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순종으로 열매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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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순종으로 열매맺습니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하갈을 생각할때 비운의 여인 또는 불행을 타고난 여인으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본문에 묘사된 하갈은 그와는 전혀 다른 인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갈이 하나님의 이름을 지어드리는데 ,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을 불러 드립니다. 이는 매우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일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이 직접 계시하시거나 아니면 겨우 하나님의 성품등을 인간이 묘사할수는 있는데, 인간이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지어서 부르는 것은 이 하갈이 유일합니다. 이는 매우 파격적인 일입니다. 본문에 묘사된 하갈과 비교되는 여인은 당연히 사라입니다. 이 두사람은 아주 명백히 비교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사라는 언약의 어미입니다. 그리고 자유인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정식 부인입니다. 반면에 하갈은 언약과는 전혀 상관없는 애굽여자입니다. 그리고 몸종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후첩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모습만을 보면 사라와 하갈의 모습이 정반대의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사라는 언약의 당사자이지만 언약을 잃어버리고 헤매는 사람으로 등장하고 하갈은 언약과는 상관없는 비참한 상황가운에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을 받고 비참한 상황을 극복하는 믿음의 용장으로 등장합니다.
이렇게 이 두사람을 가르는 결정적인 키워드는 순종이라는 단어입니다.
사라가 남편 아브라함에게 하갈을 후첩으로 내어준것은 두가지 이유때문입니다.
하나는 이 자신의 육체적 현실이 자손을 낳을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약속을 받을때는 그래도 사라가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있었는데, 이제 시간이 흘러서 이제 더이상 아이를 낳을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것을 사라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창16: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아무리 하나님의 약속이지만 여성으로서 더이상 아이를 낳을수 없는 형편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자신을 통해 자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성취가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 한 것입니다. 그래서 몸종 하갈을 통해 자손을 가지기로 한것입니다.
두번째는 다른 여인을 통해서 아들을 낳아도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상황역시 여주인이 아이를 낳지 못할경우, 종이나 다른 여인을 통해 아들을 낳아 여주인의 아들로 키우는 것이 종종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라도 비록 자신이 아이를 낳지 못하지만 몸종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키우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몸종 하갈을 통해 아들을 대신 낳게 하여 자손을 이어갈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 두가지 이유로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갈을 남편 아브라함에게 후첩으로 내어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아브라함과 사라의 행위를 불순종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사실 이러한 아브라함과 사라의 불순종은 이 하갈의 경우 한번이 아니다.
창세기 25 장에 보면 아브라함에 대하여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또다른 후처인 그두라를 아내로 삼아 6명의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창 25:1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어떻게 자손이 없어 근심하던 아브람이 이렇게 아이를 많이 가질수 있었을까?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때 이 후처를 통해 또 6명의 아들을 얻은 이야기가 아브라함의 이야기의 맨 끝인 25장에 나오니까 아브라함이 죽기 직전에 이렇게 후처를 얻어 아들들을 많이 낳았나보다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100살에 이삭을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낳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은 후 갑자기 회춘해서 그 뒤로 새로운 후처를 더 얻어 6명의 아들을 낳은 것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이는 성경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바랄수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이삭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예표를 삼으셨는데, 그 뒤로 하나님께서 언약과 전혀 상관이 없는 6명의 아들을 또한번 생물학적 기적을 일으키셔서 주셨다는 것은 앞뒤가 안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사라가 본문에서도 알수 있는 것처럼 사라자신이 아들을 낳지 못낳으니까 하갈을 후처로 아브라함에게 준것이지, 자신이 이삭을 낳았는데도 아브라함이 또 후처를 얻어 6명의 아들을 더 낳았다는 것은 이것 역시 앞뒤가 전혀 맞지를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베짱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비록 6명의 아들을 낳은 이야기가 아브라함이야기의 말미에 기록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 이야기는 사라가 아들 이삭을 낳기 전의 일들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그리고 이성적으로 말이 되는 해석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계속해서 자손을 얻는 일들을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말입니까 자신역시 생물학적으로 자식을 낳을수 없음이 확인될때까지말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것 배후에는 후처들을 통해서 자식들을 많이 낳아 자신의 아들로 삼겠다는 사라의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것이 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불순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세월이 모두 13년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13년동안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침묵하셨고 사라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만약에 사라가 자신의 몸의 한계를 느낀 순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믿음으로 기다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 사라와는 정반대의 주인공이 나오는데 하갈입니다.
하갈은 여주인 사라의 학대를 못이겨 도망을 나온 상황에서 하나님께 자신의 의지와는 정반대의 명령을 받습니다.
창 16: 9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지금 상황이 여주인의 학대를 못이겨 도망나온 상황입니다. 만약에 하갈이 그냥 사라에게 돌아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사라가 가만히 두겠습니까? 더구나 도망간 종은 죽여도 할말이 없는 것이 당시의 상식이었습니다.
사라가 자신의 몸상태를 두고 하나님의 약속을 불가능한것으로 여겼다면 하갈 역시 자신의 상황을 두고 얼마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갈은 그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더하여 하갈은 자신이 낳을 아이의 이름까지 지어주시고 그 아이의 미래를 크게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뵈면서 크게 감탄하며 기뻐합니다.
본문은 하갈이 아브라함의 아들을 낳았고 그 이름을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이스마엘이라 지었고 아브라함의 나이가 86세였다고 기록합니다. 이는 하갈이 염려했던 문제들을 하나님께서 다 풀어주셨음을 의미합니다.
하갈은 순종했고 하나님은 하갈을 지켜주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사라와 하갈이라는 두 여인을 소개하면서 각각의 인생의 기도제목들이 어떻게 멈추고 성취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라는 순종하지 못함으로 13년의 시간을 기다림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하갈은 순종함으로 죽음과 같은 위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을수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순종 순종하면 우리 성도님들 마음이 많이 불편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목회자들이 순종이라는 단어를 목회자에게 순종하는것으로 치환시켜 강요하는 것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합리하고 옳지 못한 요구를 하면서도 순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강요하는 상황을 경험하면서 순종이라는 단어에 트라우마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얼마든지 목회자에게 불순종할수 있습니다. 이유는 목회자도 사람이고 얼마든지 잘못판단할수 있고 잘못 인도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판단했는데 순종하면 안됩니다. 잘못인도하는데 역시 순종해도 안될것입니다. 그때는 마땅히 불순종해야 하고 불순종할뿐만 아니라 그 일이 진행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할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설교를 그런 낮은 수준으로 오해하지는 마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생각하는 순종은 복음에 대한 순종입니다.
저는 순종이라는 단어와 충성이라는 단어를 거의 동의어로 생각합니다.
고전 4:2에서 바울은
맡은자들에게 구할것은 충성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 충성이 어떤 충성이어야 하는지도 함께 설명합니다.
그것은 사람이나 조직이나 신념이 아니라 복음에 대한 충성입니다.
고전 4:1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바울은자신을복음을맡은자라고소개합니다.그리고그렇게복음을맡은자들에게하나님이원하시는것은충서이라고말씀합니다.
그리스도예수의복음에대한충성이