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사라는

히브리서 11장 믿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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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사라는
히 11:11-12
히브리서에 기록된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믿음의 모범을 보여준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조상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아브라함일 것입니다. 반면 믿음의 어머니 하면 사라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사라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라의 이야기를 통해 믿음의 사람이 무엇인지 그리고 믿음을 가진 후 우리가 받는 상이 있다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히브리서를 기록한 기자도 1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베드로전서 3장 6절에서도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말씀하고 있고, 갈라디아서 하갈과 사라의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4장 31절에서는 “자유하는 여자” 라고 말씀합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히브리서는 사라를 소개하면서 “믿음으로 사라는“ 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사라의 생애를 살펴보면, 이 믿음에 도달하기 위해 많이 회의를 가졌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성경은 사라가 이 회의를 어떻게 극복하고 위대한 믿음에 도달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사라의 믿음은 무엇이었을까요?
창세기 17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99세 였습니다. 창세기 17장 15-1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찾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이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이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겠어요? 왜? 웃은 것입니까? 그의 나이가 이제 100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 사라 역시 90세 였기 때문에, 이것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말도 안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의 웃음은 어처구니 없는 웃음이었을 것입니다. 어처구니가 뭔지 아시지요? 맷돌을 돌릴 때, 손잡이입니다. 맷돌을 돌리려고 하는데 손잡이가 없는 것입니다.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이렇게 고합니다. 18절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갈을 통해 얻은 이스마엘이 이 혈통을 이어가길 바랬습니다.
사라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사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18장 12절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여기서 하나님과 아브라함 그리고 사라의 웃음에 대한 논쟁이 벌어집니다.
창 18:13-15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람에게 자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때, 그들은 모두 웃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때가 찼을 때, 약속하신 대로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었습니다. 그 뜻은 웃음입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유머스러운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특별히 이 사건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사라가 어떻게 이 회의, 즉 의심에서 극복했는지 성경은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실 인간은 누구나 회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역시 이러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결코 회의를 은폐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의심합니다. 누구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하나님을 신뢰를 의심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전능성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면서 이 마음의 벽, 의심의 벽을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라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7장 19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니, 반드시 실행된다는 말입니다. 마침내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시고,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실행하시는 신실한 하나님이라면 비록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나이가 오래 전에 지났다 할지라도 가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생긴 것입니다. 이 믿음이 의심을 무너뜨릴 수 있었습니다. 이 말씀이 믿음의 벽인 회의를 무너뜨릴 수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다면 어떻게라는 질문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신실하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이 질문을 넘어서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말씀과 내가 가지고 있는 상식, 경험이 부딪칠 때, 우리는 무엇을 의지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물고기를 잡는 어부였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복음 5장 5절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바로 이것입니다. 나의 상식과 경험 그리고 나의 지식과 말씀이 부딪힐 때, 우리는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말씀을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다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 주의 말씀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회의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훗날 사도바울은 이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로마서 4장 18-2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브라함과 사라는 모두 의심하였습니다. 어떻게 이런일이 일어날 수 있지?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기자는 역사가 흐른 뒤 하나님을 향한 의심의 내용은 기록하지 않고, 나중의 믿음을 기록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을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결론에 도달하였는가에 집중하십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도 사라도 처음에는 의심하였지만, 결국 그들은 믿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라의 삶은 믿음의 대상과 믿음의 근거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사라의 믿음의 대상이 누구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라의 믿음의 대상은 누구였습니까? 그것은 바로 약속의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사라의 믿음의 대상과 근거는 뚜렷합니다.
미신이 무엇입니까? 사실이 아닌 데 사실처럼 믿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불신앙은 무엇입니까? 사실임에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은 사실을 사실대로 믿는 것입니다. 사라는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기에 또한 그의 약속을 믿고 받아드렸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11절 “사라는 믿음으로 잉태할 수 있는 힘을 믿었으니” 사라가 무엇을 믿었다는 것입니까? 90세가 넘은 여자에게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 확률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라는 믿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믿을 수 있는 믿음의 출처가 무엇입니까? 로마서 10장 1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성경적 신앙은 언제나 객관적인 기초를 요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믿음과 함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근거 역시 말씀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읽어야 하고, 배워야 하고, 가까이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믿음의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이 무엇을 강조하고 있습니까? 말씀이신 하나님은 신실하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약속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하나님은 미쁘시기 때문에 약속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약속을 기억하기를 소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말씀 위에 우리의 믿음을 세워야 합니다.
더 나아가 사라에게는 믿음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라에게 하나님은 어떠한 보상을 해 주셨을까요? 히브리서 11장 12절을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사라의 믿음을 보상해 주었습니다. 믿음으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없는 것을 있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은 자손을 주셨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보상입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11장 6절에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상 받기 위해 예수를 믿습니까? 나는 이런 유치한 이기적인 신앙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상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순수했던 그 어린 시절, 상 받는다는 사실 앞에서 얼마나 기뻐했고, 가슴 두근거렸습니까? 아버지가 주시는 상 때문에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습니까? 그 삶은 우리를 순수한 감동과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 준다고 해도 감동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 상을 기다렸습니다. 빌립보서 3장 14절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바울은 아직도 “나는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예배하신 그 영광스러운 상급을 위해 달려갑니다”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고백이 우리 가운데도 있기를 소원합니다.
사라는 믿음에 대한 영광스런 보상으로 마침내 “열국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녀를 통해 우리 구주 예수님이 태어났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보상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약속이 성취될 때, 누가 제일 감격합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역사와 개인을 통해 성취될 때 가장 감격하는 사람은 그 약속을 믿는 사람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메시야가 오신다는 약속이 수 없이 증거되었습니다. 그리고 진짜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제일 기뻤을까요? 그것은 그 약속을 믿고 기다렸단 사람들이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님이 오셨을 때, 누가 가장 기뻐했을까요? 그 약속을 믿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약속에 대한 믿음! 이것이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감격을 가져다 줍니다. 따라서 신앙의 감격은 매우 소중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믿고 고대할 때에 이것으 우리를 흥분하게 만듭니다. 사라를 향한 하나님의 보상, 그것이 약속의 성취이며, 믿음에 관한 영광스러운 축복입니다. 이 축복이 아브라함과 사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이 영광스런 보상을 기다하기를 소원합니다.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급을 위해 바울처럼 푯대를 향해 나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자랑스러운 그날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들을 찾아 읽으면서 신뢰하는 믿음을 근거로 사는 삶을 살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하나님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 약속을 믿으며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 그 사람이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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