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환영합시다.

새벽기도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5 views
Notes
Transcript
성경본문: 마가복음 6:1-6(신약 62쪽)
설교제목: 예수님을 환영합시다.
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편견이기도 한데요. 종종 소문으로 듣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대체로 교회에서 일을 하는 저 같은 목회자의 경우에는 모교회 곧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주로 활동했던 교회에서 사역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농담삼아서 예수님의 말씀처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교역자들끼리 얘기하기도 하는데요.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목회자가 어린 시절을 보낸 교회에서는 그가 전도사가 되었든 목사가 되었든 누구의 아들로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의 연약했던 과거를 이미 모두 잘 알고 오래동안 형성되어온 그에 관한 생각이나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러니 오히려 그 교회 출신 목회자에게는 다른 목회자처럼 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곤 합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그는 전도사 목사이기 전에 과거에 묶인 누구의 아들이니 말입니다.
요즘은 모르겠지만 한 때는 신학생들 사이에서 모교회에서 사역하는 것이 이러한 이유로 기피되거나 힘들고 아픈 기억으로 남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오늘 성경 이야기에 보면 예수님도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받아들여지는 고향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함을 봅니다. 그래서 어쩌면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제가 만난 어떤 전도사님, 목사님 중에서는 모교회에서 열심히 또 오랫동안 사역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모교회가 문제가 아니라, 목회자들을 대하는 교인들의 차이가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예수님도 고향에서의 사역이 쉽지 않았습니다. 앞서 보았지만, 예수님은 많은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를 치유함을 통해 세간에 유명인사로 떠올랐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께 모여들었고 12명의 제자가 그의 곁에서 함께 동거동락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예수님이 어떠했는지 잘 몰라도 이제는 그 시절보다 더 유명하고 훌륭한 지도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나 고향 사람들의 눈에는 여전히 예수님이 그 동네 목수 였던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에 불과했습니다. 그로 인해 오히려 고향에서는 배척을 받는 상황에까지 놓입니다. 오죽하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6장 4절의 말씀을 같이 읽습니다.
마가복음 6:4(신약 62쪽)
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예수님의 말씀을 조금 더 다듬어서 말하면 이렇습니다. ‘선지자가 존경받지 않는 곳이 없는데, 고향과 집에서만 존경받지 못한다.’ 결국 예수님은 고향에서 배척을 받으셨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에 관해 이렇게 반응하십니다. 마가복음 6장 6절의 말씀을 같이 읽습니다.
마가복음 6:6(신약 62쪽)
6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방금 읽은 구절에서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라는 표현을 어떤 유명한 신학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들의 불신앙 때문에 말문이 막히셨다.’ 그러니깐, 격하게 말하면 예수님께서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힌 상황을 겪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고향에서 환대받지 못하고 오히려 배척받는 힘든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러한 결과를 낳게 하였습니다. 마가복음 6장 5절의 말씀을 같이 읽습니다.
마가복음 6:5(신약 62쪽)
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예수님을 믿고 환영받지 못하는 곳에서는 예수님의 사역도 제한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이를 통한 오늘 성경의 교훈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을 환영하자’ 왜냐하면, 예수님이 배척받는 곳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불신으로 인해 예수님의 사역이 방해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제도 함께 나눴지만, 혈루증 여인이 믿음을 통하여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믿음이 중요하고 그와 더불어서 예수님을 환영하는 일이 중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환영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마가복음 6장 3절을 같이 읽습니다.
마가복음 6:3(신약 62쪽)
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방금 읽은 성경구절은 예수님이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하게 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과거의 기억 속에 묶어두고 자신들의 생각 속에 가둬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인기 많고 능력 많은 주목받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고향 사람들은 현재 예수님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과거 또는 자신의 생가과 판단 속에서 예수님을 재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님을 배척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환영한다는 것은 내 생각 속에 예수님을 가두지 않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구약성경 욥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욥에게 닥친 고난에 관하여 욥의 친구들은 계속해서 욥에게 어떤 잘못이 있고 원인이 없는 결과가 없다는 식으로 얘기합니다. 우리말 속담에도 ‘아니 뗀 굴뚝에 연기날까?’라는 말이 있으니, 원인 없는 결과를 상상하기 어려운 것은 우리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의 주장이 한편 옳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의 친구들의 이야기는 틀렸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우리가 감히 측량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섣불리 우리의 이치와 생각에 따라 하나님을 가두게 되면, 하나님을 오해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 결과로 예수님이 고향에서 배척 당하는 일까지 있었던 것 아닙니까?
그러니 우리가 신앙생활하고 예수 믿는 것이 내 짧은 지식과 생각에 갇혀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크시고 그 너머에 역사하고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신앙생활은 자기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고 자기의 생각 또는 자기 기준을 버려나가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내 기준에서 판단하고 신앙생활을 내 소견에 옳은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쫓아서 신앙생활을 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 저는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이러한 도전들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내 생각보다 하나님이 뜻을 따르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는 말씀을 읽거나 듣고자 힘쓰는 일이 필요합니다. 더욱이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일이 또한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것을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오늘 하루를 보내면서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듣는 것을 평소보다 조금 더 늘려보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분들은 아마 다른 사람들보다 평소에 더 말씀을 가까이 하실 줄 압니다. 그런데 평소보다 조금 더 그 시간을 늘려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우리의 목표는 성경을 평소보다 더 많이 읽고 설교를 평소보다 더 많이 듣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도전은 어디까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로부터 예수님을 환영하는 삶을 이루기 위한 작은 실천입니다. 익숙한 신앙생활에 변화를 주는 방식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몸부림 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성경을 더 많이 읽고 설교를 더 많이 들어야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현재의 삶에서 신앙적인 새로운 도전들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꼭 성경을 더 읽고 설교를 더 듣는 방식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힘쓰는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주님의 뜻을 깨닫고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한 여러 방법말입니다.
예를 들면, 기도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공부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독서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이미 알고 있는 말씀을 따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가령,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는데, 그 사랑을 실천해보는 것이 방법일 수 있습니다. 사랑에도 여러 방법은 있지요. 관심이 필요한 사람에 찾아가는 일 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일 또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안부를 물어주는 등등의 일 말입니다. 구체적인 것은 자신의 상황에 맞게 적용하여 실천해 보는 것입니다.
다만, 제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 교훈하고 도전하고 싶은 것은 예수님을 환영하기 위해서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일에 힘써보는 하루가 되어 보시라는 것입니다. 앞서 제시한 여러 방법들 중에서도 어떤 것이든 좋은데, 실천함을 통해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하여 바라건데, 오늘도 예수님을 환영하는 삶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의 말씀을 가까이 하기에 힘쓰고 그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고 실천하는 일에 힘을 쏟는 하루가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