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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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누가복음 5:1-16
찬송가 539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본문은 갈릴리 초기 사역으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만나신 사건과 한센병자를 고치신 사건에 대한 내용입니다. 먼저 베드로를 만나신 사건입니다.
베드로를 만나심(1-11)
(1-2)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님은 갈릴리 여러 회당을 두루 다니시며, 사람들을 가르치고, 전파(선포)하고, 치유하셨습니다. 이때 현장에 있던 사람들과 이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무리를 이루어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헬라어 원문에는 본 절이 ‘그러던 어느 날’을 의미하는 Έγένετο δὲ에게네토 데로 시작합니다. 한글성경은 이를 생략하고 있으나, 영어성경(NIV)은 이를 반영하여 ‘One day’로 시작됩니다. 이 표현을 통해 앞선 내용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내용이 이어질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게네사렛 호숫가에 몰려든 무리를 가르치던 그날, 예수님의 시선은 무리 밖에 있는 어부들을 향했습니다. 두 척의 배를 뒤로하고, 축 늘어진 무거운 손을 놀려 그물을 씻고 있는 이들 사이의 분위기는 무거웠습니다. 밤샘 고기잡이에서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이들은 고단함과 좌절감에 고개 들어 코앞에 계신 예수님과 무리를 헤아릴 여력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곧 시선이 머문 곳을 향해 몸을 돌리셨습니다.
(3-4)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예수님은 어부들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셨습니다. 뭍에서 조금 떨어진 배 위에서 무리를 향한 말씀을 마치시고는, 키를 잡은 시몬을 향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간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한 시몬은 이미 그물을 씻어 둔 상태였습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고기잡이를 마친 후 그물을 씻는 일은 결코 손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제 막 씻어둔 그물을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의 말을 듣고 다시 내리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시몬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예수님께서 다가와 전하신 말씀의 역동은 시몬에게 즉각적 반응으로 이어졌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게네사렛 호수의 어부였던 시몬의 입에서 자신의 지식과 경험보다 말씀을 앞세워 따르겠다는 고백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이어진 결과는 더욱 놀랍습니다.
(6-7)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말씀을 따른 순종은 힘이신 주님을 힘입는 순간으로 이어졌습니다. 밤새 한마디로 잡지 못했던 그 호수에서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한척의 배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어 시몬은 다른 한척의 배를 향해 힘차게 손짓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빈 그물을 씻는 것조차 고단하게 느꼈던 이의 손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힘이 넘쳤습니다. 두 척의 배가 가라앉을 지경으로 잡힌 고기들을 보며, 그 자리에 함께한 어부들은 하나같이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9절). 예수님의 은혜를 직접 경험한 시몬은 보다 적극적으로 반응했습니다.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앞서 선생(5절)이라 호칭했던 예수님을 향해, 이제는 주님이라 높여 부릅니다. 동시에 예수님의 무릎 아래로 납작 엎드려, 스스로 죄인임을 고백했습니다. 좌절된 생업의 현장에 파묻혀 보지 못했던 예수님을 비로소 똑똑히 보게 된 결과였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그를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이제부터 사람을 낚을 것’ 이라며 제자로서의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10절). 어부였던 아니, 이제 제자 된 이들의 행동은 거침없었습니다.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어부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배와 그물, 그들의 희비를 가르던 고기들. 이것들을 버려두고 단숨에 예수님을 따릅니다. 이는 그들이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던 것에 변화가 생겼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밭에 감춰진 보화를 발견한 이들이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주님이라 부르고 있는 그분을 온전히 따르고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그분께 처음 엎드렸던 순간을 되새기며, 오늘도 엎드린 채 살고 있는지 돌아보십시다. 주님의 손이 되어야 할 우리의 손이, 언제부터인가 세상의 손으로 돌아가 있지는 않습니까?
지식과 경험이 아닌 말씀을 의지할 때, 틀림없이 우리 손은 주님의 손으로 사용될 것입니다. 이어 한센병자를 고치신 사건입니다.
한센병자 치유(12-16)
(12)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
개역개정성경에서는 ‘있어’라고 기록하여, 한센병자가 동네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오해를 야기합니다. 그러나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병행구절에는 ‘나아 왔다’(마8:2), ‘왔다’(막1:40)라고 기록합니다. 그가 율법의 규정(레13:45,46)에 따라 격리된 삶을 살았던 점을 바로 잡아 주고 있습니다. 새번역성경은 이를 반영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새번역 12) 예수께서 어떤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나병이 든 사람이 찾아 왔다. 그는 예수를 보고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간청하였다. "주님, 하고자 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그는 주님이 계신 곳으로 용기 내어 찾아 온 상황이었습니다. 본 절에서 더 중요한 점은 그의 고백에 담겨있습니다. 그는 지체 없이 얼굴을 땅에 대어 엎드리고는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는 밑도 끝도 없이 간청하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 호칭하며,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시라 믿는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고백에 예수님은 지체 없이 응답하셨습니다.
(1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나병이 곧 떠나니라
예수님은 그의 한센병을 치유하시면서 몸에 손을 대셨습니다. 엎드린 그의 등이나 어깨쯤에 손을 대셨을 것 입니다. 입술의 선포만으로도 병을 고치실 수 있으신 분이 구태여 손을 대신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사회적 통념이나 정결법상으로 한센병자는 부정한 사람으로 구분되어, 사람들은 일체 그들과의 접촉을 피했습니다. 한평생 사람의 손길이라고는 느껴보지 못한 그의 몸 위에 올려진 예수님의 손은 그의 마음까지 치유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통해 눈에 보이는 병과 보이지 않는 병까지 동시에 고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한센병자가 아닌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4) 예수께서 그를 경고하시되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또 네가 깨끗하게 됨으로 인하여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니
예수님은 그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치료받은 몸을 보이고, 율법에 따라 예물을 드리라고말씀하시면서, 치유의 과정에 대해 누설하지 말 것을 엄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보다 그가 신속히 유대공동체의 적법한 구성원으로 인정받도록 하기 위함이었음이다. 더불어 이로 인해 그리스도로서의 사역이 자칫 육신의 병을 고치는 것으로만 왜곡될 것을 경계하신 까닭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소문(news)은 신속히 퍼져나갔고, 더 큰 무리가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마가복음의 병행구절에는 치유 받은 이가 그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두루 다니며 이야기 한 것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막1:45).
예수님은 몰려든 많은 이들로 인해,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구속 사역의 본질에 혼란이 생길까 싶어 한적한 곳(광야)으로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향한 시선이 흔들리지 않도록 기도하셨습니다(16).
오늘 두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큰 은혜를 체험한 두 사람은 각각 예수님 앞에 엎드렸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 상황과 시점은 달랐지만, 이들은 복잡한 계산 없이 주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 세상의 시선 등을 예수님 앞에 완전히 내려놓았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힘이신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는 비결을 깨닫습니다.
마지막으로 무릎을 꿇고 엎드려 기도 드렸던 때가 언제였는지 헤아려 봅시다. 만약 그때가 아련히 멀게 느껴진다면, 그동안 주님 앞에 엎드리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또한 헤아려 봅시다.
다시금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 그 말씀 앞에 엎드릴 것을 결단합시다. 아니 엎드립시다. 그때 비로소 따스한 주님의 손길(touch)은 삶의 무게에 움츠린 저희 어깨 위에서 느껴질 것 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만난 베드로와 한센병자의 모습을 통해, 주님과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을 헤아리며, 오늘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말씀 앞에 엎드리기보다는, 얕은 지식과 짧은 경험을 앞세우며 진리에서 멀어져 가던 저희를 붙들어 주십시오. 코로나19로 사순절의 대부분과 부활주일 예배까지 영상으로 밖에 드릴 수 없는 지금의 현실 앞에 저희의 교만을 깨닫고 무기력함을 고백합니다. 이제 주님의 명령(말씀) 앞에 주저함 없이 엎드립니다. 주님의 따스한 치유의 손길을 저희와 더불어 온 세계에 신속히 허락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