지고, 슬픔이 주변에 원을 그립니다. 그리고 원 밖으로 절대 나오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슬픔이도 라일리의 행복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었어요.
자신이 슬픔이지만, 라일리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작게나마 있지 않을까? 고심했던 거예요.
슬픔이를 원수처럼 여겼던 기쁨이는, 그런 슬픔이를 새롭게 보기 시작합니다.
원수를 사랑하기 위해서 노력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기쁨이는 자기 옆에 슬픔이를 딱— 끼고 살기 시작했어요.
결국 기쁨이는 슬픔이의 장점을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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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는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줄만 알았는데, 사람을 잘 위로하는 은사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슬픔이라는 감정은 우울감만 불러오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위로, 또한, 불러옵니다.
이걸 알아챈 기쁨이는 슬픔이에게 일을 시킵니다.
그건 바로, 라일리가 부모님한테 슬픈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게 만드는 겁니다.
전학을 와서 친구들과 떨어지게 되고,
즐겨 하던 하키를 할 수 없게 되었던 라일리는,,
그 사실들이 너무 슬펐는데, 그 감정들을 부모님께 울면서 솔직하게 털어놨어요.
라일리의 슬픈 감정을 듣고 난 후, 부모님이 어떻게 해줬을까요?
위로해 줬습니다.
라일리의 부모님은 진심을 다해 라일리를 위로해줍니다.
여러분, 위로 다음에 찾아오는 게 뭔지 아시나요?
기쁨입니다.
이 영화에서도, 부모님께 위로를 받은 라일리의 입가에 기쁨의 미소가 번지는 장면이 연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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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기쁨이에겐 슬픔이가 원수였습니다.
그런데 원수를 사랑하게 되니, 더 놀랍고 아름다운 일을 이루어냈습니다.
원수와 함께 말이죠.
여러분에겐 원수같은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그 원수를 사랑하는 게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원수로 여기는 그 사람을, 하나님도 원수로 여기실 거라고 자신만만해 하시진,,,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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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원수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박해했던 니느웨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 45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 모두에게 따스한 햇살,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시길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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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딸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아들이 된다는 건, 예수님을 처음 믿고 거듭난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만 하고 다닐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자기한테 잘해주는 사람만 사랑할 게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자녀답다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건 세리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유대인들은 세리를 경멸습니다.
그런데 만약 유대인들이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면, 세리랑 별반 다를 게 없는 사람이라는 걸, 반증하는 꼴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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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원수를 사랑하시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함’을 여러분도 소유하시길 축복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역사 속에서 항상! 사랑할 수 없는 자들을 사랑해온 사람들입니다.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건, 비기독교인들도 잘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해야 가능해집니다.
한국 교회가 원수를 사랑해야 다시 부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무의 성공은 가지에 열매가 열리는 겁니다.
사람의 성공은 인생에 사람이 열매로 맺히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의 성공은 인생에 원수가 열매로 맺히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이 원수를 사랑해서 그 원수를 아름다운 열매로 얻게 되고,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자녀로서의 삶을 잘 살아내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