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6일 금 새벽
Notes
Transcript
*찬송가
*중보기도: 선교지와 구제하는 기관 아이들을 위한 기도
유다의 아사 왕 제 삼십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스물두 해 동안 다스렸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은 그 이전에 있던 왕들보다 더 심하게,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그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가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더 앞질렀다. 그는 시돈 왕 엣바알의 딸인 이세벨을 아내로 삼았으며, 더 나아가서 바알을 섬기고 예배하였다.
또 그는 사마리아에 세운 바알의 신전에다가 바알을 섬기는 제단을 세우고,
아세라 목상도 만들어 세웠다. 그래서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 왕들보다 더 심하게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하였다.
아합 시대에 베델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다. 주님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시켜서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그는 그 성의 기초를 놓으면서는 그의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성문을 달면서는 그의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다.
이스라엘의 왕조사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그들의 행하는 일들이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과 다를바가 없어 보입니다.
특히 오므리 왕조로 불리는, 오므리와 그의 아들, 아합은 정말 악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므리가 왕이 된 것은,
오로지 그를 따르는 세력이 더 많아서
힘으로 왕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는 왕이 아니라,
자신의 세력으로 자신의 힘으로 세워진 왕은,
더 큰 세력에 의해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둘로 나뉘어, 그 절반은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따라 가서 그를 왕으로 삼았고, 그 나머지는 오므리를 따랐다.
그러나 오므리를 따르는 백성이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따르는 백성보다 강하여서, 디브니는 살해되고, 오므리는 왕이 되었다.
그리고 그 아들 아합이 그의 아버지를 닮아서 악한 길을 따라갑니다.
그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가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더 앞질렀다. 그는 시돈 왕 엣바알의 딸인 이세벨을 아내로 삼았으며, 더 나아가서 바알을 섬기고 예배하였다.
또 그는 사마리아에 세운 바알의 신전에다가 바알을 섬기는 제단을 세우고,
아세라 목상도 만들어 세웠다. 그래서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 왕들보다 더 심하게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하였다.
아합의 시대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것이
34절입니다.
아합 시대에 베델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다. 주님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시켜서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그는 그 성의 기초를 놓으면서는 그의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성문을 달면서는 그의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다.
분명히 여리고성을 함락하고
하나님을 대적한 이 성을 다시 세우는 사람은
성벽의 기초를 놓으면서 맏아들을 잃을 것이고, 성문을 달면서 막내 아들을 잃을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아합의 시대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인식했다면, 그것을 인식하고도 순종하지 않는,
에이 설마?
했던 시대입니다. 부모의 그 영적인 무지함이 자녀를 죽이게 되었습니다.
아합의 시대,
우리가 살고 있을지 모릅니다.
아버지로부터 왕의 자리를 물려받았으나,
영적인 유산을 물려받지 못한 인생들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이처럼 깜깜한 시대 속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광야에 길을 내십니다.
그냥 우리를 두고 보지 않으십니다. 엘리야가 등장해서,
그 시대를 깨우고자 합니다.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심을 철저히 깨닫게 되는 것이 비가 오고 오지 않는 일입니다.
길르앗의 디셉에 사는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였다. “내가 섬기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내가 다시 입을 열기까지 앞으로 몇 해 동안은, 비는 커녕 이슬 한 방울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3년간 비가 오지 않습니다.
3년간 비가 오지 않으면,
아무리 지금 인류 문명이 발달했다고 해도
할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이 하는 역할이었습니다.
내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주권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비가 내린 상태에서 우리가 열심히 살아서 농사 짓고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비를 내려주셔도 우리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아무 열매가 없는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수고해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우리의 수고는 허사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3년의 비가 오지 않는 가운데도
하나님은 생명이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가장 연약한 자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시돈은 이방인의 땅입니다.
그리고 과부입니다.
가난한 과부, 먹을 것이 없어서 죽으려고 생의 의지를 접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엘리야를 먹이시고 결과적으로 그 과부도 살리십니다.
그 여인이 말하였다. “어른께서 섬기시는 주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저에게는 빵 한 조각도 없습니다. 다만, 뒤주에 밀가루가 한 줌 정도, 그리고 병에 기름이 몇 방울 남아 있을 뿐입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지금 땔감을 줍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가서, 저와 제 아들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것을 모두 먹으려고 합니다.”
엘리야가 그 여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방금 말한 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음식을 만들어서, 우선 나에게 먼저 가지고 오십시오. 그 뒤에 그대와, 아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도록 하십시오.
무례한 부탁입니다.
그렇지만 그 여인은 그렇게 따랐고 생명이 거기서 역사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아무리 메마르고
아합왕의 시대와 같이
하나님에 대해서 영적으로 무지하여 가장 사랑하는 자녀들마저 잃어가는 시대라고 할찌라도, 그렇게 작은 자의 작은 순종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뤄가십니다.
순종의 크기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내 계획이 있죠.
남은 것으로
마지막으로 먹고, 죽자.
그렇지만, 하나님이 어떤 상황을 만들어주시면
내가 할수 있는 순종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쓰십니다.
소망이 생깁니다. 정말 이 시대는 크고 악하고
과연 내가 목사로,
뭘할수 있을까?
지혜가 없고, 나 스스로도 믿음을 지키며 살기 버거운 인생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오늘도 성경 말씀중에 하시는 바가 있으시다면,
그것을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이뤄가는 도구가 되고
무엇보다 나를 살게 합니다.
우리는 엘리야이기 보다는
사르밧 과부쪽에 가깝습니다.
그렇게라도 쓰여지고, 그렇게 영적으로 살아있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