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바알세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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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가복음 3:20-30(신약 57쪽)
설교제목: 예수와 바알세불
20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23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25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26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27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30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인기가 많은 이의 삶은 어떨까요? 저는 그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와서 잘 모릅니다. 다만, 인기가 많다고 해서 꼭 좋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른바 ‘안티팬’이라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이들 역시 인기인에게는 많이 있는 법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오늘 성경의 이야기 속에서도 봅니다. 마가복음 3장 20절에서 22절을 같이 읽습니다.
마가복음 3:20-22(신약 57쪽)
20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예수님은 이땅에서 사역할 당시에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식사할 겨를도 없이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들었습니다. 그 까닭은 예수님께서 여러 병든 자와 귀신들린 자를 고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역에도 안티팬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예수님의 친족들이기도 했고 멀리 예루살렘에서 온 서기관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안티팬들은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했고 그가 바알세불 곧 귀신의 왕에 씌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보았던 이야기지만 예수님은 당시에 중요한 율법, 특별히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관한 율법을 어겼습니다. 안식일에 밀이삭을 베어먹은 제자들을 변호했고,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쳤습니다. 이는 당시로써는 심각한 금기를 깬 것입니다. 마치 일제시대에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것과 다를 바 없는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친적들과 율법을 기록하고 가르치는 서기관의 입장에서 예수님을 정상적이라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에 관해 강하게 자기를 변호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3장 23절에서 27절을 같이 읽습니다.
마가복음 3:23-27(신약 57쪽)
23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25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26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27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예수님의 말씀을 쉽게 설명하자면 이런 겁니다. ‘만약 내가 사탄의 힘을 이용한 것이라면, 사탄이 사탄을 내쫓은 것인데, 같은 편끼리 싸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그러면 망하게 된다. 그러나 내가 사탄을 내어 쫓을 수 있었던 것은 그보다 강하기 때문이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깐 예수님은 사탄의 힘을 입어서 사역하는 것이 아니고 그보다 더 크신 분의 힘을 입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덧붙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3장 28절에서 30절을 같이 읽습니다.
마가복음 3:28-30(신약 57쪽)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30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예수님은 사람이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는 죄가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하는 죄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귀신이 들렸다고 말한 사람들을 향해서 성령을 모독하는 일임을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대적자들에게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한편 저는 이것이 예수님께서 몹시 화가 나셨거나 흥분된 상태였음을 짐작하게 됩니다. 마치 예루살렘 성전에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고 장사치들의 상을 뒤엎었던 과격한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가 알고 믿고 있기로 예수님께서 이렇게 다혈질적인 모습을 보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약자의 친구가 되어주실 정도로 친절하고 또한 오늘 성경 이야기 속에 나오는 것처럼 끼니도 거르시고 많은 병든자를 치료하시는 훌륭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격양된 반응을 보이시는 것일까요?
어쩌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알세불에 지폈다거나 귀신 들렸다’는 말이 몹시 불쾌하셨다고 여겨집니다. 예수님도 사람이셨으니 당연히 이러한 반응을 하실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감정적인 문제로만 여겨지지 않습니다. 훗날 우리는 알고 있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고 예수님을 ‘호산나’라고 환호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치기에 이릅니다. 오히려 이러한 상황이 더욱더 감정이 상하고 분노가 끌어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담담히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오늘 예수님의 반응이 기분이 상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저는 앞선 마가복음의 구절을 살피면서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정체가 함부러 발설되는 것을 막으십니다. 예를 들면, 귀신 들린 자가 예수님의 정체를 밝히자 그를 꾸짖으십니다. 또 어떤 나병 환자에게는 예수님이 치료하신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아마도 예수님의 정체가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는 것을 막으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신에 관한 얘기를 떠벌리지 못하게 하셨지만, 스스로는 공공연히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십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에서 손 마른 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나타내고자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직접 자신의 정체를 사람들에게 보이심으로 오해를 사지 않으려 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어쩌면, 오늘 성경 본문에서 자신이 바알세불 또는 귀신에 힘을 빌린 사람으로 오해되는 것에 관해 강하게 항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로부터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이 바알세불과 관계없다는 것을 강력하게 변호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의 자신의 사역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있음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이는 예수님과 바알세불은 같은 길을 걸을 수 없으며 성령과 바알세불은 관계가 없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하는 것은 바알세불이 아니라 성령을 따르는 일이 됩니다. 그러면 성령을 따르는 일이 무엇인가하고 물을 수 있는데요. 오늘 성경 말씀을 놓고보면, 이렇게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바알세불을 따르지 않는 일입니다. 바알세불은 귀신의 왕이란 뜻으로 사탄의 별칭입니다. 놀랍게도 성경은 사탄이 ‘이 세상의 신(고후 4:4)’이라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세상의 가치와 질서를 따르는 것은 사탄에 종노릇하는 것이고 바알세불을 따르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의 인도함을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바알세불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성령이 인도함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자 한다면 세상의 가치와 기준에 서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말씀이 이것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오늘도 이 말씀에 의지하여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살기를 원합니다.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세상이 제시하는 기준과는 다른 삶을 살아내는 우리가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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