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에서 변증으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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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제가 요즘 최근 파리 올림픽 진출에 실패한 축구 대표팀 관계자의 인터뷰가 축구팬들의 공분을 산 일 이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와의 경기에서 패배 후 그는 ‘유럽 출신 선수들이 없어서 많이 힘들었 다.’ 고 토로했습니다. 축구 팬들은 미리 일정을 조율하지 못한 대표팀 관계자들에게 비겁한 변명 이라고 일축했습니다. 변명이라는 단어는 어떤 실패나 잘못, 혹은 실수에 대하여 구실을 대며 까 닭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말은 즉, 불완전하고 죄 된 우리들에게 수없이 많은 잘못과 실수, 변명 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변증은 다릅니다. 어떤 일이나 사건을 논리적으로 증명하거나 연구 하는 것입니다. 만약 축구 대표팀 관계자의 인터뷰가 단순히 진 이유를 불성실하게 선수들의 탓으 로 변명할 것이 아니라 전략적이고 치밀한 분석에 의해 준비된 성실한 답변이었다면 모든 것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Read: 오늘 성경이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잘못을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변증하는 삶입니다. ‘너희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 는 자에게는(묻는 모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벧전 3:15]
Needs: 이처럼 저와 여러분은 모두 복음의 변증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 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말씀대로 살고 계십니까? 대 부분 우리의 현실은 변명하기 바쁩니다. 목사는 자신의 잘못을 가리기에 급급하고 성도는 자신의 삶에 떳떳하지 못합니다. 성경을 알지만 지키지 않습니다. 명령을 듣지만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다들 나름대로의 구실을 찾으며 이유가 있습니다! 결국 변명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오늘날의 기독 교가, 복음이, 예수님의 이름이 힘을 잃어버린 이유입니다. 우리의 불성실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 이 가리워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 1. 입술로 변증하는 삶 (Exegesis1): 여러분은 주변에 복음을 설명하거나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변증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학창시절 주변에 믿음이 없는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것이 늘 일상이자 고민이었습니다. 제가 대학생일 때 친구들과 당구를 치는데 제가 컨디션이 안 좋았는 지 그날 잘 맞추지 못하자 한 친구가 이렇게 말합니다. ‘야 왜 이렇게 못 치냐? 오늘은 하나님이 안 도와주니? 기도해봐 얼른!’ 비아냥 거리는 말투로 신경전을 펼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당구채 를 내려놓고 조용한 어투로 ‘잠깐만 앉아봐’ 하며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설명을 시작했지만 몇 마 디 하기도 전에 친구들의 비난 세례를 받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제가 변증에 실패한 3가지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베드로는 ‘너희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으라’ 고 말합니다. 마 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나의 주인이자 아버지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내 삶의 모든 권한과 권리가 내가 아니라 그분께 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나 뿐만 아니라 세 상의 모든 주권이 예수님께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저는 예수님을 만나 기 전 이었고 하나님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분을 변호할 수 있었을까요? 내가 그리스도의 자녀라는 확고한 정체성 없이는 그분을 설명할 명분이 없습니다. 말에 힘이 없는 것이지요! 두번째, ‘거룩 하라’고 합니다. 거룩하게 하라 는 것은 구별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답게,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이 세상의 사람들 과는 뚜렷하게 대비되는 모습과 마음을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미 베드로는 1장에서 하 나님 자녀로서의 정체성과 거룩함을 강조합니다. 16절 17절을 보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할지어다. 외모로 보지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그러 니까 우리가 변증하기전에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과 거룩하게 구별된 모습이 선행되어야 한 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소망에 관한 이유’에 대하여 제가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베드로가 1장에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바로 새 생명! 부활 입니다. 3절, ‘우 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 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산 소 망! 영어로는 Living Hope, 그러니까 이것은 살아있는 소망인 것입니다!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 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 죽어도 영원히 다시 사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의 궁극 적인 소망이며 이 세대와 모든 세대에 예수님이 필요한 이유인 것이죠. 산 소망이 있는 사람은 복 음을 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변증할 수밖에 없어요! 왜냐! 이 소망 때문에 기쁨이 넘치 고 즐겁기 때문입니다. 하루 빨리 이 좋은 소식을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 때문입 니다. 아무리 봐도 이 악한 세상에 소망은 오직 예수님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소망을 가진 사람은 말에 능력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할 말을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고전 2:13) 그러나 저에게는 그러한 소망이 없었습니다. 능력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하나님을 변증하는 것에 실 패한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그러나 저와는 달리 성경에는 하나님을 올바로 변증한 사람이 있습니 다. 바로 바울입니다.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바울이 아테네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변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울의 변증은 탁월했습니다. 우선 그는 저에게 없었던 소망과 거룩,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정체성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을 보면 바울의 정체성과 소망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이 잘 나타납니다.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낮, 빛에 속한 사람들은 밤, 어둠에 속한 사람들과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즉 바울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구별된 거룩함으로 믿음과 사랑 그리고 구원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의 변증은 저와 다르게 준비되었고, 또 힘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변증하는 기법 또 한 탁월했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방인들과의 접촉점을 만들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관심있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들이 신앙심이 깊다는 것을 알아차린 바울은 23절과 같이 ‘알지 못하는 신’ 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시작합니다. 더 나아가 그들의 시와 철학적 요소 를 변증에 담아 하나님이 누구인지 설명하는 것에 활용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설명하고, 심판과 회개, 그리스도의 부활까지 변증과 설교를 조화롭게 활용해 복음을 전파 하는 일에 크게 쓰임 받았습니다. 오늘 계속되는 본문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의 표본이 되는 좋은 모델입니다. 여기서 오역이 된 부분이 있는데 이유를 묻 는 자는 복수형으로 이유를 묻는 ‘모두에게’로 강조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바울은 특히 항상 모두에게 대답할 것을 준비 하라고 강한 어조로 이야기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모든 삶 의 언행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명하는 일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2. 행동으로 변증하는 삶 (Exegesis2): 우리는 말보다 행동이 더 강력한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말없이 꼬-옥 안아줄 때 더 사랑을 느끼듯이 말입니다. 아무리 자신이 착하고 남을 돕는 일에 앞장 선다고 떠들어대도 지하철역 노숙자에게 천원짜리 한장 건네 준적 없다면 그의 주장은 힘을 잃고 맙니다. 그리스도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참 하나 님 이시며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너를 사랑하신다고 교회에서 백번 천번 떠들어도 우리가 세 상에 말하지 않고 삶으로 살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니가 그렇게 사랑하 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야? 너에게는 어떤 소망이 있길래 그렇게 빛이나니?’ 라고 질문받아야 뭐라 도 시작될텐데..! 많은 경우 우리는 ‘예수님이 그렇게 가르치시던?’ 이렇게 질타를 듣는 것이 태반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행동으로 하나님을 변증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대표적인 변증자로 아브라함을 꼽습니다. 창세기 23장 1-20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의 무덤을 사 기 위해 헷 족속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아브라함과 헷 족속은 서로 를 생각하는 마음이 달랐던것 같습니다. 4절에 아브라함은 자신을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 는 지이니’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러나 헷 족속은 아브라함을 자신들의 공동체, 즉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6절에 말하길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이기 때문에 공짜 로 그 땅을 가지라고 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절을 합니다. 그냥 거래하는 상황인데 갑자기 절을 한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대화 도중 그렇게 두번이나 절을 합니다. 이것 은 오늘 본문의 내용인 ‘온유와 두려움’으로 아브라함이 이방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여주는 사건 입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과 태도는 하나님을 변증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전권 대리인이며 그의 영광의 형상을 담은 이미지 전달자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행동조차 우리의 믿음 의 증거가 될 수 있음을 알았던 아브라함은 온유와 두려움의 태도로 그들을 대했던 것입니다. 그 리고는 무료로 땅을 주겠다는 헷 족속 에브론의 호의를 결국 거절하고 사라의 매장지를 은 사백 세겔에 주고 사게됩니다. 놀라운 것은 히브리서가 이 이야기를 믿음의 조상들을 열거하는데 사용 한다는 것입니다. 11장 13-14절에 이르기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 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아브라함은 자신이 헷 족속과 같지 않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래서 자신을 나그네라고 소개했습니다. 어둠의 자녀가 아니라 빛의 자녀로 자신의 정체성을 구별 했던 것입니다. 만약 그가 그들에게 속하여 공짜로 그 땅을 얻었다면 그는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 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진짜 소망, 즉 새 생명이 무엇인지 보여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산 소망이 있음을 태도를 통하여, 매장지 구입을 통하여
그가 묻힐 곳은 썩어 없어질 가나안 땅이 아니라 더 나은 본향인 것을 말하려 했던 것입니다. 오 늘 본문의 저자 베드로 또한 2장 11절에서 나그네 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우리가 행동으로 어떤 태도와 행동으로 하나님을 변증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 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Outro: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변명을 합니다. 우리의 죄된 본성으로 인한 잘못과 실수들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본문과 같이 변명하는 삶이 아니라 변증하는 삶을 사는 존재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변명하는 삶에서 변증하는 삶으로 살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첫째, 먼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거룩하게 구별 되어 우리의 산 소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둘째,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항상 말할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누구처럼? 바울처럼요! 셋째, 우리의 정체성을 하늘에 두고 온유와 두려움으로 복음을 변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누구처럼요!? 아브라함처럼요! 사랑하는 여러분, 저도 압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렵고 부담스러운 일인지요. 특히 종교의 자유와 개인의 권리를 무 척 중요시하는 이 시대에 얼마나 거리끼는 말씀인지를요.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전 도사님도 실패했잖아요!’ 맞습니다. 저는 그때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고 입술 로, 삶으로 변증하지 못하고 변명했습니다. 그런데요 여러분, 바울도 실패했어요. 사도행전 17장 32절에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조롱했다’ 고 얘기하고 있어요.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바울이 떠났을 때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었다’ 고 34절에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 러분의 입술의 복음 한마디가, 삶 속 태도의 작은 변증이 한 영혼을 주님께 돌아오게 만드는 간격 이 32절에서 34절, 고작 두 구절 차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인간의 기대와 생각을 뛰어넘는 다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는 행동해야 합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왜냐하 면 그때 잠깐이지만, 준비되지 않은 입술로 전한 복음이 그 친구들 중 한명에게 제 소망의 이유에 퀘스천 마크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가 아직 예수님을 마음으로 영접하지는 않았지만 관심 을 가지고 저와 꾸준히 연락하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의 부족함과 실패 마저도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 이제 변명 하지 맙시다. 변증합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가 돈이 없어서, 실패해서, 낙담할 일이 생겨서 좌절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의 이유, 기쁨의 이유를 입술과 행동을 통하여 증명해 냅시다! 그래서 마지막날에 예수님 앞에서 나의 구별되지 못함과 복음을 부끄러워 했음을 변명하 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했다고, 나를 사용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고백 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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