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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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외와 그 이유

본 시편은 ‘하나님께 외친다’ 그 이유가 ‘두려우시고 온 땅에 큰 왕’이시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구조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요청하고 이어서 이유를 말한다. ‘이는, 왜냐하면’ 이렇게 연결되는 것이 1절에서 말하고 2-5절이 이유를 설망하고 6절이 말하고 7-9절이 이유와 결론적인 이유를 말하는 구조를 갖는다.
짧은 시편은 보통 간결하게 의미를 전달하려고 한다. 그러기에 묵상하는 입장에서는 너무 간단한 내용의 구성이라 지나치기 쉽고 반면 긴 시편은 자세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같은 이야기를 계속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도 오랜 시간 시편을 묵상하고 있는 우리는 지나간 내용들이 함께 묵상되며 연결되는 경험을 해야 한다. 특히 이런 짧은 시편이 매우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링크’ 즉 연결 장치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앞서 시편을 기억한다면 45편 왕을 향한 46편 시온을 향한 47편 왕위에 오르시는 장면을 표현한다면 높고 높은 자리에 앉으신 ‘왕’이신 분을 경외하고 그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마땅히 경배를 받으실 분이시다. 그래서 기자는 ‘예배하라는 요청’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즉 예배는 일종의 ‘외치는’ 곳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예배는 어떤가? 묵상할 수 있다. 마치 잘 차려진 어떤 곳에 손님으로 초대받듯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하나님의 말씀 선포에 대한 반응은 비록 인간 설교자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겸허한 수납(받아 들임)과 동의를 고백하고 있는지 말이다. 즉 예배는 ‘왕이신 분’에게 향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온 땅에 큰 왕’(2)이시기 때문이다.
왕은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신 분이자 우리와 함께 하신 분이시다. ‘곧 사랑하신 야곱의 영화로다’ 이는 구약을 보는 우리의 눈을 필요로 한다. 저 먼나라 이스라엘의 조상의 하나님이 아니라 신이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드러내는 것이다. 앞선 시편에서 계속해서 ‘함께 하신다’라고 말했던 것을 묵상하자. 바로 그분이 ‘왕’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외치다’, ‘소리’를 높여서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왕을 높이는데 ‘외치는 소리’야 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배임을 기억하자.
이런 소리는 축제와 같이 ‘즐거운 소리’가 된다. 5절 ‘하나님께서 즐거운 함성 중에 올라가심’이라고 말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떼창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스타디움에 모여 선수를 응원하는 웅장한 응원가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때 울리는 북소리, 나팔소리처럼(5) 계속해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이다. 이러한 반응은 인간 편에서 최고이지만 앞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현현을 표현했던 말씀을 기억나게 한다.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놀라운 장면은 실재한다.
그러니 인생은 ‘찬송하라’는 기자의 요청을 수납해야 한다. 여전히 우리의 삶은 다양한 이유로 고통과 깊은 고뇌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나의 아픔을 토로하고 그 길을 묻는 자들에게 늘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라는 것이고 이는 결국 예수님은 누구이신가?와 같은 질문이 된다. 찬송은 ‘왕이신 분’에게 반드시 해야할 백성의 본분이다. 왜냐하면(6절)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시고 뭇 백성을 다스리시며 그이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자신의 백성뿐만 아니라 뭇 나라의 고관들도 다스리시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찬송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 (당연하지만 우리의 이해에서도 그러하시다는 의미)이시다.
박수치고, 외치고, 찬송을 부르는 모든 것은 여전히 유명인들에게 정치인들에게 사람들이 보내는 최고의 장면이다. 그러나 이런 행동과 깊은 마음의 자세가 신자의 삶속에서 매주의 예배에서 그러한가를 묵상하자. 그 흔한 앞동산을 산책하면서도 좋은 산소를 마신다고 생각하고 건강해진다고 생각하면서도 주의 성전에 오르는 기쁨을 갖지 못하는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 삶의 문제를 떨어 놓고 산에 오르며 땀을 쏟으며 힐링을 외치면서도 예배는 온갖 잡동사니 문제를 싸안고 들어가 어디한번 어떻게 풀어주시나 보자는 태도는 없었는지 이참에 깊이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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