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에 이르는 신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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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편 17:1-15(구약 812쪽)
설교제목 : 만족에 이르는 신앙생활
다윗의 기도
1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 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2 주께서 나를 판단하시며
주의 눈으로 공평함을 살피소서
3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
4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삼가서
포악한 자의 길을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5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
6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으므로
내가 불렀사오니
내게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7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9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10 그들의 마음은 기름에 잠겼으며
그들의 입은 교만하게 말하나이다
11 이제 우리가 걸어가는 것을 그들이 에워싸서
노려보고 땅에 넘어뜨리려 하나이다
12 그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
13 여호와여 일어나 그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14 여호와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 아이들에게
물려 주는 자니이다
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오늘 시편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탄원합니다. 탄원이라는 것은 자신의 사정을 호소해서, 도움을 구하는 행위를 말하는데요. 이 시를 읽어보면, 시인은 하나님을 재판장으로 삼고서, 자신의 처지를 호소합니다. 가령 자신은 의로운 사람인데, 원수들이 자신을 위협하고 있으니 그로부터 구원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인은 하나님께 탄원을 해나가면서, 원수들에 대한 감정이 변화해 갑니다. 저는 그것을 놓고서 신앙의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 시편 2절과 3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2 주께서 나를 판단하시며
주의 눈으로 공평함을 살피소서
3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
전체 내용을 놓고 볼 때, 방금 읽은 구절은 이렇게 들립니다. ‘나는 무죄합니다. 나는 흠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시인이 이것을 어쩌면, 분노에 차서 말하고 있지 않은가 합니다. 왜냐하면, 시인이 이와 같은 얘기를 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자신에게 불행이 닥쳤는데, 그 일이 대체 왜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다고 말해 올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하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자신의 원수들은 그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를 놓고 생각해 봅니다. 정말로 시인이 하나님 앞에 흠 없는 무죄한 사람인지는 모르지만요. 그가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고, 그것을 감히 하나님께 판단받고자 한다면요. 아마도 그는 그에 걸맞는 삶을 살아왔을 겁니다. 그와 같은 자신감이 아니고서 어떻게 하나님께 큰소리를 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좀 불편한 깨달음을 가지게 될지 모릅니다. 그것은 의로운 사람에게도 고난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진지하게 오랫동안 해온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순풍에 돛 단것처럼 살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이미 성경을 통해서도 확인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위인들이 늘 평안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크고 작은 위기를 만났고 그 위기를 통과하면서 더욱더 신앙의 성숙을 이뤄갔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여기 계신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우리의 열심과 의로운 삶이 고난을 없애거나 피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도 오늘 시편의 시인처럼 분노할 수도 있습니다. ‘남들에게 아무런 해를 주지도 않고 살았는데, 나에게 이런 불행이 찾아왔느냐고 말이지요.’ 그리고 우리의 인생이 참으로 견고하고 성실할 수록 그 분노는 더욱더 커질지도 모릅니다. 내 삶을 자부하는 것만큼 우리는 당당할 수 있을 것이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어쩌면, 분노는 성실한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삶에서 고난이 찾아올 때, 너무 속상해 하시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내 삶이 잘못되었다는 반증은 아니니 말입니다.
계속해서 오늘 시편 11절과 12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1 이제 우리가 걸어가는 것을 그들이 에워싸서
노려보고 땅에 넘어뜨리려 하나이다
12 그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
방금 읽은 구절은 말해줍니다. 시인의 원수들이 시인을 공격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공격이 워낙 거세고 위협적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원수들의 모습이 마치 사자와 같고, 그들에게 찢겨질 것 같습니다. 아마도 시인의 이런 말 속에는 원수들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아마도 원수들에 대한 분노로 시작한 시인의 감정은 두려움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맞서 싸워야 하는 적이 너무 강하고 거대해보여서 두려움이 밀려올 때 말입니다. 그 두려움은 현재의 우리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지금껏 해왔던 일들에 대해 부정하거나, 포기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가령 내 안의 목소리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안 돼 잖아, 포기해, 너가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와 같은 무력감은 우리를 후퇴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것이 원수 또는 적의 목적입니다. 분명 적은 강해보일 수 있습니다. 마치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을 때, 그들 중 10명의 정탐꾼이 자신들을 메뚜기에 비유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말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의 운명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결국 그 말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은 2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2명의 정탐꾼이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얘기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말이죠. 그리고 2명의 정탐꾼의 보고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을 떠돌다가 그곳에서 죽어야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과정에서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원수 사단의 계략이고, 그 계략에 빠지면, 우리의 삶은 더욱더 불행의 길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종종 그렇게 기록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두려워 말라’라고 말입니다. 물론 신앙생활은 한편으로 두려움을 경험할 수 있음을 또 알게 됩니다. 오늘 시편의 시인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신앙생활에서 두려움은 극복해야 함을 잊지 말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오늘 시편 15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오늘 시편의 마지막 구절에 이르러서 시인은 만족감을 느낍니다. 그것은 더 이상 앞서 보았던 것처럼, 원수에 대한 분노도 두려움도 없어진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것을 달리 말해보자면, 기쁨이나 행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시편을 통해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시인의 감정이 마지막에 만족으로 또는 기쁨과 행복에 대한 것으로 바뀐 것 말입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가 아닐까 합니다. 결국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기쁨과 행복에 따른 만족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신앙생활을 통해 우리가 기쁨과 행복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신앙생활이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기쁨과 행복의 길로 이끌 것이고,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하게 될 것을 믿고 소망합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을 통해 이 길에 이르는 과정을 돌이켜 보면 이렇습니다. 시인에게는 스스로가 의롭다 자부할만한 삶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였기 때문에 그와 대조되는 원수들에 대한 분노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시인은 강력한 원수들로 인해 두려워합니다. 어쩌면, 그는 거기에서 이전의 열심들을 포기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행히 시인은 거기에서 멈추거나 후퇴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서 계속 나아갑니다. 그리하여 시인은 마침내 만족스러운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신앙생활은 힘들고 어려운 과정들을 통과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과정을 오롯이 통과했을 때, 우리는 신앙생활을 통해 행복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어려움이 닥친다고 해서, 두려워하거나 그로 인해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영광에 이르는 길은 생각보다 멀고 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시인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그 분으로 인해 만족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마주했을 때, 다시 말해, 하나님과 가까워졌을 때, 시인은 분노와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 만족에 이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나 자신 또는 원수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인 것이지요. 물론 그것은 나를 살피고 원수들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하면서 이룩될 것일지 모르지만요. 결국 우리는 주님을 바라봄을 통해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바라건데, 오늘 우리 성도님들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열심이 우리를 분노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적들이 두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해서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 우리는 만족할 만한 기쁨과 행복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신앙생활을 해나가시는 우리 성도님들 다 되시길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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