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믿음으로 기적이 일어납니다.
Notes
Transcript
성경본문: 마가복음 5:25-36(신약 61쪽)
설교제목: 예수님을 믿음으로 기적이 일어납니다.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군대 귀신 들린 자를 치유하신 이야기를 함께 나눴습니다. 이는 일종의 상징이고 비유라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다시 말하면, 당시 세상을 지배하던 로마제국으로부터 예수님이 구원을 이루시는 분임을 군대 귀신들린 자를 치유함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세상 그 어떤 권세보다 높은 권세를 가진 분이고 우리를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참 구원의 하나님입니다.
그 이후의 예수님의 행적은 이러합니다. 군대 귀신들린 자를 만나고 치유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갈릴리 호수를 배 타고 건너서 동쪽에 있는 이방인이 사는 지역으로 가셨는데요. 다시 갈릴리 호수를 배 타고 건너서 서쪽에 있는 유대인이 사는 지역으로 돌아오십니다. 그곳에서 회장당 야이로는 사람이 예수님께 나와서 자신의 딸을 고쳐달라고 청함을 받고 야이로의 집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던 중에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유명한 이야기라 잘 아는 이야기 일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오랫동안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고서 그 병으로부터 치유함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혈루증이라는 것은 일종이 부인병으로 하혈 곧 여성들의 생리때처럼 피를 흘리는 증상을 말합니다. 그것이 신약성경의 원어인 헬라어로 두 가지로 구분되어 사용합니다. 하나는 ‘뤼시스 하이마토스’로 만성자궁 출혈병이고 다른 하나는 ‘하이마 레오’로 한번 출혈하면 멈추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혈루증 여인은 ‘뤼시스 하이마토스’로 만성자궁 출혈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받은 율법에 따르면, 피를 흘리는 자와 접촉해서는 안 됩니다. 특별히 레위기 15장 19절 이하 또는 레위기 15장 25절에서는 월경 곧 생리를 하는 여성과 혈루증 증상을 보이는 여성과 접촉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기는 것은 죽음을 당하게 됨을 하나님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관해 약간 설명을 하자면요. 피라는 것이 생명을 담고 있는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함부로 대하는 것을 막고자 이런 조치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율법의 의미는 피를 흘리는 여성이 부정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라 피가 그만큼 거룩하고 특별한 것임을 나타내기 위함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를 함부러 침범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하여 피흘리는 여성들에게 접촉하지 말도록 하나님이 명령하게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복잡한 얘기를 하는 것은 오늘 성경에 나오는 혈루증 여인의 아픔을 좀 더 이해해 보기 위함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이 문제로 고통받아왔고, 그 문제가 그 여인에게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이해해 보라는 것입니다. 또 오늘 성경에 나오는 혈루증 여인의 행동은 어떤 것인지를 잘 이해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 행동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그 행동에는 큰 위험이 뒤 따르고 있습니다. 그 일은 자칫 죽음에 이를 수 있는 큰 죄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예수님은 혈루증 여인의 행동을 통해 믿음의 의미와 가치를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혈루증 여인의 행동은 율법을 어긴 중대한 문제가 아니라 본받을만한 믿음의 모범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데요. 오늘 성경 본문인 마가복음 5장 34절을 같이 읽습니다.
마가복음 5:34(신약 61쪽)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알게 됩니다. 혈루증 여인의 행동이 믿음의 따른 것이었고 그로 말미암아 그가 오랫동안 시달렸던 병에서 치유함을 받는 기적이 일어났음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야이로의 딸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강조됩니다. 오늘 성경 본문인 마가복음 5장 36절을 같이 읽습니다.
마가복음 5:36(신약 61쪽)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예수님이 혈루증 여인에게 말씀하실 때, 야이로의 집에서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집니다. 이미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서 이제는 더 손을 쓸 수 없으니 예수님께서 오실 필요가 없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방금 읽은 성경 구절처럼 답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야이로의 딸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두 개로 나눠진 이야기 곧 야이로의 딸과 혈루증 여인을 고치신 사건은 하나의 교훈을 우리에게 줍니다. 믿음이 기적을 가져온다는 것 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교훈이 새롭거나 낯설게 다가오지 않을 줄 압니다. 오늘 우리가 본 성경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믿음이 중요한 것은 신앙생활을 하는 내내 들었고 강조되었던 이야기입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 산을 옮긴다’라고 말입니다. 그만큼 믿음의 능력이 크고 대단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우리는 그 믿음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무엇때문일까요? 저는 이렇게 말해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따라 살기를 주저하거나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행동을 동반합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야고보서의 말씀은 이렇게 얘기하지 않습니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믿음대로 산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믿음대로 살아야지 그때 비로소 믿음의 능력을 또는 기적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저희 청년부는 이번 목요일 그러니깐 광복절인 15일부터 어제 17일 토요일까지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직장을 다니는 청년도 있고 여러 사정으로 청년부에 속한 모든 청년이 수련회를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함께 참여한 청년들은 은혜롭게 수련회를 잘 마쳤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수련회가 참 의미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있는데요. 먼저는 수련회의 방식이 이전과 달랐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전에는 자체수련회를 주로 하면서 청년들의 시간에 맞춰서 수련회를 준비했습니다. 이번 수련회도 청년들의 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수련회를 주체하는 쪽에서 정한 날짜를 따라야 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과 달리 청년들이 수련회의 시간을 맞춰야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참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는데요. 왜냐하면, 우리가 대체로 신앙생활을 자기중심적으로 하곤 합니다. 청년부만이 아니라 많은 경우에 신앙생활을 내 생활에 맞춰서 예배하고 활동하고 봉사하는 것으로 합니다. 먹고살자니 또 그동안 해왔던 관성에 따라 그것이 자연스럽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며 그건 신앙생활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신다고 고백하고 주의 뜻을 따르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결국 신앙생활은 나를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에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신앙 안에서 재구성해야지 그 반대가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당장 먹고 살려면 세상의 기준에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신앙생활은 뒷전이거나 내 생활을 중심으로 맞춰집니다.
하지만 이번 수련회는 나 중심의 신앙생활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물론 참석을 하지 못한 청년들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 가운데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 아님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번 수련회 날짜는 15일 공휴일에 있었습니다. 이른바 빨간날에 누가 놀러가고 싶지 수련회를 가고 싶겠습니까? 빨간날에는 쉬는 것이 국룰 아니겠습니까? 심지어 목사인 저도 빨간날에 쉬고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수련회는 그와 같은 자기 욕망을 넘어서길 도전하였습니다. 빨간날 쉬기보다는 수련회에 가자고 도전하니 말입니다.
저는 수련회를 꼭 가야지만 구원받는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번 수련회가 가장 좋은 수련회의 방식이라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번 수련회를 통해 신앙생활에 관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내 시간을 하나님께 조정하고 내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일을 저는 이번 수련회를 통해 우리가 경험해볼 수 있지 않았나 합니다. 물론 수련회에 참석하여서 그 프로그램을 통해 또 그곳에서 만난 신앙의 형제자매들을 통해서도 도전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저는 우리가 믿음 안에서 어떤 결단을 내렸던 일이 참 의미있고 중요했다고 여겨집니다.
오늘 성경 이야기 속에 혈루증 여인을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그 여인은 죽음을 각오하고 매우 위험할 수 있는 선택을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께 나아간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갖고 사는 것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의 결단이 기적을 만들어 냄을 또한 우리가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오후 교육부서 헌신 예배때 몇몇 청년들도 간증을 합니다. 제가 요청한 것도 있지만, 청년들이 받은 은혜에 따라 믿음으로 결단한 일이기도 합니다. 제가 막 시켜서 이룰 없는 일이 아니기에 저에게는 이러한 일이 기적같은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예수를 믿으며 사는 우리가 믿음 안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내 방식을 따라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을 쫓아 신앙생활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로써 믿음을 통하여 기적을 이루는 우리 성도 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