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환자가 전한 좋은 소식

열왕기하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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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서론]
먼저 오늘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현재 북이스라엘은 시리아 군대에 포위되어 있습니다.
사마리아성은 천연의 요새라서 공략하는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전략은 수도 사마리아성을 고립시키는 것입니다.
안에서 굶주림에 지쳐 스스로 항복할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성안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기만 합니다.
성안은 극심한 기근으로 인해 큰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부정한 음식이라서 절대 먹지 않던 것들도 높은 가격에 팔립니다.
평소에는 짐승들이나 먹던 음식도 비싼 값에 거래됩니다.
이 상황은 단순히 기근의 문제를 넘어 영적이고 도덕적인 파탄이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현대 사회에서도 이런 비극적인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국가부도사태를 겪고있는 베네수엘라 상황이 그 예입니다.
경제가 붕괴되어 사람들은 쓰레기 통을 뒤지고,
어린 청소년들이 생존을 위해 성매매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도 합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상황은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합니다.
극심한 기근은 자신의 어린 자녀까지 잡아먹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단순한 굶주림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의 영적 상태가 얼마나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이런 비참한 상황인데도 이스라엘 왕은 원인 파악도 제대로 못한채 무능한 대응만 하고 있습니다.
왕은 전쟁과 기근의 근본적인 원인을 직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책임을 엘리사에게 뒤집어씌어 그를 죽이려 합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된 것은 엘리사 때문이 아닙니다.
왕과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죄악과 우상숭배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는 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엘리사를 비난하고 탓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영적 기근과도 깊이 연관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육체적 기근 속에 고통받는다면, 현대 사회는 영적 기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물질적 풍요 속에 살아가지만 진정한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적 굶주림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공허감과 불안,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공황장애, 우울증이 이제는 너무 흔한 병이 되고 말았습니다.
최근에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은둔, 고립 청년들이 약 54만명이라고 합니다.
또한 소위 쓰레기집에 사는 청년들이 너무나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게 단지 개인의 탓일까요?
사회구성원 전체의 책임을 말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영적 기근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수 있을까요?
[본론]
먼저 3절입니다.
갑자기 나병환자 네 사람이 등장합니다.
나병환자가 누구인가요?
그들은 부정한 사람으로 여겨져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소외된 사람들입니다.
공동체에서 쫓겨나 성밖 성문 어귀에 살고 있는 사람들 입니다.
그들 역시 시리아의 포위로 인해 겪는 고통이 이루 말할수 없습니다.
성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나라가 어려워지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성안에서 먹을 것이 공급되지 않으니 굶어죽을수 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극단적 상황 속에 이들은 과감한 결심을 합니다.
어차피 가만있으면 죽을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성안에 들어가도 먹을게 없으니 죽을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시리아 군대에게 항복하겠다는 것입니다.
시리아 군대가 자신들을 살려주면 사는 것이고, 죽이면 죽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속에서 가장 살 확률이 높은 선택을 한 것입니다.
굉장히 실리적인 선택입니다.
저는 이들의 선택을 보며 파스칼이 생각났습니다.
파스칼은 우리가 신앙을 선택하는 이유를 아주 실리적인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먼저 신을 믿는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때 신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신이 없더라도 우리가 믿음으로 인해 잃을 것은 전혀 없습니다.
다음은 신을 믿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때 신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
만약 신이 없으면 역시 특별한 손해는 없습니다.
그럼 신이 존재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어떤 선택이 가장 실리적 선택일까요?
당연히 신을 믿는 것입니다.
신을 믿으면 영원한 구원의 가능성이 있지만, 믿지 않으면 영원한 형벌의 위험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저또한 처음 예수님을 믿을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이 세상과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면 어떻게 될까?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면 내 삶은 어떤 경우에도 의미가 있다.
만약 하나님이 없더라도 나는 믿음으로 의미있는 삶을 살기때문에 손해볼게 전혀 없다.”
이게 제 결론이었습니다.
그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진정한 믿음이야?”
물론 믿음이란 실리적 이익만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실리적 합리적 사고도 믿음을 갖는데 도움을 줄수 있습니다.
특히, 논리적인 기독교 변증은 의심하고 회의적인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또한 우리의 믿음이 항상 확고한게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는 우리의 믿음이 때때로 흔들릴수 있습니다.
이럴 때 이런 합리적 판단이 우리의 믿음을 붙잡아줄수 있습니다.
나의 감정과 상황이 흔들릴때 신앙의 논리적 기초는 우리를 믿음으로 다시 돌아가게 만듭니다.
그럼 이제 시리아 진영 안으로 들어간 나병 환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잡혀서 죽임을 당했을까요?
그들이 들어가자 놀라운 광경이 그들을 맞이합니다.
진영 안에 시리아 군사들이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6절입니다.
하나님이 시리아 군사들에게 지진이 일어난것 같은 병거소리, 군마소리를 들려주셨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군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듣자 시리아 군사들은 두려움에 빠진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돕기 위해 주변의 강력한 군대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놀랐던지 혼비백산하여 음식과 귀중품들을 모두 버려두고 도망쳤습니다.
나병 환자들은 얼마나 신났을까요?
마음껏 먹고 마시고 그들이 두고 간 은과 금, 비싼 옷들도 모두 챙깁니다.
이렇게 놀라운 방법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병환자들의 마음에 한가지 중요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만약 우리만 놀라운 소식을 알고 누린다면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들에게 임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긴 것입니다.
이 생각은 단순한 공포가 아닙니다.
그들의 양심과 신앙적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구원의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성 안의 사람들이 굶어 죽을 것이고, 그 책임이 자신들에게 돌아올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이상, 그 은혜를 나누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죄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구원의 좋은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키셨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그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자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우리는 죄로 인해 부정한 상태였습니다.
나병환자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밖에서 죄로 얼룩진 영혼을 가진채 살아가던 이들이 바로 우리들이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복음의 좋은 소식을 주셨고, 우리는 구원받아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럼 나병환자였던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할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성환형제님이 제게 들려준 말이 있습니다.
장안동이 원래 퇴폐 안마방이 즐비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죄와 사망의 그림자가 그리워진 곳이 바로 장안동입니다.
영적 어둠과 기근으로 고통받고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들을 구원할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해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16 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아니면 하나님이 다른 사람 못 쓰시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반드시 자신이 복음을 전해야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병환자들이 가졌던 마음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이런 사명때문에 바울은 가는 곳마다 구원의 좋은 소식인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전도는 구원받는 자가 해야할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그 순간부터 전도는 우리의 책임과 의무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 땅으로 이사 온 것도 분명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통해 하실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해야할 일도 구원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사명을 소홀히 한다면, 우리도 나병환자들처럼 심판받을 수밖에 없다는 심정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 전파는 선택이 아닌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제 나병환자들은 좋은 소식을 곧바로 성문 문지기에게 알립니다.
성문 문지기는 기뻐하며 왕에게 이 소식을 알립니다.
그럼 이 소식을 들은 왕의 반응은 어떨까요?
쉽게 믿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루 아침에 그들이 아무 이유없이 떠날수 있냐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납득할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작 생각하는게 적들의 함정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왕의 이런 판단은 합리적으로 보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은 이 소식을 믿었어야 합니다.
앞서 엘리사가 예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믿지 못한 것은 엘리사의 말이 아닙니다.
그가 진짜 믿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한순간에 상황을 역전시킬수 있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신뢰하지 못한 것입니다.
인간적 상식과 눈에 보이는 현실만 의존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불신앙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왕은 정탐꾼을 보낸 후에야 이 사실을 확인하고 뒤늦게 믿게 됩니다.
불신앙때문에 구원의 좋은 소식을 즉각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입니다.
왕이 엘리사의 예언을 신뢰했다면 백성들은 더 빨리 구원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왕의 불신앙은 하나님의 구원을 지체시킨 것입니다.
또한 왕은 이 사실을 확인한 후에도 이 일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믿음은 항상 현실적 계산과 인간적 시각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기적의 목적은 믿음을 강화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왕은 기적을 통해 믿음이 자라날 여지가 없습니다.
그의 불신앙은 단지 하나님의 기적을 보지 못하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온전히 깨닫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제 정탐꾼들이 사실을 확인해주자 그때서야 기근에 지친 사람들이 성밖으로 마구 쏟아져 나옵니다.
시리아 진영에 남은 음식과 재물을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이 혼란을 통제하려고 왕은 자신 옆에 있는 장군을 성문관리자로 임명합니다.
그가 누구냐면 엘리사의 예언을 비웃고 조롱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의심한 그 장군은 결국 성문으로 쏟아져나오는 사람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밟혀 죽고 맙니다.
이는 엘리사가 예언한대로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히브리서 11장 6 절은 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상’은 영원한 구원을 의미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구원도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 달려있습니다.
그럼 우리 믿음의 현주소는 어떻습니까?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약속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습니까?
세상에는 현실적인 계산이 빠르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믿음은 단지 종교적인 상투어일 뿐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 믿음이란 내가 할수잇는 모든 것을 시도해본 후에 마지막으로 사용하는 차선책에 불과합니다.
그들에게 믿음이란 마치 믿어도 손해볼게 없는 ‘믿져야 본전’처럼 여겨지곤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이란 그런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신뢰하는 선택입니다.
이성적 사고와 현실적 계산은 중요한 도구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해서는 안됩니다.
믿음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드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는 것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분의 전능하심과 신실하심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이야기를 처음으로 읽는 사람들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무너진 그들이 던지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왜 망했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신 것인가?”
“과연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구원하시고 회복시켜주실 것인가?”
이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새로운 예배당에서 첫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점에 서 있습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게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수 없습니다.
나도 믿음이 없는데 어떻게 기쁜 구원의 소식인 복음을 전할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이 땅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영적 기근을 보아야 합니다.
세상은 영적으로 굶주린 사람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소식,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복음의 능력을 온전히 믿을때 우리는 담대히 복음을 전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이 곳으로 이끄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영적 기근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나누어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에 주신 사명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명을 이루어가는 복된 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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