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강의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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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강의 서론
출애굽기 20장 1-2절
오늘날 교회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각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특별히 각 종 언론에서 코로나 기간 동안 가장 많은 확진자가 교회에서나 나왔다는 기사로 인해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작년 기독교 윤리 실천 운동, (기윤실)에서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였고, 그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응답자의 74%가 기독교를 신뢰하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기윤실에서는 매 년 신뢰도를 조사하는데, 2008년 48.3%, 2017년 51.2%, 2020년 63.9% 를 넘어섰고, 2023년엔 74%가 된 것입니다.
한국교회 신뢰도 조사에서 가장 요인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사회에 대한 배타성, 무관심 등이었습니다. 가장 크게 신뢰하는 종교는 카톨릭이었습니다. 세상 속에 있어 세상과 구별되는 삶을 살아야 하지만, 교회의 공동체가 세속화되고, 세상의 가치와 기준이 들어와 역전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세상은 점점 더 반 기독교화 되어가고있고,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현상들은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와 성도들은 위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에서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들의 삶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시고, 복음도 있고, 교회 공동체도 있고, 교육도 있고, 양육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성장에 필요한 조건들을 공급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정직하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하며, 고통 받는 자들에게는 무관심할 뿐 아니라, 이기적이고,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십계명을 봐야하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십계명은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루터는 그의 책 [십계명에 대한 주해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약속 중의 약속, 모든 신앙의 원천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의 약속을 포괄하는 지혜의 원천이다” 더 나아가 루터는 대요리 문답에서 “십계명을 온전히 아는 사람은 성경 전체를 아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 이후 개혁교회는 십계명을 가르쳤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하이델베르그 신앙고백, 벨직 신앙고백서에서 다루었던 것입니다. 칼빈 역시 그의 책 기독교 강요에서 ‘기독교의 윤리’의 핵심으로서 십계명을 다루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십계명이 얼마나 중요했던지, 개혁교회와 장로교회는 예배시간에 십계명 낭독을 한 순서로 넣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십계명은 무시되고 있습니다. 예배 시간은 커넝, 성경공부시간에도 깊에 다루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갈 때, 우리의 기준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합니까? 이러한 진지한 고민의 해답이 십계명에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십계명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십계명을 다루기 전에 서론 부분으로 십계명의 성격과 형식 그리고 십계명을 받은 공동체가 어떠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선 십계명의 용어를 살펴보는게 좋습니다. 십계명은 문자 그대로 ‘열가지 계명’ 이라는 말입니다. 영어로 The ten commandments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구약 성경에 기록된 히브리어를 살펴보면, 십계명을 십계명 혹은 계명이라고 부른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10가지 말씀이라고 부릅니다. 출애굽기 34장 28절, 신명기 4장 13절에서 직접적으로 ‘열 가지 말씀’이라고 호칭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여호와께서 그의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에게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
십계명은 헬라어로 “데칼-로고스” 입니다. 데칼은 열이라는 뜻이고, 로고스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교부들과 70인역에서 십계명을 “데칼로그”로 사용했습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이 돌판에 직접 기록하신 십계명이 ‘언약의 말씀 곧 열가지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설교시간에는 십계명을 ‘데칼로고“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구약에서 데칼로그를 가리킬 때, ‘명령’ 보다는, 말씀하셨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을 보면 하나님은 데칼로그를 명령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절 “하나님이 이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출애굽기 20장 19절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출애굽기 20장 22절 “ 내가 하늘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 스스로 보았으니”
출애굽기 20장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결같이 말씀하다라는 동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현현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다, 말씀하다’라는 동사를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사용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데칼로그는 아무런 소통없이 하나님께서 내리신 일방적인 명령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데칼로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대화이고 교제를 통해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것은 하나님과의 소통을 말합니다. 계명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대화를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말씀을 지키면 복을 받고,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는 종교적 명령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믿습니까? 오늘 본문 2절은 말씀합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데칼로그의 서론만 보아도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 되시고, 우리는 그 왕의 백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하시면서 그들이 누구인지를 가르쳐 주시고, 이들에게 데칼로그를 주셨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19장 5-6절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는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것이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 신약교회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부름받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데칼로그의 내용은 무엇인가요?
첫째는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약서를 쓸 때, 갑 누구, 을 누구 라고 씁니다. 그 다음 갑과 을이 다음과 같은 계약 사항을 지킨다라고 계약서를 씁니다. 계약서에 보면 계약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계약자가 누구입니까?
“나는 하나님이다.” 즉 하나님이 계약 당사자가 되시고, 하나님과 계약을 맺는 당사자는,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여호와 하나님이 전면에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자신 스스로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십계명 뿐 아니라, 구약성경 곳곳에 나타납니다. 레위기 19장 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4절에서도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라” 고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실 때에 모세가 하나님께 묻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니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출 3:13) 이에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 스스로 있는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이십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영원토록 계실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계실 “항상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로, 우리가 상상해서, 우리가 만들어낸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내가 뭐라고 해도, 내 생각과 상관없이, 현존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런데 많은 철학자들,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일에만 움직이시는 하나님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출애굽기 3장 7-8절을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설명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동사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보고, 부르짖음을 듣고, 근심을 알고, 내려가서, 건져내고, 인도하여, 데려가려 하노라” 하나님은 고통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의 소리를 보고, 듣고, 같이 피해주고, 건져주는 역사를 참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계시는 분이라는 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꼼짝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분이 아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신실하시고 그 약속을 지키시며, 그 백성들에게 관심을 갖고 계시는 분이라시는 것입니다.
야곱을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삼촌 라반의 집으로 떠날 때, 벧엘에서 경함한 하나님과 몇 십년 뒤 돌아올 때, 경험한 하나님을 비교해 보면 아주 많이 다릅니다. 야곱이 벧에에서 하나님을 경험할 때 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훗날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과 투쟁하고 난 다음 그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은 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엘 엘로헤 이스라엘”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 전까지 야곱은 그저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심을 고백하는 것, 이것이 바로 데칼로그의 의미입니다.
두 번째는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애굽 종 살이에서 건져내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십계명이 주어지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습니다. 무슨 말이에요? 하나님의 구원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이전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고 그를 바로 앞에 세우셨습니다. 하지만 바로는 백성들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살리기 위해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마지막 재앙이 무엇이었습니까? 애굽 사람들의 장자가 죽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0가지 재앙을 경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홍해를 건너는 체험을 했고, 물과 만나 그리고 메추라기의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온갖 이적과 기사를 보여주신 뒤 십계명이 나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을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지켜야 할지 말씀하시기 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건져내시지 않고 십계명만 주셨다면, 이 계명 자체가 구원에 이르는 길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먼저 구원하셨고, 그리고 나서 계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20장 서론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다시한번 읽어보겠습니다. 1-2절,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나님이 먼저 해방 시켜 주시고, 그 다음 우리에게 해방 받은 자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슨 가치가 있어서 그들을 택하시고 구원하신 것일까요?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덕적 성품이나 인격을 보면 그들은 구원받을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원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구원받을 가치가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로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 먼 옛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언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언약이 무엇이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즉, 그들을 부르신 이유는 열방 가운데 하나님을 드러내는 백성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따라서 모세는 하나님께 그들을 멸하지 말라고 끝까지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신 이유는 이방 백성들이 하나님을 조롱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십계명을 통해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세번째는 구원 받은 백성들이 지켜야 할게 무엇인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구원 받은 이후의 삶이입니다. 자연 종교는 무엇을 할 것인지에 관심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복 받는가? 어떻게 하면 재앙을 면할 것인가? 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도 언제부턴가, 어떻게 하면 복 받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은 이것을 뛰어 넘는 거룩한 삶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시면서, 그들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19장 5-6절 말씀에,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레위기 19장 2절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위기 20장 26절에서도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은 평민 이하의 하찮은 민족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특별한 언약관계를 맺으셨습니다. 율법이 무엇입니까? 율법은 하나님을 반영합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 율법을 따르는 백성이 누구이며, 율법을 통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 하시면서 그들에게 바로 제사장 나라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이 무엇입니까? 제사장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려주고 그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에 하나님을 보여주는 사명을 부여하신다.” 는 의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이스라엘은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한 민족이 무엇입니까? 거룩한 민족은 하나님의 성품을 세상에 보여주는 민족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시고 부르신 이유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방 민족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리기 위함입니다. 즉, 눈에 보이는 그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칼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면, 이스라엘은 이 세상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예배해야 하고,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형상이 드러나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야 하고, 형상이 없는 신을 섬기는 기독교 안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은 신약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래서 베드로 역시 신약을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벧전 1:15-16) 그리고 베드로는 레위기 19장 말씀을 반복합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우리 모두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거룩한 나라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되어서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주고, 그들을 이끌어주며, 거룩한 나라가 되어서 세상이 우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오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교사들이 많이 계신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을 통해 우리의 아이들이 예수님을 알아가고, 예수님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청년들은 장년들에게서 배우고, 리더들은 또 다른 리더들을 통해서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나중에 교회의 직분을 가지게 되었을 때, 지금의 청년들보다 수준이 높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세대가 바뀔수록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을 드러내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세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거룩을 삶으로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그 하나님은 세상을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며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누구인지를 거대한 세상 속에서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누구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따라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통해, 나와 맺고 있는 관계를 통해, 내가 속해 있는 가정을 통해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공동체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과 함께 힘쓰는 모습들을 통해 거룩한 모습들이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더 많이 드러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봉사와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이 드러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말과 삶과 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드러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데칼로그’ 십계명입니다. 이 계명을 통해 우리가 더 하나님께 가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다움의 삶이 회복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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