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03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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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94장 입니다. ‌‌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기도
우리들의 삶을 인도하시고 주관하시는 주님.
오늘도 주님의 은혜로 저희가 이자리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 새벽 주님의 말씀을 깨닫는 시가 되게 하시고 깨닫는 것을 끝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은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오늘 하루도 주님의 뜻안에서 살아가게 하시고,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이새벽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립니다. 이 예물 기뻐받아주시고 드린손길위해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누가복음 18:31-43
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35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36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37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38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39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0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시되
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42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며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평안입니다. 이 평안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세번째로 예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들의 손에 넘겨져 희롱과 능욕을 당하고 침 밷음과 책찍질을 당해, 결국 그들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이 예수님의 말씀은 당시 제자들에게 있어서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오늘 본문에서 이미 말씀말씀하셨듯이 과거 구약시대 선지자를 통해 메시야 사역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임을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다시말해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에게 구약에서 예언되었던 그 메시야가 지금 그들 앞에있는 예수님 자신임을 선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33절을 보면 예수님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33절 입니다.
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예수님은 자신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3일 후에 다시 살아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제자들은 도대체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여서 알지 못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고 잠을 자면서도 예수님이 어느분이신지를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토록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지 못했던 이유는 당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메시야에 대한 기대가 무엇인지를 알면 이해가 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승리하고 정복하는 군사적 메시야를 원했습니다. 마치 과거 다윗왕과 같은 힘있는 메시야를 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지금 하시는 말씀은 나약하기 그지 없습니다.
왜 고난을 당하고 조롱을 당하고 끝내 죽임까지 당해야 하는지 당시 제자들은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과거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말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들이 바라는 메시야만을 원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예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나에게 있는지 각자의 신앙을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많은 것을 아는 것이 우리의 믿음에 유익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많은 경험도 우리의 신앙에 유익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많은 것을 소유하여 누리고 사는 것이 신앙생활에 유익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삶이 우리 신앙에 유익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어려운 환경과 상황속에 있는 것이 주님을 메시야로 온전히 신뢰 할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 할 수 없는 제자들과는 달리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어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이 가까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큰소리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이 사람이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외친 것은 예수님을 진정한 메시야로 믿고 있음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야라면 자신의 병을 고쳐 주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어떻게 이러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까? 아마도 그는 사람들에게서 예수님이 베푸시는 기적과 선포하시는 말씀에 관해 들었을 것입니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볼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들을 수 있었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확신 했습니다.
놀라운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병을 고치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오늘 본문을 보면 이 사람이 예수님을 부르며 큰소리를 외치자 주위의 사람들은 불쾌해 하였고, 심지어는 조용히 하라며 핀잔을 주며 책망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그 소리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소리가 들릴 때마다 더 크게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찾을 때까지 더크게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먼저는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시각장애를 가진 그에게 있어서 눈을 뜨는것이 그 무엇보다 절박한 문제였기 때문에 누가 뭐라하던 예수님을 부르며 예수님의 도우심을 구한 것이었습니다.
다시말해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예수님을 더욱더 간절히 부르며 구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이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을 부릅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니 우리 모든 것을 이미 아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그 주님께 오늘 이새벽에도 나아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의 필요가 무엇인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정말 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고 있는지가 궁금했던 것입니다.
‘네게 무엇 해주기를 원하느냐?’ 했을 때, 이 사람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많았습니다. 이 사람은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이었기에 하루의 끼니를 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것을 넘어 많은 부를 구했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을 오늘 이 새벽에도 이러한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정말로 구해야 할것이 깨달아지는 이 새벽이 되길 바랍니다. 내게 있어서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가 명확해 지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을 응답받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아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완전한 것으로 주실 것이 믿어지는 은혜가 있길 바랍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앞에 어떠한 장애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고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사람들의 핀잔과 책망이라는 방해물을 만났지만 포기하지 않았기에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었던 오늘 본문의 시각장애인 처럼 우리도 어떠한 상황과 환경가운데 주님을 부르짖으며 찾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현실의 어려움은 우리를 낙심시키고 절망하게도 합니다. 특히 끝이 보이지 않는 시련의 터널을 지나다 보면 아무것도 소용없어 보여 기도마저 포기하고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순간에도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앞에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연약하면 연약한대로 두려우면 두려운대로 우리의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주님의 긍휼을 구하고 또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작은 심음에도 응답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은 이새벽에 우리가 부르짖는 음성에 반드시 귀를 기울이시고 능력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마시고 주님을 찾고 또 찾는 이 새벽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끝내 주님이 주시는 그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세상이 알 수도 줄수도 없는 그 평안을 누릴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치료함을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경험한 한사람을 통해 예수님이 선포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어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과 환경가운데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평안을 누리는 우리를 통해 주님이 선포될 것이고 이런 우리를 통해 주님을 모르는 이들이 주님을 찬양 할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하루도 주님만 찾고 부르짖는 복된 하루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참 좋으신 주님. 오늘도 주님앞에 부르짖는 하루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방법과 나의 경험과 지혜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주님을 찾고 주님을 바라봄으로 주님의 뜻대로만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놀라운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 어떤 어려움이 닥쳐 온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걱정하지 않게 하셔서. 이러한 우리의 삶을 보며 주님을 모르는 이들이 주님을 찾게 하시고 주님을 찬양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을 생각하며 다함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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