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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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가복음 2:9-12(신약 54쪽)
설교제목: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마가복음을 읽어나가면서 놓치지 말아야할 것은 예수님이 누구시냐하는 것입니다. 본래 마가복음을 비롯하여 복음서라고 불리는 마태, 누가, 요한복음은 모두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고자 기록된 책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성경 구절을 읽으면서 우리가 우선적으로 생각할 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 분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각자가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이해가 있을 줄 압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구절은 예수님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을까요? 오늘은 이에 관해 짧게 나누고자 합니다.
우선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이 무엇인지를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한 중풍병자를 치유하십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에 관한 꽤 유명한 이야기여서 간략하게 소개드리겠습니다. 몸을 자유로이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서만 생활해야해던 한 중풍병자를 그의 친구들이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를 치유하신 일이 소문이 나서 이미 예수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있었습니다. 그때 중풍병자의 친구들은 예수님이 머물러 있던 집의 천장을 뚫고 예수님 앞으로 중풍병자를 내려놓습니다. 많이 들어보신 이야기이지요.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서 중풍병자의 친구들의 우정과 믿음과 헌신을 본받으라는 종류의 설교를 듣기도 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단지 치료만 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앞선 마가복음 2장 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작은 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다’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으로 인해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 속하는 어떤 서기관의 마음에 파문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7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예수님이 중풍병자의 죄를 용서한다는 말을 듣고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그것을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위로 본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러한 종교지도자들의 생각을 아시고 예수님 주변에 모인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 구절입니다. 다시 그 말씀을 같이 읽습니다. 마가복음 2장 9절에서 12절의 말씀입니다.
마가복음 2:9-12(신약 54쪽)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단지 병든자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는 분만이 아닙니다. 그 이상의 존재입니다. 이에 관해 방금 읽은 성경 구절 가운데 먼저 우리가 주목해 볼 것은 10절에 나오는 “인자”라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가르켜 ‘인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말그대로 풀면,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구약성경 다니엘서 7장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면 다니엘서 7장에 등장하는 ‘인자’는 당시 포로로 타국에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자를 말합니다. 결국 예수님은 자신이 구원자 곧 메시아 또는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사실을 인자라는 표현을 통해 간접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또 10절에 나오는 “죄를 사하는 권세”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앞서 말씀드린 7절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서기관은 예수님을 신성모독자로 생각했는데, 그 까닭은 예수님이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였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예수님이 죄를 사하는 권세를 지녔다는 것은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시다라고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이 우리에게 생소하거나 새로운 말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그렇게 믿고 있고 실제로도 우리는 예수님을 예수 그리스도 곧 구원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마가복음을 통해 소개되는 예수님에 관해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삶은 어떤 것인지를 좀더 깊이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이 그저 생각에만 그친다면, 그것은 우리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도 못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 또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앞서 우리가 읽었던 성경구절에 근거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12절에 보면, ‘중풍병자는 치유함을 받고 자신이 누웠던 자리를 가지고 밖으로 나갑니다.’ 그의 삶을 묶고 있던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예수님께 구원받은 인생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를 묶고 있던 것으로부터 벗어나 완전히 새로워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구원받은 인생인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죽어서 천국가는 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만약 그것만이 구원이라면, 신앙인으로써 오늘을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죽어서 천국을 가는 것이 지금의 삶을 사는 것보다 좋을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은 그렇지 않습니다. 죽어서 천국가는 구원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서 우리의 인생이 새로와지고 변화되어지는 것입니다. 곧 이 땅에서의 삶에서부터 천국을 누리고 경험하는 것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약간의 오해가 있곤 합니다. 마치 그것은 이 세상에서 복을 받는 것 다시 말해, 건강하고 돈 잘 벌고 해서 안락하게 살아가는 것을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는 것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과는 다릅니다. 단지 세상이 우리에게 부추기고 심어주는 복의 모습일 따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잘 믿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던 사람들의 삶이 세상이 말하는 복과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잘 믿는 사람이 모두 부자가 되었습니까? 하나님 잘 믿는 사람이 모두 무병장수 하였습니까? 또 삶에서 아무런 고통 없이 살았습니까?
우리가 몸소 경험하는 바이지만,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 모두 부자되거나 무병장수하거나 편안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여러 인물들만 봐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은 대체로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하거나 여러 박해를 받아야 했습니다. 또 우리가 잘 아는 사도 바울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가 예수님 믿다가 오히려 더 삶이 힘들어졌지 결코 예수님으로 인해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지는 않았습니다. 그 외에도 오늘 살아가는 많은 신앙의 선배들의 삶이 마냥 좋거나 하지 않음을 잘 아실 겁니다.
그러니 예수 믿고 구원받아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는 삶이 세상에서 말하는 복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으로 인해 변화된 삶을 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담임목사님이 종종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살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정말로 이러한 삶을 살 수 없었을 거라고’ 말입니다. 우리 성도 분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삶이 더 괜찮아 졌을까요? 어쩌면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해서 지금과 같은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요?
저는 예수 믿고 구원받아 사는 인생이 더 복되고 괜찮다고 믿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 능력은 결코 하나님께 미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사는 것이 제 능력에 의지해 사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고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없다면 모르겠는데, 하나님이 계시다면 분명히 그분께 의탁하여 사는 삶이 훨씬 더 가치있음을 저는 확신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겁니다.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고 산다고 여겨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기준에서 묶여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문제만 해결되면, 내 삶이 더 행복해지고 더 완전해 질 것이라고 여기며 세상의 가치를 하나님께 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은 인생은 거기에 묶여 있는 인생이 아닙니다. 오늘 성경 이야기는 우리에게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중풍병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갑니다. 이는 그가 묶여 있던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음으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오늘 우리에게도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그로 인해 변화된 새로운 삶이 있기를 원합니다. 세상이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을 구하며 그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귀한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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