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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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나님을 부르고 난 뒤, 나오는 첫 기도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입니다. 다시 말하면, “당신의 이름이 거룩하여 지기를 원합니다”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주님의 이름은 이미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 전체가 이상합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께 있기를 원합니다로 끝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중심입니다. 그러나 이 주기도문의 이 짧은 구절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성경은 이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이름은 모두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만나 이름이 바뀌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그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아내 사래 역시 사라라는 새 이름을 얻었습니다.
베드로는 어떻습니까? 그의 이름은 시몬입니다. 예수님이 그의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 성경에 나오는 이름들은 늘 그 인격의 정체성을 나타내 줍니다. 그가 누구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주기도문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말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이름이 등장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세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자신의 존재와 본질을 나타냅니다. 그 이름이 ‘여호와’ 로 번역된 ‘야훼’입니다. 하나님의 많은 이름들 중 이 이름은 하나님께 고유한 것입니다. 특별이 익서은 이스라엘에게만 계시된 이름이었습니다(출 6:3). 유대인들은 지금도 여호와라는 이름을 지극히 거룩하게 여기며 잘 부르지 않습니다. 십계명의 제 3계명을 어겼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과 이 세상에 있는 인간들이 맺고 있는 관계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대표적인 이름인 ‘엘로힘’ 과 주로 번역된 ‘아도나이’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 헬라에서 ‘데오스‘, ‘퀴리오스’라는 단어로 번역되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모든 인간과 피조물들과 구별되시는 하나님 자신의 탁월한 능력과 권세를 강조하는 것이며, 피조물들 중에서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무한 권능자로서의 하나님의 존재를 강조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냅니다. ‘여호와 이레’(창 22:14), ‘여호와 살롬’(삿 6:24), ‘여호와 라파’(출 15:26), ‘여호와 닛시’(출 17:15) 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들은 각각 어떤 특정한 상황 속에서 나타내 보이신 하나님 자신의 속성을 드러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이름을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깨닫고, 경험하고, 누리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편 9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자,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자는 다시말해,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자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알 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광대하심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말씀 속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성품 그리고 삶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자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런 자를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데 실패하였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크고 완전하신 하나님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가 잘 이해하도록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에는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제자들을 떠나시기 전, 예수님은 대 제사장으로서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6절입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요한복음 17장 26절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세상을 향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지, 어떤 일을 하셨고, 또 앞으로 어떤 일을 하실지 알려주셨습니다. 글서 아버지의 이름이 알려졌고 드러났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 이 기도의 결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름, 예수님이 알려주신 하나님의 이름의 가장 큰 특성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거룩”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룩’을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거룩은 존재론적 개념입니다. 거룩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도쉬”는 분리된, 구별된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은” 은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존재적 초월성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소 모든 창조된 만물과 구별되시는, 가장 높고 뛰어나시고, 위대하신 초월자라는 의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도덕적 완전성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들과 구별되시는, 가장 고상하고 탁월한 도덕적 완전성을 가지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분명 그 이름을 거룩이 여김을 받으시도록 사는 것이 성도의 삶의 목적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기도”는 어떻게 드릴 수 있을까요?
첫째는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29장 2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의 자손은 내 손이 그 가운데에서 행한 것을 볼 때에 내 이름을 거룩하다 하며 야곱의 거룩한 이를 거룩하다 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며”
하나님이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지키셔서 그 언약이 이루어진 것을 볼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것입니다. 그것은 곧 그분의 거룩함을, 그분의 특별함을, 그분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같으신 이가 없음을 인정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은 시편에 자주 등장합니다. 시편 77편 11-13절
“곧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
또 주의 모든 일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행사를 낮은 소리로 되뇌이리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시오니 하나님과 같이 위대하신 신이 누구오니이까“
시인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회상하고, 기억하고, 되새기고, 다짐합니다. 시편을 보면 같은 행위에 대한 표현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묵상하고 깊이 헤아리자, 하나님의 길이 거룩하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고백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같이 위대하신 신이 누구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여도, 하나님이 하신 놀라운 일들을 알아채기 시작하고, 묵상 할 때, “하나님의 길은 거룩합니다. 주님과 같은 분은 없습니다”라고 기도하게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33편 21절에서도 “우리 마음이 그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의 성호를 의지하였기 때문이로다” 라고 노래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묵상할 때, 우리 마음에 새길 때,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찬양하게 되고, 그 분 앞에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는 기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기도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세계에는 하나님이 하신 일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을 들기는 일이 필요합니다. 새벽에 반짝이는 별들을 볼 때, 저녁에 지는 노을이 찬란한 빛을 아름답게 펄쳐 내는 것을 볼 때, 가을에 색색으로 지는 단풍들을 볼 때, 봄이 되면 어김없이 솟아나는 새싹을 만날 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하셨군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를 보며, 하나님을 찬양할 때, 그분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십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생각할 때입니다. 자격이라고는 전혀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구원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신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은 온전히 예배 할 수 있습니다. 내 삶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고 즐거원하며 고백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우리는 자격이 없는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마다 얼마나 형편없이 부족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 아름다우심, 사랑 깊으심, 거룩하심을 묵상하고 발견하고 즐거워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기도문의 첫 기도가 중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살아가지 않습니다. 각 자 자신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런 우리가 기도할 때, 나에게 꽂혀 있었던 시선들이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찬양을 드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에게 집중되었던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려집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 기억하게 되고, 묵상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가 고백할 수 있는 최고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하셨습니다” 고백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배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 이러한 고백을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둘째는 삶을 통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나아가 묵상과 고백을 통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 뿐 아니라, 실제 삶을 통해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부분을 실패하였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점점 떠나갔고,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못해도 그들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에스겔 22장 26절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이 구별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눈을 가리어 나의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모독을 당하셨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당시 제사장들이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르게 되었고, 함부러 예배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묵상하고 그분의 주 되심을 입술로 고백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의 삶을 통해 고백을 드러낼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수 있고, 모독할 수 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쉽게 착각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모독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의 백성답지 못하게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갈 때, 우리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더립힘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하나님은 눈이 보이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을 따르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나라 백성이 땅에서 해야 하는 삶의 목표입니다. 나와 같은 자를 불러내셔서 하나님 나라에 속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내가 선한 삶을 살고,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는 구나!’ 고백할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를 어둠에서 불러내신 하나님의 업적을 우리가 선포하고 알려서,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될 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습니다. 이런 일이 초대교회에서는 일상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통해, 나와 맺고 있는 관계를 통해, 내가 속해 있는 가정을 통해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드러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우리의 삶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공동체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과 함께 힘쓰는 모습들을 통해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더 많이 드러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봉사와 섬김을 통해 하나님이 드러나길 소원합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말과 삶과 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드러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내 삶을 통해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기를 원합니다.” 또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내 인생을 통해 당신의 이름이 훼손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부족한 나 자신과 이 땅의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을 훼손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을 모욕하지 않는 지”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명예에 관심이 있는 자들이 드리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를 원합니다. 나의 개인적인 묵상과 고백 뿐 아니라, 나의 삶을 통해서, 우리 교회를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기를 원하며,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기를 원합니다” 고백하는 자들의 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를 드리는 백성을 오늘도 찾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야마로 자기 자신이 삶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자들이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키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인정되고 그 거룩하심이 드러나기를 소망하며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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