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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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가복음 2:18-22(신약 56쪽)
설교제목: 신앙생활은 무엇입니까?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20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21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바나나와 달걀을 먹을 때는 껍질은 버리고 알맹이를 먹습니다. 그 반대로 행하는 사람은 바나나 무엇인지, 달걀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때때로 껍질을 중히 여기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전통이라고 말하는 것이 대체로 그러합니다.
제가 예전에 듣고서 매우 놀랐던 사실인데요. 명절에 지내는 차례는 원래 중국에서 마시는 차를 올리는 간소한 제사였습니다. 오늘 우리나라에서는 ‘홍동백서’가 어떻고 ‘조율이시’가 어떻고 말이 많지만 그것은 본래 복잡한 상차림의 제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매우 간소한 상차림의 제사였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부터 모든 계층으로 이어져 온 제사의 관습이 껍데기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변질해 버렸습니다.
성경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과의 대화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하는 것인지 옳은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하는 것이 옳은지를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리심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예배에서 중요한 것은 장소의 문제가 아닙니다. 누구를 예배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의 이야기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께 찾아온 어떤 사람들이 묻습니다. ‘요한의 제자들도 바리새인도 금식을 하는데,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이는 당시 금식이 종교적인 전통에 속한 것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공동체에게 보편화된 활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찾아온 사람들의 물음은 이렇게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모름지기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라면 금식을 정기적으로 해야하지 않냐고, 그런데 당신네는 금식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은데, 그러고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한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을 우리가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2장 19절에서 20절 말씀입니다. 다시 한번 같이 읽습니다.
마가복음 2:19-20(신약 56쪽)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20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쉽게 말하면, 예수님의 답변은 금식은 필요하지만, 아직은 금식할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금식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은 금식이 필요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금식이 많이 한다고 해서 더 좋은 신앙생활이고 더 훌륭한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앞서 바나나와 달걀을 얘기했는데요. 우리가 당연히 바나나와 달걀의 껍질은 먹지 않고 버립니다. 그러면 바나나와 달걀의 껍질은 필요가 없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껍질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온전한 바나나 나 달걀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껍질이 속에 있는 것을 보호해 주기 때문에 속이 상하지 않고 우리가 그것을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금식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분명히 금식을 할 때가 올 것을 말씀하십니다. 또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처럼 금식을 자주 또는 많이 하는 것을 옳다 여기시지 않습니다. 때에 맞지 않는 금식은 불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로부터 우리가 교훈을 얻습니다. 단지 예배를 많이 드리고 교회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늘 옳은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것이 필요없다는 얘기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때에 맞게 하는 것 또는 그 목적에 맞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주님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주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또는 주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주님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데로, 나의 방식을 따라서 또는 나의 영광을 위한 일이 된다면 문제있는 거 아닙니까? 또 그것이 참으로 신앙생활이 맞습니까?
그러니 중요한 것은 목적에 맞게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것은 결코 나를 중심에 두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예수님의 본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형식에 너무 얽매지이 말아야 합니다. 본질에 또는 목적에 중심을 두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해 볼 수 있습니다. 새벽기도 꼭 해야합니까? 아니오, 새벽기도 안 해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방법과 시간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새벽에 할 수도 있고, 잠들기 전에 할 수도 있고 따로 특정한 시간을 떼어서 할 수도 있습니다.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과 대화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 목적에 맞는 기도를 하면 됩니다.
다만, 우리가 이렇게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는 것은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훈련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기 중심적인 죄인이라서 이와 같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기도를 멀리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새벽 기도회를 나오면서 우리의 목적은 어떻게 하면 더 기도를 잘 할 수 있을까에 있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일에 힘쓰는 일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우리의 삶 또는 신앙생활을 이렇게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2장 21절에서 22절 말씀입니다. 다시 한번 같이 읽습니다.
마가복음 2:21-22(신약 56쪽)
21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간단하게 말하면, 이전과 다른 새로운 삶입니다. 이는 이전과 합쳐지지 않는 이전의 습관을 포함하지 않는 새로운 삶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믿기 전과 예수 믿은 후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적당히 변화되는 삶이 아닙니다. 이전에 좋아하던 것 조금 줄이고 신앙생활 좀더 열심히 하는 삶이 아닙니다. 좋아하는 것이 완전히 바뀌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삶입니다.
사도 바울을 잘 아실 겁니다. 예수님을 박해하던 자에서 변화되어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각자는 어떻습니까? 많은 사람이 잠든 이 새벽에 기도하러 나오는 사람들로 변화되었지 않습니까? 또 내 삶에서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고자 힘쓰고 있지 않습니까? 더 나아가서 그 언젠가 부터 내가 예수님을 나의 주로 고백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 이전과 그 이후의 삶이 같다고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진실하게 예수를 믿고 있다면, 결코 그 이전과 지금이 같은 삶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로 변화된 삶을 좋은 삶이라 할 수 있습니까? 저는 그렇다고 말씀드립니다. 왜냐하면, ‘생베 조각과 새 포도주가 낡은 것을 삼킵니다.’ 마치 출애굽기에서 모세의 지팡이가 뱀으로 변해 이집트 술사들의 뱀으로 변한 지팡이를 삼키듯이 말입니다. 좋은 것이 나쁜 것을 삼키고 변화시킵니다. 왕이 나라이 주인이던 시절은 가고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성냥이 가스라이터나 전기라이터로 대체되었습니다. 높은 곳에서 흐른는 물이 낮은 곳의 물을 덮습니다. 이처럼 새롭게 등장하는 것이 이전의 것을 변화시키는 것이서 더 좋은 것입니다.
오늘 마가복음의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이러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본 받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목적에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생활은 우리에게 전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을 줍니다. 그 변화가 우리에게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온전한 신앙생활로 말미암아 좋은 삶을 이뤄갑니다.
그리하여 바라건대, 오늘도 좋은 신앙생활을 이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형식에 매이지 않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목적을 이루고자 힘쓰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변화된 삶으로 좋은 삶을 이뤄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