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임하시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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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임하시오며 (마태복음 6장 10절)
주기도문의 두 번째 간구는 “나라가 임하시오며”입니다. 헬라어 성경에는 정관사가 붙어 있어서 이렇게 해석됩니다. “그 나라가 임하게 하여 주시오며”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라는 개념을 이해할 때, 통치의 개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다시말해, “나라가 임하시오며” 의 간구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기를 소원하는 기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가집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인데, 왜? 굳이 하나님의 통치를 바라는 기도를 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주기도문의 두 번째 간구인 “나라가 임하시오며”는 종말론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말론적’이란 용어는 말 그대로 종말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현시대에 비록 악인들이 득세하고 의인들이 고난을 당하지만, 세상의 끝에는 의인들의 억울함은 해소되고, 악인들은 형벌에 던져짐으로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된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이해는 이사야 52장 7절 이하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이사야의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는 하나님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는 것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는 바벨론 시대를 넘어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유대인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기에, 그들은 하나님이 이 불의한 역사 가운데 개입하실 때, 비로서 진정한 자유와 회복이 찾아 올 것이라 믿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이 소식이 유대 온 땅에 퍼지기를 간절히 바랬던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나라가 임하시오며’ 간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다스림을 통해, 완전한 구원과 회복이 이 땅에 임할 것을 바라는 기도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나님 나라’ 라고 할 때, ‘나라’는 히브리어로 ‘마르쿠스’ , 헬라어는 ‘바실레이아’ 이고, 영어로는 ‘kingdom’입니다. 그 뜻은 ‘영역, 장소’ 의 의미보다는 ‘통치권’의 의미가 더 강합니다. 누구의 통치를 받는가? 하는 것입니다.
한 나라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세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국민, 영토, 주권”입니다. 한 국민들이 영토를 소유하고 있고, 그 영토와 국민을 의지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이 그 나라에 속한 구성원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때 주권이 한 사람의 왕에게 있으면 왕정 국가가 되고, 다수의 국민에게 있으면 공화정 국가가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정체성’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는 일제 강점기가 있습니다. 그 시기를 두고 우리는 흔히 ‘나라를 잃어 버렸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 나라의 영토나 국민은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은 그대로 있었지만, 내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주권을 박탈당했기에 나라를 잃어버린 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한 나라가 진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주권이 얼마나 필수적으로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원리는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왕권입니다. 영토도 백성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왕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땅의 왕권과는 약간 다른 면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 나라”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구약은 하나님을 끊임없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천지창조 이야기가 그것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왕정시대가 그것을 보여줍니다.
구약의 웅장한 하나님은 현재와 미래의 왕이자 이스라엘과 다른 모든 나라의 왕이시고, 일상 모든 영역의 주인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렇게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유의 주인이시고, 세상을 다스리시고 우리의 모든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2000년 전이 땅 가운데 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복음서에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가 셀 수 없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1974년 복음주의자들의 모임인 로잔세계복음대회에서 “마이클 그린” 이라는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얼마나 들어오셨습니까? 나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영국 아버딘 대학교 하워드 마샬이라는 신학자 역시 “나는 지난 16년 동안 구체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탄식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동안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잘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사상을 이야기 할 때,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예수님이 공생애 가운데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사상은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 사상입니다. 공관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생애 첫 사역을 하시면서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하시더라”(막 1:15) “이때부터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 4:17)
주님의 선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잘 모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국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단어들처럼 천국 혹은 천당으로 이해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 그러나 마태, 마가, 누가 복음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공관복음서를 조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가르침이 ‘하나님 나라’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집중적으로 알려주셨습니다. 특별히 마태복음 13장에 씨 뿌리는 비유가 그것입니다.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마 13:18)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막 4:26)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막 5:30)
마태복음 13장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토양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마음의 밭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핵심은 씨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이미 씨를 뿌리셨다는데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으로 그 나라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은 한결같이,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시고, 그의 다스리심이 드러나기 시작했으며, 그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고, 어떤 관계를 맺고 마지막 날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가득합니다. 주기도문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마태복음의 전체 주제이고, 중심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은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그분이 오시면 질병이 치유되고, 귀신 들렸던 자에게서 귀신이 떠나가고, 고통 당한 자들이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죄로 인해 온갖 어그러진 것들이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다스림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빛이 들어오면 어둠이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이미 하나님 나라는 이 땅 가운데 왔습니다.
마태복음 9장 13절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0장 28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이 세상에 ‘왔다’,는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구약으로부터 그토록 기다려 온 메시아이며 하나님 나라를 도래시키기 위해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입니까?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한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이미와 아직 사이”라고 합니다. 신학자 ‘오스카 쿨만’은 ‘그리스도와 시간’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하나님 나라를 시간의 관점에서 설명하면서 ‘이미 시작 되었으나 아직 완성은 아니다’라는 의미의 ‘already, but not yet'을 소개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시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메시야 사역을 시작하심으로 이미 시작되었으나,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아니며,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완성을 바라보며 계속 진행 중에 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 땅에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메시야로서 사역을 하심으로 그의 통치권을 행사하실 때, 하나님 나라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4장 17절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영어로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하나님 나라는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왔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곳이 하나님 나라이기에 하나님 나라는 우리 곁에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이러한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기도가 “하나님 나라가 오시옵소서”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나라의 완전한 도래를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환상을 불어넣기 때문입니다. 돈이, 기술이, 국가가 모든 사람에게 살만한 세상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니, 의료 기술력, 과학을 믿으며 살라고 말합니다. AI는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모든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이 없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도전하는 사탄의 전략입니다. 이것이 우상입니다. 이에 팀켈러는 「거짓 신들의 세상」란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이든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 우리의 주인이다. 힘을 추구하면 힘에 지배당한다. 인정받기를 바라는 자는 그가 호감을 사려는 이들에게 지배당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주인에게 지배당한다.” 우리의 싸움은 누구의 지배를 당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를 짚어 삼키는 거대한 세상 가운데서, 사탄의 공격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먼저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아니고서는 이 땅에서 우리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 받은 자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대가입니다.
마태복음 5장 28-30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이 말씀을 보면, 참으로 부담스럽습니다. 아마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 그대로 받아드린다면 우리 중에 팔, 다리가 온전하게 달려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팔, 다리를 다 잘라야 하나님나라 백성이 된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방해하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든 대가를 지불한다는 것은, 우리를 불러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는 어떠한 타협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 나라를 얻기위해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해 내가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 물질도, 내 능력도, 자질도, 경험도, 시간도 하나님나라를 위해 모든 것들을 나에게 맡겨주신 것이기에 나에게 소유권이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모든 것이 위임된 상태, 하나님이 원하시면 언제든지 나에게 속한 모든 것을 하나님나라와 의를 위해 쓰시도록 내드리를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드린 사람의 삶은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본래 주님의 것이기에 주님의 뜻대로 쓰여지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나의 소유권이 나에게 있지 않기에 하나님나라를 위해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나라의 백성의 삶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하나님 것이고, 당장 내일이라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면 다 내놓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의지하기 시작하면, 하나님나라도 보이지 않고 일용할 양식도 무의미해집니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의 삶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 나를 지켜주고 나의 평안과 기쁨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삶, 이것이 바로 하나님나라 백성의 삶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와같은 삶을 살기를 소원합니다.
둘째는 하나님나라가 온전히 임하길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나라를 기다리며 기도하는 것은 자기자신의 고통과 세상의 고통을 직시할 때 더욱 깊어집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은 사는게 너무 힘듭니다. 너무 힘들어서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려움이 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는게 정말로 힘든 사람들, 숨쉬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애통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이 땅의 현실이 비뚤어졌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간절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자기를 던져 교회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 무엇입니까?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를 드러내고 하나님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가 꾸며낸 애기가 아니라, 실체이자 실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나라의 모습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완전해질 것을 소망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의 수많은 고통과 슬픔, 눈물이 예수님의 다시 오심으로 치유될 것을 소망하며 날마다 교회의 영광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할 때, 그 기도가 우리를 지켜줍니다. 하나님나라가 완전히 임하기를 기도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생각하게 됩니다. 내 삶을 돌아보고 나에게 주어진 것이 내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이 기도는 꾸준히 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악한 재판관’ 비유가 나옵니다. 이 비유는 주로 ‘강청 기도’를 설명하는 본문으로 사용됩니다. 누가복음 18장 1절을 보면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그리고 그 내용은 “한 과부가 있습니다. 이 과부는 재판장에게 찾아가서 원한을 풀어달라고 계속 매달립니다. 그리고 재판관은 과부의 끊질긴 매달임으로 인해 그 원한을 풀어준다는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나라가 언제 올지, 그리스도의 재림이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사람들의 물음 뒤에 나온 비유입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강청해야 할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나라의 도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위해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의 현실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땅에 깨어짐과 고통과 눈물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을 보며 낙심합니다. 때로는 실망도 하게 됩니다. 주님은 이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불의로 고통당하는 이 세상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하나님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이 반드시 그 기도를 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슬픔과 눈물을 알고 계시고, 밤낮으로 부르짖는 그 백성의 기도를 모른채 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믿으십니까?
따라서 하나님나라가 도래할 것을 기도하는 사람은 이 땅의 현실과 역사의 흐름을 보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고, 이 기도를 끊임없이 드리며 자신을 깨우치고, 우리 주님께서 다시오실 것을 간절히 소망하고 기다리는 자입니다.
나의 현실과 이 땅의 깨어진 현실을 품고, “마라나타” 주님의 나라가 오시옵소서. 주님이 오시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라고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위해 기도하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주의 나라가 임할 때 하나님 임재 하실 때
<축도>
지금은 세상 끝날 까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함께하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감화, 감동, 교통하심이, 하나님나라의 다시리심과 하나님나라가 임하기를 소원하고 깨어 기도하는 사랑하는 주의 자녀들 머리위에 가정과 직장과 삶의 모든 영역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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