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지어져가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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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
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
에베소서 2:19–22 (NKRV)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지난 주 이어 교회에 대해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교회가 무엇인가의 대한 질문과도 같습니다.
첫번째는 하나님께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교회를 통해 불러내시는 것입니다. 이 일은 복음을 통해서 가능한 일입니다. 교회는 복음이 살아있어야 하고 복음을 계속 말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교회 안과 밖에서 복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두번째는 성도가 연합하는 것입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교사…직분 구분없이 교회로 불러나온 모든 성도가 하나되어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머리되신 예수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몸된 교회의 완성을 위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교회교 회 는 복음 그 자체히며 연합 자체 입니다
이 두가지는 말씀을 통해 이 뤄져갑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교회의 조건이나 사람의 능력, 재물 등으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목적하신바를 통해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믿으십니까.
이사야 40:8 (NKRV)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사실이 또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는데 이 일에 우리의 어떤 부분이 탁월해야 가능하고 무엇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세상 조건에 의지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함정에 빠집니다. 왜냐하면 잘 안되니까 주위를 둘러 봅니다.
그리고 우리가운데 뭐가 잘못된것이 무엇인지 찾습니다. 그리고 찾은 것이 우리가 가진 조건과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탓하고 책임을 전가합니다. 그것을 해결하면 교회가 나아집니까. 아니요 절대 나아지지 않습니다.
기도하면 되겠습니까. 네 됩니다만 안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요구를 구하는 기도로는 절대 변화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교회를 말씀이 다스리고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게 하기위해서는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일산에 살고 있는 작은어머니가 전화가 왔습니다. 큰일났다. 교회가 무너지고 있다.
제가 알기로는 수백명의 성도에 유명한 목사님을 초청해서 잘 되가는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교회 안에 아주 중심이 되는 집안이 있습니다. 모든 중요한 직분을 집안에서 다 감당하고 교회 결정을 이 집안 식구들이 대부분 결정을 한답니다. 중요한 직분을 많이 지고 있으니 당연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의 일이 되어져 가고 있답니다. 성도들이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성도들이 없어지니까 이 중심이 되는 집안이 감당해야 될 것들이 너무 많아져버렸습니다. 그러자 이 가족이 책임지기 싫어 몽땅 다 가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이 교회는 서로 떠나기가 바쁜 교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교회에 가장 큰 헌신은 누가 했습니까. 이가족이 했습니다. 이 교회를 망하게 한 일은 누가 했습니까. 이 가족이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에베소서의 말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잘나고 못나고 많이 배우고 적게 배우고 많이 가졌고 적게 가졌던지 간에 혼자서 몇사람이서 중요한 직분자들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묶여져서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20절부터 예수그리스도가 교회의 모퉁이 돌이 되시고 모든 성도들이 서로 연결되어져서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처소가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안에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처소인가?
하나님이 이곳에 거하시는데 불편해한다면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하고 묵상을 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교회에 거하시려는데 가장 불편한것이 “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나를 드러내고 싶어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이 찾아오고 불러주고 하니 이런 좋은 교회를 통해서 나를 더욱 드러내고자 하는 나의 욕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거하시기에 “나” “나의 욕망”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처소 삼으시기가 참 힘드시겠구나 느꼈습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4장 6절-8절까지 현대인의 성경입니다.
6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나 자신과 아볼로의 경우를 들어서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기록된 말씀의 범위를 넘어서지 말라는 말의 의미를 우리에게 배워서 어떤 사람은 자랑하고 어떤 사람은 멸시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7누가 여러분을 남달리 뛰어나게 하였습니까? 여러분이 가진 것 중에 하나님에게 받지 않은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가진 것이 하나님에게 받은 것이라면 어째서 받지 않은 것처럼 자랑합니까?
8여러분은 원하는 것을 이미 다 얻었고 이미 부요해졌으며 우리 없이도 왕노릇 하고 있다고 뽐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왕이 되었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왕노릇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이 어떤 의미입니까. 교회 안에서 아볼로파냐 게바파냐 잘난 사도를 따르느냐 못난 사로들 따르냐 따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잘난 목사를 세우면 잘나지고 못난 목사를 세우면 못나지냐 이런 헛된 경쟁에 빠지지 말라. 모두가 말씀의 한계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한다는 사람 조심. 어디서 능력받았다는 사람조심
7절에서는 누가 너를 돋보이게 만들었느냐, 유별나게 만들었느냐…이 질문은 수사학적인 질문으로 오히려 아무도 너를 네 이웃보다 잘난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다. 너도 이웃도 모두 기꺼해야 용서받은 죄인일 뿐이다라는 것입니다.
또 네가 특별히 잘하는 은사가 있다면 하나님께 받은 것이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 주신 것을 어찌 너는 너의 능력인것 처럼 자랑하느냐 입니다.
교회 안에 자신의 능력과 뜻과 계획으로 모든 것을 가능하다라는 교만이 가득한 것을 말합니다.
이 교만을 8절에서 바울은 쳐부수기 시작합니다.
은사를 받고 대단하게 기도하고 열심이 있으니까 마치 하나님 나라의 구원을 다 얻은거 같고, 영적인 만족에 심취해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마치 기도하고 결정하면 모든 것이 될 것같은 착각에 빠져있습니다.
교회가 함께 지어져 가기 위해서 중요한 말씀을 하는데요.
교회 모든 신자는 하나님 나라의 대해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긴장있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임했지만 아직 완성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저 우리는 성령의 첫맛을 보고 마치 다 이룬것처럼, 왕노릇하며 살 고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 함께 지어져 가기위해서는 왕노릇하는 것으로 되지 않습니다.
품을 때 가능하고 나로는 가능하지 않다고 버릴 때 가능합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우리를 품으셨습니다. 우리가 요구해서 하나님이 일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십자가로 우리를 살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오늘 우리 안에 거하시기 위해 자신을 버리셨습니다.
갈라디아서 2:20 (NKRV)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오늘 우리 교회안에 신자로 성도로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이 일을 함께 해 나가야 합니다. 서로 품고, 자신의 주장을 버리면서 계속 내어 주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 저녁에 동네 카페에 교회 밖에 있는 이웃 청년들 40-50명을 불러 모아서 토크쇼를 했습니다. 청년의 삶을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청년들과 함께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저와 배달의민족한명수cco님이 패널로 섰습니다.
제가 바빠서 질문을 다 암기를 못해서 메모를 좀 해서 갔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집사님이 메모를 슬쩍 보고는 질문이 오면 계속 저보고 대답을 하도록 유도하는 거에요.
이런 시간은 그분에게 훨씬 익숙하고 저는 교회밖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니 좀 어색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어느정도 준비해 온 것을 알고는 자신은 얼렁뚱땅 넘어가고 계속 저보고 중요한 말을 하게 하는 것이었어요. 그분은 유명인 저는 무명인인데 저를 더욱 세워주는 거에요.
끝나고 기분이 참 묘해요. 내가 드러내고 싶어 한다면 한 사람은 죽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더 유명한 분이 무명인 나를 세우니까 함께 살아나게 된 것이에요.
아! 교회는 이런 것이구나.
고린도전서 12:25–27 (NKRV)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우리는 한몸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에베소서 4:4 (NKRV)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어떤 분들은 성령을 찾아 다니는 분들이 있어요. 저교회가면 성령이 있나, 이교회가면 성령이 있나…
한몸이라는 사실을 잊게 됩니다. 다른몸과 비교하면서 불평 하게됩니다.
성령은 교회를 통해 동일하게 일하십니다. 어디 기웃거리면서 찾으러 다니지 마십시오. 그렇게되면 우리는 한몸이라는 사실을 잊게됩니다.
위의 말씀을 의지해서 자신의 신앙이 어떤지 확인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내가 한몸으로 함께하기 위해 얼마나 참고 용납하고 용서하고 인내하고 기도하느냐를 물으면 답이 나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하기위해서 말이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고린도성도들은 함께하기 위해 애쓰지 않고 자신이 왕노릇하기 위해 수고하고 헌신한 사도들을 깔아뭉개고 짓밟았습니다. 바울은 함께를 위해 자신의 고난이 교회의 영광이 될 것이라 했는데 고린도성도들은 함께를 버리고 자신의 영광을 쫓았습니다.
교회는 함게 지어져 가는 것이고 함께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모퉁이돌 되신 예수님이 우리의 한계가 되십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안에 허락한 그 한계안에서 우리는 마음껏 서로 연결하고 돕고 품고 버리면서 세워주면서
이곳에 하나님께서 마음껏 거하실 수 있는 처소가 되도록 우리는 함께 지어져 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