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3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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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views죄는 단절을 나타낸다. 예수님께서는 인격적 만남으로 회복하신다. 하느님과 다시 연결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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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하느님과 다시 연결되십시오.
하느님과 다시 연결되십시오.
죄는 단절을 나타낸다.
죄는 단절을 나타낸다.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죄와 병은 참으로 많이 닮아 있습니다. 비슷한 점이 참 많지요. 그러니 죄를 두고서 성경도 그러고, 성인들도 그러고, 교회도 한결같이 “죄는 영혼의 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무엇이 가장 닮은 점인가 함께 나누어 봅시다. 병이 걸리면 어떻습니까. 주변에 아프신 분들, 가까운 가족의 병수발 들어 보셨으면 잘 아실 겁니다. 처음에는 안타까운 마음에 많이 관심을 갖습니다. 투정을 부려도 잘 들어 주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도 잘 들어 줍니다. 그러나 그런 날이 많아지면 어떻게 됩니까. 마음으로 조금 멀어지게 되죠. 안 좋은 이야기 계속해서 듣는 나도 힘듭니다. 그러나가 몸도 조금씩 멀어지게 되는 경우도 참 많지요.
아픈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경험을 하다 보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나는 혼자구나. 아무도 나의 아픔에 공감해 주지 못하는구나. 나의 감정을 나눌 사람이 없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되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의연하게, 또 건강하게 병마와 싸우던 사람도 점점 어둡게 됩니다.
예. 뭐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많이 체험한 이야기입니다. 길지도 않게 두 달 정도 아팠을 뿐인데, 그런 마음이 들더라구요. 하나의 유혹이죠.
그런데 똑같은 유혹이 우리의 영혼에서도 일어납니다. 죄를 지었을 때가 바로 그러합니다. 죄를 지은 자신을 보고 악마가 이렇게 유혹을 합니다. “니가 이런 죄를 짓다니! 너는 하느님과 함께 살 자격이 없어! 또 다른 사람과 함께 살 자격도 없어!” 이런 생각이 우리를 좀먹을 때 우리는 하느님 앞에도 떳떳하게 서지 못하고, 다른 사람 앞에서도 무언가 자신감을 잃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듯 우리를 고립시킨다는 점에서 죄나 병이나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병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귀도 안 들리고, 말도 못한다고 합니다. 귀는 무슨 일을 합니까.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요. 다른 사람의 생각도 듣고 감정도 들으면서 소통하는 것입니다. 입은 무슨 일을 합니까. 반대로 내 생각을 말하는 역할을 합니다.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면 귀도 안 들리고 말도 못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다. 곧, 다른 사람과 소통이 되지 않는 상태, 고립되어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대일 만남으로 회복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일대일 만남으로 회복하신다.
이런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어떻게 행하시는지 보십시오. 사람들은 무엇을 청합니까. 손을 얹어달라고 청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손을 얹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그 사람을 군중 사이에서 따로 불러내십니다. 손가락을 그의 귓속에 넣으십니다. 그리고 손에 침을 발라서 그의 혀에 대십니다. 예수님 시대에 침은 하나의 약처럼 여겨졌습니다. 우리도 가벼운 상처가 나면 어른들이 뭐라고 말합니까. “침발라~” 또 동물들도 상처가 났을 때 상처를 핥으면서 침을 바르지요.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침을 바르시는 것도 그를 치료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니 그를 따로 불러내고, 손가락을 귓속에 넣고, 혀를 만지는 것 모두 아주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일대일의 치료 행위인 것입니다.
하느님과 다시 연결되자.
하느님과 다시 연결되자.
이 환자는 이제 어떻게 살겠습니까. 사람들에게 자기 생각을 말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말도 들을 수 있겠지요. 더 나아가서 하느님을 찬양할 수도 있고, 하느님 말씀도 들을 수 있겠습니다. 죄가 다른 사람과 또 하느님과 계속 멀어지고 고립되게 한다면, 죄를 치료받은 사람은 다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느님과 다시 연결되게 하는 것입니다. 즉 죄를 치료받는 것이란 다시 연결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일대일 만남을 통해 하느님과 다시 연결되는 것. 우리 신앙 생활 안에 어떤 것이 있습니까. 기도와 묵상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과 가지는 일대일의 시간이지요. 또 고해성사도 있겠습니다.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는 형태로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이니까요. 기도, 묵상, 고해성사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다시 하느님과 연결되는 한 주간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