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06 새벽기도회: 에스겔 8: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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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찬송하시겠습니다. 찬송가 280장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도 저희를 새벽기도회 자리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는 정말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 없는 것처럼 잘 살아갈 수는 있겠으나 그 삶은 온통 죄로 가득한 삶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사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죽음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저희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저희 연약함을 뛰어넘으시는 주님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도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 이 자리에 나아왔습니다.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겔 8:14-18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에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그것을 보았느냐 너는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성전 안뜰에 들어가시니라 보라 여호와의 성전 문 곧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스물다섯 명이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에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그들이 그 땅을 폭행으로 채우고 또 다시 내 노여움을 일으키며 심지어 나뭇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새벽기도회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인 오늘 기도와 말씀 가운데서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말씀을 기도제목으로 삼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는데요. 오늘 말씀은 에스겔 8장으로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게 될 유다에게 하나님께서 이들에게서 떠나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의 시작으로 하나님께서 왜 유다에게서 떠나시는지 이유에 대한 본문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예루살렘에서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에스겔에게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예루살렘에서 행해진 우상 숭배를 고발하시는데요. 오늘은 8장 끝부분을 살펴봄으로 하나님께서 유다의 우상 숭배를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함께 살펴보고 기도제목으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1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데리고 성전 앞뜰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성전 안쪽 담의 북문으로 데리고 가십니다. 에스겔이 거기에 아니 여인들이 그곳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들은 그냥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담무스가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알기 힘든데요. 구약성경에서도 유일하게 “담무스”가 등장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입니다. 담무스는 수메르 문화에 등장하는 신의 이름입니다. 이 신은 정확하게 어떤 신인지는 알기 힘듭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방신이라는 점입니다. 바로 이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한다는 것은 이 여인들이 담무스를 믿고 섬긴다는 뜻입니다. 특별히 애곡한다는 것은 단순히 울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애곡 의식을 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담무스를 이렇게 예배하는 것이 행해지는 곳이 바로 성전이라는 점입니다. 이방의 신전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특별히 구별된 곳인 성전에서 이런 끔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일도 상당히 가증한 일인데, 충격적인 것은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15절 하반절에서 “너는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도대체 이보다 더 가증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하나님은 에스겔을 데리고 계속 충격적인 모습들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제 그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다시 에스겔을 데리고 가시는데요.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에스겔을 성전 안뜰로 데리고 가십니다. 성전 안뜰은 다른 곳과 더욱더 구분되는 성전 내부입니다. 이곳에 가니 에스겔의 눈 앞에는 이런 모습이 펼쳐집니다. 16절입니다. “여호와의 성전 문 곧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스물다섯 명이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더라”
안뜰에 도착한 에스겔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하나님을 등지고 태양신을 숭배하고 있는 스물다섯명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유심히 살펴봐야 할 부분은 두 부분입니다. 첫 째는 이 스물다섯명이 어떤 사람들인지 자세하게 적혀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원래 성전 안뜰은 어떤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구분된 제사장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는 제사장도 아닌 그저 아무것도 아닌 사람 스물다섯 명이 배교의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전을 두 번 더럽히는 행위입니다. 제사장이 아닌 사람이 들어갔으니 한 번 더럽힌 것이고, 여기에서 하나님이 아닌 태양신을 섬기니 두 번 더럽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 성전은 마땅히 거룩한 장소로서 구별되게 할 것을 엄히 명령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이스라엘도 거룩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이 보고 있는 성전 안뜰의 모습은 거룩은 온데간데 없이 온통 더럽혀졌습니다. 제사장도 아닌 자들이 들어왔으며 이들은 심지어 태양신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성전에서 가장 거룩한 장소인 곳에서 태양신을 경배하고 있습니다. 태양을 숭배하는 것은 므낫세가 들여온 악한 관습이었습니다. 므낫세는 일월성신을 예배하는 너무나도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왕이었습니다. 이 관습을 버리지 못한 유다의 가증스러운 죄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환상을 통해 보여주고 계십니다.
또한 두 번째는 이 스물다섯 명이 태양신을 숭배하는 모습이 성전을 등지고 동쪽으로 향하여 태양을 숭배한다는 겁니다. 이 모습을 우리가 상상해볼 필요가 있는데요. 먼저 성전의 입구는 동쪽입니다. 그러니 성전이 향하는 곳은 자연스레 동쪽으로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낯을 태양이 떠있는 동쪽으로 향한다는 것은 자연스레 성전을 등지게 되는 것과 같게 됩니다. 이 모습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전을 등지고 자신들의 얼굴을 들어 태양을 향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거부하고 태양신을 숭배한다는 겁니다. 그것도 성전 안뜰에서 말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당연히 가증한 일이었습니다. 그냥 가증한 것도 아니고 아주 끔찍한 정도의 가증한 일입니다. 이방신을 위해 제단을 쌓고 신전을 지어 섬기는 것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증할텐데, 하나님을 예배하는 처소에서 이런 일이 행해지니 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이 모습은 마치 배우자와 다른 사람과의 불륜 현장을 지켜보는 것과 같습니다. 유다의 신랑이신 하나님의 면전 앞에서 신부인 유다는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여주겠다고 하신 그 말씀이 어떤 말씀인지 너무나 잘 느껴지고 있습니다.
에스겔에게 하나님께서 이런 환상을 보여주신 이유는 지금까지 유다가 저지른 죄악이 바로 이와 같은 죄악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성전을 더럽혔고, 성전에 우상을 들임으로 하나님 눈 앞에서 다른 이방신을 예배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유다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고 계속해서 자비와 은혜를 베푸셨음에도 이 유다는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남자가 좋다며 그곳으로 갔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예배하는 처소이며, 하나님과 유다가 사랑의 관계를 가지는 성전에서 불륜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니 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당연히 어떠시겠습니까? “분노”입니다. 특히 17절을 보시면 이 유다의 행동이 하나님께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설명합니다. “내 노여움을 일으키며 심지어 나뭇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뭇가지를 코에 둔다는 것은 누군가를 모욕할 때 취하는 자세를 뜻합니다. 바로 유다가 지은 죄악은 하나님께 상당한 모욕적인 행위였다는 뜻입니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어느 누가 자신의 배우자의 불륜을 눈 앞에서 목격할 때 상당한 모욕을 느끼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1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나도 분노로 갚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이 유다를 향해 자신의 분노를 쏟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것은 이들의 불신앙 때문입니다. 이들이 결코 군사적으로, 국가적으로 바벨론보다 약해서가 아닙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이방신을 섬기는 불륜을 저질렀기에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사용하심으로 심판하신 겁니다. 그러므로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신앙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영적인 붕괴는 내부에서 생겨났고, 종교혼합주의 혹은 배교 행위입니다.
이전까지 유다를 향해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기회가 없습니다. 이제 그들에게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기회가 사라졌습니다. 그들에게 내려질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분노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오늘날 우리에게 한번 비춰봅시다. 물론 우리는 그리스도 덕분에 이제 이 유다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보증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영적 각성을 일으킵니다. 우리의 신앙의 위협은 결코 외부에서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부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섬기려는 마음,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에서 다른 것을 예배하려는 마음, 우리의 삶 속에서 누구를 주인으로 두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본디 하나님은 이렇게 무서운 분이십니다. 불쌍히 여기지도 않으시며 긍휼을 베풀지도 않으시며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실 수도 있는 무서운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죄를 향한 그분의 거룩한 진노가 얼마나 큰지 우리는 묵상해야 합니다. 그럴 때 그분 앞에서 우리는 두려워 떨며 죄를 짓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진노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그 때에 쏟아질 하나님의 진노는 우리가 결코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일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 살펴봤지만, 결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진노를 쏟아내실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하나님은 진노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본디 유다와 같이 불륜을 저지르던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진노를 그리스도께서 대신 받으셨고 그것을 지금도 여전히 보증하고 계시기에 우리가 지금 당장 심판을 받지 않는 겁니다. 우리는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것은 부정적인 두려움이 아니라 거룩한 두려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진노와 함께 그 진노를 우리가 받지 않게 해주신 그리스도의 공로를 기억하십시오. 그리 할 때에 우리는 죄를 짓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게 되고 동시에 우리를 죄로부터 지켜주시는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가증한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신부로서 살아가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두고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에게 말씀을 주시고 함께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갈 수 있게 하심 감사합니다. 하나님 유다는 하나님께 참으로 가증한 것을 행한 패역한 백성들입니다. 이 유다가 바로 저희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 진노를 모두 받으시고 지금도 여전히 보증하고 계시기에 저희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니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저희가 두려워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하는 참된 거룩한 신부인 교회로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금요일입니다. 오늘도 지켜주시고 말씀으로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