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막 8: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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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우리는 살면서 종종 눈에 보이는 "증거"를 원합니다. 이는 신앙생활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신앙을 통해 세상적인 성공을 얻기를 원하고, 하나님께 물질적인 축복의 표징을 구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름대로의 기준을 마련해 놓고 거기에 하나님의 역사까지 판다하려는 것이 문제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내세우는 듯하지만, 사람의 입맛대로 고르는 것입니다.
표징을 원한 바리새인
표징을 원한 바리새인
마가복음 8장 11-13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님과 논쟁을 벌이며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증거"와 "표징"을 원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예수님을 자신들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려는 의도였습니다. 말씀의 기준을 물어본 것도 아니고, 뭘 보고 당신 믿을 수 있겠느냐라고 묻는 것인데, 판단의 기준이 자기의 입맛대로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종종 하나님을 우리의 기준으로 판단하려 하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의심하고 불평하지는 않습니까? 어쩌면 우리는 세상 기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으면서 하나님 나라와 그 원리를 조롱하는데 익숙한지도 모릅니다.
세상 기준을 벗어나기 어려움(제자)
세상 기준을 벗어나기 어려움(제자)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 점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마가복음 8장 14-16절을 보면, 제자들이 배에 떡 한 개밖에 가져오지 않은 것을 걱정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들은 앞서 일어났던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물질적인 것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떡이 중요하다고 알았지, 그 영적인 의미나 깊은 뜻 따위는 한참 뒤에 알았던 것입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단순히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더 중요한 영적인 진리를 가리키는 표지판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 기준에 비추어 볼 때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아니면 일상의 걱정과 세상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내가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35)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영적인 양식을 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물질적인 것에만 집중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 가지 일이나, 사람들을 만나는 가운데 “내 입맛대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일을 참으로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믿는 자의 가장 중요한 일은 내가 내 마음대로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 하나님, 신앙은 빙자해서 내 생활습관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룩, 입맛대로를 주의하라.
누룩, 입맛대로를 주의하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막 8:15)고 경고하셨습니다. 여기서 '누룩'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누룩은 빵을 부풀게 만드는 효모를 뜻합니다. 적은 양으로도 전체 반죽에 영향을 미치는 누룩의 특성은,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작은 욕심이나 교만이 우리의 전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은 형식주의와 위선을, 헤롯의 누룩은 세속적인 권력과 명예에 대한 욕망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마음을 부풀게 하여 하나님보다 우리 자신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만듭니다. 빵을 부풀어 오르게 하는 이유는 맛이 좋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는 빵은 그 효모가 빠진 무교병입니다.
우리 안에는 어떤 누룩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 물질적인 성공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욕망? 아니면 하나님보다 세상의 기준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 이러한 누룩들은 우리의 신앙을 변질시키고,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것을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어찌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막 8:21)고 다그치신 이유를 이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이,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세속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를 간절히 원하셨던 것입니다.
세대의 유행에 휩쓸리지 말아라.
세대의 유행에 휩쓸리지 말아라.
마가복음 8장 12절에서 예수님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세대'라는 단어는 단순히 그 시대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당시의 문화적 흐름, 즉 '유행'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종종 시대의 흐름,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휩쓸려 하나님께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저에게 좋은 직장을 주세요", "더 큰 집을 허락해 주세요", "자녀가 명문대에 들어가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들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진정한 축복인지, 아니면 단순히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는 욕망인지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메시아가 오면 로마의 압제에서 그들을 해방시키고, 정치적,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그런 능력이 있음을 증명하는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명은 그것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고 영원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가진 것, 우리가 이미 누리고 있는 축복들을 잊어버리고,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그런 것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복음 10:10)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풍성한 생명'은 단순히 물질적인 풍요나 세속적인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누리는 평안과 기쁨,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뜻합니다.
하나님까지 판단하는 잘못
하나님까지 판단하는 잘못
표적이나 증거를 구하는 태도가 위험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기대나 욕망이 충족되지 않을 때, 우리가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심지어는 조롱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자 그를 배척했고, 결국에는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모습이 나타납니다. 교회에 다니면 사업이 잘 될 거라 기대했다가 실패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신앙을 저버리는 사람들, 기도했는데도 병이 낫지 않자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재산이나 지식, 사회적 지위를 기준으로 하나님을 판단하려 하지 않습니까? "내가 이렇게 헌금도 많이 하고 봉사도 열심히 했는데, 왜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지?"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향해 원망의 마음을 품지는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외적인 모습이 아닌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닌, 우리의 마음 자세와 믿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정말 보아야 할 것.
정말 보아야 할 것.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막 8:18)라고 물으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육체적인 감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눈과 귀를 열어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사랑을 경험하며,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축복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자주 이 본질을 잊고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 살아가려 합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것만을 추구하면 그것은 우상이 됩니다. 돈, 명예, 권력, 심지어는 종교적인 행위까지도 우리의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봉사에 세상의 기준, 즉 '누룩'을 넣지는 않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교회에서 더 높은 직분을 얻기 위해", 혹은 "하나님께 더 많은 축복을 받기 위해" 우리는 종종 순수하지 못한 동기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결론
결론
우리의 인생을 돌아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우리를 변함없이 지켜주시고 채워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의 유행을 쫓아 헛된 욕심으로 가득 찬 '누룩'을 품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의 질문이 오늘 우리에게도 울립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우리는 이 질문 앞에서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신앙의 동기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들은 정말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입니까
기준과 잣대가 중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