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왕 노릇 하는 자들

고린도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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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고린도전서 4:6-13
“이미 왕 노릇 하는 자들”
2024. 9. 2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이미 왕 노릇 하는 자들”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게 될 것으로 약속이 돼있습니다. 비록 지금 현실은 비천할 지라도, 주님이 재림하시는 때에 우리가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며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디모데후서 2장에 바울이 선언하고 있어요. 디모데후서 2장 11절, 12절인데요.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아멘.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서 참으며 우리 신앙을 지킨다면, 장차 우리가 왕 노릇 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약속된 면류관이에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벌써부터 왕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제목처럼 “이미 왕 노릇”을 하고 있어요.
오늘 본문 8절을 봐 볼까요? 8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아멘.
성도들이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해요. ‘이미’ 라는 말을 두 번 써서 강조하고 있죠. 성도들이 이미 만족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고린도교회의 영적인 교만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성도들이 받은 것이 많다 보니까, 더이상 갈급함이 없어요.
고린도교회가 유독 은사를 많이 받은 교회였거든요. 그러다보니까 남부러울 게 없어요. 누구를 봐도 성에 안 차요. 내가 더 잘났으니까.
그런데 은사가 자기가 잘나서 받은 게 아니거든요. 성령께서 선물로 주신 겁니다. 그러면 받은 것을 감사하고, 더 충성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교만을 부려요. 그래서 7절에 바울이 책망을 하는 겁니다. 7절을 보면, 바울이 3가지 질문을 하거든요. 7절에 보니까,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아멘.
이 세가지 질문이 모두 교만을 꾸짖는 질문들입니다. 먼저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이 질문은 “니가 그렇게 잘났느냐?” 이런 질문이에요. 너만 구별된 사람이냐? 너만 그렇게 잘났냐? 교회 안에는 차별도 없고, 구별도 없는 것인데, 교인들이 스스로 구별을 하고, 차별을 해요. 이것을 책망하는 겁니다.
두번째로,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이 질문은 네가 가진 것이 다 하나님께 받은 선물이라는 뜻으로 하는 질문입니다. 네가 가진 지식, 재산, 건강, 은사,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하나라도 받지 않은 것이 있느냐는 거예요. 받지 않은 것이 없죠. 다 하나님께 받은 겁니다. 그런데 왜 자기가 스스로 얻은 것처럼 교만하느냐는 말입니다.
세번째로,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이 질문도 똑같은 질문입니다. 네가 갖고 있는 거 다 받은 건데, 어찌하여 받지 않은 것처럼 자랑하느냐?
바울은 이 세 번의 질문을 통해서 고린도교회에 가득한 교만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결국에 우리가 스스로 얻은 것은 없어요. 다 하나님이 주신 겁니다. 우리가 그것을 잊어버리면 안 돼요. 잊어버리는 순간, 교만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교만하게 되면 어떻게 돼요? 내가 왕이 되는 겁니다. 내가 내 인생의 왕이 되어서, 누가 뭐라고 해도 듣지 않고, 독불장군처럼 사는 것이죠.
그런 반면에, 사도들은요, 철저하게 겸손합니다. 오늘 본문 9절 봐 볼까요? 9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아멘.
성도들은 왕 노릇하면서 교만하게 살고 있는데, 반대로 사도들은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서 구경거리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죽이기로 작정된 자는 사형수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그리고 끄트머리는 “마지막”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가장 비참한 고난의 밑바닥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구경거리는 극장이나 경기장에서 전시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9절 말씀을 정리하면,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고난의 밑바닥에 두시고, 마치 사형수들이 공개적으로 처형을 당하는 것처럼, 그런 비참한 구경거리로 만드셨다는 겁니다.
성도들과 너무나 비교되는 처지가 아닙니까? 바울이 최선을 다해서 고린도교회를 세워놨는데, 정작 바울은 아무런 칭찬도 못 받고 구경거리가 되고, 교인들은 왕 노릇을 해요. 바울이 너무나 불쌍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바울은 자기가 처한 고난을 비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 보면, 바울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아멘.
나는 날마다 죽노라. 비록 내가 구경거리가 되고, 사형수처럼 죽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전혀 두렵지도 않고 수치스럽지도 않다는 겁니다. 한번만이 아니라 두 번이라도, 두 번이 아니라, 수백번이라도 나는 죽을 수 있다는 거예요. 어제도 죽었고, 오늘도 죽었고, 내일도 죽을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것이 그리스도의 길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길은 날마다 죽는 길입니다. 절대로 왕 노릇하는 길이 아니에요. 스스로 낮아지고, 깨지고, 죽어져야만이 따라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래서 밑에 오늘 본문 11절부터 13절에, 그리스도인이 가는 길에 맞닥뜨리는 온갖 고난을 기록해놨어요. 이 고난들은 실제로 바울이 다 겪은 고난들입니다. 11절부터 13절까지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아멘.
바울이 온갖 고난을 당하다보니까 우리 처지가 마치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지 같았다는 겁니다. 말 그대로 우리 처지가 쓰레기 같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처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여전히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자기 사명을 다하고 있어요. 고린도교인들이 보기에는 바울의 처지가 경멸스럽겠지만, 바울은 오히려 그것을 자랑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오늘을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갖고 있는 것, 다 누가 주신 겁니까? 다 주님이 주신 거예요. 우리가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절대로 교만하지 말고, 감사하면서 주어진 자리에서 충성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정말 세상의 쓰레기와 같은 처지에 놓여진다 할지라도, 그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낙심하지 아니하고, 언젠가 나를 높이사 왕 노릇하게 하실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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