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심판의 선지자 엘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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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58장 샘물과 같은 보혈은
이 새벽, 주님의 품으로 나와 하루의 시작을 예배로 나아가는 성도님들에게 오늘도 하나님이 측량할 수 없는 은혜와 인도하심이 함께 하시길 축복합니다.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그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그에게로 나아가 땅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고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감한 사람 오십 명이 있으니 청하건대 그들이 가서 당신의 주인을 찾게 하소서 염려하건대 여호와의 성령이 그를 들고 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하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보내지 말라 하나
무리가 그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매 보내라 한지라 그들이 오십 명을 보냈더니 사흘 동안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무리가 그에게 돌아오니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더라
그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우리 주인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엘리사가 이르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그 물이 엘리사가 한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더라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
엘리사가 거기서부터 갈멜 산으로 가고 거기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더라
들어가는 말
엘리야가 승천후 엘리사가 선지자 제자들의 아버지가 되고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의 되었다. 엘리야의 승천은 놀라운 일이지만 성도들의 미래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의 날 영광 가운데 들어 올려져 예수를 맞아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선지자의 제자들은 선지자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자 들이었고 엘리사는 밭을 갈다가 부름을 받아서 엘리야를 쫒았다. 참으로 많이 배운것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운는 것이 아님을 알수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6–27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그런데 15절을 보면 선지자 제자들이 엘리야의 성렬이 하시는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물러 동일한 능력을 행함을 보고 그를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모든 이가 그런것은 아닌가 봅니다. 16절의 말을 보면 참 무슨 이런 말이 있나 쉽습니다. 성령이 그를 들고 가다가 실수로 떨어 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당키나 합니까? 성령의 사람과 육신에 있는 사람은 이처럼 천지차이 입니다. 로마서 8:2–5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풀어 가는 말
어떤 이들은 엘리사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엘리야를 찾는 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변화된 리더십에 순복하기 보다는 이전의 리더십을 쫒아 그곳에 미련을 두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엘리사는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결국 그들의 간청에 허락하고 맙니다. 지혜로운 자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때로는 쓸모없고 무익한 것인 줄 분명히 알면서도 화평을 위해 자신의 생각을 양보할 줄도 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빈손으로 돌아옵니다. 엘리사로서는 속상한 일이고, 자신을 따르지 않는 제자들로 마음이 상했겠지만 오히려 그 일이 결과가 더욱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살펴 볼 수가 있습니다.
이어서 여리고라는 저주받은 성읍의 물을 고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리고가 저주받은 성읍 이라는 것은 여호수아가 정복 전쟁을 통하여 다시는 이 땅의 성을 세우지 말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6:26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그러나 엘리사는 그 도시의 믈 근원을 정결의 상징인 소금을 뿌려 고칩니다. 생명의 도시로 변모 시킵니다. 갑절의 영감을 구했던 엘리사는 실제로 엘리야의 이적보다 갑절이나 많은 이적을 보여 줍니다.
오늘 본문은 엘리사의 두개의 이적을 대비하여 보여 줍니다. 하나는 여리고에서 은총을 베푼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벧엘에 심판을 행한 것입니다. 시편 101:1 “내가 인자와 정의를 노래 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 하리이다” 하나님은 공의와 자비의 하나님입니다. 심판과 긍휼을 함께 베푸시는 분입니다.
여리고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 하면서 자녀들이 죽는 저주를 감당 하면서 세워진 성읍입니다. 비록 불법과 불순종으로 세워졌지만 그안에 경건의 상징으로 선지자 학교가 들어섰습니다. 죄인의 제물로 의인의 거처가 준비되는 역사를 보게 됩니다. 누가복음 19: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여리고의 모든 물이 안좋지는 안았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선지자 학교가 머무르느 그곳의 물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2:20 “엘리사가 이르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그들은 새그릇에 소금을 담아 엘리사에게 가져가는 동역을 해야 했습니다. 엘리사는 그 소금을 물 근언에 던졌으며 그렇게 하여 고쳐졌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은헤의 소금으로 맛을 내야 합니다. 이는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엘리사는 이 일이 누구를 통해서 이루어 졌는지 정확하게 밝혔습니다(21절후반부). 22절 하나님의 치료는 영속적입니다. 전도서 3:14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벧엘의 아이들은 저주를 받습니다. 벧엘에는 또 다른 선지자 학교가 있었습니다. 이곳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 황금송아지를 우상으로 만들어 여호와라고 예배 드리도록 한곳입니다. 그들은 이것을 자랑하고 좋아하고 이것을 비난하는 자들을 증오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선지자들을 만날 때 별명을 부르고 욕하고 저주하는 일들을 수시로 했을 것입니다. 까닭없는 저주는 없습니다. 여호와의 사신을 모열하고 능멸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스스로를 던지는 행위 입니다. 역대하 36:16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신들을 비웃고 그의 말씀을 멸시하며 그의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그의 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회복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대머리여 올라가라~대머리여 올라가라~조롱한 아이들은 아마도 엘리야의 승천을 두고 한 말이었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배운대로 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부모들이 선지자들을 성에서 쫒아내기 위하여 아이들을 통하여 수치를 주도록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루 엘리사는 갈멜산에서 혼자 수도를 했고 사마리아로 와서 활동을 합니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정리하는 말
베드로전서 2:9–10“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선지자들을 보면 구약의 시대에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 사용하심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신약시대 종말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 선지자들 보다 더욱 특별한 신분을 지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버립니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고린도전서 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엘리사의 능력은 엘리야의 갑절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영광은 선지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1: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우리에게 있는 이 영광스러운 부르심을 우리가 깨달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제 앞으로 엘리사의 하나님,이스라엘의 병거시요 마병이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계속 살펴볼 것입니다. 그때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받은 소명이 이보다 천만배는 존귀하고 귀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것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시편 81: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오늘 이 시간 입을 열고 하나님의 큰 일을 구합시다.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통해 일 하십니다. 할렐루야! 기도 하시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