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남(벧전1:3)
Notes
Transcript
일시 : 2024년 9월 11일 수요일
제목 : 거듭남
본문 : 베드로전서 1:3
1. 내 신앙은 어떤 토지 위에 자라고 있는가?
1) 좋은 땅에 뿌려져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정작 내 삶은 그러지 못하다
마태복음 13장에는 많이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비유에는 총 4가지의 환경이 등장하죠. 길 가,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 그리고 4개의 땅 위에 동일하게 씨가 뿌려집니다.
환경이 다 다른만큼 결말 역시 다 다릅니다. 길 가에 뿌려진 씨는 새들이 먹어버려 뿌리 조차 내리지 못하고, 돌 밭은 싹은 내리나 곧 타 죽어버립니다. 가시덤불도 다를 바 없습니다. 가시에 막혀 자라다 맙니다.
그러나 좋은 땅은 다릅니다.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되죠. 이 비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어떤 마음밭에 받아 들여야 하는가를 알게하신 예수님의 지혜였습니다. 사실 비유이기는 했지만 내용은 극히 현실적입니다. 당연히 좋은 땅에 뿌려진 씨여야 잘 자라는 것이 당연한 이치 아니겠습니까?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고 또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내용이나 ‘나의 신앙은 정말 좋은 땅 위에 뿌려진 신앙인가?’ 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가 주저됩니다. 흔히 세상 사람들이 ‘네 신앙이 그리도 좋냐?’는 비꼬는 말에도 ‘그래! 내 신앙 아주 좋다!’고 당당히 말하는 것이 꽤나 불편한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오늘 함께 말씀을 나누기 전에 먼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셨으면 합니다. “내 신앙은, 내 봉사와 섬김은 어떤 땅 위에 자리 잡고 있는가?”
2. 거듭남 :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낼 힘
1) 어떻게 거듭나는가? 물과 성령으로! (요한복음 3장)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 신앙의 씨를 뿌려야 하는 좋은 땅은 어디입니까? 오늘 설교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그 땅은 바로 ‘거듭남’ 입니다. 거듭남에 우리의 신앙의 씨를 뿌리고 뿌리 내릴 때, 우리는 그 힘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낼 수 있습니다.
거듭남 하면 많이들 니고데모 이야기를 떠올리실 것입니다. 그만큼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직관적으로 묻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거듭납니까? 어머니 태 안에 다시 들어가 두 번째 탄생을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이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죠. “그게 아니란다 니고데모야. 거듭남은 물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가능하단다.”
결국 거듭남이란 무엇입니까?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즉 이전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물과 성령으로 말입니다.
이 거듭남의 교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5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거듭남의 교리는 곧 ‘하나님 나라’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교리라 말할 수 있습니다.
2) 어떤 내면의 변화가 있는가? 굳은 마음은 제하고 말씀으로 산다! (에스겔 36장)
그렇다면 거듭난 자는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먼저는 내면의 변화가 이뤄집니다. 에스겔 36장 26절과 27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거듭난 자는 우선 내 안의 굳은 마음을 제거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공간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기 시작합니다. 사람 자체가 바뀌기 시작하는 겁니다. 단순히 겉옷을 바꿔 입는 것이 아닙니다. 내면의 옷을 갈아입는 것입니다.
3) 행동의 기준이 무엇인가? 거듭남에 이끌리어 행동한다! (베드로전서 1장)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의 저자 베드로 역시 거듭남을 강조합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인사 후 건낸 첫 마디였습니다. 그가 어떤 말로 입을 열었는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베드로는 이들을 향해 믿는 자로써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권하기 전에 먼저 ‘거듭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22절에서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해라’ 말하면서 동시에 2장 1절에서는 ‘모든 악독과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아주 중요한 ‘거듭남의 교리’를 집어 넣습니다. 왜냐하면, 거듭남의 은혜를 바라봐야 사랑할 수 있고 악한 것들을 다 던져버릴 수 있기 때문에 권면하면서도 거듭남을 결국 놓칠 수 없었던 겁니다.
베드로는 계속해서 이들에게 거듭남을 강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요? 거듭난 자야 말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낼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자야 말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거듭난 자들이 보게 되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고, 들어갈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이 모여 교회를 섬기게 되고, 그런 자들이 모여 필요한 곳곳을 다니며 봉사하게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거듭남 없이도 섬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거듭남 없이도 봉사와 훈련과 눈에 보이는 곳곳에 자리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청교도들은 이런 모습을 향해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거듭남 없이 행하는 모든 일에는 그저 종교적인 행위에 불과합니다. 사람들 눈에 아름답고 선한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눈에는 그저 죽은 시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참된 신앙의 삶은 다른게 아닙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거듭남의 효력이 우리의 마음과 삶에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겁니다. 죄로 부패하고 완고해진 마음이 제거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며 순종할 수 있는 새로운 마음을 얻는 순간 참된 신앙의 삶이 시작되고, 그 마음이 우리 안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때 우리의 신앙은 더욱 성장하게 되는 겁니다.
3. 거듭남 위에 성장하는 그리스도인(이어진교회)
1) 거듭남 위에 성장하기 : 1. 말씀을 새겨라
거듭남의 교리는 중요하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거듭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거듭날 수 있을까요? 거듭남 위에 우리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삶에 ‘말씀을 새겨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 삶에 말씀을 새길 수 있습니까? 오직 성경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 들었습니다. 세상과 가까워지자 말씀과 멀어졌고, 말씀과 멀어지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성경을 멀리할 때 우리 삶에 새겨진 말씀은 흔적 없이 지워져 갈 것입니다.
정말 부끄럽지만, 성경 읽는게 왜이리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신학을 배웠고 연구했지만 여전히 성경은 어렵습니다. 한동안 이 핑계, 저 핑계로 성경을 게을리 했습니다. 필요 이상의 묵상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티가 납니다. 제 스스로가 느껴지는 겁니다. 제 마음이 강팍해져가는 것이 느껴지고, 가정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성경을 멀리하니 정말 문제가 생긴겁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나 스스로도 이렇게 느끼는데, 성도님들이 나를 바라볼 때 역시 티가 나지 않았을까.’ 목사로서 너무 부끄러운 겁니다.
그래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목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한 사람으로써 성경을 바라보는, 성경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내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성경이 말하는 모든 것이 즐겁습니다. 저를 향한 책망도 달콤합니다. 무너진 삶이 크기에 여전히 가야할 길은 멀지만, 성경을 가까이 한다는 것이 내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가를 다시 보게 됩니다.
거듭남의 첫 걸음은 다른게 아닙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는 겁니다. 말씀을 읽는 것으로부터 시작입니다.
2) 거듭남 위에 성장하기 : 2. 은혜를 이어가라
거듭남 위에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선, 둘째 ‘은혜를 이어가야’ 합니다. 말씀이 내 안에 새겨졌다면, 그래서 내 안에 예수의 생명이 주어졌다면 우리는 그 은혜를 이어가야만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해 거듭난 삶을 얻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게 산 소망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예수를 머리 한 켠에 두고 멈춘다면, 우리에게 새겨진 말씀 역시 관리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새겨진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이어가는 방법 역시 화려한 무언가가 아닙니다. 나눔에 있습니다. 나눔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는 은혜를 이어가는 나눔 1) 내가 받은 것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무엇이 있을까요? 교회 안에서는 섬김과 봉사가 있습니다.
유치부는 예배 전 항상 함께 찬양하고 기도회로 문을 엽니다. 그때 바뀌지 않는 첫 기도제목이 있는데 주로 이렇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는 자 되게 하시고, 그 은혜를 우리 예꼬들에게 흘려보내는 교사 되게 하소서’
사실 감사한 마음이 참 큽니다. 순장님들도 많고 중복사역을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로써 자리를 지켜주십니다. 최근 한 선생님께서 올해를 끝으로 교사를 그만두시려 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시다 계속해서 자리를 지켜가야겠다는 마음을 가지셨다고 합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은혜, 내가 받은 것을 나누어 이어가는 거듭난 자의 모습 아닙니까?
여전히 교회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비춰져야 하는 자리가 많습니다. 바라옵기로는 우리 성도님들이 누린 거듭남의 은혜를 곳곳에 이어가시는 결단이 주어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 나눔의 두 번째는 은혜를 이어가는 나눔 2) 내가 누린 것을 말로 나눠주는 것입니다. 이는 어떻게 적용해 볼 수 있습니까? 바로 다락방 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에게 다락방은 어떤 공동체 입니까? 삶을 나누고 매일성경의 GQS로 말씀을 나누지만, 먼저는 하나님의 은혜가 거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삶을 나누는 것은 세상도 할 수 있는 일 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 말씀을 나누는 것은 그저 지식 공유에 그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깊이 임하여 삶을 나누고, 말씀을 나눈다면 그 공동체에는 실로 놀라운 변화가 곳곳에서 발견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누린 하나님의 은혜를 나눠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를 핍박하던 지난 날은 잊고 예수로부터 받은 은혜를 나누기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들이 펼쳐집니까? 그가 은혜를 나눈 곳곳에서 예수 믿는 자들이 세워졌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결국 나눔은 내가 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심을 우리가 목도할 수 있는 기회인 것입니다. 바라옵기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며 우리의 은혜가 이어져가길 기대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3) 거듭남 위에 성장하기 : 3. 성령에 주목하라
거듭남 위에 우리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 마지막으론, ‘성령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의 거듭남은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목사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거듭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실 성령님께 우리의 시선을 둘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시선을 성령님께 둘 때, 우리는 비로소 더 거룩한 고지를 향해 달려갈 수 있습니다. 갈렙이 그랬습니다. 자신의 연로함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바라보며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외쳤던 겁니다.
더 거룩한 고지를 달려감 뿐만 아니라 나의 나됨을 자랑하지 않게 됩니다. 심지어 나의 자랑할 것이 사라진다해서 탄식과 풀이 죽는 일도 없습니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 성령의 능력임을 발견하게 될 때,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와 승리를 확신하며 더 힘찬 모습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그러나 조금의 방심으로 성령의 위대함을 주목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잊어버리게 되며 우리가 행하는 어떤 훈련이나 실천은 끝내 우리의 자랑이 되고 또 우리의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에 주목하는 일에 있어 조금도 소홀히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고 강력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4. 정리하며
거듭남의 교리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영과 진리로 변화된 삶이야 말로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내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듭남의 교리를 앎에서 그치지 않고 삶으로 옮겨올 수 있어야 합니다.
요한일서를 보면 거듭난 자의 삶의 특징을 열거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내용들을 보며, 나의 거듭남에 비상불이 켜 있지는 않은가 점검해보셨으면 합니다.
1. 거듭난 자는 죄를 범하지 않는다 (요일3:9, 5:18)
2. 거듭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세주로 믿는다 (요일5:1)
3. 거듭난 자는 의를 행한다 (요일2:29)
4. 거듭난 자는 성도들을 사랑한다 (요일3:14)
5. 거듭난 자는 믿음으로 세상에서 승리한다 (요일5:4)
막상 보니, 이 특징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내용들 아닙니까? 거듭난 자의 삶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살아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힘으로 해결하려 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가까이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채우실 것이고, 은혜를 나눌 때 우리의 삶이 예수님으로 더욱 풍성해질 것이며, 성령에 주목할 때 우리는 그 능력을 자랑하게 됩니다. 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내가 하는 것은 없습니다.
바라옵기로는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주님만 사랑하며, 전심으로 주님만 믿으며 주님께만 시선을 두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그렇게 거듭남 위에 성장해 가는 우리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결단찬양 및 기도]
1. 주님만 사랑하리 + 전심으로
- 찬양의 고백처럼 주님만 정말 주님만 사랑하며 주님만 알길 소망합니다. 그렇게 거듭난 자의 삶을 살아내길 소망합니다. 이 시간 기도하실 때, 주님 내 삶에 이유되시며 찬양되시는 주님만으로 충만해지는 우리 되게 해달라고, 삶의 변화를 경험하는 우리 되게 해달라고 함께 주님의 이름 부르짖으며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 거듭난 자의 삶은 세상에 현혹되기 보다 예수의 흔적을 남기는 삶이었음을 우리는 고백합니다. 주님 내 삶을 통해 은혜가 흘러가게 하옵소서. 내 삶을 통해 가정에 변화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내 삶을 통해 교회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그런 간절한 마음 담아 주님의 이름 한 번 부르짖고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2. 전심으로 + 시선
- 내가 믿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내가 속한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내 삶의 이유 되시는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주님만 따라가는 내가 되게 하옵소서. 그 길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되게 하옵소서.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주님의 영광을 기대하는 것이 내 평생의 소원이 될 수 있도록 주님 붙들어 달라고 주님의 이름 부르짖으며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