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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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452장
예수께서 군대에게 결박당하여 가십니다.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님을 결박했다고 하는데요. 여기서 군대는 로마 군대 병정들입니다. 유대인의 아랫 사람들은 성전 경비병들을 말합니다. 군대가 없었던 지도자들은 로마의 군인을 데려왔고 성전을 지키는 경비병들을 데려왔습니다.
예수님을 결박하여 안나스에게로 끌고 갔는데요. 안나스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인자하시다'라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이름하고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본문에서는 은퇴한 상황인데요. 본문의 현직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대제사장 가야바의 장인입니다.
AD. 6년에 수리아 총독 구레뇨에 의해 대제사장으로 임명 되었습니다. 그리고 16년에 유대 총독 그라투스에 의해 보직이 해임되었습니다. 10년동안 예루살렘 성전의 대제사장으로 있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나서도 그의 아들들 5명과 사위 모두 대제사장직을 역임했었습니다.
그러니 해임 당한 뒤에도 여전히 권력을 행할 수 있는 지위였습니다. 아들들과 사위를 통해 나이가 들었음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현직 대제사장인 가야바에게 예수님을 데리고 간 것이 아니라 그의 장인인 안나스에게 데리고 았으니 실세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본래 제사장들은 아론의 가문을 이어야했지만 당시 대제사장은 로마제국의 지휘부와 연결된 자들이라서 돈을 주고 대제사장직을 샀습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세속 정치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안나스는 사도행전에서도 등장합니다. 사도행전 4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 의회로 끌려갑니다. 병자들을 고치고 예수님의 이름을 알리는 것 때문에 잡혀갔습니다. 그때 베드로와 요한을 심문하는 지도자들이 있었는데 그때도 안나스를 비롯하여 가야바와 그 가문에 속한 권력자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심문하며 도대체 누구의 이름으로 그런 권세를 행하는지 묻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당당하게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이 능력을 행한다며 논리적으로 길게 말하자 안나스와 종교지도자들이 놀랍니다. 본래 배운 것이 없는 보잘 것 없는 갈릴리 촌사람인 줄 알았는데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랍니다.
주변에 병고침을 받은 사람들도 많아서 베드로와 요한을 어찌하지 못하고 경고와 위협만 하고 돌려 보냅니다. 이 때는 베드로와 요한이 더 이상 지지 않고 당당하게 이깁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약해 보입니다. 그저 결박당하여 끌려 갑니다.
사실 예수님은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말씀의 성취와 우리 때문입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이유는 정치적 희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4절에 "가야바는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요. 나사로를 살리시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공의회를 소집하여 말합니다.
"이 사람이 표징을 많이 행하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 사람을 그대로 두면 모두 그를 믿게 될 것이오. 그렇게 되면 로마 사람들이 와서 우리의 땅과 민족을 약탈할 것입니다."
그러자 그 중의 가야바가 말합니다.
"당신들은 아무것도 모르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민족 전체가 망하지 않는 것이, 당신들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소"
이처럼 가야바는 정치적인 사람이었고 정치적인 발상으로 예수님을 희생시켜서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유월절 같은 절기에는 자신을 메시아라고 자칭하는 자들이 나타나곤 했습니다. 그래서 가야바는 메시아 자칭자 한 사람을 죽여서 위협적인 사태를 막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산헤드린 공의회는 실상 예수께서 가르치신 내용보다는 예수께서 백성들에게 메시아적 존재로 숭배 받고 있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산헤드린은 처음부터 예수님의 말씀 자체에 관심도 없었고요. 그것을 문제 삼을만한 식견도 없었습니다. 다만 예수께서 대중과 제자들에게 끼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두려워할 뿐이었습니다.
가야바와 예수님은 같은 말을 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죽어서 백성을 살리는 것이 유익하다고 합니다. 한 알의 밀이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은 옳은 말이며 숭고한 뜻입니다. 그러나 가야바는 자신이 살기 위해 예수님을 희생시킵니다. 자신의 권력과 욕심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입니다.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죽으십니다. 자신이 희생하시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닮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참 지ㅗㄷ자되시고, 우리의 진정한 구원자되신 예수님을 믿고 따라 살기를 바랍니다. 가야바처럼 나를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거나 해를 끼치는 자가 아닌,
예수님처럼 타인을 위해 나를 희생하고 드릴 수 있는 신앙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진리의 길이고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시고 칭찬하시는 삶인 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다른 사람을 위해 내가 죽는, 그로인한 내 안에 행복이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는 내 유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때가 있습니다. 긍휼히 여기셔서 다른 사람을 위해 나를 헌신하고 그로인한 기쁨이 내 안에 샘솟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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