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 사건과 하나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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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가복음 6:34-44(신약 63쪽)
설교제목: 오병이어 사건과 하나님 나라
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35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39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40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42 다 배불리 먹고
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44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구절은 이른바 오병이어의 사건으로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요약하자면, 예수님께서 물고기 5마리와 떡 2개로 5000천 명이 넘는 사람을 먹이신 사건입니다. 아마 매우 익숙하고 잘 아는 이야기일 겁니다. 그래서 사실 저같은 설교자에게는 설교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성경 본문에 관해 공부하다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이로부터 이 성경의 이야기를 새롭게 보게 됩니다.
제가 이 오병이어 사건에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이러합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많은 사람들이 적은 물고기와 떡으로 배불리 먹게된 기적의 사건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숨겨진 상징이 있습니다. 우선 우리가 주목할 것은 39절입니다. 제자들은 모인 사람들을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했습니다. 이것은 당시가 봄이며 5월 이전에 일어난 임을 말해줍니다. 왜냐하면, 그 지역은 5월이 되면 비가 멈추고 태양이 작열하면서 잔디가 말라버립니다. 적어도 푸른 잔디가 남아 있으려면 5월이 넘기 전임을 말해줍니다.
여기서 한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은 마가는 의도적으로 ‘푸른’ 잔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모두 오병이어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 잔디라는 말은 마태와 요한복음에서도 나오지만 푸른 잔디라는 말은 마가복음에서만 나옵니다. 이는 마가복음에서 의도적으로 푸른 잔디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5월 이후에도 잔디는 있을 수 있지만 푸른 잔디는 없기 때문입니다. 마가는 이 사건을 특정한 때 곧 봄의 5월 이전 보다 정확히는 유월절을 염두해 두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가는 이 오병이어 장면에서 성만찬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에서 포도주와 빵으로 행하는 성만찬 예식은 본래 유월절 식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날밤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를 하시면서 이 성만찬을 행하셨고 이를 지켜행하라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읽은 성경의 내용속에서 오병이어와 성만찬은 쉽게 연결이 안 될 수 있지만, 오병이어 때 예수님이 모습과 거기에 사용된 용어가 성만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41절에 ‘축사를 하시고 떼어 나눠주시’는 장면이 그러합니다.
결국, 오병이어의 사건은 성만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배고픈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셔셔 많은 사람을 배부르게 먹게 하신 것이지만, 이 기적 속에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이를 통해 상징적으로 성만찬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오병이어 사건을 새롭게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기적 사건이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 더 정확히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이를 죽어서 가는 천국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곳’입니다. 이는 한국, 미국, 중국과 같은 어떤 지역에 속한 나라가 아닙니다. 또한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고 저 세상 곧 죽음 이후에 가게 되는 사후세계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각 사람에게서 현재 이룩되고 경험되어지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이 순간도 나로부터 존재하고 여러 사람에게로 확장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씨앗이 심겨서 자라나듯 계속해서 자라고 성장하는 나라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는 하나님 나라는 이러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나라는 주님의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사건을 일으키신 배경을 알 수 있습니다.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에 문제에 관심하셨고 사람들을 사랑하셨음을 말해줍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이를 수 있게 된 것인지 모릅니다. 그 유명한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용서받고 구원에 이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주님의 사랑으로 이룩된 나라입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참여하는 나라입니다. 37절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입니다. 이 이야기에 제자들은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이 남자만 5,000명이 넘는 숫자였고 여자들과 어린 아이를 다합치면 훨씬 더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이렇게 답합니다. ‘이 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입니까?’ 당시 1데나리온이 노동자 하루의 품삯이었으니, 200데나리온이면 노동자 200일치의 품삯이고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의 돈이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 것은 200데나리온의 떡을 사서 나눠주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는지 알아보라’고 말입니다. 제자들이 가지고 온 것은 우리가 잘 아는데로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에 불과했지만, 예수님께는 그거면 충분했습니다. 아마 더 적은 것이었다고 해도 문제되지 않았을 겁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신 분이니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참여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문제되지 않고 그 작은 것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놀랍게 일하십니다.
그리고 앞서 오병이어의 사건은 그냥 기적의 사건이 아니라 성만찬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성만찬은 예수님께서 친히 만드신 예식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살과 피로 상징되는 빵과 포도주를 나눠먹는 예식입니다. 이러한 예식에는 크게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희생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 또한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여 우리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결국 오병이어 사건은 예수님의 핵심사역인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것을 성만찬이라는 상징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약하자면 오병이어 사건은 단지 배고픈 사람들의 배불리 먹게 해준 기적만 아니라 성만찬의 상징을 담아서 새로운 공동체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사건임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참여로 이룩되어가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한다는 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렇습니다.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께 내어맡겨드리고 하나님께 우리의 운전대를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오병이어 사건에서 예수님께서 실제로 하신 것은 사람들의 배고픔 곧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대신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능력이 많으신 예수님 곁에 있는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께 내어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받은 오병이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께 우리의 문제를 내어드려야 합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방식이 있고 그것을 통해 현재의 삶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 방식의 중심은 나의 능력과 경험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을 쉽게 내려놓고 하나님께 내 삶의 운전대를 맡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운전을 해본 사람은 때론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타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의심이 들기 때문입니다. 운전대 비유가 잘 와닿지 않으면, 집열쇠나 통장을 맡기는 일로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내 삶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쉽게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문제를 내맡기고 우리의 삶에서 소중한 것을 내어놓을 만큼의 강한 믿음을 갇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때에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내어맡기고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할 때, 우리의 문제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해결됩니다. 오늘 오병이어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교훈합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요. 그러나 하나님은 또는 예수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오늘도 이 믿음 안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하나님 나라에 거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