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칼리지-갈라디아서 1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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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소개
강의 안내
갈라디아서는 “종교개혁의 책”이라는 별명을 가짐. 종교개혁의 핵심 신학 사상이 녹아 있기 때문.
종교 개혁의 도구였던 루터는 ‘갈라디아서’를 자신의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꼽음
심지어 “탁상 담화”라는 책에서 “나는 갈라디아서와 결혼했고, 이 책은 폰 보라(루터의 아내)다.”라고 말할 정도.
종교개혁의 후예인 우리가 갈라디아서를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갈라디아서를 3번 읽고 올 것을 추천.
갈라디아서는 사도바울의 1차 전도여행 이후 쓰여진 편지. 바울서신의 첫 번째 편지. 갈라디아 지역 성도들이 수신자
1차 전도여행의 배경을 알아볼 필요
안디옥 교회
-구브로 섬 사람들과 구레세 사람들이 안디옥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이방인 교회가 세워짐
-예루살렘교회는 안디옥 교회에 구브로 출신 바나바를 담임목사로 파송
-바나바는 다소로 가서 바울을 데리고 옴
-안디옥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하면서 비로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얻게 됨(행 11:26)
-안디옥 교회는 큰 흉년을 예상하고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헌금을 보냄(행 11:28-30)
-그리고 안디옥 교회는 선교 비전을 품게 됨. 그리고 안디옥 교회의 담임목사와 가장 탁월한 말씀 설교자 바울을 구브로 지역과 갈라디아 지역으로 보냄. (바나바의 친척 마가도 같이 감)
-<지도 사진>
-<구브로>
-<버가(마가의 이탈)>
역사지리로 보는 성경 (신약편-3권) 버가: 밤빌리아 교통의 요충지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시 18:1–2)를 노래하면서 아크로폴리스를 향해 나가는 바울의 모습을 그려 본다. 마가는 떠나고 임계점에 오르지 못한 전도여행의 힘든 여정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기지 않았을까.

-<세바스테 길>
<세바스테 길2>
<산과 호수>
-<비시디아 안디옥>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 전도> 첫 교회 세워짐, 바울의 첫 설교(행 13:16-42)
-<비시디아 안디옥의 사도바울 교회와 유아 세례탕>
-부흥이 오니 박해가 시작, 유대인들이 귀부인들을 충동질(행 13:50)
-<박해를 피해 이고니온으로 이동, 전도의 문이 열림>
-또 박해,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리들이 돌로 치려 했다
-<박해를 피해 루스드라(바위사진, 주변사진)로 이동, 여기서 못 걷는 이가 일어나고 사람들이 바나바와 바울을 제우스와 헤르메스로 오해>
-<루스드라에서 원정박해단에게 돌로 맞음, 행 14:19>
-<하지만 바울은 계속 복음을 전함-더베>
-<그리고 다시 복귀하며 복음을 전함, 죽을 뻔한 곳에, 전도여행 사진과 앗달리아 항구>
-수리아 안디옥으로 복귀해서 믿음의 문을 연 것을 보고하고 제자들과 오래 지냄. 적어도 1년 이상.
-바울은 갈라디아 지역을 너무나 사랑했음.
-그런데 거짓 선생들, 즉 유대주의자들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공격하기 시작함.
-이들은 오직 믿음, 은혜로만 구원받는다고 가르치지 않고 믿음 이상의 것, 곧 할례와 율법을 추가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긴 했음. 하지만 율법을 보충하고 싶어 했음.
-이들이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을 어지럽혀서 바울의 사도적 권위와 은혜의 복음이 부정되는 위험에 직면하며 이 편지를 쓰게 됨.
-갈라디아서의 수신자들은 남갈라디아 지방에 있는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지역 사람들이다.
-이걸 남갈라디아설이라고 한다.
-북갈라디아설도 있다. 종족적 갈라디아인들, 옛 왕국이 있었던 지역.
-북갈라디아 지역은 상당히 고립된 곳이었고, 사도행전을 보면, 북갈라디아 지역을 방문했다는 구절은 없어서, 남갈라디아설이 대다수 학자에게 지지를 받는다.
#저작 연대
-갈라디아서를 예루살렘 공회의(행 15) 이전에 썼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이다.
-갈 2 를 보면, 바울이 능동적인 역할을 감당, 하지만 행 15 에서는 특별한 역할이 없다.
-갈 2 의 회합은 행 11:30 , 행 12:25 에 나오는 두 번째 예루살렘 여행으로서 부조를 전달하는 여행의 어느 시점에서 이뤄진 사적인 만남이며, 행 15 는 사실상 바울의 세 번째 예루살렘 여행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 사도바울의 첫 번째 예루살렘 여행은 행 9:26-29 에 해당. 예수님을 믿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바나바가 그를 변호해주는 과정을 볼 수 있다. 행 9:26-29 와 연결되는 갈라디아서 구절은 갈 1:18-20 이다. 그리고 안디옥에서 열심히 사역하다가 14년 후에 예루살렘에 부조를 보내러 간 것.
#배경과 목적
-갈라디아 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유대주의자들이 갈라디아 지역에 거짓 복음, 다른 복음을 전하러 침투했고, 바울과 바울이 전한 복음을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바울이 들었다.
-이 유대주의자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다고 고백은 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바울이 갈라디아서에 그 부분까지도 지적했을 것이다. 이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지만, 그것에 더해 할례를 받고 율법에 순종을 해야만 완전한 구원에 이른다고 다른 복음을 전했다. 이들이 바울의 복음을 일부 인정했기 때문에 갈라디아 교회에 쉽게 침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오직 믿음, 은혜로만 구원 받는다고 가르치지 않고 믿음 이상의 것, 곧 할례와 율법을 추가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거짓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바울이 전한 복음만 공격한 것이 아니라 그의 권위에도 심각한 손상을 주고자 사도권을 놓고 맹렬히 공격했다.
-이 위험에 직면했기 때문에 바울은 갈라디아 지역에 편지를 썼다.
-바울은 자기 권위를 세우고 싶은 권위주의자였던 것이 아니라, 사도권이 부정되면 자신이 전한 복음이 업신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사도권을 변호한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 지역을 너무나 사랑했다. 그들이 바른 신앙에서 벗어나 행위 구원에 속아 넘어가는 것이 매우 속상했다. 다른 복음은 진노에 이른다. 그래서 그들을 다시 구해내고자 했던 것이다.
#신학적 주제들
-갈라디아서는 매우 신학적인 책.
-유대주의자들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이방인) 할례를 요구하며 율법 준수를 요구한 것은 바울의 신학을 심각하게 손상하는 일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확실한 신학으로 그들의 다른 복음을 반박한다.
1. 인류가 처한 곤경
-3:10과 2:16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은 완전함을 요구하시지만 인간의 죄 때문에 누구도 완전함에 이를 수 없다.
-유대주의자들은 율법 준수를 요구했지만, 인간의 죄 때문에 율법을 준수할 수 없다.
-인간은 죄 때문에 저주 아래에 놓여 있다(3:10)
-율법은 인간의 악함을 치료하기보다 그것을 악화.
-율법은 죄를 증가시키기 위해 주어졌다(3:19)
-갈라디아서에서 ‘아래에’가 포함된 암담한 인간의 상태를 설명한다.
-”저주 아래에”(3:10)
-”죄 아래에”(3:22)
-”율법 아래에”(3:23; 4:5, 21: 5:18)
“초등교사 아래에”(3:25)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4:3)
-이 모든 표현들은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은 구원 역사의 옛 시대에 속함을 의미한다.
-바울이 궁극적으로 율법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율법은 단지 인간의 죄와 악을 드러낸다.
-인간은 죄와 영적 세력에 매여 있으며 스스로 벗어날 능력이 없다.
그러므로 구원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필요하다.
2. 율법과 언약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이라는 단어는 32번 사용. 여기서 29개는 모세 율법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행할 수 없기 때문에 저주 아래에 있다.
-그러므로 율법은 믿음과 대조된다.
-율법은 하나님의 명령에 초점을 맞추며 인간의 행위를 요구
-하지만 믿음은 인간의 문제에서 눈을 돌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의를 찾는다.
-만약 인간이 율법을 지킬 수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덕을 높일 것이다.
-하지만 믿음은 인간을 속박에서 해방하신 그리스도를 찬양
-율법은 아브라함 언약을 맺은 후 430년이 지나서 주어졌다. 율법은 아브라함 언약을 취소할 수 없다. 이미 아브라함 언약에서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고 증거했기 때문이다.
-율법은 예수님이 오기 전까지만 유효했다(3:19)
-율법은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 관리인과 보모의 역할을 했지만, 그분이 오신 지금 율법의 시대는 지나갔다(3:24-25)
-그리스도가 오신 지금 신자는 더 이상 율법 아래에 있지 않다.
-그리스도는 율법 아래에 사셨고 율법을 다 지키셨고, 율법 아래에 있는 우리를 해방하셨다(4:4-5)
-그리스도의 희생만이 율법에 불순종함으로 오는 저주를 제거한다(3:13)
3.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
-갈라디아서의 중심 주제 중 하나는 칭의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
-유대주의자들이 이것을 해치려 한 것이다.
-오늘날도 이신칭의의 명성이 없어진 것 같다.
“의롭게 하다”와 “의”는 법정적 단어이다.
-(재판장 비유 들기)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으로 인해 옳다고 선언되며 무죄를 선고받은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을 때만 옳다고 인정 받을 수 있다.
-예수님의 의의 전가 덕분에 우리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율법에 대한 복종을 통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한다면, 예수님의 죽으심을 헛되게 하는 것이다(2:21).
-율법에 대한 복종이라는 인간의 성취로 얻어진다면 구원이 누구의 일이 되는가? 인간의 일이 된다(3:12) 이것은 저주 받아야 마땅한 주장이다.
-행위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보증한다면 사람은 자신의 성취에 대해 찬사와 찬양을 받아야 한다.
-대조적으로 바울은 칭의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므로, 우리의 구원과 관련된 모든 찬양과 명예를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야 한다고 말한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그분이 하신 일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받는 것이다.
4. 십자가 중심성
-칭의와 십자가는 뗄 수 없는 관계다.
-갈라디아서 편지의 서두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죽으심이라는 주제가 소개된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십자가는 갈라디아서의 ‘북엔드 역할’을 한다.
바울이 십자가를 통해 얻은 자유를 강조하며 편지를 시작해서 십자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편지를 맺기 때문.
-바울의 유일한 자랑은 스리스도의 삽자가였다. 그는 세상에 대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은 그에 대해 십자가에 못 박혔다(6:14)
-하지만 유대주의자들의 자랑은 자신의 행위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인정 받았는데 자꾸 이쁜 자녀가 되려면 뭘 더 해야 한다고 착각했다ㅈ.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 율법 준수에 의지하는 자들은 십자가를 무효화한다(2:21). 인간이 행위와 순종을 통해 의를 얻을 수 있다면 그리스도가 죽으실 필요가 없었다.
-죄와 사망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시는 것뿐이다.
-할례를 대체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내 마음에 할례를 주었다(롬 2:29).
5. 성령의 선물
-성령은 갈라디아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신다.
-성령님은 신자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으며(3:1-5)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4:6)라는 증거다.
-성령님은 새로운 시대가 이르렀으며 약속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의 확실한 증거.
-성령님은 성도가 행위로써가 아니라 믿음으로써 하나님께 속하게 되었다는 증거(6:16)
-유대주의자 대적들은 갈라디아 사람들이 아브라함처럼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가족에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나, 바울은 그들이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복을 누린다고 강조하며 반박(3:14).
-성령과 칭의는 밀접한 관계
성령님이 내 마음을 변화시키지 않으셨다면, 나는 예수님을 믿을 수도 없었다. 성령님 덕분에 나는 믿고 구원을 얻고 의롭다 여김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성령님 덕분에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성령은 갈라디아서에서 윤리와 관련하여 핵심 역할을 한다.
갈라디아 사람들은 성령을 따라 행하도록(5:16), 성령께 인도 받도록(5:18) 성령과 보조를 맞추어 행진하도록(5:25), 성령에 심도록(6:8) 권고받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들은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으며(5:22-23) 육체와 성령의 싸움에서 육체를 이길 수 있다(5:17).
-성령은 신자가 삶의 매순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성령 안에서의 삶은 신자들이 영적 황홀경에 빠져 수동적인 삶을 살아내는 것이 아니다. 신자는 성령이 그들 안에서 강력하게 역사하실 수 있도록 매일 그분께 자신을 드릴 것을 권고 받으며 순종할 수밖에 없게 된다.
6. ‘이미’와 ‘아직’의 종말론
-칭의와 종말론을 뗄 수 없다.
-칭의는 마지막 날에 앞서 미리 선포된 종말론적 선포.
지금 선언된 칭의의 선고가 단순히 미래의 실체를 가리킨다는 뜻이 아니다.
신자는 이미 의롭다 함을 받았지만, 동시에 그는 심판 날에 내려질 최종 선언을 기다린다. 하나님이 이미 선언하셨던 선고가 그날에 공표된다(5:5).
-비록 신자들은 오늘날의 악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1:4) 같은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신자들을 오는 시대로 진출시켰다.
-종말의 시대가 지금의 시대로 침투해 들어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옛 악의 세상은 신자들에 대해 지배권을 잃었다(6:14)
-따라서 성도들은 지금 시대를 살지만, 승리의 종말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더불어 새로운 시대가 이르렀다.
7. 그리스도 안에서 순종의 자유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주제다. 우린 하나님 앞에서 너무 눈치를 많이 본다.
-갈라디아서는 신자들에게 율법에서 자유롭게 되었다고 선포한다.
-율법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만 유효한 것이다. 그리하여 신자는 율법에 성문화된 할례, 십일조, 안식일 준수, 음식 규정에 종속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도 말씀을 지킬 의무가 있으므로, 율법을 어기면 여전히 잘못된 일이 아닌가?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 의무를 그리스도의 법 안에서 보면 된다. (6:2)
이 법은 근본적으로 사랑의 법이다(5:14)
따라서 신자는 이웃의 유익을 위해 산다. 사랑을 보여주는 것은 간음, 살인, 도둑질 등을 멀리하게 한다.
-율법의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법에 스스로 종속되고자 하는 것이다. 성령님이 이 일을 행하신다.
진정한 믿음은 사랑의 삶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신자의 순종은 그가 주님께 속함을 보여주는 필수 증거의 기능이다.
8. 결론
-갈라디아서의 핵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러니 나의 어떠함을 자랑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자랑해야 한다.’
-비슷하게 고전 2:2 에서 말한다.
1 Corinthians 2:2 NKRV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또 대조적으로 보면, 나의 어떠함이 너무 부족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부끄러워 하고, 지나친 죄책감에 시달려 힘들어 하던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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