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04 새벽기도회
Notes
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438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랑의 주님 오늘도 저희에게 귀한 하루를 허락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주신하루의 시작을 주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게 하심도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살아갈 때 세상에서 옳다 말하는 기준이 아닌 주님의 말씀이 기준되는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성도의 정체성을 기억하며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물드린 손길들 있습니다. 이 예물 기쁘게 받아주시고, 예물드린 손길에 주님 보시기에 가장 좋은것, 가장 옳은 것으로 응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누가복음 19:1-10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여리고 성문 앞에서 있던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치유하신후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게 여리고 성읍 안으로 들어가 거리를 지나가셨습니다. 이 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 사람들 중 삭개오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삭개오의 특징은 키가 작았습니다. 그리고 세리장이었고 부자였습니다.
당시 세리는 유대인들을 지배하던 로마 정부에 협력하여 동족에게서 여러 명목으로 세금을 걷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는 이방 제국을 위해 자기 민족의 혈세를 무자비하게 거두는 세리들을 미워하고 멸시하였습니다. 한민족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로마에 보내야 하는 세금 이상으로 걷어들여 로마에 보낸 나머지 돈을 자신들이 취하였습니다. 이런 일들을 하고 있으니 당시 유대인들은 세리를 창녀와 같이 취급하며 경멸하였습니다.
그런에 오늘 본문의 삭개오는 세리가 아니라 그 세리들의 책임자인 세리장이니 부자이긴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의 미움을 받으며 살았겠습니까?
그런 그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자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예수님을 만나러 나갔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이 누구인지 그저 궁금해서 호기심으로 나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보기 위해 뽕나무라고 표현된 돌무화과 나무 에까지 올라갈 정도면 삭개오 마음속에는 예수님을 꼭 보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어를 보면 ‘계속적으로 찾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 본문에는 삭개오가 왜 예수님을 보려 하였는지에 대해서 나와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단순한 호기심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단순한 호기심이었다면 조금 전에 이야기 한 것처럼 세리장이라는 체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무위로 올라가는 수고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내려오라는 말씀에 기뻐하며 집으로 영접하는 행동으로 보아 그 안에는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삭개오는 옳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 부자로 살아가고 있는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그 큰 소망이 있다 하지만 그는 누가봐도 손가락질 받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삭개오 앞에 예수님이 걸음을 멈추시고 삭개오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삭개오 집에 묵어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많은 별명으로 그것도 좋지 않은 표현을 하였을 것입니다. 학창시절에 친구들끼리 선생님을 부를 때 이름을 부르지 않고 꼭 별명을 부릅니다. 그런 것과 마찬가지 였을것입니다.
그리고 삭개오의 이름의 뜻을 들으면 그 이름을 더 부르기 싫었을 것입니다. 삭개오의 이름의 뜻이 “순결하다, 깨끗하다, 의롭다” 이기 때문입니다. 깨끗하고 의롭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그 누구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겠습니까?
그런데 삭개오 앞에 멈춘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어제 나눈 말씀에 나오는 여리고 근처의 구걸하던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이 예수님을 그토록 간절히 부르며 갈급한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자신의 힘으로 해결 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삭개오의 경우에는 아닙니다. 그는 부자였고 세리장으로 잘 나갔던 사람입니다. 키가 작은 것을 빼면 신체적으로 불편하지 않았고 자신의 화려한 저택에서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ㅎ바니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구걸하며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살던 시각장애인이나 화려하고 궁전과도 같은 집에서 부자로 살던 삭개오나 주님 보시기엔 그저 사회에서 소외되고 결멸의 대상으로 전락한 그 둘의 모습은 똑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내려오라고 하시며 삭개오 집에 거하겠다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삭개오가 예수님을 모시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찾아와 그 집에 거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삭개오를 찾아 오신 것입니다. 그러자 삭개오가 예수님을 모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이 먼저 찾아 오신 것임을 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안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그 은혜를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마치 내가 믿음이 좋아서, 내 의지가 강해서, 내가 열정적이라 하나님을 만나고 지금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잘 못생각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먼저 찾아 오신 것입니다. 다시말해 주님의 은혜로 우리가 지금 이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평생 주님앞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바라보는 눈이 변해야 합니다. 자격없는 나를 만나주신 주님, 그 은혜로 우리가 이자리에 있다면 지금 내 눈에 보기에 온전하지 않아 보이는 그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변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정죄하며, 내가 무슨 자격으로 사람을 평가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그럴자격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가시겠다 말씀하시니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에서 이런저런 소리들이 들립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볼 때 삭개오는 죄인이고 예수님을 만날 자격도 없는 존재이기때문입니다.
하지만 중요한것은 사람들의 시선과 소리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은 사람들의 소리를 무조건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라, 세상의 가치관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육의 눈이 아닌 주님의 눈으로 영혼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수근거리고 지금 예수님이 하시려는 행동이 잘못되었다 말해도 예수님은 그것에 영향받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삭개오의 집으로 가십니다. 그리고 삭개오를 만나주십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가 변하게 됩니다. 주님을 영접하자 무엇이 죄인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가 명확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두움속에 있을 때 우리의 몸이 아무리 더러워도 더러움을 느끼지 못하다가, 빛가운데 나오면 어디가 더러운지 작은 얼룰까지도 보여 얼룩을 지우기 위해 노력하듯, 빛되신 주님을 영접한 삭개오는 자신의 잘못이 깨달아 집니다.
지금까지는 물질적이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 왔습니다. 돈을 벌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였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자신의 민족도 버렸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이야 어떻게 되던 자기 자신만 배부르면 그것으로 만족했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니 그 모든 것들이 잘 못되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이렇게 결단합니다. 자신의 재산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그것뿐만 아니라 또 남의 것을 속여 빼앗은 것이 있다면 4배를 더해서 갚겠다고 예수님 앞에서 약속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니 지금까지 중요하게 여겼던 물질도 아무것도 아닌게 되었습니다. 다시말해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인생의 목적과 방향이 달라진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만나면 변합니다.
예수님은 이와같이 회개한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말씀하십니다.
여기서도 분명히 해야 합니다. 회개 했기에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회개라는 행위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났다는 것을 증명하는 표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삭개오는 지금까지 유대인으로 태어났지만 아무도 그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방인보다 더욱 멸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이 그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길 잃고 헤매는 잃어버린 영혼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우리가 존재하는 모든 순간순간을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더 나아가 내게 허락한 삶의 터전에서 만나는 사람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인정하지 않는 그들을 향해 우리도 예수님처럼 기다려주고 참아주어 우리를 통해 그들이 주님을 만날 수 있는 통로의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그 명령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되는 삶을 살아내는 복된 하루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주님 오늘도 주신 말씀 붙잡고 살아가는 하루되게 하여주옵소서.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구원을 입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주님이 우리를 만나주셨음을 기억해 오늘도 내 의가 아닌,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하루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내게 허락하신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통로의 삶을 살아 우리의 삶을 통해 많은 영혼이 주님을 만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