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믿음
Notes
Transcript
더 좋은 믿음
히 11장 39-40절 / 12장 1-2절
작년부터 시작하여 히브리서 11장을 통해 10번의 설교를 하였습니다. 이제 결론 부분입니다.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선진들의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믿음의 삶이 무엇인지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39절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구약의 성도들은 어떤 의미에서 그 약속을 받지 못한 것입니까? 또 하나님은 신약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을 위해 남겨 놓으신 더 좋은 것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모든 믿음의 선배들의 삶 속에 나타난 삶의 능력, 삶의 열매 그리고 삶의 업적은 모두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모두가 믿음의 증거들입니다.
아벨은 하나님께서 열납할 제사를 드릴 수 있었던 이유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에녹은 악한 시대에 살면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고, 노아는 방주를 예비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을 향하여 모험적인 출발을 할 수 있었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출애굽의 기적과 영광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육지처럼 건넜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거룩한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모두가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을 향한 믿음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3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33절에서 이미 “약속된 것을 받기도 하며” 라며 하면서 39절에서는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라고 말합니다. 번복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헬라어 성경에는 약속이라는 단어 앞에 정관사 텐, 영어로 the 가 붙어 있습니다. 이것은 많은 약속 가운데 한 약속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한 특정한 약속을 말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특정한 약속을 말하는 것일까요?
사도행전 13장 23절에서 우리는 그 약속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13장 32,33절에서는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이 약속은 예수님에 관한 것입니다. 구약시대를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큰 소망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을 위해 구주가 오신다는 소식, 즉 메시아가 큰 소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당대에 메시아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약속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신약의 성도들은 구약의 성도들보다 얼마나 많은 혜택과 특권을 받았습니까? 왜냐하면 우리는 찾아오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씨에 비유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그들이 보고 싶어 하며, 듣고 싶어 했던 것은 메시야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믿음은, “메시야가 어떻게 사람들을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줄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놀라운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토록 기다린 메시야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기적의 현장입니까?
제자들은 그들 앞에 계신, 눈에 보이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보고 있습니다.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과 만났고, 하나님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기적의 현장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메시야를 오랫동안 기다려왔고, 목숨을 다해 사모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구세주 앞에 서 있습니다.
그 때부터 새로운 언약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역사와 시간 속에 아주 구체적으로 들어오신 예수님의 관한 지식을 사람들은 소유하게 되었고, 그리스도를 믿으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구약의 성도들보다 신약의 성도들이 더 많은 특혜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오늘 이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선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형이나 약속 혹은 예언을 통해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희미하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역사 속에 찾아오신 예수님에 관한 확실하고 구체적인 지식을 가질 수 있으며, 성경이 우리에게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언하는 분명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약의 성도들은 행복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히브리 기자는 히브리서 11장 말미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에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우리보다 불리한 여건 속에서 아직 오시지 않은 메시야를 고대하며 살았다면, 보다 좋은 조건 속에서 새로운 언약을 받은 우리는 얼마나 더 풍성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이것이 히브리서 11장을 마치면서 히브리기자가 우리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히브리 기자는 11장의 위대한 결론은 12장 1-2절에서 결론을 내립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믿음의 삶이 경주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타난 모든 믿음의 선진들은 믿음으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의 믿음의 삶을 성경은 경주와 같다고 말합니다. 되풀이 될 수 없는 경주입니다. 그리고 이 경주에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12장 1절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1절은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해 죄와 더불어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4절에서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얽매이기 쉬운 죄의 포승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에서도 사도 베드로는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나의 무거운 짐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이 과거의 자기가 자랑했던 것들이 경주의 장애물임을 알았을 때,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며 푯대를 향해 달려갔던 것처럼, 나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믿음의 경주를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두 번째 믿음의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는 인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내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골인할 수 없습니다. 히브리 기자는 2절에서 예수님의 사건을 통해 인내의 덕을 설명합니다. 2절 다시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에게 있어서 인내는 십자가를 참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십자가에서 견디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인내로 모든 경주를 완성시키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삶은 인내입니다. 성경은 여러구절에서 이 사실을 증거합니다.
누가복음 8장 15절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갈라디아서 6장 9절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히브리서 6장 12절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성경은 믿음과 오래참음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게한다고 말씀합니다. 경주자의 필수 덕목은 인내입니다. 우리 안에도 이러한 인내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세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이 말은 우리의 믿음의 처음도 믿음을 완성시키시는 분도 예수님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우리 신앙의 경주가 시작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누구를 향해 가십니까? 우리가 주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바라보자 라는 말은 헬라어 “아폴라오” 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의 뜻은 조사하다, 미리보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살펴보면,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조사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어떠하신 분인지, 이 땅에 오셔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에게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지, 예수님이 나의 삶에 누구신지, 성경을 통해 조사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예수님의 행적들을 성경을 통해 찾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신앙생활하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뛰어갑니다.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리스도를 닮아간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 19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우리가 주님을 만난 순간 우리 속에는 우리를 구하시고 사랑하시는 주님을 닮고 싶은 열망이 생깁니다. 성경은 그 예수님을 닮아 가고 그에게 영광 돌리는 것만이 우리 신앙의 목표라 말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 예수님을 바라보고 닮아가는 참 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마지막으로 경주에 대한 보상을 가르칩니다. 경주는 쉬운 여정이 아닙니다. 때로는 피곤하기도 하고 지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주를 해야하는 이유와 가치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경주가 끝났을 때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보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보다 앞서 세상에 오셔서 인간의로서의 삶을 사시면서 경주를 하신 분이셨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그런 삶을 사신 것일까요? 히브리서 12장 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은 보상을 바라보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셨습니다. 골고다 언덕 저 너머에 있는 부활의 영광을 바라 보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온 인류가 구원을 받고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될 것을 예수님을 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보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빌립소서 3장 14절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의 선배들 역시 죽음과 역경과 고난을 견디면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상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상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경주는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경주가 끝나면 모두에게 상이 주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우리의 수고를 인내하며 감수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7,8절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우리에게 반드시 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나의 삶이 어려움이 있습니까? 아픔이 있습니까? 이 경주가 지치고 넘어짐의 연속입니까? 오늘 우리의 경주를 응원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히브리서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배들입니다. 그들이 지금 우리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 아벨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나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겼고, 목숨을 바쳤다” 라고 말합니다.
그 속에는 에녹의 모습도 있습니다. “자신은 악한 시대, 패역한 시대에 하나님과 300년을 동행하였다. 여러분도 하나님과 동행하라” 고 말합니다. 노아는 말합니다. “아무도 내 믿음의 동의하는 사람들이 없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방주를 짓고 시대를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어떻습니까? “그는 갈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인생을 걸고 나아갔습니다” 그곳에 야곱도 있었습니다. 야곱은 젊었을 때는 방탕하여, 남을 속이고 잔꾀를 부리며 살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로 달려 갈길을 다 마치고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모세의 믿음은 무엇이었습니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를 지날 때,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을 듣고, 고난과 역경을 감수하면서 그들을 약속의 땅까지 이끄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 길이 쉽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 마침내 달려갈 길을 마쳤습니다.
요셉은 애굽 땅에서 홀로 남겼을 때,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만을 섬겼습니다. 기생 라합은 이방여인이지만, 하나님의 대한 소문을 듣고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더 나아가 히브리서 11장 35절 이하에는 더 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악형을 받았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과 천국의 소망이 있기에 구차하게 목숨을 구하지 않고 순교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때로는 조롱도 받고 때로는 결박도 당하며, 옥에 갇히기도 하고 돌로 치며, 톱으로 켜는 시험을 당하고, 칼로 베임을 당하고 환란과 궁핍과 학대를 받았던 우리의 선배들입니다.
그들이 지금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보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영광스런 보상을 바라보면서 이 길을 달려가 모두 마쳤습니다. 우리는 칼에 베임을 당하고 유리하면서도 달라갈 길을 다 달려갔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보다 휠씬 좋은 환경에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달려가십시오.”
지금 그들이 우리를 향해 응원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구약의 성도들보다 좋은 환경과 좋은 조건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선배들의 응원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