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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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장 시온성과 같은 교회 216장 성자의 귀한 몸, 은칠성 집사님
오늘 본문은 같이 사는 형제가 죽게 되어 형제의 아내가 홀로 남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규례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먼저 살펴보면, 형제들이 함께 살고 있는 중에 형제 한 명이 후사가 없이 죽게 되어 아내만 남게 되었을 경우, 그 아내는 다른 집안으로 시집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다른 형제 중 한명이 그녀를 아내로 삼아 의무를 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첫 아들이 태어나면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하여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그 이름이 끊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이 살아있는 형제가 이 의무를 행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죽은 형제의 아내는 성읍 장로들에게 찾아가 이 살아있는 형제를 고발합니다.
그리고 장로들은 그 형제를 불러다가 이 의무를 다하기를 권면합니다. 권면 후에도 그 형제가 의무 다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죽은 형제의 아내가 그 형제의 신을 벗기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수치를 안겨주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에 그 형제는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이라고 불리우게 되는데, 고대 근동 문화에서 발을 드러내는 것은 굉장한 수치를 안겨주는 것이나 다름 없었기에, 이는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수치스러운 자로 낙인찍혀 버립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의 내용인데, 이 내용들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이 있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이 내용의 율법은 일명 수혼제라고 불리우는데,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지키라는 명령이 나타나 있지 않고 여기에서만 유일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 본문을 통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생소하고 새로운 내용을 제정하시어 지키라고 하신 내용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관습은 당시 고대 근동에서 흔할 정도로 만연해 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창세기_38장을 보시면 유다와 다말 사건이 수혼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당시 죽은 형제의 아내와 결혼을 하지 않으면 살아있는 형제는 공적으로 수치를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수혼제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사망한 형제의 이름과 유업이 대대 손손 소멸되지 않고 보존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오늘 본문을 통해 여호와께서 수혼제를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은, 이미 앞서 성행하고 있던 관습을 공식적으로 성문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수혼제를 지키라는 명령이 앞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내용들과 상충된다는 것입니다. 레위기 18장에 나타난 규례를 살펴보면, 자기의 살붙이를 가까이 하여 하체를 범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는 이방 민족이 하던 가증스러운 일들이기에, 이를 행하면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끊어지게 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러한 기준에 따른다면, 오늘 본문에 나온 수혼제도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가증스러운 일들 중에 하나로 다뤄지게 되기에, 이를 행하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져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또한 기본적으로 이 수혼제라는 명령은,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십계명 중에서도 열 번째 계명인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라는 내용과도 상충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수혼제는 결국, 죽은 형제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명분아래, 죽은 형제의 아내를 탐하여 그 의무를 져야 한다는 아이러니한 율법으로 우리들의 눈에 비춰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한 분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금 명령을 번복하시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며, 한편으론 이방족속이 하던 관습을 지금 지키라고 하시는 것인지, 오히려 하지 말라고 해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은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이러한 관습을 지키라고 율법으로 제정하신 이유는, 궁극적으로 그분의 나라를 온전히 세우기 위해 부르신 이스라엘 민족에게 공동체적으로 신앙적인 유익을 주기 위함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에서 수혼제를 지키라고 명령하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6절에 나온 것처럼 죽은 형제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죽은 사람의 이름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명분은 이방 민족이나 이스라엘 민족 모두 공통점이 있으나, 이방 민족은 개인적인 측면에서 그렇다고 한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공동체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장차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하신 기업과 소유를 받기로 약속된 공동체이기에, 여기에서 이름이 끊어진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유업들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받을 유업이 없거나 상실했다는 것은 결국 종의 신분의 상태로 전락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죽은 형제와 아내는 종의 신분이 되어버립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종의 신분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레위기 25장을 보시면, 받을 기업을 상실하여 종의 상태가 되면 그에게 가까운 자가 그의 기업을 무르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은 그 어느도 종의 신분으로 살아가지 않고 모두가 여호와의 백성이라는 거룩한 신분으로 한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것이 여호와의 기쁘신 뜻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이 율법은, 출애굽 당시 애굽의 종으로 살던 이스라엘 민족을 긍휼히 여기시어 여호와께서 속량하셨기에, 이제는 그 어느 누구도 임의로 이스라엘 민족을 종으로 살아가게 만들거나 내버려둬서는 안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함의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형제가 이를 거부하고 의무를 다 하지 않는다면, 이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닌 개인의 탐심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본문 5절에 함께 산다는 표현을 통해, 아직 재산이 분할되지 않은 채 공동 점유하면서 형제들이 함께 공동생활을 하는 상황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망한 형제의 아내는 재산 상속에 대한 분명한 권리 없이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되고, 살아있는 형제가 이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그 재산의 지분은 다 그 형제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결국 살아있는 형제가 이 의무를 거부하는 것은 자신이 받을 유업의 지분을 늘리기 위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며, 종의 상태에 놓여있는 형제의 처지를 긍휼히 여기지 않는 괘씸한 태도이기에, 신 벗김 받은 자 즉,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수치 당한 자로 여기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호와께서는 그 누구도 수치를 당하지 않고 모두가 유업을 받는 건강한 공동체로 존속되기 위하여 이 율법을 제정하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더나아가 살펴보면, 레위기 25장에서 기업을 무르다 할 때 무르다의 히브리어 동사는 ‘가알’ 동사 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맥락상 이 단어의 의미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동사의 어원을 쫓아가보면, ‘구원하다’, ‘속량하다’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을 무르는 자의 의미는 ‘악에서 구원하는 자’라는 의미도 갖게 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본문은 단순히, 형제로 하여금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종의 상태에 내버려두지 말라는 육적인 의미에서 머무르지 않고, 악으로부터 형제를 건져내야 한다는 영적인 의미로까지 확장됩니다.
이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께서 죄의 종으로 살아가던 자들을 위하여 속량하시고, 이제는 수치당한 자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자녀로 회복시키시어, 아버지의 유업과 기업을 받게 하실 사실을 예표합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 공동체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모범을 따라 개인의 구원의 유익과 장차 받을 기업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공동체에 속한 이들 중에 여전히 죄와 사망의 종 노릇하면서 아버지의 자녀답게 살아가지 못하는 자들이 있는지를 살펴, 그들이 다시 아버지의 자녀로, 아버지의 기업과 유업을 받을 수 있도록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또한 공동체에 속하는 모든 이들이 어떠한 차별이나 억압 없이, 수치당하는 일이 없도록 함께 거룩한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에 목적과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공동체원을 긍휼히 여기기는 커녕, 한 공동체 내에서 헌신과 섬김을 통해 특정한 지분을 얻어 지위를 누리고 싶거나 영향력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욕심을 갖게 된다면, 오늘 본문에서 유업의 지분을 차지하기 위해 죽은 형제의 아내를 거절한 형제의 모습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자신들이 얻은 기득권을 마치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한 보상이나 특별한 은혜를 주신것으로 여기며, 그 기득권을 가지고 권위를 가진 자처럼 다른 공동체원들을 억누르고 통제하며, 심지어 면박이나 수치감을 안겨 주기까지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실족하게 만들어 교회 공동체원으로 들어오는 데 거리낌을 만들어버리고, 결국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유업을 그들로 받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자가 됨과 동시에 본인은 탐심의 종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결국 교회 공동체 내에는 그 누구도 종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아버지의 온전한 뜻을 무시하게 되어 버리는 것이나 다름 없게 되어 버립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면, 분명한 것은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 앞에 섰을 때, 오늘 본문에 나온 살아있는 형제가 이스라엘 민족 안에서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했던 것처럼, 결국 온 천하 만물 앞에서 동일하게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바라기는 내가 속해 있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나의 개인적인 욕심과 유익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공동체를 향하신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공동체원들을 긍휼과 사랑으로 책임지고 함께 걸어가기를 힘쓰는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
그리스도께서 모범을 보이신 것처럼, 공동체원들을 긍휼과 사랑으로 책임지며,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거룩한 공동체를 세워가는 내 자신이 되게 해달라고
담임목사님과 사모님을 위해서, 영육간의 강건함을 허락해 달라고 함께 기도해주시고, 동역하는 부교역자들을 위해서도 동일한 은혜를 달라고 기도해주시고
새음교회에 맡겨진 모든 사역을 주신 은혜에 따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
아픈 환우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해주시고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각자 가지고 오신 기도제목 가지고 기도하시다 자유로이 돌아가시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