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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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열왕기상 17:8-16(구약 545쪽)
설교제목: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십시오.
8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10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11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12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13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1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5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6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우리 서로를 축복합시다.
‘감사합니다. 당신과 함께 예배해서 행복합니다.’
# 축복후
설교에 앞서 짧은 영상 한편을 준비했습니다. 먼저 영상을 보고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 영상: 4분 26초
오늘 하루 어떻게 보내셨나요?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셨나요? 요즘은 날씨가 덥고 습해서 처한 환경에 따라서 고생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밖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고 불쾌감이 올라가니 말입니다. 그런데 고생했더라도 하루를 보람있게 보내셨나요? 좀 거칠게 말해보자면, 오늘 주님이 부르셔도 후회 없는 삶을 사셨나요?
저는 매일 그렇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인데, 실상은 후회가 남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우리에게 후회 없고 만족스러운 삶 달리 말하자면, 행복한 삶을 줄 수 있을까요? 앞서 영상을 통해 보여드렸지만, 많은 사람은 돈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믿습니다. 다시 말해, 부자가 되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앞선 영상을 통해 보았지만, 돈으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이나 행복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부자가 행복한 것이 아니고 돈으로만 행복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에게 행복을 또는 만족스러운 삶을 줄 수 있을까요? 우리 성도 분들 각자가 옳다고 여기는 바가 있을 줄 압니다. 어쩌면 그것이 앞서 본 영상에서는 부정당했지만, 그래도 돈이 행복을 줄 것이라고 여길 분도 있을 겁니다. 실상 우리 주머니와 은행 잔고가 넉넉할 때, 그렇지 않을 때보다 좀 더 안정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 안에서 얻을 수 있는 답은 사실은 한 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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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통해 만족스러운 삶에 이를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이야기도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를 설명하기에 앞서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의 내용을 간략히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제가 인용할 성경 구절이 어떤 것인지 보다 잘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 이야기를 간단하게 말하면 엘리야가 한 과부를 만난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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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는 잘 아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한 과부를 찾아갑니다. 한편 이 과부는 사르밧이라는 지역에서 외아들과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흔히 이 여인을 사르밧 과부라고 부릅니다.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를 만난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사르밧 과부에게 가서 숙식을 얻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의 형편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집엔 겨우 한 끼를 때울만한 밀가루와 기름이 조금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그 과부의 집에 밀가루와 기름이 마르지 않게 하셔서 엘리야와 그 집의 식구들이 여러 날을 주리지 않고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이야기의 대략적인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 속 성경 구절을 바탕으로 우리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를 살피고자 합니다. 먼저 열왕기상 17장 9절의 말씀을 다시 한번 같이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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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7:9(구약 545쪽)
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방금 읽은 성경 구절은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명령하시는 장면입니다. 사르밧 여인에게 숙식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성경 구절에서 주목할 것은 이러합니다. ‘왜, 하나님은 사르밧 과부에게 가라고 말씀하셨고 또 그에게 숙식을 얻으라고 한 것일까요?’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은 사실 엘리야에게 매우 곤욕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르밧이라는 지역과 과부라는 대상 때문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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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사르밧이라는 지역을 지도로 살펴보면 그곳은 이방 땅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곳은 다른 나라이고 이스라엘 밖입니다. 엘리야는 당시 이스라엘 북쪽왕국 곧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예언자였습니다. 그런데 국외로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당혹스러운 것이었을 겁니다. 또한, 사르밧은 시돈이라는 나라에 속한 마을입니다. 엘리야에게 시돈은 매우 위험한 지역입니다. 왜냐하면, 시돈은 이세벨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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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엘리야는 하나님의 대적자인 바알과 아세라 숭배자들과 갈멜산에서 그 유명한 대결을 펼치는데, 이 바알과 아세라 숭배자들의 강력한 후원자가 이세벨입니다. 이세벨은 당시 북이스라엘의 왕비로 엘리야를 충분히 위협할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엘리야에게 시돈은 위험한 땅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이 살고 있고 심지어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하나님의 대적자가 속한 땅입니다. 이는 마치 일본강점기에 독립운동가가 조선총독부에 혹은 일본으로 가는 것과 같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적지에 들어가는 일인 것입니다. 엘리야의 처지에서 하나님의 명령은 자칫 목숨을 위협받을 수 있는 매우 힘든 명령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과부를 찾아가 숙식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이 또한 엘리야의 처지에서 매우 당혹스러운 명령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과부는 사회적 약자에 속했습니다. 오늘로 치면 사회 취약계층 또는 극빈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가난한 자에게 가서 식객 노릇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곤란한 일이겠습니까?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거칠게 말해보면, 노숙자에게 가서 숙식을 청하라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일은 결코 간단하거나 평범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도대체 왜 이런 말씀을 엘리야에게 하신 것일까요?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관심과 돌봄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사르밧 과부에게 보낸 것은 열왕기상 17장 12절을 통해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같이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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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7:12(구약 545쪽)
12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사르밧 과부의 식구들은 양식이 없으므로 죽게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사르밧 과부의 식구들에게 보내신 것은 그들을 살리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방 땅의 비천한 이들에게까지 관심을 보여주심으로 인해 우리 모두를 향한 관심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자에게까지 관심하심으로 하나님은 세상 모든 자에게 관심하시는 분임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계속해서 열왕기상 17장 16절의 말씀을 다시 한번 같이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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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7:16(구약 545쪽)
16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방금 읽은 구절은 사르밧 과부의 필요를 하나님이 채우셨음을 보여줍니다.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에게 먹을 것을 청했을 때, 사르밧 과부가 가진 것은 밀가루 한 웅큼과 기름 조금이었습니다. 엘리야가 떡 한 개를 달라고 했을 때, 떡이 없다고 하면서 밀가루와 기름이 조금 남았다고 얘기하는 것으로 봐서 이 양은 떡 한 개를 만들기에도 부족한 양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우리로 치면 밥 한 그릇 만들 수 없는 매우 적은 양의 쌀이 남았다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당시는 오랜 가뭄으로 양식을 더 구할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르삿 과부는 남은 양식을 그의 아들과 먹고서 죽으려 했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양식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르밧 과부의 집에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분임을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으로 인해 만족스러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심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고 있습니까? 불행하게도 저는 우리의 삶이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모습이 그것을 반증해 줍니다. 우리는 얼마나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께 내어놓습니까? 또는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힘쓰고 있습니까? 어쩌면 우리는 그 밖에 다른 것에 더 열심을 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만족을 다른 것에서 찾으려 하거나 그것을 신앙 안에서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하나님을 통해 만족스러운 삶을 이루지 못하는 것일까요? 오늘 말씀을 보겠습니다. 열왕기상 17장 13절의 말씀을 다시 한번 같이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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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7:13(구약 545쪽)
13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방금 읽은 성경 구절은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떡 1개를 달라는 엘리야의 요청에 앞서 사르밧 과부는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습니다. 떡 1개는커녕 떡을 만들 수 있는 밀가루와 기름도 부족하고 우리가 먹기에도 부족하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사르밧 과부의 두려움이 이해되십니까? 조금 남은 양식은 사르밧 과부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그 희망이 사라지면, 더는 살아갈 방법이 없습니다. 대체 엘리야가 누구이기에 마지막 희망을 그에게 송두리째 맡길 수 있습니까?
제가 군대 생활을 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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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했던 훈련 중에는 ‘트러스트 폴’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약 1m 정도 높이의 나무판에 올라가서 뒤로 떨어지는 훈련입니다. 뒤에서는 떨어지는 사람을 받아주는 방식으로 훈련이 진행됩니다. 여러 훈련 중에서 상대적으로 쉬운 훈련임에도 이 훈련을 힘들어하는 후임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제 생각에는 자신이 덩치가 크고 계급이 낮다 보니 뒤에서 자신을 제대로 바쳐주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후임이 몇 번 망설이다가 겨우 그 훈련을 통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행히 그 후임의 걱정과는 달리 뒤에서 무사히 받아주었고 아무런 문제 없이 훈련이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하나님을 통해 만족스러운 삶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바로 두려움 때문입니다. 이것은 불신앙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 뒤에 계속해서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그 과부에게 또 다른 비극이 찾아옵니다. 불행하게도 과부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그의 아들은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해 다시 살려 주십니다. 그러자 그 과부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이제야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알았다’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이 고백 속에서 알 수 있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밀가루와 기름을 통한 기적을 경험했음에도 하나님에 관한 믿음을 완전히 가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달리 생각해 보면 기적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도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불신은 우리 삶에 계속해서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찾게 하고 그것으로부터 만족을 구하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이 죽은 과부의 아들을 치유하셨듯 하나님만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에 관한 불신을 가지고서는 하나님을 통해 만족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열왕기상 17장 14절을 다시 한번 같이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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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7:14(구약 545쪽)
1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방금 읽은 성경 구절은 하나님께서 사르밧 과부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 약속을 잘 보면, 밀가루와 기름이 영원히 계속 나오지는 않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정한 기한 곧 ‘비가 내리는 날’까지만 밀가루와 기름이 계속 나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우리의 바람으로는 끝없이 그 일이 계속되면 좋겠다고 여길질 모릅니다. 그 기적 사건을 통해 사르밧 과부와 그의 아들이 편안한 삶을 살면 좋을 것입니다. 또 이러한 기적을 통해 세상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증거되면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와 다릅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통해 만족스러운 삶을 이루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임을 생각합니다. 아마도 많은 경우에 우리는 이러한 경험치를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기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경험을 더러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놓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응답은 더디거나 이뤄지지 않는 듯하여 마치 하나님이 부재중이신 듯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응답이 이뤄지는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이 옳습니다.
근래에 저는 CBS의 ‘새롭게 하소서’라는 방송을 한동안 열심히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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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방송에서는 목회자뿐만 아니라 연예인 또는 여러 전문직에 속한 기독교인들의 간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참 다양한 종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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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흥미로운 얘기 중에는 억울하게 감옥에 갔다가 감옥에서 전도하고 온 이야기 또는 북한에 억류되었다가 그곳에서 전도하고 온 이야기 등이 있었습니다. 그 간증들 속에서 이와 같은 종류의 고백들을 자주 마주했습니다. ‘내가 이런 일을 또는 이런 사역을 하게 될 줄을 몰랐다’라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 생각보다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놀라우신 분인지를 깨달았다는 것으로 고백 됐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왜 내게 이런 문제와 고통과 어려움을 주셨는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와 다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내 생각에 골몰해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충만한 삶을 이루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을 통해 만족스러운 삶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반응하는 일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인 열왕기상 17장 10절을 다시 한번 같이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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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7:10(구약 545쪽)
10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방금 읽은 성경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엘리야의 반응을 보여줍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일이 엘리야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엘리야를 매우 곤혹스럽고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했습니다.
그 결과를 실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에서 기적을 경험한 것이 사르밧 과부만이라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엘리야 또한 기적을 경험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르밧 과부 덕분에 엘리야는 숙식을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사르밧에 오기 전에 그는 그릿 시냇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까마귀에 의지해 식사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물이 말라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엘리야의 입장에서도 사르밧 과부를 통해 숙식을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 기적의 사건이었습니다. 이처럼 엘리야가 믿음으로 반응함을 통해 그는 하나님의 기적을 또는 은혜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사르밧 과부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열왕기상 17장 15절을 다시 한번 같이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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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7:15(구약 545쪽)
15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방금 읽은 성경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사르밧 과부의 반응입니다. 엘리야의 요구대로 남은 밀가루와 기름으로 엘리야에게 먼저 작은 떡을 대접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믿음의 결단으로 그 집안에 속한 사람들이 풍족하게 여러 날을 굶지 않고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오늘 성경 이야기를 살피면서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왜 오늘 우리가 읽은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우리가 읽은 성경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은 열왕기상입니다. 열왕기상권과 하권은 모두 이스라엘의 왕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책입니다. 그런데, 왕이 아닌 엘리야나 이방 여인인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가 왜 뜬금없이 등장하는 것일까요? 저는 이 이야기가 당시 북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아합 왕의 한계를 지적하고 우리의 진정한 왕이 누구이신지를 깨닫게 한다고 보여집니다.
아합이 북이스라엘에 왕이 되었을 때, 그의 나라는 부강했고 그의 권세는 주변 나라까지 뻗어나갔습니다. 당시 아합은 주변 나라들을 복속시켰으며, 남유다와의 관계도 평화로웠습니다. 우리 실정에 비유하자면 남북이 평화롭고 경제가 매우 좋아진 상황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처럼 아합 왕은 북이스라엘의 역사에 큰 공헌을 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를 좋은 왕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악했다고 평가합니다. 그는 어리석게도 하나님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는 하나님 없이도 충분히 나라를 번영시키고 만족스러운 삶을 이룰 것을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또 당시 유행하던 바알과 아세라를 믿는 것이 더 발전적인 방향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합의 착각이었습니다. 아무리 아합이 대단할지라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의 나라는 3년간 가뭄이 지속되고 그에 따라 가난한 자들의 삶이 매우 힘들어졌습니다. 그의 능력으로 어찌해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아합의 한계입니다. 이는 우리 모두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것을 착각할 때, 우리의 삶은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반면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는 진정 우리 삶의 왕이 누구신지를 보여줍니다. 바로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그들의 갈급함을 돌보시고 채우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 삶은 어떻습니까?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만약 우리가 그것을 경험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서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어느 것도 하나님을 넘어설 수 없으니 말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왕이 되시고 우리의 공급자가 되십니다. 바라건대, 오늘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반응함으로 이와 같은 복된 은혜를 누리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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