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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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지난 주에 기도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의 짐을 풀어주셨습니다.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말을 해야만 응답된다는 기도의 짐을 풀어주시고, 어디에서나 우리의 말로 하나님께 아뢸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감사의 표현이었고, 우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도의 유익을 알고 누리는 것이 복있는 삶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인 주기도문을 묵상해보려고 합니다.
특정한 언어를 통해서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으나, 또한 우리가 기도의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모범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런 오해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기도문만 외워야 한다던가, 어떤 정해진 기도문만을 외워야지만 바른 기도라고 하는 오해를 버리고, 주기도문은 모범으로서 보여주신 것이므로, 때때로 주기도문을 통해 기도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의미들을 생각하고 자유롭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의 구조를 먼저 이해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주기도문은 세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서언, 간구와 결언입니다. 서언은 하나님을 부르는 것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먼저 오늘 우리가 설펴볼 것은 서언입니다. 이것은 기도에 앞서 하나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을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에게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무나 하늘에게도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간구와 감사를 올려드리려면 먼저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부를 때에 하나님에 대한 이해 없이 불러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대한 이해 속에서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부를 때에 이렇게 부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헬라어의 원문에서는 이 문장의 순서가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여, 하늘에 계신”
그리고, 우리 아버지여라는 단어도 아버지여가 우선이고 우리는 부차적으로 붙은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이 구문을 “아버지여, 우리, 하늘에 계신” 순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조금 전에 아버지여가 우선이고 우리는 부차적이라고 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단어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이 무슨 언어로 씌여졌습니까? 구약은 히브리어, 신약은 헬라어로 쓰여졌지요. 그런데, 어떤 부분에서는 아람어가 쓰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주기도문의 시작인 아버지여를 예수님은 헬라어가 아닌 아람어로 말씀하셨습니다.
아람어로 아버지는 우리와 똑같습니다. Abba 아빠입니다.
이 단어는 아버지를 의미하면서 단어 자체에 복수형인 우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라고 이해하고 번역하게 된 것입니다.
어쨌든 예수님은 하나님을 부를 때에 아람어로 아빠라고 하였습니다. 일상의 언어로 했다는 의미입니다. 종교적인 언어가 아니었습니다. 유대교에서 기도할 때에는 종교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람어로 아빠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G-d
혹은 그리스 말로 쓰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라고 부를 때에 유대인들도 종종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는 이런 느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러나, 아람어로 아빠라고 부르는 것은 “아버지 안녕히 주무셨어요?”라는 의미입니다. 아버지가 친밀한 관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쓰인 것과 정말 나와 인격적으로 관계를 맺은 아버지를 부르는 호칭으로 쓰인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것입니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요한복음 1:12–13 NKRV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고, 예수님이 하나님을 친밀한 아빠라고 부르듯이 이제 우리도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라고 것은 우리는 항상 공동체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 때 기독교를 개인주의적 종교라고 이해한 적이 있었습니다. 개인의 구원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공동체가 중요한 사회였기 때문에, 굳이 공동체를 강조할 필요 없이 개인의 구원에 강조를 두는 것만이 필요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에는 개인의 구원이 기독교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날 우리는 공동체성이 무너져 있으므로 다시 공동체성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심으로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기도를 드릴 때에도 내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인식을 품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은 “우리”라는 공동체를 표현하는 단어를 개인적으로 이해하는 문화였기 때문에 너무 쉽게 그 공동체적 의미를 기억하지 않고 지나쳤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늘에 계신의 의미는 우리의 친밀한 아버지 이시지만, 인간의 아버지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참된 부모이십니다. 아버지라고 표현함으로써 남성중심적인 아버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녀를 돌보고 생각하시는 참된 아버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사랑이 많아도 무능력할 수가 있습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에도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잘못 판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즉 이 세상을 초월하시며 모든 것을 다르시시는 권세가 있으신 하나님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해보겠습니다. 다만 주기도문을 할 때뿐만 아니라,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기초적인 이해를 가지고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이지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셨다. 그러므로, 그 분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아시며 또 그 좋은 것을 베푸시는 분이라는 확신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기도가 지나치게 개인적이 되지 않고, 공동체를 생각하며 공동체를 위한 기도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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