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우리가 자유하길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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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가복음 5:18-20(신약 61쪽)
설교제목: 예수님은 우리가 자유하길 원하십니다.
18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19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배를 타고 거라사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없는 이방 땅이었습니다. 우리로치면 일본과 같은 다른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엄청나게 힘이 센 귀신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계속 괴성을 지르며 자기 스스로를 학대하자 마을 사람들은 그가 염려도 되고 혹시 위험한 일을 벌이지 않을까 싶어 그를 붙잡아 쇠사슬로 묶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귀신들린 그 사람은 괴력을 발휘하며 쇠사슬을 끊어버리며 밤낮 무덤사이를 활보 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그에 관한 소문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갑자기 거라사라는 이방인이 사는 땅으로 가셨으니 말입니다. 더구나 그곳은 돼지를 키우던 곳인데 당시 유대인들에게 돼지는 부정한 짐승이었고 먹거나 가까이 하는 것이 율법으로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그곳을 가셨으니 어떤 뜻이 있었다고 보여지는데 이는 아마도 귀신들린 자에 관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이 그곳에 도착했을때 그 귀신들린 사람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앞에서 나와서 절하며 부르짖습니다. 자신을 괴롭게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귀신을 내어쫓을 능력을 가진 분임을 그 귀신들린 자가 알아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귀신들을 내어쫒아서 돼지떼에 들어가게 해서 그 돼지떼들이 바다에 빠져 죽게 하였습니다. 그 덕분에 귀신들린 사람은 귀신의 속박에서 벗어나 다시 온전한 삶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성경의 이 이야기를 보면서 몇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첫째는 돼지들은 무슨 죄가 있어서 바다에 빠져 죽게 되었나하는 것입니다. 물론 귀신들린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돼지를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에게 그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온 세상의 모든 생명의 주인이시고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는 분이 아닙니까? 그래서 돼지떼가 몰살당한 것은 한편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성경구절을 연구하다가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일종의 상징과 비유라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이야기에 나오는 귀신들린 사람은 당시 세상을 지배하던 로마제국에 몸과 영혼이 장악당한 식민지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반대로 군대 귀신이라던지 돼지떼와 바다는 로마제국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보충해서 말하면 돼지는 로마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였고 로마제국은 바다에서 온 침략자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사람에게 붙어 있던 귀신을 돼지떼에게 보내어 바다로 빠져 죽게 한 것은 이런 의미를 가집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로마제국에 수탈당하여 피폐해진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수탈자인 로마제국을 패퇴시키고 그들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그러니 오늘 성경이야기에서 돼지떼가 몰살 당한 것은 예수님이 돼지떼를 싫어하신다거나 예수님은 돼지보다 사람을 더 사랑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모든 생명은 예수님께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니 말입니다. 돼지떼는 로마제국을 상징하는 것으로써 예수님이 로마제국을 꺾고 구원을 이루실 것임을 비유적으로 보야주시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로마제국보다 더 크신 분이고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이를 통해 구원의 의미를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저 영적인 차원의 문제만을 구원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을 묶고 우리의 자유를 제한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참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구원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자유와 해방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유일한 분입니다.
또 한 가지 제가 오늘 성경 이야기를 통해 드는 의문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 구절과 관련이 있는데, 다시 한번 마가복음 5장 18절에서 20절을 같이 읽습니다.
마가복음 5:18-20(신약 61쪽)
18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19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귀신들린 자가 예수님께 치유받고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합니다. 저는 보다 일찍이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시고 친히 12명의 제자를 임명하셨기 때문에 그 귀신들렸던 사람의 요청도 들어주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가족들에게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제자 삼는 일을 중요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흔히 지상명령 곧 최고의 명령이라고 하는데,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남긴 명령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제자를 자청하는 이를 받지 않겠다는 모습을 보이지 이해되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성경을 연구하면서 이 부분에 관해 이렇게 설명하는 부분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전에 귀신이 들렸을 때처럼 예수님께 의존하면 안 된다. 그는 두 발로 서서 다른 방식으로 예수님을 따라야 했다.’ 저는 이를 통해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일은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 예수님께 중독되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 부분을 혼동합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을 더 많이 예배하고 봉사하고 교회에 붙박이처럼 사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만약 그것이 옳다면, 예수 잘 믿는 사람은 세상에 나아갈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붙들여서 교회만을 위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러한 삶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우리를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소금과 빛이 아님을 주의 해야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맑히고 밝히는 존재여야 하는 것입니다. 또 일찍이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많은 제물을 가져다바치는 형식적인적인 제사에 관해 역겹다는 표현을 써가며 거부 반응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이는 정의과 공의를 행하지 않고 형식적인 예배만을 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태에 관한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입니다.
그러니 예수 잘 믿는 것 또는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은 누가누가 예배 더 많이 하고 봉사 더 많이 하는 지를 경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과 같이 세상에 정의와 공의를 이루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참 자유함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당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로마제국 혹은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귀신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구원받은 삶입니다. 이 삶은 예수로 말미암아 세상 어떤 것도 우리를 쥐고 흔들지 못함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또한 우리에게 하셨습니다.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을 대라,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가고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을 내주라 심지어는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언뜻 이 말씀은 기독교인이라면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고 착하게 살려고 애를 써야 한다고 들려질 수 있지만요. 이 말은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당당하게 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부당한 것을 요구하는 어떤 이에게도 흔들리거나 영향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유를 얻은 사람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라사 지방의 한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십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이 우리를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한 삶을 누리게 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 속에 숨은 상징은 당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힘있는 것에서부터도 예수님은 능히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자유함을 누리는 것이고 그에 따라 이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의지하여 오늘도 주께 구원받은 자로써 당당하게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