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계명 - 주일성수
Notes
Transcript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복된 날을 허락하시고, 귀한 안식일, 주일을 허락하심에 감사합니다. 이 시간 주일을 맞이하여 주님 앞에 예배를 드리기 원합니다. 영광 받아주옵소서, 이 예배를 통하여 주 안에 참된 안식이 있음을 발견하게 하시고 말씀으로 풍성히 채워지는 복된 시간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헌금기도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리나이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에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복된 주일을 통하여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며 말씀 듣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 시간 은혜 받은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귀중한 물질을 올려드립니다. 모든 것이 주님께로 왔음을 고백하여 드립니다. 형편에 따라 최선의 것을 주님 앞에 올려 드립니다. 이 감사의 고백이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를 위해 사용되게 하옵소서.
세계 선교와, 주의 복된 소식이 전파되는 일에,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올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인도하옵소서. 우리 안에 주님을 향한 감사가 넘쳐나게 하시고, 이 시간 참석한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과 일터위에 더 큰 은혜로 채워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주님께 더 많이 드리게 하시고, 더 감사하게 하시고,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복된 우리의 삶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모든 만물의 주인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 기도드립니다.
말씀 : 출 20:8-11
제목 : 네 번째 계명 – 주일성수
찬 44장
오늘은 ‘네 번째 계명 주일 성수’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여러분 한주간 평안하셨습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리 옆에 있는 지체와 이렇게 한번 인사할까요? 참 안식을 누리십시오. 참 안식을 누리십시오. 오늘도 복된 주일, 주님 안에서 참 안식을 누리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저와 함께 다시금 십계명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살펴볼 계명은 제 4계명입니다. 우리 한번 따라해보겠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한번 더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여러분 십계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계명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꼭 지켜야 되는 법을 알려주신거에요. 이것은 구약의 성도 뿐만이 아니라, 신약을 살아가고 있는 교회에게 주신 계명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도 이 4계명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는 우리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셨는데요. 그러면 우리는 안식일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안식일이 무엇일까요? 안식일이 처음 등장하는 말씀은 바로 창세기입니다. 창세기 2:3절 말씀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창 2: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세기 말씀에는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사건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몇일동안에 이 세상을 창조하십니까? 6일동안 창조하십니다. 그리고 일곱째날에는 뭘 하셨어요? 안식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곱 번째 날을 복되고 거룩하게 하셨어요. 이게 안식일의 시작입니다.
이 안식일이 특별한 이유는요,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을 때에, 돌판에 기록되었지만요, 사실 이 안식일은 세상이 창조되었을 때에, 세상이 시작되었을 때에, 가장 먼저 존재한 거룩하고 복된 날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그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고, 그 날을 거룩하고 복되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신 이유는, 사실 본인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 안식은 모든 피조물들을 위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왜 일곱째 날에 안식을 하셨을까요? 안식은 말 그대로 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여섯째날 동안 세상을 창조하다 보니 굉장히 피곤하셔서 일곱째 날에 쉬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는 분이세요. 그분은 우리처럼, 피곤을 느끼시는 분이 아니세요. 그럼에도 그분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이유는, 이 안식이, 쉼이 모든 피조물들에게 꼭 필요하기 때문에, 안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안식일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을 위해서입니다. 동물을 위해서입니다. 자연을 위해서입니다. 모든 피조 세계를 위해서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으로부터 지어진 모두 피조물들은, 안식이 필요합니다. 휴식이 필요합니다. 회복이 필요합니다. 회복이 없으면, 휴식이 없으면, 우리의 삶은 정상적이지 못하게 됩니다.
여러분 혹시 잠을 몇일까지 안자보셨습니까? 저는 학창시절 시험기간이 되도, 아무리 급박해도 밤을 세운적은 거의 없습니다. 꼭 잠을 자야 좋은 컨디션으로 시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하루만 밤을 지새워도,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살아가지 못해요. 잠을 자는 것 역시 뭐하는거에요? 몸을 푹 쉬고,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잠을 자야만, 휴식을 취해야만 다음 날을 좋은 컨디션으로 살아갈 수 있는거에요.
하나님이 이 세상에 안식일을 허락하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주간의 삶 중에 하루라도 푹 쉬고, 회복하고, 쉼을 누릴 때에, 우리의 삶은 복된 삶,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해보겠습니다. 1. 안식일은 창조된 모든 존재를 위해서 주셨다. 여러분 안식일은 하나님이 세상에 주신 선물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세상에 주신 규칙이자 진리인 것입니다.
출애굽기 23:11-12절 말씀인데요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1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네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12 너는 엿새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여기서 보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 뿐만 아니라, 안식년도 지켰어요. 6년이 지나고 7년째가 되면 안식년을 지켰는데, 안식년에는 뭘해야되요? 밭도 갈지 말고 묵혀두라는거에요. 심지어 포도나무를 심은 과수원 밭도 거두지말라는거에요. 그것을 통하여, 땅도 쉼을 얻고, 놔둬도 열매는 맺을거 아니에요. 그걸 그냥 가난한 사람들이, 들짐승들이 먹도록 하라는거에요.
12절에 안식일에 대해 말하면서, 6일 동안은 일하고 일곱째 날에는 쉬라는거에요. 내가 쉬면 어떻게 되요? 소도 쉬고, 나귀도 쉬고, 종들도 쉬고, 나그네들도 숨을 돌리 수 있는 쉼이 주어진다는거에요.
우리는 여기서 안식일이 나만을 위한 날이 아님을 꼭 기억해야 됩니다. 안식일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주어진 복된 날이에요. 내가 쉼을 통하여, 나와 관련된 모두가 쉴 수 있도록 허락하신 날이 바로 안식일이라는 것이죠.
우리들의 삶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안식이라는 복을 잘 누리고 계십니까? 더 나아가 이 안식이라는 복을 모든 피조물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안식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주신 선물이며 복입니다.
신약시대에 보면요, 예수님은 특별히 이 안식일에 관심이 있는 분이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일부러 안식일에 많은 일들을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마가복음 3장에 보면요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셨고요. 안식일에 18년 동안 꼬부라졌던 여인을 고쳐주셨어요.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도 고치셨고요, 안식일에 자신의 제자들이 배가 고플 때에, 밀 이삭을 잘라먹는 것도 허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런 일들을 안식일에 행하셨을까요? 당시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비판했습니다. 저 사람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 하나님의 율법에 불순종하는 자라면서 비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비판에 이렇게 답하셨어요. “너희들은 안식일에 소와 나귀에게 먹을 것 주지 않느냐? 준다면 왜 사탄에게 짓눌려서 18년동안 고통당하는 아브라함의 딸에게 해방시킬 수 없겠니? 너희들은 양이나 소가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면 안식일이라도 건지지 않는가? 사람은 이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는가? 이렇게 오히려 반문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세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 모든 모습은 안식이라는 법이, 사람과 모든 피조물들을 위해 주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바라기는 여러분들의 삶에, 하나님이 주신 이 안식이라는 복이 회복되어지길 축복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안식을 통하여, 이 피조세계가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동물도 자연도, 이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살아가는 복된 여러분들의 삶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입니다. 안식일은 방금 말했듯 이 땅의 모든 피조물들이 쉬는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는 날이 맞습니다. 사람을 위하여 존재하는 날이 맞습니다. 그럼에도 이 안식일은요, 참된 안식과 쉼이 누구 안에 있음을 보여주는 날이냐면요, 하나님 안에 있음을 보여주는 날이라는 사실입니다. 제 4계명이 뭐에요? 안식일을 기억하여, 어떻게 지키라? 거룩하게 지키라는거에요.
아까 창세기 2잘 말씀에도 다시 보면요,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 날은 복된 날이기도 하면서 어떤 날이에요? 거룩한 날이라는 거에요. 신명기 5:14절 말씀을 보시면요. ”14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일곱째 날은 누구의 안식일에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모든 피조 세계를 위하여 주셨지만요, 이 안식을 진짜 누리기 위해서는요. 이 안식일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철저하게 알고 그 안에서 누려야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날은 여호와,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런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며 그분과 영적 교감을 나눌 때에, 진짜 세상에서 누리지 못하는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거에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에 뭐했을까요? 그냥 정말로 아무것도 안하고 잠만 잤을까요? 아니라는거에요. 그들은 거룩한 안식의 날에, 함께 모여서, 여호와를 높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거에요. 이런 행위들이 뭘 보여주는거에요? 이 안식일에 모습을 통하여 믿음의 고백을 하는거에요. 참된 안식이 누구 안에 있다?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거에요.
한번 따라해보겠습니다. ”참된 안식을 주님 안에 있다“ 참된 안식이 누구 안에 있어요? 주님 안에 있음을 고백하는 날이 바로 안식일을 지키는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세상과는 구별된 거룩한 날임을 선포하십니다. 그날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정말로 주님 안에 참된 안식이 있음을 고백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처음에 말했듯, 원래 안식일은요, 여섯 번째 날입니다. 일주일에 여섯 번째 날이 언제인지 아세요? 원래 따지면요 토요일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유대인들은 토요일에 안식일을 지켜요. 우리나라에 안식교라는 이단이 있는데요. 끊임없이 이것을 주장합니다. 아니 안식일은 토요일인데 왜 교회는 일요일에 주일을 지키냐면서 딴지를 걸어와요. 이것은 사실 교회의 교짜도, 역사도 하나도 모르는 질문이에요.
원래 구약의 성도들은 여섯째날에 안식일을 지켜왔는데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신약의 교회들은, 성도들은 일요일날 안식일, 즉 주일로 지키어 모였다는 기록이 초대 교회의 문헌에 전해져 내려옵니다. 왜 토요일이 아니라 일요일날에 안식일이 주일로 되어 모이게 되었을까요?
이 주일이 바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안식일 전날에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금요일이지요. 그러고 몇일 째 되는 날 부활하세요? 삼일 째 되는 날 부활하세요. 금,토,일 즉 지금으로 따지자면 주일날 부활하셨어요.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교회는요, 이제 유대교와는 다르게 이 부활을 기념하며 주일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장로교거든요? 장로교의 신앙고백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창세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는 주간의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부활때부터 세상 끝날까지는 주간의 첫째 날을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 지정하셨다“
누구 안에 참된 안식이 있어요?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참된 안식이 있는거에요. 그분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이 되어지고요, 이 부활과 영생을 통하여 우리에게 진정한 참된 쉼과 안식이 주어진다는거에요. 원래 인간이라는 존재는요, 아무리 육신이 쉬어도, 진짜 그게 편히 쉬는 것일까요? 아니에요. 죄로 인하여서, 육신이 쉬어도, 영적으로는 늘 고생하며 피곤하며, 장차 받을 심판 때문에 괴로운 것이 죄인의 삶이지요.
그런데요 아무리 이 땅에서 육신이 힘들어도, 누구 안에 있을 때에, 진짜 쉼과 안식을 누려요. 예수 안에 있을 때에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거에요. 우리가 잘아는 마태복음 11:28절 말씀인데요.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이 우리를 진짜 쉬게하시는 분이라는사실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은요, 안식의 정신을 가지고 주일을 지킵니다. 주님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참된 안식은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그냥 쉬고, 놀러가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게 진짜 쉬는게 아니라요. 누구 안에서 쉬어야 되요? 예수 안에서 쉴 때에, 진짜 안식을 누릴 수 있는거에요.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여러분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주일은 어떤 날입니까? 다르게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예배를 드리는 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습니까?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가 주일성수를 한다는 것은, 성도에게 있어서 단순하거나, 사사롭거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셔야 합니다. 우리 따라해보겠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이자 믿음의 고백이다“
출애굽기 31:14 ”14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
여러분 안식일에 일하는게 뭐라고, 사람을 죽이기까지 해야 합니까? 구약에서 안식일은 생사가 걸린 문제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엄중하고도, 강력한 뜻이 담겨진 명령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하루, 날의 문제를 넘어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본질과 연결된 문제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과 자신의 백성들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 되어집니다. 출 31:17 ”17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고 쉬었음이니라 하라“
”겔 20:20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리라 하였노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과 관계됩니다. 언약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서로 약속을 했다는거에요. 이 약속을 지키냐 안지키냐에 따라서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킴을 통하여 하나님 백성이라는 것이 세상에 드러난다는 것에요. 그것이 표징이 되어진다는거에요.
여러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습니까? 주일이 되면 교회에 가는 것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처럼, 주일을 성수하고, 주일을 지킨 다는 것은, 그 사람이 누구를 믿고 있고, 무엇을 따라 사는 사람인지 보여주는 표징이라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하루를 정하여서 안식한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와 믿음이 필요한 행위입니다. 세상에서 주말에 하루를 쉰다는 것은요, 요즘은 사람들이 쉬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사실은 생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날입니다. 보통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주말이 대목입니다. 왜냐하면 주말에 손님이 몰리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고자 가게 문을 닫으면 뭐하는거에요? 손해를 보는 것이죠. 다른 경쟁업체에게 뒤처지는 날이죠. 장사뿐만이 아니라 어느 영역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주말이라는 황금같은 시간에, 여가를 보내는 것도, 아니면 자기 개발을 하는 것도, 아니면 다른 일을 하는 것을 다 미뤄둔 채 주일을 성수한다는 것은 그가 어떤 것을 따라 사는 사람인지 보여주는 명확한 표징이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습니다. 안식일에 쉬지 못하는 직업도 있습니다. 저희 아내도 간호사이다 보니 병동에서 3교대를 하는 경우에는 주일을 온전히 성수하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간호사 뿐만 아니라, 군인, 경찰, 소방관, 의사 등등 직업에 따라서 일터에 따라 환경에 따라 주일성수를 온전히 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특수한 사정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주일의 정신은 아까 말했듯, 복된 날이고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날이라는 사실입니다.
주일의 온전한 정신은, 쉼이며, 생명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예외적인 경우는, 여러분들의 중심을 충분히 살피시고 상황을 다 아실 거라 저는 확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주일을 철저히 지키고자 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마음 역시 주님은 아실거라 저는 믿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오래전 한 목사님은 현대인에게 선악과 같은 것이 두 가지 있다고 설교했던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는 주일성수요, 다른 하나는 십일조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 의도를 이제는 좀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인생살이에서 시간과 돈은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가 없으면 인생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시간과 날이 없다면, 우리의 인생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한 시간, 하루, 한 주간, 한 달, 한 해, 한 평생 모두 시간입니다.
성도는 우리의 모든 인생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시간이 주님께서 주신 것이며, 주님의 뜻대로 사용되야 함을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일주일의 시작인 하루를 주님 앞에 온전히 드리는 것은요, 나머지 6일 모두 주님 뜻대로 살겠노라 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일성수의 정신입니다. 하루조차 주님께 드리지 못하는 자가 어찌 6일을 올려드릴 수 있겠습니까?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재물이 주님께서 주신 것임을 고백하며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성도입니다. 십일조는 누가 드릴 수 있습니까? 십의 일을 구별해서 하나님께 드린 다는 것은, 엄청난 결단과 신앙의 고백입니다. 나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이 십일조인 것이지요.
어떤 이는 그런 원리에 따라 시간과 돈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어떤 이는 시간만 드립니다. 어떤 이는 돈만 하나님께 드립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아깝기에 아무것도 드리지 못합니다. 어떤 이는 잘못된 마음자세로 드립니다. 저는 여기계신 모든 성도님들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께로 왔음을 기억하고, 시간이든 돈이든, 하나님의 것으로 올려드리는 복된 삶을 사는, 주일을 성수하여 주 안에서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리는 복된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