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13 금요기도회: 에스겔 29: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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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하시겠습니다. 찬송가 91장 슬픔 마음 있는 사
254장 내 주의 보혈은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금요기도회 자리로 부르시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심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 지난 전반기를 지켜주시고 이번 하반기 금요기도회도 시작하게 하심 감사합니다. 기도할 수 없는 자들을 불러모아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님 안에서 성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게 하시니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이 시간을 통하여 삼위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시간이 되게 하시고 이번 하반기도 기도로 살아내는 첫 시작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가지고 있는 많은 간구들을 들고 나아왔습니다. 이 시간 저희의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입니다
열째 해 열째 달 열두째 날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애굽의 바로 왕과 온 애굽으로 얼굴을 향하고 예언하라
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바로 왕이여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내가 갈고리로 네 아가미를 꿰고 너의 강의 고기가 네 비늘에 붙게 하고 네 비늘에 붙은 강의 모든 고기와 함께 너를 너의 강들 가운데에서 끌어내고
너와 너의 강의 모든 고기를 들에 던지리니 네가 지면에 떨어지고 다시는 거두거나 모으지 못할 것은 내가 너를 들짐승과 공중의 새의 먹이로 주었음이라
애굽의 모든 주민이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에게 갈대 지팡이라
그들이 너를 손으로 잡은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어깨를 찢었고 그들이 너를 의지한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허리가 흔들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칼이 네게 임하게 하여 네게서 사람과 짐승을 끊은즉
애굽 땅이 사막과 황무지가 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네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만들었다 하도다
그러므로 내가 너와 네 강들을 쳐서 애굽 땅 믹돌에서부터 수에네 곧 구스 지경까지 황폐한 황무지 곧 사막이 되게 하리니
그 가운데로 사람의 발도 지나가지 아니하며 짐승의 발도 지나가지 아니하고 거주하는 사람이 없이 사십 년이 지날지라
내가 애굽 땅을 황폐한 나라들 같이 황폐하게 하며 애굽 성읍도 사막이 된 나라들의 성읍 같이 사십 년 동안 황폐하게 하고 애굽 사람들은 각국 가운데로 흩으며 여러 민족 가운데로 헤치리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사십 년 끝에 내가 만민 중에 흩은 애굽 사람을 다시 모아 내되
애굽의 사로잡힌 자들을 돌이켜 바드로스 땅 곧 그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라 그들이 거기에서 미약한 나라가 되되
나라 가운데에 지극히 미약한 나라가 되어 다시는 나라들 위에 스스로 높이지 못하리니 내가 그들을 감하여 다시는 나라들을 다스리지 못하게 할 것임이라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의 의지가 되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족속은 돌이켜 그들을 바라보지 아니하므로 그 죄악이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하셨다 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드디어 하반기 금요기도회가 시작되었는데요. 잘 나오셨습니다. 함께 기도할 수 있게 우리를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 없는 자들을 불러 기도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반기 금요기도회도 잘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오늘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데요.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말씀을 두고 먼저 기도하면 좋겠는데요. 오늘 말씀은 에스겔 29장 말씀으로 애굽이 받을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계속해서 하셨는데요. 이 29장에서는 애굽이 어떤 심판을 받을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들이 받을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이유는 바로 이방 나라를 의지하려는 유다에게 이방 나라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 자신을 의지하라는 겁니다. 유다는 바벨론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외교적으로 이방 나라들을 의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러한 맥락 속 가운데서 애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나 오늘 본문은 유다가 멸망하기 바로 직전에 주어진 말씀입니다. 1절을 보시면 열째 해 열째 달 열두째 날에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때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함락하기 약 6개월 전에 주어진 말씀입니다. 진짜 직전인 것이죠. 단순히 말씀이 주어진 날짜를 기록한 것처럼만 보이지만, 사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가 담겨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결국 유다가 하나님의 경고에도 그들이 돌이키지 않겠지만, 멸망하기 바로 직전까지도 하나님은 유다에게 기회를 주시기 위해 유다에게 말씀을 주신다는 겁니다. 만약 정말 하나님께서 유다가 심판받기만을 원하셨다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이런 말씀도 주시지 않고 그저 심판받으라고만 하셨을 겁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나 혐오가 아니라 무관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유다를 버리기를 원하셨다면 이들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상관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시기에 이렇게 유다가 멸망하기 직전까지도 이들에게 말씀을 주시는 자비로우시며 은혜 베푸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애굽에 대해서 어떤 심판의 말씀을 유다에게 하시는 걸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로, 애굽의 왕, 바로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3절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여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큰 악어라”
하나님께서는 바로를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큰 악어라고 비유하시면서 대적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바로를 큰 악어로 비유하고 계시는 걸까요? 그 뒤에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바로가 자신을 향해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악어가 어떤 생물입니까? 강이나 늪지대의 가장 최상위 포식자로 있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바로를 큰 악어라고 하신 이유는 바로가 이집트 강인 나일 강의 주인이 자신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강에서 군림하는 악어라는 생물을 통해 바로를 큰 악어와 같은 존재임을 말씀하신 겁니다.
나일 강은 애굽에게 번영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고대의 세계 4대 문명은 모두 강이 중심이 되어 형성되었습니다. 중국의 황허강, 인도의 갠지스강,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있는 유프라테스, 티그리스강,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집트의 나일강이 있습니다. 애굽에게 있어서 이 나일강은 번영을 가져다 주었기에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일강을 보고 바로가 어떻게 말했다고 합니까? 자신이 이 나일강의 주인이라고 주장한다는 겁니다.
이것은 교만한 태도입니다. 원래 나일강의 주인은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주시는 이 순간에도 나일강의 주인, 더 나아가 이 나일강이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애굽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당시 왕은 신의 아들로 신이 내려준 통치자라고 여겼기에 왕이 곧 주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같은 왕정 국가인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왕이라는 존재는 신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대신하는 존재입니다. 왕이 자신의 마음대로 통치해선 안되고 항상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따라 통치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기 위해 자신의 통치권을 왕에게 위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원래 애굽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1장에서도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에서 이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지금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이 애굽의 주인이라는 교만한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교만한 바로를 향해 하나님께서는 이런 태도를 취하십니다. 4-5절입니다. “내가 갈고리로 네 아가미를 꿰고 너의 강의 고기가 네 비늘에 붙게 하고 네 비늘에 붙은 강의 모든 고기와 함께 너를 너의 강들 가운데에서 끌어내고 너와 너의 강의 모든 고기를 들에 던지리니 네가 지면에 떨어지고 다시는 거두거나 모으지 못할 것은 내가 너를 들짐승과 공중의 새의 먹이로 주었음이라”
이 말씀을 요약하면 하나님은 강에서 군림하는 악어인 이 애굽의 수하에 있던 물고기들, 즉 신하들이나 백성들이 이 바로를 강에서 몰아내게 만드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가 이들을 다스리고 군림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가하고 이제는 바로의 위치가 완전히 바뀌어 군림이 아니라 같이 쫓겨나는 신세로 역전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애굽은 원래 강한 나라가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갈대 지팡이와 같은 존재였다는 점입니다. 지금 유다가 의지하려는 애굽은 바벨론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강한 나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 그렇지 않습니다. 지팡이가 어떤 물건입니까? 지탱하기 힘든 몸을 잘 지탱할 수 있도록 받쳐주는 물건입니다. 그런데 그 지팡이가 갈대라면 어떻겠습니까? 갈대는 땅에 잘 서있기는 커녕 갈대로 몸을 지탱하려고 할 때 그대로 쓰러지기만 할 뿐입니다.
특히나 그냥 갈대 지팡이가 아니라 이스라엘 족속에게 갈대 지팡이라는 겁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은 애굽을 의지하려고 할 때마다 실패하였습니다. 의지가 되기는커녕 이스라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이 애굽을 의지할 때 어떤 결과가 펼쳐지겠습니까?
7절입니다. “그들이 너를 손으로 잡은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어깨를 찢었고 그들이 너를 의지한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허리가 흔들리게 하였느니라”
애굽을 의지할 때 나타나는 결과는 갈대를 의지할 때 그 갈대가 부러져 쓰러지듯이 애굽을 의지한다면 쓰러져 어깨에 상처가 나게 됩니다. 이것은 열왕기하 18:21에서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이제 네가 너를 위하여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의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의 왕 바로는 그에게 의뢰하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애굽을 의지하는 것은 갈대 지팡이를 의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애굽은 자꾸만 자신을 의지하라고 유혹합니다. 자신을 의지해야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유다를 유혹합니다. 애굽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사야서를 통해 살펴본 것처럼 애굽은 자신 스스로도 지금 국력이 아주 약한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거짓으로 유다를 꾀어 자신을 의지하라고 유혹하며 유다를 위험에 빠드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왕 바로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과 함께 맞서 싸우겠다고 유다에게 약속하였지만, 막상 전쟁이 일어나자 지탱해주지 못하는 갈대 지팡이처럼 이 유다를 버렸습니다.
이렇게 허장성세로 유다를 위험에 빠뜨리려는 교만한 애굽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8-9절에서 칼과 황폐함을 통해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겉으로 강대해 보였던 애굽은 사막과 황무지가 되어 그들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겁니다. 앞에서 바로의 교만을 낮추신 것처럼 애굽 전체의 교만을 낮추실 겁니다.
다음으로 세 번째로 이 애굽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이유는 나일강이 자기의 것이라고 말하는 교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에서 우리가 바로가 나일강이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교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바로뿐만 아니라 애굽 전체가 이 교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나일강은 하나님의 소유이며 이 나일강을 통한 복을 애굽에게 베푸신 것이지 애굽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러나 애굽은 이것을 거역하고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교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나일강으로 누린 번영을 이용하여 이방 나라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압제하고 착취하는 악을 저질렀습니다. 대표적으로 과거 이스라엘이 그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아니면 심지어 마음 속에 그러한 생각조차 없게 될 때 내 것이기에 내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고 여기게 되며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자기중심적으로 사용하게 된다는 겁니다.
따라서 이러한 교만을 가지게 된 애굽을 향해 하나님은 심판을 내리기로 하십니다. 앞의 두 가지에서는 심판의 내용이 그렇게 길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하나님은 세 번째 심판에 대해서는 나머지 두 가지보다 훨씬 더 자세하고 많은 양으로 말씀하십니다. 그 내용이 10절부터 15절까지입니다.
여기에서 특히 하나님께서는 심판에 대한 두 번째 말씀에서 말씀하신 그 황폐함을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데요. 여기에서는 황폐하게 되는 기간을 말씀하십니다. 그 기간은 바로 11절과 12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40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 애굽에 사람과 짐승이 살 수 없는 사막으로 만드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애굽과 40년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바로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에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께로부터 벌을 받았던 광야에서의 40년이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애굽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광야에서 40년동안 방황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흩어지게 될 겁니다.
이렇게 애굽은 그들의 교만으로 인해 심판을 받게 될 겁니다. 나일강이 자신의 것이라고 했던 바로의 교만, 허장성세로 유다를 유혹하려고 했던 애굽의 교만, 바로에서 그치지 않고 애굽 전체가 나일강이 자신의 것이라고 했던 교만 때문에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애굽을 심판만 하셔도 됐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지난 오랜 세월동안 몇번이나 기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애굽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을 가졌음에도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심판하지 않으셨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애굽도 자신의 품으로 돌아오게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저버렸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심판을 당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이 애굽을 향해 회복의 말씀을 하신다는 겁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사십 년 끝에 내가 만민 중에 흩은 애굽 사람을 다시 모아 내되 애굽의 사로잡힌 자들을 돌이켜 바드로스 땅 곧 그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라”
하나님은 애굽인들을 흩으셔서 40년동안 방황하게 하신 후에 다시 이들을 모으셔서 회복시키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동시에 분명한 것은 그 이전에 애굽이 취한 영광만큼의 강력한 국가로의 회복은 아니었습니다. 14절 끝에서부터 보십시오.
“그들이 거기에서 미약한 나라가 되되 나라 가운데에 지극히 미약한 나라가 되어 다시는 나라들 위에 스스로 닢이지 못하리니 내가 그들을 감하여 다시는 나라들을 다스리지 못하게 할 것임이라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의 의지가 되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족속은 돌이켜 그들을 바라보지 아니하므로 그 죄악이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하나님께서 이 애굽을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지만, 이들은 다시 다른 나라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다시는 이스라엘이 의지하고자 하는 대상으로 삼을만한 존재조차 되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하나님을 대신하여 애굽을 의지하려고 했던 유다의 죄를 상기시켜주기만 할 것입니다.
이렇게 애굽은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될 겁니다. 그들이 심판을 받은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애굽이 받은 심판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았지만, 무엇보다 핵심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6절과 9절 그리고 16절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라는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통해 애굽이 깨닫길 원하시는 것은 바로 여호와 자신이 이 세상의 유일한 참 신이심을,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애굽이 가진 모든 것들이 애굽 그들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는 주재이심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에 애굽과 같이 하나님의 자리를 꿰차 세상에서 군림하려는 것들이 많습니다. 돈, 명예, 권력, 사랑, 쾌락, 자녀, 자아 등등 이 세상에서 우리를 다스리려는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때론 이러한 것들을 우리에게서 앗아가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들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려고 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앗아가시기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자신만을 의지하게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을 마주하게 될 때 연약한 우리의 시선은 하나님이 째째하다고 여기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유다가 애굽을 의지할 때 갈대 지팡이를 의지하는 것과 같은 것처럼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을 의지하려고 한다면 결국 우리에게 상처만 줄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지켜주실 수 있으시며 우리를 삶의 비참함에서 구원하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잘 아시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다그치시고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것들을 놔두려고 할 때 그것을 앗아가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러한 순간을 맞이할 때 드러내야 할 반응은 오히려 감사입니다. 다른 것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려는 나의 죄를 억누르시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를 행복한 길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때 비록 우리가 원하지 않는 상황이 생긴다 하더라도 우리의 입술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께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변에 애굽과 같은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를 유혹하며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이 군림하려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때론 우리가 그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자리에 그것을 놔둘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결코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갈대 지팡이일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애굽을 심판하심으로 자신이 “여호와인 줄을” 알길 원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서 앗아가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행동이 우리의 유익을 위한 행동이며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길 바라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내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교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이 에스겔 29장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일뿐인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시간 같이 말씀을 두고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애굽은 하나님께로부터 심판을 받게 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심판을 받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교만 때문입니다. 또한 이렇게 심판의 말씀을 하심으로 유다가 애굽을 의지하지 말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시간 오늘 말씀을 두고 기도합시다. 우리 주변에 있는 이 애굽과 같은 것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우리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 교만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 안에서 행복을 누리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이 시간 이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