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환자 이야기
성산교회 오후 예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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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사람이 있더니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만일 우리가 성읍으로 가자고 말한다면 성읍에는 굶주림이 있으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만일 우리가 여기서 머무르면 역시 우리가 죽을 것이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살 것이요 우리를 죽이면 죽을 것이라 하고
아람 진으로 가려 하여 해 질 무렵에 일어나 아람 진영 끝에 이르러서 본즉 그 곳에 한 사람도 없으니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 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해질 무렵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영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그 나병환자들이 진영 끝에 이르자 한 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니라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하고
가서 성읍 문지기를 불러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아람 진에 이르러서 보니 거기에 한 사람도 없고 사람의 소리도 없고 오직 말과 나귀만 매여 있고 장막들이 그대로 있더이다 하는지라
들어가며
들어가며
할렐루야, 이른 아침부터 오후 시간까지 주님 앞에 나아와 예배 드리는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충만케 되기를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이 시간도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나아갈 때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 깨닫게 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이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본론
1. 본문의 내용
1. 본문의 내용
오늘 본문의 내용에서 북이스라엘은 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아람의 군대가 북이스라엘을 침략하고자 사마리아를 포위한 상태입니다. 포위를 당한 북 이스라엘의 상황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그것의 한 예로 이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자신의 자녀를 죽여서 먹는 말도 안되는 상황을 보내고 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늘 본문은 성문 안에서 밖으로 시선을 바꾸어 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성문 밖에는 네 명의 나병환자가 있습니다. 이 당시 나병환자는 사회적으로 버림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일반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이었고, 정말 아무 것도 보잘 것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었고, 성문 밖에서만 조용히 살아야만 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성 밖에서 지내는 자들이었고 버림 받은 자들이었기 때문에 사회적인 기능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기에 자급자족을 하면서 산다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었고,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의 어느 정도 도움이 있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 한 예가 먹는 것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보고 있지만 지금 북 이스라엘의 상황은 매우 심각합니다. 따라서 자신들이 먹고 살기에도 어려운 때에 성 밖에 있는 나병환자들을 신경쓰고 챙겨준다는 것은 더욱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자녀도 죽여서 먹는 상황에 당연히 나병환자들은 안중에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나병환자들이 여기서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는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성으로 가도 먹을 게 없어서 죽을 것이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다고 해도 이 역시 죽을 것이고, 그래서 그들이 결심하기로 아람의 진영으로 가야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거면 차라리 아람으로 가서 죽임을 당하든지, 잘 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나병환자들은 아람의 진영으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아람의 진영에 가니 그들의 군대가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니, 하나님이 그들에게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셔서 아람 군대가 겁을 먹고 도망을 간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가져갈 것도 챙기지 못하고 부리나케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니 이 나병환자들이 먹고 마시고, 금과 은도 챙기고 잔뜩 신이 난겁니다. 그렇게 즐거움을 즐기던 중에 한 사람이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고 이것을 왕궁에 알리자고 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그 즐거움을 잠시동안 만끽하고 성읍으로 가서 아람 군대가 도망 갔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보았던 본문의 내용입니다.
2. 삶의 적용
2. 삶의 적용
오늘 보았던 나병환자들의 모습을 보면 단순히 그들이 운이 좋아서 생명을 건지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신앙적으로 적용하여 돌아보고 생각해 보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1) 영적인 생명의 민감함이 있는가?
먼저는 내 모습 가운데 ‘영적인 생명의 민감함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나온 나병환자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세 가지의 선택이 있었습니다. 성읍으로 들어가는 것,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 암몬의 진영으로 가는 것, 그런데 이 모든 방법들은 사실 다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병환자가 성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돌에 맞아 죽을 것을 각오하며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는 것도 먹을 것이 없으니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암몬의 진영으로 가는 것도 자살행위와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죽음을 무릎쓰고 암몬의 진영으로 가게 됩니다.
이 나병환자들처럼 보통의 사람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 그에 따른 방법을 찾아 행동합니다. 왜냐하면 그 상태로 가만히 있다가는 정말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것은 이러한 모습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민감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생명, 지금 내 모습에 있는 영적인 생명이 죽어가고 있는지 그것을 아는 민감함이 분명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는 상태에서 내가 진짜로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게 점점 생명을 잃어가게 되고, 결국에는 그 무기력함으로 인해 영적으로 죽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러한 모습은 개구리를 물에 넣고 물을 서서히 끓이는 것과 같습니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바로 넣으면 개구리가 뜨거움을 느끼고 바로 뛰어 오르지만, 서서히 물의 온도를 높일 때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개구리는 서서히 죽어갑니다. 안타까운것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하는 우리의 모습에서 이러한 모습들이 참으로 많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냥 형식적으로, 습관적으로 종교행위는 하지만, 그 모습에 열심은 있지만, 지금 내 영이 생명으로 충만한지, 죽어가는지 모른 채로 흘러가는 대로 산다는 겁니다. 그러다 결국 힘을 잃어버리고 지쳐서 주저 앉게 되어버리겠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영적인 생명의 민감함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스스로 마음속으로 질문해 보시겠습니까? 나는 지금 영적인 민감함이, 생명의 민감함이 충만한 상태입니까? 우리는 이 영적인 민감함이, 생명의 민감함이 충만한지 늘 말씀을 통해 돌아보고 점검해야 합니다.
(2)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있는가?
다음으로 우리가 돌아보아야 하는 것은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나병환자들은 생각지도 못한 기쁜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아람의 진영으로 들어 갔는데 아람의 군대가 없었던 것이었죠. 게다가 얼마나 급하게 도망을 갔는지 무엇하나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고 도망을 가서 그곳에는 먹을 것과 금과 은이 가득했습니다. 그렇게 기쁨을 만끽하는 중에 한 사람이 이 사실을 돌아가서 알리자고 말합니다. 그렇게 그들은 그 아름다운 소식을 기쁜 소식을 성읍으로 돌아가서 전하게 됩니다.
이 장면을 보며 나병환자가 보였던 아름다운 소식을 전했던 그 모습이 우리의 모습에도 있는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서 복된 소식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복음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지요. 이 복된 소식을 나만 알고 누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모든 이들에게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본분입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있는지 돌아보기 전에 분명히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내 모습에 영적인 생명의 민감함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 모습에서 영적인 민감함으로 인해 주님으로부터 오는 기쁨과 은혜가 있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 기쁨과 은혜가 내 모습 가운데 분명할 때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아름다운 소식을 참되게 전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영적으로 시들어 가고 있고, 그로 말미암아 주님으로부터 오는 기쁨과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데 복음을 전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단순한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아름다운 소식, 복음이라는 것을 전하고 있는지 돌아보기 전에 내 모습의 영적인 민감함을 먼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3. 내가 해야 할 것
3. 내가 해야 할 것
그래서 방금 말씀 드린 것처럼 오늘 말씀에 나온 나병환자들의 이야기를 보며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했을 때 두 가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영적인 생명의 민감함이 있는가?’, 그리고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있는가?’ 이 두 물음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해야 할 것, 나아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먼저는 나병환자들이 보였던 것처럼 죽음을 각오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나의 신앙이 무기력하다고, 내 삶에 아무런 힘이 없다고 주저 앉아 있는 것으로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아까도 보았지만 성문 밖에 있는 나병환자들의 상황이 어떠했겠습니까? 그 어느 누구보다도 희망이 없는, 소망이 없는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만약 그들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면 무기력한 채로 죽음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아람의 진영으로 가겠다는 결단을 내립니다. 그 목숨을 걸었던 결단이 그들의 생명을 유지하고, 큰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했습니다.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필요한 모습이 바로 이러한 모습입니다. 신앙 앞에 목숨을 거는 모습, 다시금 일어나서 생명을 간구하는 모습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전 코로나가 한창일 때 매일 외쳤던 메시지가 코로나로부터 오는 무기력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코로나가 끝이 나면 자연스럽게 회복이 되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전히 지금까지 그 무기력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우리 기독교 안에 상당합니다. 이제는 그것이 너무나 익숙해졌고, 자연스러워졌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열심을 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귀찮고 미련해 보이는지, 그런 마음들이 마음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겁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목숨을 건다는 생각으로 그 마음에서 분명하게 벗어나야 되는줄로 믿습니다. 그러한 발버둥이 없으면 신앙의 회복, 부흥과 성장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것을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산의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값진 사랑의 보혈을 십자가의 사랑을 무기력한 것으로, 의미없는 것으로, 그저 그런것으로 내버려두지 않기를 이 시간 간곡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아름다운 복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병환자들이 아람의 진영에서 기쁨을 누리는 중에 한 명이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본문의 9절 말씀입니다.
열왕기하 7:9 (NKRV)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하고
자신들이 마주한 그 아름다운 소식을 침묵하지 말고 알리자고 말합니다. 물론 날이 밝아서 자신들이 알리기 전에 발각이 되면 그 뒷일이 두려워서 알리고자 하는 모습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를 반면 교사 삼아야 겠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징계를 무서워함으로 우리가 복된 소식을 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은 사실에 대한 기쁨과 누리는 은혜가 족하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내 삶을 다해 이 복음을 전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아까 말씀 드렸던 것처럼 지금까지 내 모습에서 영적인 무기력함으로 인해 내가 누리고 있는 복된 소식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제는 나의 모습을 되돌아 보고 회복함으로 아름다운 기쁜 소식을 담대히 전할 수 있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축복인 복음은 결코 나만 알고 누리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나를 사랑하셨듯이 모든 이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모든 이들에게 전하라는 분명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기쁨과 은혜를 누리며 그것을 담대히 전하며 나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리
정리
오늘 6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7:6 (NKRV)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 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주님의 역사로 하여금 아람 군대는 도망을 가고, 나병환자를 비롯한 이스라엘은 한숨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주님의 역사는 오늘날도 분명히 일어납니다. 이스라엘이 겪고 있었던 그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도 주님의 역사가 나타났듯이 오늘날 나의 상황이 어떠하다 할지라도 주님의 역사는 분명하게 일어납니다.
오늘 말씀을 돌아보며 영적인 생명의 민감함을 다시금 일깨우고, 아름다운 복된 소식을 담대히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나병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으로 담대하게 나아갈 때 주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은혜가 우리 가운데 차고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기도
기도
하나님, 오늘 말씀을 돌아보며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돌아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하고 열심을 내었던 모습, 하나님과 멀어진 채로 그것을 알지 못하며 영적인 무기력함으로 살아갔던 우리의 모습들을 돌아봅니다. 주님, 이제는 영적인 생명의 민감함이 있게 하여 주셔서 늘 주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맺는 삶이 되게 하시고, 그 관계 속에서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무너진 채로 주저 앉아 있지 않게 하시고, 다시금 주님을 바라보며 관계와 사랑이 회복 되는 모습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또한 주님이 주신 아름다운 소식을 담대히 전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영적으로 무기력한 모습에서 그쳐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지 못했던 모습을 돌이키며 회개하오니, 이제는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그 사랑을 누림으로 하여금 복된 소식을 많은 이들에게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는 것을 지식으로써 전하는 것이 아닌, 내가 만난 주님, 기쁘고 감사가 가득한 주님을 전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전하는 모습에서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올바로 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담대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 성산교회 성도님들이 오늘 말씀에 따라 영적인 생명을 가지고 담대히 살아가는 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가운데서 무기력한 모습으로 나아가지 아니하게 하시고,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은혜로써 늘 담대하며, 지혜로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 모습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이게 하시고, 많은 이들이 그 모습을 통하여 주님께로 나아오는 역사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모든 것에 감사드리며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