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에 교훈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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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가복음 3:1-6(신약 56쪽)
설교제목: 안식일에 교훈에 관하여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혹시 목 전체에 황동으로 된 쇠고리를 감고 있는 여인들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들은 미얀마와 태국에
흩어져 사는 카얀족 여인입니다. 혹시 궁금하시면 인터넷으로 ‘긴 목 여인’ 또는 ‘카얀족’으로 검색하면 볼 수 있습니다. 종종 세계의 오지를 탐험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그들이 소개가 되곤 합니다.
카얀족 여인들은 이르면 5살부터 목에다가 황동 고리를 차기 시작해 평생에 걸쳐 25개 정도의 고리를 차고 다닙니다. 이것은 카얀족 여인들에게는 미인의 기준이 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목에 많은 고리를 감고 있을 정도로 긴 목을 가진 여성일수록 아름답다는 것이죠. 또한, 이것은 그들의 전통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모든 여성에게 강제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이렇습니다. 본래 카얀족 여인들이 목에 고리를 걸게 된 것은 야생동물의 습격을 막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남자들이 사냥을 갈 때, 종종 마을에 맹수들이 내려와서 사람들을 공격했다고 하는데요. 쇠고리를 착용해서 여성들과 아이들을 맹수의 이빨로부터 보호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것이 전통으로 또는 미의 기준으로 탈바꿈해 현재에 이른 것입니다.
문제는 그 황동 고리의 무게로 쇄골과 갈비뼈가 내려앉고 몸에 변형을 가지고 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통이고 문화라고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강제되어 오는 상황은 결코 좋아보이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들에게는 자발적으로 행해지는 풍습이라고 할지도 모르나 그것이 당연하게 여기지는 사회에서 그 반대에 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마치 북한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너무 당연시 되어서 문제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것들이 때로는 문화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오늘 성경이야기에도 그러한 문화가 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율법으로 정해진 엄격한 규범이었습니다. 이를 어긴다는 것은 당시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안식일에 관한 규정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에서 예수님은 이 안식일에 관한 규정을 의도적으로 어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과 논쟁하여야했고 심지어는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렇게 위험한 일을 하신 것일까요? 여기에는 예수님의 숨은 의도가 있는 듯 합니다. 안식일에 관한 교훈을 주기 위한 의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안식일에 관한 교훈이 무엇인지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안식일에 관해 설명드리면 이렇습니다. 안식일의 기원은 이러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여섯째 날까지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는 쉬셨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 주의 일곱번째날을 쉬는 것이 안식일입니다. 요일로 말하자면, 토요일인데, 토요일이 일곱번째 날인 것은 주일부터 한 주가 시작되는 전통에 따라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은 우리가 잘아는 것처럼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십계명에서 거룩히 지키라고 명령된 날입니다. 그러니 모세의 후손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은 율법으로써 철저하게 지켜져야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지 않고 일요일을 안식일 더 정확히는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고 있을까요?
이에 답하자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바로 일요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은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 날이 바로 일요일인 것이지요. 그래서 초대 교회 때부터 일요일을 ‘주님의 날’이라고 해서 ‘주일’로 안식일처럼 지켜온 것입니다.
그런데 안식일을 잘 지키라는 율법이 있었기 때문에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리하여 어떻게 하면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인지를 종교지도자들이 여러 세부 규정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에도 보면 환자를 치유하는 것을 안식일에 금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단 예외적으로 죽음이나 출산 등 아주 시급한 경우에는 치료가 허용되었습니다. 또 성경 구절이 길어서 읽지 않았지만,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 앞에도 안식일에 관한 논쟁이 2장 23절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지만, 안식일에는 추수를 하는 것 또는 밀이삭을 자르는 것 따위의 일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안식일에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었고 이를 어기는 것은 안식일을 잘 지키지 못한 것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손에 장애가 있던 사람을 치유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보다 앞선 이야기에서는 예수님이 직접 하신 것은 아니지만, 그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베어 먹는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야한다는 율법 곧 하나님의 법을 어긴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관해 예수님은 결코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거나 이 일을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이 일을 일부러 사람들에게 보이심으로써 이 일에 관해 더욱 당당한 모습을 보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을 보면, 예수님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주목받는 상황 가운데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치유 행위를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실수로 하신 일이 아니라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하신 일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마가복음 3장 4절에서 5절을 통해 이를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같이 읽습니다.
마가복음 3:4-5(신약 56쪽)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예수님이 손에 장애가 있는 사람을 고치시기 전에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지 않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에 ‘잠잠했습니다’ 분명 예수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안식일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옳다는 것에 동의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쉽게 동의를 표하지 못합니다. 맞는 말인 것 같은데, 그 동안 자신들이 지켜왔던 것이 무너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일 겁니다.
그런 경우 있잖아요. 상대의 말이 옳은데, 내 자존심이 그것을 인정하지 못해서 끝까지 못받아 들이는 경우 말입니다. 그것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면, 더욱더 어려운 일일 겁니다. 설교의 시작에 목에다 황동 쇠고리를 감고 사는 카얀족 여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이 고수하는 전통과 문화라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것인지를 알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세상에 알려진만큼 그들도 세상을 알게되었을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까지 그 문화를 바꾸지 않고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지켜온 것이 헛된 것이 되지 않으려 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그들은 쇄골과 갈비뼈가 눌려지는 황동 쇠고리 무게를 계속해서 견뎌내야만 하는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 안식일의 규정 어기는 예수님의 모습에는 이러한 답답함과 분노가 있는 것입니다. 잘못된 문화와 전통이 사람들을 옭아매고 부자유스럽게 만드는 것이 큰 문제라고 보신 것입니다. 안식일은 도리어 사람을 안식하게 하고 자유하게하는 날이 되어야 하는데, 당시 안식일의 규정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당시 안식일에 관한 규정이 잘못되었음을 사람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했거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주시는 안식일의 교훈을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것을 지키도록하신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우리가 보다 더 인간적이고 좋은 삶을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손에 장애 있는 사람을 고쳐주심으로 그의 삶을 더 온전케 하십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 옳다고 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더 좋은 삶을 이루도록 하십니다.
이를 바탕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안식일 또는 주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한 특별한 시간입니다. 매 주일 우리는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하고 이 시간을 구별함으로 더 좋은 삶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그동안 분주한 삶을 살아내느라 미처 이룩하지 못했던 선을 행하기에 힘쓰고 생명 살림에 관심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주일은 더 많은 선을 행하고 더 많은 생명을 살리고자 아침부터 오후까지 분주한지도 모릅니다. 또 이것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라건대, 오늘 주일을 맞이하며 선을 행하고 생명살림에 관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주일을 보냄으로 진정으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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